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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교과서 "제주도는 왜구 소굴"
게시물ID : sisa_142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영규
추천 : 5
조회수 : 244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05/04/07 12:35:47
오마이뉴스 이재홍 기자]일본 후소샤판 교과서 왜곡이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는 가운데 '제국(데이코쿠)서원'판 역사교과서가 제주를 ‘왜구의 근거지‘라고 써 도민들은 물론 역사학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사고 있다. 

특히 제국서원(帝國書院)은 지난 2001년 검정교과서에도 ‘제주=왜구 근거지’로 기술해 도민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우리 정부로부터 강력한 수정요구를 받은 바 있으나 이번에도 또 다시 이 같은 기술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상당한 파문이 일 전망이다. 


지난 5일 후소샤판 교과서와 함께 일본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한 제국서원판 역사교과서는 ‘왜구’를 설명하면서 “왜구는 제주도와 북구주의 섬 등을 근거지로 하여 밀무역을 행하기도 하고 해적 행위를 하기도 했던 사람들이었다”며 “이즈음의 왜구는 일본인 중심으로 그 밖에 조선인과 중국인 등도 가담하고 있었다고 생각되고 있다”(68쪽)고 기술해 제주도가 왜구의 근거지였다고 밝히고 있다. 


제국서원의 이 내용은 4년 전 왜곡된 역사의식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다시 한 번 그들의 후안무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제국서원 2001년판에는 “왜구란 제주도와 북구주의 섬들을 근거지로 하여 밀무역을 행하고 해적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일본인만이 아닌 조선인과 중국인도 가담하고 있었다”고 썼다. 


2005년판은 2001년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조선인과 중국인도 가담하고 있었다(2001년판)’를 “…가담하고 있었다고 생각되고 있다”로 표현을 약간 달리했을 뿐 제주도가 왜구의 근거지이자, 제주도민들은 왜구라는 왜곡된 시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를 첫 머리에 씀으로써 마치 제주도가 ‘왜구의 소굴’이었던 것처럼 착각케 할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1년 당시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왜구의 엄연한 해적행위를 마치 주로 무역에 종사하다가 가끔 저지르는 약탈 행위인 것처럼 왜곡 미화하고 있다”며 “제주도를 왜구의 근거지로 설명한 것은 잘못일뿐더러 왜구에 조선인과 중국인을 포함시킨 것은 ‘왜구= 일본인’이란 기존의 역사인식을 불식시키려 한 데서 발생했다”며 수정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측은 “일본의 학계에 있어서는 왜구에 관해 왜구와 평화적 교역자의 동일 실체의 양면이었다고 하는 설과 통상을 목적으로 한 일본의 선박이 무역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약탈행위’를 한 것을 왜구에 포함시키는 설도 있다”면서 “이러한 학설 상황에 비춰 명백한 오류라 할 수 없고, 제도상 정정을 요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제주도가 왜구의 근거지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본의 학계에 있어서 왜구에 제주도민이 포함되고 제주도가 대마도와 함께 활동거점이었다는 것이 널리 인정되어 이러한 학설상황에 비추어 명백한 오류라고 할 수 없고 제도상 정정을 요구할 수 없다”며 교과서 수정을 거부했다. 


제국서원이 4년 전에 이어 또 다시 왜곡된 역사기술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제주도민들의 상당한 반발이 예상된다. 


제국서원은 제주도가 왜구의 소굴이었을 뿐만 아니라, ‘왜구에는 일본인을 중심으로 조선인과 중국인 등도 가담하고 있다’며 사실상 ‘제주도민=왜구’란 입장을 유지해 지금의 제주도민들을 졸지에 ‘왜구의 후손’으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제주도는 지리상 우리나라에서 왜구의 침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으로, 고려 말 조선 초에 축조된 9진성(鎭城) 25봉수(烽燧) 38연대(煙臺), 그리고 환해장성(環海長城) 등 방어유적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박찬식(제주대 사학과) 박사는 “왜구는 말 그대로 해적 집단으로 일본인인 왜구는 고려후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으며, 조선 초에는 제주 성내까지 공격해 들어왔었다”면서 “제주도가 왜구의 거점이란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박 박사는 “일본 사학계에는 동아시아 해역을 ‘개방해역’으로 개방적 관점에서 보려는 입장이 있는 반면, 영유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본 민족사학 그룹이 있다”면서 “제주를 왜구의 근거지로 보고, 또 왜구에 제주도민들이 포함돼 있었다고 하는 주장은 과거에는 제주도가 자신들의 영토였음을 주장하려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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