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짝 19세 묘사가 있습니다. 읽기 전에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이광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4월 어느 날의 학부모 참관수업 때였습니다. 다른 학부모에 비해 나이가 어리고 유독 선이 가늘었던 그는 나에게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했습니다. 교대에 다닐 때 문예부에 소속되어 있었던 나는 그에게 흥미를 보이며, 어떤 작품을 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동물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내 말에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표정을 본 나는 내가 혹시라도 말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부분이 그의 심경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작가들이란 예나 지금이나 예민한 존재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명함 여기 있습니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는 나에게 명함을 건네주었습니다. 전시회를 하게 되면 꼭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입니다.
나는 그의 명함을 받아 품에 집어넣었습니다. 검붉은 색으로 아무렇게나 디자인된 명함은 마치 그의 작품세계를 나타내는 듯 괴기스러움을 주었습니다.
그 뒤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바빴던 나는 그에 대한 것을 한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초등학생 연속 납치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경찰은 물론 교사들도 아이들의 통학 지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 뒤쯤,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사건에 비해 많은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전시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쯤이었습니다. 그것은 누가 먼저 연락을 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신문을 보다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전시회를 열었으니, 구경하러 오지 않겠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전시회장이 마침 근처였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 선생님. 가능하면 전시회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 찾아오실 수 있겠습니까? 다음 전시회의 주제를 그날 공개할 예정이라서요.”
그의 말에 나는 특별한 자리에 초대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 나는 혼자서 전시회장을 찾았습니다. 원래는 아내와 아이 모두 데려갈 계획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아이가 아픈 바람에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품속에서 그가 예전에 주었던 명함을 꺼내 보았습니다. 다시 봐도 기괴스러운 그 명함을 손에 쥐자, 어떤 작품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움과 동시에 궁금증이 몰려 왔습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그의 전시장은 밝고 화사한 분위기였습니다. 그가 그린 동물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전시장을 돌아다닐 것처럼 생동감이 있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나는 나의 괜한 걱정을 사죄하기라도 하듯 그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여러 사람을 맞이하느라 지쳐 보이는 기색으로 나를 맞았습니다. 평소에도 가늘어 보이던 그의 인상이 더욱 희미해져, 전시회장의 밝은 빛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저녁 8시가 되자, 전시회장에는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기자, 잡지사 직원으로 보였고 개인적으로 초대를 받은 사람은 나 혼자인 것 같았습니다.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발 두 개 정도 높이 되는 낮은 연단에 서서 그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전시회장에서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생기 있고 빛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지금까지의 전시는 전부 가짜고,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그의 뒤에는 캔버스 하나가 천에 가려진 채 조명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 다음 전시회의 주제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자신 있게 캔버스의 천을 벗겼습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공개될지 기대하던 사람들의 표정은 곧 충격에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잘못된 것을 본 마냥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고, 밖으로 뛰쳐나가 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 역시 그의 작품을 보고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오늘 전시회에서 공개된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그러져 있었습니다.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있었지만, 전시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마리의 개였습니다. 하얀 개 한 마리가 소년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채 강간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림 속에는 검붉은 선혈이 낭자한 소년이 살려달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하얀 개는 그럴수록 더욱 탐욕스럽게 소년을 희롱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작품 앞에,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미친 새끼야. 지금 시기가 어느 시기인데.”
전시회장에 있던 남자 하나가 연단에 서 있던 그를 밀치고 작품을 바닥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는 작품을 보호하려는 듯 몸으로 캔버스를 감쌌고, 남자는 구둣발로 그를 마구 짓밟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전시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는 터무니없는 그 장면을 보다 못해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던 중 그의 명함을 품속에서 꺼내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 이후 나는 며칠간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전시회장에서 보았던 하얀 개가 아이들을 덮치는 꿈이었습니다. 매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담당하는 반에 그의 딸이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전시회 소동이 있고나서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의 딸이 최근 며칠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죄송합니다. 지금 장례식장에 있어서요.”
아내가 죽었다는 말을 그렇게 덤덤하게 전한 그는 아이의 등교가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내게 전했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일수록 아이를 더 잘 돌봐야 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그는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으며 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삼일 동안 그의 딸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그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마음먹었을 때쯤, 그의 딸이 학교에 나타났습니다. 평소 쾌활하던 모습과 달리 많이 어둡고 풀이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지냈는지, 이것저것 물었지만 특별한 학대의 증거는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보다 급식을 많이 먹거나, 동물 소리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렸던 불길한 작품을 떠올렸지만, 곧 그러한 상상의 날개를 접었습니다. 그가 독특한 사람이긴 했지만, 자기 자식까지 학대할 정도의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는 점점 어두워져 갔습니다.
우선, 먹을 것에 강하게 집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처럼 급식에 집착했고, 자신이 원하는 양만큼 주지 않을 경우 행패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먹을 양보다 많은 밥을 먹다 게워내기가 일쑤였으며, 그렇게 먹는데도 불구하고 갈수록 말라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옷도 자주 갈아입지 않았고, 혼자서 씻은 것 같은 엉성한 머리카락에서는 항상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동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교실 뒤편에 기르던 햄스터들을 창밖으로 던져버리는가 하면, 자그마한 동물, 특히 개나, 고양이 등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천둥번개라도 치는 마냥 책상아래 들어가 울면서 떨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웃으면서 괴롭히기만 하던 다른 아이들도, 어딘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여선생님들을 통해 아이를 돌봐주었지만, 결국 그마저도 등교를 하지 않게 되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는 경찰에 신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인지, 나이와 명성에 비해 꽤 큰 저택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집은 대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마당을 지나면서 나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데, 누군가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돌아갈까 고민을 했지만,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몇 번 벨을 눌린 끝에 집에서 나온 것은 그의 딸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상태가 나빠진 그 모습은 마치, 말라 비틀어져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서둘러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은 주택이 교외라 조금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그의 딸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온통 검은 커튼으로 가려진 집은 조금의 빛도 허용하지 않는 듯 암흑에 감싸여 있었습니다. 거실의 천장과 벽에는 박제된 동물들의 눈동자가 우리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고 있었고, 바닥에는 망가진 캔버스 몇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집안에 없다는 것을 확신한 나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캔버스를 잡아들었습니다. 캔버스에는 각각 모습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수간(獸姦)과 남색(男色)에 대한 내용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개에게 뜯어 먹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남자, 여러 마리의 개에게 둘러싸여 강간당하는 남자아이, 나는 구역질이나 방바닥에 캔버스를 집어 던졌습니다. 아내가 죽었을 때 그가 왜 그렇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는지, 자신의 딸에게 어째서 하나도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아이를 데리고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문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기절할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으며 거실 안쪽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딸이 발작하듯 흐느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옆에는 성인 남성만한 덩치의 하얀 개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개가 다가올 때마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얀 개는 그런 아이의 표정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정말 이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지만, 아이를 농락하는 것 같이 그 뺨을 길고 붉은 혀로 핥았습니다. 아이는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며 기절했습니다. 오줌을 지렸는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바닥에 깔린 카펫이 눅눅해져 갔습니다. 나는 개가 금방이라도 나를 발견할 것 같은 두려움에 온 몸이 떨렸습니다. 개는 무언가 다른 존재의 냄새를 눈치 챈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나는 딱딱거리는 이빨 소리를 막기 위해 손을 물었습니다.
하얀 개와 눈이 마주친 순간, 뒤에서 짤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식은땀이 마구 쏟아지고, 이제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신이 아득해 지는 가운데 내 눈 앞으로 남자의 벌거벗은 하반신이 나타났습니다. 내 존재를 발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개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개의 엉덩이와 꼬리를 잡았습니다.
다음 순간, 남자의 짤막한 비명 소리가 거실에 흘렀습니다. 쾌락에 젖은 남자의 간드러지는 비명소리와 하얀 개의 울부짖음이 거실을 가득 메웠습니다. 나는 속에서 헛구역질이 마구 올라오고 숨이 막혀 이제 정말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절정에 달한 것 같은 격한 욕지거리가 들렸습니다. 남자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나 실성한 것처럼 큰 소리를 내어 웃었습니다. 하얀 개는 기력이 다한 듯 쓰러져 있었습니다. 새빨간 피와 번들거리는 정액으로 뒤범벅이 된 남자는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 듯 눈에 광기를 띠며 캔버스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캔버스를 뒤져 그중 하나를 집어 든 남자는 이젤 위에 그것을 올려두었습니다. 옆에 있던 붓을 거칠게 쥐고 몇 번 휘두른 남자는 만족스럽다는 듯 캔버스를 들고 미친 듯이 웃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 덕분에 최고의 작품을 얻을 수 있었어요.”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공포에 손발이 마비되어 옆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다가오는 그를 보고, 나는 죽음보다 더한 극한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어느새 주인 옆에 선 하얀 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그럼, 다음 작품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하얀 개가 나를 향해 뛰어오는 것을 보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눈을 뜨자 하얀 천장이 눈앞에 보였습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 비명소리에 깜짝 놀란 아내와 아이가 괜찮다며, 나를 진정시켜 주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병원에 있었습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몸을 더듬어 보았지만, 별다른 상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나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겨우 마음이 진정되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아내는 내가 교외의 외딴 저택에 쓰러져 있었고, 그것을 발견한 경찰이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황급히 그 남자, 이광석에 관한 것을 아내에게 물었지만, 아내는 경찰이 발견한 것은 나와 그의 딸 뿐이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말대로 경찰 조사 결과도 동일하게 나왔습니다. 경찰은 이광석이 집에서 사라진 도망간 것 같다고 내게 알려 주었습니다. 정신장애 증세를 보였던 그의 딸은 몇 번의 병원 신세를 진 뒤, 그의 친척에게 입양되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한동안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나는 어느 전시회장에 걸려 있는 작품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작가의 이름도, 경력도 달랐지만 분명 이광석의 작품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그것은 한 남자가 개와 수간을 하는 장면을 다른 남자가 몰래 지켜보는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의 아래쪽에는 조그마한 글씨로 관음증(觀淫症)이라는 제목이 써져 있었습니다. 나는 금방이라도 그와 그의 하얀 개가 나를 쫓아 올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황급히 전시장을 빠져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