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게시판에 처음 글 올려봐요ㄷㄷ
주로 책게시판에 글을 쓰는데 더 많이 읽어주시고 피드백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올려봅니다. 문제가 되면 바로 지울게요...!
-신호등이 된 사내-
“응애 응애”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안으면 바스러질까 두려울 정도로 작은 아이가 산모의 품에 안겼다. 곧이어 간호사가 산모에게 젖 물리는 법을 가르쳤다.
“아기는 젖을 빨다 배가 부르기도 전에 잠이 들어요. 그러면 아기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서 깨운 뒤에 충분히 젖을 먹여야 해요.”
산모는 간호사의 말대로 수시로 잠에 빠져드려는 아이의 어깨를 어루만져주었다. 그러다 산모는 아이의 오른쪽 어깨에 있는 푸른 점을 보았다. 선명한 것이 몽고반점인가 싶어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던 산모가 이번에는 왼쪽 어깨의 붉은 점을 발견했다. 이를 알게 된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의 이름을 청홍이라 지었다.
청홍은 자라면서 매일 불에 데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의 의지에 상관없이 어깨의 점들은 번갈아가며 통증을 유발했다. 그러나 청홍은 아무에게도 통증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청홍은 7살 무렵부터 말이 트이기 시작했다. 말을 할 수 없었을 때에는 어깨의 통증 때문에 자주 울었다. 6살이 되던 해에 청홍은 점들의 존재 가치에 대해 깊이 깨달았다. 푸른 점은 나아가야할 때를 알려주고, 붉은 점은 멈추어야할 때를 알려주었다. 청홍은 이 점들의 능력이 어른들에게 알려져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청홍은 늘 성적이 우수했다. 마음속으로
‘이것이 정답일까, 저것이 정답일까?’
물으면, 청홍의 점들은 예외 없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빨간 점이 뜨거워지면 답을 적지 않고 푸른 점이 달아오르면 답을 적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뽑기를 할 때에도 어떤 것이 1등이 적힌 종이일까 시선으로 훑으면 1등이 적힌 종이를 바라볼 때 푸른 점이 뜨거워졌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청홍은 변함없이 점들의 선택에 자신을 맡겼다. 점들과 함께라면 수능도 청홍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물론 주관식은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문제를 이해할 정도로만 공부를 해두면 상관없었다. 그렇게 청홍은 수능 만점을 받고 S대에 수석입학을 했다.
청홍은 대학에 입학해서 신입생 환영회를 마친 뒤 MT 일정에 대해 들었다. 임시 학생회장은 종이를 나누어주며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MT 참석 유무에 따라 o,x를 기재하라고 말했다.
“웬만하면 다들 빠지지 말고 참석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o지’
그러나 청홍의 생각과는 달리 붉은 점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청홍은 종이에 o대신 x를 그렸다.
며칠 뒤 MT 장소로 향하던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추돌 사고를 냈다. 버스기사의 급작스러운 심장마비가 원인이었다.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중상을 입게 된 동기가 몇 명 있었다. 그 소식을 듣게 된 청홍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점들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조별과제가 있던 날, 청홍은 동기 A와 조를 이루었다. A는 말을 더듬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행실 때문에 동기생들은 그를 피했다. 그러나 청홍의 푸른 점은 A를 볼 때마다 뜨거워졌다. A와 조가 된 청홍은 A의 ppt능력에 감탄했다. 간단명료하면서도 요점은 모두 들어있으며 디자인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ppt 덕분에 발표자인 청홍도 큰 문제없이 조별과제를 마쳐 A+을 받았다. 이후에도 청홍은 비교적 쉬운 과목들로 시간표를 짜고 능력 있는 교수들과 프로젝트를 해 좋은 성과를 냈다.
청홍이 교수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받고 동기생들의 관심을 독차지 하던 때, 이를 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학생회장 동근이었다. 동근은 몇몇 동기생들과 작당하여 청홍을 빈 강의실로 불러내었다. 청홍은 붉은 점의 통증에 강의실로 가지 않았지만 며칠 뒤 반강제로 그들 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얼마나 빽이 좋으면 대학 생활이 그렇게 탄탄대로냐.”
“같은 동기끼리 좋은 게 있으면 나누고 그래야지.”
“사실 이사장 아들인거 아니야?”
무리들이 일제히 청홍을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청홍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작열하는 붉은 점을 부여잡았다.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동근이 주저앉아있던 청홍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청홍이 질끈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동근은 청홍을 구석에 내던졌다. 우당탕.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수차례의 구타 후 청홍은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
“이런 짓 하고도 멀쩡히 학교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그러자 동근이 말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그렇게 매번 좋은 기회를 잡는 게 이상하단 말이지...분명 너한테 뭔가 있어. 그게 빽이든 뭐든 말야. 학생회장의 신분으로 항상 네 뒤에 있어야 하는 게 나는 자존심이 상하거든...”
청홍을 둘러싼 동기들의 눈이 번뜩였다.
“쟤들도 마찬가지야. 다들 어떻게든 좋은 기회 한 번 잡아보려고 애쓰는 애들인데 번번이 너한테 그 기회를 뺏긴단 말이지... 우리가 먼저 잘못되는지 네가 먼저 잘못되는지 한 번 볼까?”
동근의 말에 동기들이 강의실 창문 하나를 열어 재꼈다. 청홍의 푸른 점이 강렬하게 타올랐다.
“조...좋아! 말 할 테니까 이제 제발 그만해...”
동기들이 창문을 닫았다.
“사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양쪽 어깨에 붉은 점과 푸른 점을 가지고 태어났어...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점들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
청홍은 황급히 윗옷을 벗어 그들에게 푸른 점과 붉은 점을 보여주었다.
“웃기지마. 어디서 개수작을...!”
“지...진짜야! 너희한테 말하는 이유도 이 푸른 점이 뜨거워져서...!”
동근과 동기들이 다시 청홍을 때려눕혔다. 씩씩거리는 동근에게 청홍이 힘겹게 말했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그럼 증명해봐.”
“뭐?”
“그 말도 안되는 소리 증명해보라고.”
“어떻게, 어떻게 증명할까 내가?”
동근은 휴대폰을 꺼내 청홍에게 건네주었다.
“너, 그게 뭔 줄 알지? 그거 한 번 예측해 봐. 그럼 네 말 믿어줄게.”
청홍은 동근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휴대폰에는 해피코인의 시세표가 있었다.
“5분 뒤에 상승, 10분 뒤에는 하락... 그 뒤로 삼십분은 계속 하락세야.”
“진짜잖아!"
“진짜 상승했어!”
“다시 하락한다! 정확히 10분이 지나니까 다시 하락하고 있어!”
동기들이 술렁였다.
‘뭐야...진짜였어?’
동근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동근은 이 이후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청홍을 시험했지만 청홍은 보란 듯이 옳은 선택지를 알려주었다. 청홍을 괴롭혔던 동기들은 해피코인으로 한순간에 부자가 되었다. 이런 일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싫었지만 청홍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청홍은 동기들의 괴롭힘을 피해 군에 입대했다. 어느 선임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군 생활이 편해질지 청홍은 잘 알았다. 덕분에 청홍은 나름대로 굴곡 없는 군 생활을 했다. 몇 년 뒤 청홍은 제대를 했다. 청홍은 바로 복학하려다 붉은 점의 화기로 수제 햄버거 알바를 시작했다. 원래는 주방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일을 했던 청홍이 하루는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았다. 사장에게 카운터를 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붉은 점이 뜨거워졌으나 런치타임의 분주함 속에 청홍은 비어버린 카운터로 순식간에 밀려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홍은 붉은 점이 뜨거워졌던 이유를 깨달았다. 손님으로 온 동근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청홍을 본 동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너 어디 갔었냐?”
알바를 마치고 나오는 청홍에게 동근이 말을 걸었다.
“네가 학교에 나 꼰지르고 휴학하는 바람에 정학 먹었다. 너, 나 좀 돕자. 안 그러면 네 능력 내가 다 밝힐 거야.”
동근은 청홍에게 자신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 할 수 있도록 도우면 앞으로는 절대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청홍은 붉은 점의 경고보다 동근이 더 두려워 동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동근은 청홍에게 이어폰과 연동 된 무전기를 주었다. 동근은 감독관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이어폰을 귀 속에 장착하고 카메라가 달린 안경을 쓴 뒤 시험장에 들어갔다. 청홍은 약속대로 동근에게 답을 알려주었다.
“으악!”
순조롭게 답을 받아 적던 동근이 귀를 움켜잡으며 소리를 내질렀다. 동근의 이어폰이 그의 귀 안으로 들어가 고막에 생채기를 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홍은 동근과 공범으로 경찰에 잡혔다. 경찰의 압박으로 동근과 청홍은 범죄방식을 알렸고 이는 세상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동근은 경찰서로 청홍은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정부 관계자는 청홍의 몸을 검진하고 은밀한 장소에 청홍을 가두어두었다. 청홍은 열 감지카메라가 설치된 공간에서 정부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청홍에게,
“이번 대선에는 누구 편에 서야 하나?”
“북이 정말 핵을 가지고 있나?”
“부동산 전망이....땅값이...”
“주식이...해피코인이....”
“정치인 아무개를 죽여도.....”
등등 차원이 다른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청홍의 말 한마디에, 아니 청홍의 점들에 세계의 흐름이 달려있었다. 청홍은 쉬지도 못한 채 몇 달을 사람들에게 시달렸다. 처음에는 엄격하게 통제했던 정부도 은밀하게 청홍과 사람들의 만남을 주선하여 돈을 벌어들였다. 처음에는 고위직 관리자들이 시작이었다. 그러다 점점 그들의 가족, 친척, 이웃 등에게로 청홍의 존재감이 확산되어갔다. 청홍이 사람들에게 전지전능한 존재로 자리잡아 갈수록 청홍의 상태는 엉망이 되었다. 그의 점들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마구 일그러지며 피가 섞인 누런 진물을 흘렸다.
“저러다 큰일 나는 것 아닙니까. 일단 치료부터하고 다시 시작합시다.”
관계자들은 의사를 불렀다.
“이건 너무 심한데요.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이정도면 피부를 도려내고 새로운 피부를 이식해야 돼요.”
“아니, 저 부분의 피부를 도려내면 점이 사라지지 않나. 그러면 큰일이야. 해피코인에 내 전 재산을 쏟아 부었는데 점이 사라지면 나는 죽음뿐이야!”
“하지만 이대로 가면 피부가 괴사해요.”
“일단 도려내는 것만 빼고 최대한 치료를 해! 그러라고 우리가 당신 같은 일류 의사를 부른 것 아닌가.”
의사는 서둘러 청홍의 점들에 응급처치를 했다. 청홍은 점점 말라 비틀어져갔고 수시로 찾아오는 편두통에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관계자들에게는 열 감지카메라가 있어 청홍이 굳이 말을 하지 못해도 상관이 없었다. 청홍이 걱정되기는 했으나 한시도 쉴 수 없는 경제와 사회, 정치 그리고 주식과 해피코인까지... 관계자들은 응급처치로 간신히 청홍의 의식을 붙잡아두었다. 그러다 마침내 청홍의 팔은 괴사하기 시작했다. 관계자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오고갔다. 그의 능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마지막 질문을 고르고 골랐다.
“남과 북.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전쟁을 일으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나?”
청홍은 몹시 동요했다. 전쟁을 일으키면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세상은 암흑으로 가득해질 것이 분명했다. 청홍은 고통에 신음했다.
“이상합니다. 붉은 점 푸른 점 모두 열을 발생시키고 있어요!”
“으아아악!!!”
청홍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의사들이 긴급히 투입되었다.
“더 이상 열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어깨가 문드러졌어요. 피부를 이식할 수 없을 정도로 괴사되었습니다.”
청홍은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었다.
***
청홍은 눈을 떴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잊혀 방치된 어느 공원의 쓰레기장이었다.
“내... 팔.... 내 팔...!!!!”
청홍의 어깨에는 붕대가 감겨져있었다. 두 팔이 잘려나간 채 버려진 것이었다.
“이런... xxx들...”
청홍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공원은 썩은 나무들과 녹슨 운동기구, 줄이 끊어진 그네와 땅바닥에 널브러진 미끄럼틀이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제 어떡하지...”
청홍은 걷다, 쓰러 지다를 반복하며 비틀비틀 낙엽 위를 걸었다. 비록 두 팔을 잃었지만, 청홍은 자유였다.
‘일단 세상으로 나가자. 세상에 알리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청홍은 태어나 처음, 스스로 ‘선택’을 했다.
***
“그자식이 못 버텨서 결국 남북 전쟁은 미뤄야겠구만”
“드디어 결단이 나나 싶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솔직히 전쟁이 났으면 싶었어요. 청홍이 좋은 핑계거리가 될 것 같았는데...”
“난 이제 끝났어. 망할.”
청홍을 버리고 오라고 지시한 관계자들이 모여서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일단 그 문제는 미뤄두고 당장 먹을 것이나 생각해봅시다. 허기가 져서 원...”
“네. 저... 그런데... 저는 뭘 먹죠...?”
“본인이 먹을 걸 왜 나한테 묻나? 저... 나는... 그...나는.....?”
그들은 눈앞에 즐비한 배달메뉴판을 두고도 쉽사리 메뉴를 선택하지 못했다. 그들 뿐 만이 아니었다. 청홍의 선택만을 절대적으로 따랐던 사람들 모두 청홍이 사라지자,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잊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