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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부당거래
게시물ID : panic_977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10
조회수 : 15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1/15 00: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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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중년의 남자가 성우를 찾아 온 것은 월요일 오전이었다. 안 그래도 손님이 없어 곤란한 마당에, 국밥 한 그릇 시켜놓고 남자는 이것저것 성우에게 물었다.
 
왜 쌀은 중국산을 씁니까?”
 
수지가 안 맞으니까, 중국산을 쓰죠.”
 
그럼 김치나 다른 재료들도 다 중국산인 것도 같은 맥락이겠군요.”
 
, 그렇죠.”
 
그러면 중국산은 국산에 비해서 가격이 얼마 정도 차이가 납니까?”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질문을 했다.
 
아니, 저기 어르신. 제가 손님에게 이러는 건 좀 아닌 것 같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물어 보시면 곤란합니다. 저희도 영업 기밀이라는 게 있잖아요.”
 
기껏 해야 6,000원 짜리 국밥에 기밀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성우는 넌덜머리가 난다는 투로 남자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성우의 태도에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밥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가져갔다. 딱히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괜히 그 태도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성우는 화가 났다.
 
그건 그렇고 이 국밥은 그렇게 맛있지 않군요. 국물은 조미료 맛이 너무 나고, 쌀도 김치도 푸석푸석해서 감칠맛이 떨어집니다.”
 
아니, 이 사람이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성우는 주방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뛰어나올 정도로 크게 남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가요, 얼른. 자기가 손님이면 다라고 생각 하는 거야 뭐야? 돈 필요 없으니까, 얼른 나가요. 나가라고!”
 
성우는 크게 소리는 질렀지만, 남자의 몸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괜히 몸에 손을 댔다가 경찰이라도 오면 더 곤란해 질 것 같아서였다.
 
이걸 받으시지요.”
 
남자는 성우가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았다. 그 태도에 성우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자의 손에 있던 물건을 낚아챘다.
명함이었다.
 
일동무역 대표이사?”
 
저희 회사에서 국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다루는데, 보고 있자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조금 무례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한 번 보내 드릴 테니, 사용해 보시고 필요 하면 연락을 주십시오.”
 
남자는 성우의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며 일어났다. 자리에는 몇 숟갈 뜨다 만 국밥이 놓여 있었다. 성우는 남자가 나간 뒤 명함을 구겨 쓰레기통에 놓고 욕설을 퍼부었다.
다음 날 새벽 가게 앞에 처음 보는 트럭이 물건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봐요. 지금 뭐 하는 거에요?”
 
성우가 물건을 내리는 남자들에게 따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자기들도 여기 내려놓으라고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뿐이었다. 물건들을 살펴보니 김치, , 육수, 젓갈 등 국밥 재료들이었다. 성우는 어제 찾아온 이상한 남자의 소행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거, 전부 버려버려요.”
 
성우는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말했다.
 
아이고, 이 괜찮아 보이는 걸?”
 
아주머니들은 아깝다는 눈치였지만, 성우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전부 다 버렸다. 하지만 그 뒤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배달은 계속 되었다. 매일같이 재료를 버리던 성우도 한 달 정도 지나자 의심보다 궁금증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 남자는 자신에게 이런 재료들을 보내는 것일까? 장사도 제대로 안 되는 자신에게 이렇게 영업을 해 봐야 남는 것도 없을 텐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찝찝한 마음만 더해질 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이고, 성우 총각. 이거 좀 드셔 보셔. 맛이 장난 아닌데?”
 
어느 날 아침, 술을 먹고 조금 늦게 가게에 나왔더니 아줌마들끼리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매일 파는 국밥이 다 똑같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한입 뜬 성우는 깜짝 놀라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이거, 뭐에요?”
 
그 국밥은 성우가 여태까지 먹었던 국밥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 이거. 그 있잖여. 매일 오는 그거. 그걸로 한 번 만들어 봤어. 버리기도 아까우니까 우리라도 먹자고 해서. 근데 솔직히 너무 맛있으니까, 한 번 먹어보라고 했지.”
 
아주머니들을 질책하는 것도 잊고 성우는 허겁지겁 국밥을 비웠다. 한 그릇 다 비우고 나자, 여태까지 자기가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 남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명함은 이미 쓰레기통에 버렸기 때문에, 꾸역꾸역 남자가 말했던 회사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핸드폰에 남자가 말한 회사의 이름을 검색하자, 홈페이지가 하나 나왔다. 홈페이지에는 남자의 사진과 함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성우는 남자의 전화번호로 황급히 연락을 했다.
 
아이고, . 선생님. 얼마 전에 명함 받았던 조성우라고 합니다.”
 
성우는 마치 남자가 앞에 있기라도 하듯 머리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남자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보낸 재료들이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제공해 드리도록 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다음 날 새벽 성우의 가게 앞으로 평소 보내던 몇 배의 재료들과 계약서가 도착했다. 계약서에는 평소 성우가 사용하던 재료들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 명시되어 있었다. 음식장사가 결국 재료장사인데, 그 재료가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라니 성우로써는 눈이 뒤집힐 만한 조건이었다.
 
계약 담당자가 직접 오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당장 눈앞에 큰돈을 바라보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설마 무슨 큰일이야 있겠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성우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계약서는 물건을 가져온 남자들에게 들려 보냈다.
값싸고 질 좋은 재료를 얻었다는 자신감에, 성우는 국밥 가격을 내렸다. 싼 가격에 한 번 들렸던 손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우 가게의 국밥 맛에 매료되었다. 매일같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주변 일대 상인들이 생계가 위협 받는다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아니, 우리도 좀 같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도대체 어떤 회사랑 거래하는지 좀 알려 달라니까?”
 
주변 가게에서 찾아와 성우에게 부탁했지만, 성우는 요지부동이었다.
 
, 남의 가게 영업 비밀을 그렇게 함부로 알려 달라고 하면 쓰나요?”
 
주변 상인들은 하나같이 수상하다고 수군거렸지만, 성우의 장사는 날로 번창해 갔다. 유명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성우는 자수성가의 아이콘이 되었다.
너무 인기가 좋아진 탓인지, 가게에 점검도 많이 나왔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특이하게 일본산 식재료 많이 쓰시네요.”
 
아유, 그럼요. 중국산 보다야 낫죠.”
 
서류 좀 부탁드립니다.. 여기 있습니다.”
 
어느 날 성우는 2호점 개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하니, 이번에는 직접 대표이사를 만나 봐야겠다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여태까지는 아침에 찾아오는 남자들을 통해 발주를 했지만, 조금 더 확실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 통화음이 울렸지만,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번호가 바뀌었나.”
 
저번처럼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을 하려고 검색을 했지만, 홈페이지 역시 검색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관련된 내용을 찾았지만, 아무 것도 검색되지 않았다.
 
이거 뭐야 도대체.”
 
성우는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2호점은 고사하고, 혹시라도 식재료가 배달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그 생각에 잠을 못 이룬 성우 앞에 식재료 배달 차량이 도착하는 것이 보였다.
성우는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뛰어 나갔다.
 
아이고, 수고 많으십니다.”
 
재료를 배달하는 남자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성우를 바라봤다.
 
대표 이사님 번호가 없어져서 그런데, 혹시 번호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아뇨, 그건 저희들도 모릅니다.”
 
, 그러면 평소에 어떻게 거래를?”
 
저희도 한꺼번에 거래 대금을 받아서요. 가게에서 처리해 달라는 대로 해 주라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정도 기간 동안 말인가요?”
 
글쎄요. 자세한건 잘 모르겠는데, 3년 되는 것 같은데요?”
 
차가 떠난 뒤 성우는 더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세상에 어느 회사가 그런 식으로 거래를 한다는 말인가? 다시 한 번 대표 이사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국번이라는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당장 가게를 접자니 돈과 명예가 눈앞에서 아른거렸고, 계속 하자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의 꿍꿍이가 마음에 걸렸다.
 
성우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를 그만둬야 하는지, 아니면 계속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싸매고 끙끙댔다. 그러는 사이에도 식재료는 꾸준히 배달되어 장사는 계속 성행했다.
 
경찰이 성우를 찾아온 것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장사를 계속 하던 성우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아니, 무슨 일인데 그래요?”
 
농산물 불법 유통 건으로 잠깐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 아니, 이봐요. 내가 무슨. 저기, 손님들도 계시는데.”
 
성우는 억울하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성우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경찰서에 도착해 조사를 받으면서, 성우는 자신에게 걸린 혐의가 후쿠시마 농산물 불법 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코 알고 사용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 했지만,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발 빠른 언론들은 자수성가한 장사꾼의 이면성에 대해 마구 보도했고, 전국적으로 먹거리에 대한 파동이 일어나 모든 이슈들을 휩쓸었다.
 
아니에요, 전 진짜 아무 것도 몰랐단 말이에요. 저는 이 물건들 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연락처도 몰라요.”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제대로 이야기해요. , 피곤하니까 얼른 합시다.”
 
성우는 끊임없이 무죄를 주장했지만, 세상은 성우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았다. 매일같이 후쿠시마 농산물 파동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는 가운데, 자막으로 대통령 측근의 뇌물수수 비리가 무혐의로 밝혀졌다는 기사가 짤막하게 흘러 나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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