꽃잎이 살랑살랑 떨어져 섬섬옥수같은 손에 한아름 쌓이는구나.
달빛아래 비치는 두 남녀의 그림자가 서로 엉킨 실타래처럼 엮이는구나.
서로이 숨결이 모여 바람을 이루고 서로의 눈물이 모여 비가 되어 내리는구나.
꿈결같은 입맞춤에 입 안에는 꽃향이 퍼져가고 눈에는 어여쁘게 수 많은 별들이 들어가 있구나.
※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움직여 보아도, 그리운 임의 모습이 보고싶어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임은 그저 뒷 모습만 보인체 외면을 하시지만, 내 마음은 왜이리 미련스러운지.
한번이라도 더 보고픈 마음에 속으로 '제발 나를 돌아봐주세요.'라고 외쳐보지만, 끝내 임의 귀 속에는 들리지가 않을테지.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눈길을 마주치던 그 날이 엊그제 같은데 왜 이리 매정하게 구시는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색시로 맞이한다던 그 언약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혼기가 꽉 차는 나이가 되면, 꽃가마를 타게 해준다던 그 언약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입밖으로 내밀고 싶어도, 임은 그저 외면할뿐.
보름달이 떠 오르던날 새벽 밤 바람이 세차게 불던날 말을 타고 몰래 어디론가 떠나버리자고 하던날.
수줍게 마주친 그 입맞춤. 부끄러운 마음에 달만 쳐다보던 그날. 임은 그 날을 잊으셨는지.
※
"여리야, 미안하다."
오랜만에 찾아온 임에 어여쁜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 가혹했다. 도대체 뭐가 미안하단 말인가.
"뭐,뭐가 미안하다는 건데요?"
사시나무 처럼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임에게 물어보지만, 임은 내 눈을 회피하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뿐이였다. 임과 나 사이에는 그저 침묵만 흐를뿐, 서로의 숨소리만 크게 들릴뿐이였다.
"청나라로 가거라."
굳게 닫힌 입에서 힘겹게 내뱉은 말에는 충격적인 말이였다. 처음에는 잘 못들은줄 알고, 다시 말해달라고 되 물었다. 하지만, 임께서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할뿐이였다.
"청나라로 가거라. 5일 뒤면 너를 데려갈 사람이 올께다."
임의 말에 목에는 날카로운 바늘들이 쑤시는것처럼 따가워지기 시작하고 눈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저 머리속에는 먹구름이 잔뜩 낀것처럼 아무런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마음속에 구멍이 난것처럼 허망한 마음에 애써 임의 눈을 마주치며 힘겹게 물어보았다.
"우리의 사랑이 꽃잎처럼 사람들에게 밟히는 그런 존재였나요?"
힘겹게 물어보아도, 임은 흠흠 거리며 헛기침을 할뿐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버렸고, 내 옆에는 오로지 하얀 꽃잎이 남겨질뿐이였다.
※
낮선사내에게 끌려가는 내내 뒤를 돌아보아도, 임은 끝내 뒤 돌아보지 않았다. 가축이 도축하러 질질 끌려가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였을까.
뒷 모습만 보이는 임이 왜이리 야속해 보이는지, 그 날의 일이 왜 떠오르는지.
"약속해. 꼭 너를 색시로 맞이하겠다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곱게 땋아놓은 머리를 헝크린다. 곱게 차려 입은 한복이 펄럭거린다. 하얀 꽃잎이 하늘하늘 불어와 나를 스쳐간다.
"정말이죠? 꽃가마 태워서 데려가실꺼죠?"
※
내 임이여, 왜 나를 두고 가시는지.
내 임이여, 나를 두고 가지 마세요.
내 임이여, 애타게 기다리는 내 마음을 아시는지.
내 임이여, 내 마음을 아신다면 어서 돌아와 주세요.
내 임이여, 제발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나는 오직 임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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