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이 열리자 인사를 하고, 그 년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제 내가 계획했던 그 일을 실행하기로 한다. 이 밤은 매우 길고 넉넉하니까.
"김서방, 안그래도 부르려고 했었네. 오호호호. 선예도 같이 오지 그랬는가. 왜 자네 혼자..."
기회를 엿보던 사자가 사냥감을 덮치듯, 나는 그 년의 아랫배에 깊숙히 칼을 찔러 넣었다.
얼마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 년은 반항할 기력도 없어 보인다. 그저 바닥에 누워 빨리 죽여 달라는듯, 애원하는 눈빛으로 날 올려다 보고 있었고 그때 다시 띵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호, 두번째 사냥감 이신가?"
그년이 짐승같은 절규를 내 지른다.
피바다가 되어있는 집이 놀랬나보지? 말을 잇지 못하며 어버버 거리는 꼴이 우습기 짝이없다.
"자..자네! 이.. 이게!"
경동맥을 찌르자, 피가 분수처럼 품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피가 품어져 나오는 목덜미를 부여잡고 몇번을 버둥거리는가 하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그 꼴을 본 그년은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설설 기어 내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야, 내가 누군지 기억해?"
내 바짓가랑일 붙잡고 고개를 젓는 그녀의 1번과 2번 경추사이, 다시 한번더 깊숙히 칼을 찔러 넣었다. 몇번의 퍼들거리는 경련 이후, 모든것이 잠잠해졌다.
*
"네, 이곳은 경선동 부부살인사건 현장입니다. 범인은 부부를 잔인하게 살해 한 뒤, 도주 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집안이 어지럽게 흩어진것으로 보아, 금품을 목적으로..."
연일 언론은, 이 사건을 떠들어 대기 바빳다. 그 여자는 이내 몇번을 실신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부검과정을 지켜보았다. 물론 나는, 그 여자의 곁을 지켜야지.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불쌍해진 여자의 곁을 지키는 의리있는 남편, 뭔가 있어보였거든.
살인에 사용된 흉기나 범인의 족적을 찾기가 힘들어 미제사건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는 말에, 오열하는 그 여자를 보며 하마트면 웃음이 터질뻔 했다.
성인이 눈물콧물 흘려가며 입을 크게 벌려 짐승같은 소리를 내지르는 꼴이란. 하지만 내 속에 악마를 잠 재우긴 힘들다.
나는 '그것'과 내가 입고 있었던 나의 아비라는 새끼의 옷가지를 같이 담아, 보란듯 그 새끼가 살고 있는 그곳에 슬쩍 내던지고 왔다. 조만간 아주 서프라이즈! 한 일이 벌어질거야.
*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전까진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경선동 부부 살인사건의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긴급체포 되었습니다. 가해자는, 피해자 부부의 사돈으로, 금품을 요구하다 싸움으로 번져 살인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으나 극구 부인하고 있습니다. 곧 뒤이어, 경찰의 브리핑이 있을 예정인데요, 아. 지금 시작 되네요. 경찰 브리핑 연결 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경선지방경찰청장 장만수입니다. 사건의 경위부터..."
*
"어떻게!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그 여자가 울부짖으며 나를 쳐 댄다. 당장이라도, 모가지를 꺾어 바닥으로 패대기쳐 버리고 싶지만, 아직 쓸모있는 년이기에 참는다.
"미안해,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인줄 몰랐어. 난...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어. 정말 미안해."
"엄마.. 아빠... 우욱!"
이내,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통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는 그 여자에게 달려가, 등을 두드려준다. 두번째 계획 역시도 성공한듯 하다.
이 여자와 결혼한 이후, 매일 나는 휴지통을 뒤져 이 여자의 생리주기를 계산했다. 당분간은 아이를 가지기 싫다는 그 여자의 말에 순응 하는 척 해줬지. 콘돔에 몰래 구멍을 뚫어 놓았을줄은 꿈에도 몰랐을걸.
화장실 변기통을 붙잡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처들고 이내 뭔가를 가만히 생각해 보던 이 여자가 다시 오열하기 시작한다.
"여보..."
일단 이 여자를 안아 침대에 눕히고선 방을 나왔다. 조만간 두번째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 생각을 하니 웃음이 터질거 같다. 하지만 참아야지. 이제껏 기다려온 이 순간들을 한번의 실수로 날려버릴수 없잖아!
몇개월이 지나고, 저 여자는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듯 하다. 웃기도 하고 퇴근하는 나의 밥상을 차려 놓기도 한다. 볼록한 배를 매만지며 "아빠"같은 사람이 되라고도 하지.
때론 자기 부모의 재판에 나가 오열하며 시아버지라는 사람의 사형을 탄원하기도 했지만, 뭐 이것 또한 예상 못했던 상황속에서 급조한 계획의 일부였으니까.
모든일은 매사가 도덕적이고, 관대하고 자비롭기까지한 나의 배려 아래 순조롭게 진행 되어가고 있다. 아, 다음달이 해산달이던가? 두번째 서프라이즈! 파티를 슬슬 준비해야겠군.
*
새벽이었다. 그 여자가 양수가 터진듯 통증을 호소하며, 나를 깨웠다. 인턴 당시, 배웠던 응급처치와 호흡법을 차근차근 알려주며, 나는 그여자를 옆좌석에 태워 병원으로 가고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 여자의 비명을 들으며 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고 있다.
"여보, 힘을 내."
아내의 고통과 함께하는 선하디 선한 남편의 모습으로 보여야 한다. 언제 흘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눈물을 억지로 흘려가며, 옆을 지키고 있긴한데.. 하.. 씨발.. 왜 이렇게 졸리냐.
"내진 좀 할게요."
비닐장갑을 낀 간호사가,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휘적거리고 있다. 고통스럽다는듯 몸을 비비 꼬아대는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나도 모르게 입술사이로 웃음이 피식 터져 나왔지만 눈물을 흘려가며 울음으로 포장하자,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듯하다.
"80프로 진행되셨구요, 분만실로 이동하실게요."
사무적으로 내뱉는 저 소리마저도 짜증이 날 판국이다. 몇번의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흐르고, 우렁찬 아기 목소리가 분만실 너머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1월 14일 오전 2시 35분, 왕자님이시구요. 아버님 탯줄 자르러 들어오세요."
*
몇일간의 산후 조리원 생활 후, 그 여자는 아이 하나를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여자의 몸조리를 도와달라며 어미라는 년을 부르는것도 잊지 않았지.
집에 도청기를 설치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시간이 날때마다 그 둘의 상황이 막장으로 치닫는 것을 듣는건 또다른 재미였다.
"너네 시아버지 말이다."
"...."
"사람이 술을 먹고 가끔 난동을 피워서 그렇지, 사람을 죽일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요?"
"그 양반이 사람을 죽일 사람은 아니라고."
"모든 증거와 정황들이 전부다 그 사람을 향하고 있고, 저는 용서할 마음 없습니다."
"뭐라고? 너 니네 시아버지한테 그사람이라고 했냐? 어디서 배워먹은 말버릇이야? 늬 부모가 그리 가르치든?"
"네, 사람 같지 않은 사람에게 인간대접 하지 마라고 배웠습니다. 저희 집에서 나가주세요."
"뭐라고? 이년이!"
짝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그년이 그여자의 따귀를 날리기라도 한 모양이지?
어제 밤 당직을 마치고, 숙소에 누워 잠을 청하기전 잠깐 상황을 살피고저 꽂았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이 막장 스토리에 내심 폭소가 터졌다.
이제 슬슬 두번째 서프라이즈를 실행해 볼까?
*
아버지가 그리 되시고 난 이후, 어머니께서 우울증을 동반한 불면증에 시달리신다며, 졸피뎀을 받아 오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일 없다는 듯 집에 들어가, 동태를 살핀다. 한쪽 볼이 빨갛게 붓고 두눈이 퉁퉁부어 아이를 안고 울먹거리고 잇는 그 여자의 뒷모습이 마치 그 년을 닮아 한편으로는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나의 완벽한 서프라이즈를 위해 참아야한다.
"안좋은일 있으셨어요?"
"아니, 저년이 집을 나가라지 않냐, 아무리 내가 널 버려서 고아원에서 자라게 했다고 한들, 나는 니 생모고 쟤 시어머니야. 어디 감히 어른더러 오라가라야! 아주 혼구멍을 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