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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1987 보고 왔습니다
게시물ID : sisa_10152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루스카
추천 : 43
조회수 : 134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1/22 03:05:16

가족끼리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흔하진 않은 집입니다.

1년에 한두편 정도 가족끼리 가서 보고 오는데,

그 기념비적인 올해의 첫 영화가 1987이 되었네요.

아버지 어머니 형 저 이렇게 4명이서 함께 보고 왔습니다. 
.

영화는 정말로 잼있었습니다.

아니. 잼있었다고 표현하는건 조금 어폐가 있으려나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신기했던 사실은, 주변에서 흐느끼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희 부모님 나이쯤 세대였던 것.

제 옆에서 영화를 보시던 저희 아버지 영화 보면서 눈물같은거 안 흘리는. 그 나이대 흔하디 흔한 차가운 도시 아버지 스타일이신데요.

그런 아버지도 옆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소매로 훔치시며 영화를 관람 하시더군요.

영화를 보고 나온 아버지의 얼굴에는, 그 때 그 시절의 감회가 다시 새록새록 떠오르는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80년대 초 대학생활을 하셨던 분입니다.

본인의 입으로 말씀하시길, 학생운동을 했다고 표현하긴 민망하지만, 벽돌 한장 정도는 쌓았었다고 자부하시는 분이시니까요.

그 때 그 시절. 격동적이던 서울의 봄에 학우들과 함께 

광장에 나가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순박한 대학생이 

6월항쟁의 회사원을 거쳐

50대 후반의, 원형탈모로 고민하시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이 되신 지금.

이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자그마한 기여 하나라도 하신것. 그 자부심이 영화를 보고 나온 이버지의 자그마한 눈물과 조그마한 미소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와 반대로, 영화를 보고 나온 어머니의 ‘저 시절에 난 뭐하고 있었지?’ 라는 한마디도 아버지의 눈물만큼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어머니는 민주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사셨으니까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결혼 후에도 맞벌이 부부로써 정치와는 담을 앃고 살아오신 어머니였습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한참이던 때. 아버지와 저희 형제간에 격정적인, 대한민국의 정치와 미래에 대한 개탄에도 그것이 우리 사는것과 무슨 상관이냐는 어머니의 핀잔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어머니의 그 한마디에는, 그 격동의 시절을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하고자 했던 어머니의 부채의식이 남긴 한마디가 아니였을까 생각 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40대 50대의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에게, 아직 그 시절은 죽은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라는걸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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