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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좋았던 기억만(2화)
게시물ID : panic_978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곤한뒷목
추천 : 5
조회수 : 70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1/23 0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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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르다 내가 기억하는 사실과...
황급히 뒤 돌아본 나에 눈에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윤준이가 보였다.
 
- 국봉이는 집에 갔어? 이제 호태하고 한 잔하더 가야지?
- 아니. 둘다 집에 갔어. 국봉이는 택시태워서 보냈고, 호태한테는 내일 일있다고 둘러댔다.
- 왜? 호태 외로워보이던데 같이 한 잔 해주지 그랬어.
- 하하! 왠일로 호태를 이렇게 챙기냐 둘이 맨날 치고박고 하더니.
 
눈을 가늘게 뜬 윤준이는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더 으슥한 골목으로 끌었다.
- 거짓말 아니지?
- 응? 아... 그냥 술김에 한 장난이야. 에이 그것 때문에 심각해져서 그랬어? 미안하다 미...
- 글쎄, 그냥 너가 담배피는 모습은 난생처음보는거 같아서 고민이나 들어줄까 싶어 얘들 보냈어. 괜찮으면 우리끼리 한 잔 더하자 근처에 괜찮은 BAR도 있고 거리로 갈까?
- 푸하하. 알았다 어쨋든 챙겨줘서 고마워. BAR는 무슨 막걸리에 파전이나 한 잔하자. 여기가 우리 잘가던 막걸릿집 그 뭐냐 '신라의 밤' 근처 아니야? 거기로 가자.
 
- '그럼 그렇지' 괜히 기대한 내가 바보다'
 
새벽 1시,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진 유흥가를 지나쳐 골목길 모퉁이를 몇 개 돌았다. 잘 가고 있나 핸드폰을 꺼내려는 찰나
- 저기 아직 영업하는구만
눈치좋은 윤준이가 '신라의 밤'을 먼저 발견하고 앞장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기름을 꽤 많이 써 바삭바삭하게 튀기듯이 파전을 만드는 막걸릿집. 몇 년전부터 우리는 술자리의 마지막 종착역으로 신라의밤을 택하곤 했다. 지금의 윤준이는 알 수 없겠지. 2년 후 2018년에는 이곳에 더 이상 모일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앞으로 이 골목상권도 개발되어 화장품 샵들이 들어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추억은 그 기억이 만들어지는 순간 공간하고 함께 생성되는 거다. 하지만 그 공간이 사라지면 다시 그 기억을 추억하기는 힘들겠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난 행운아다. 추억의 장소를 다시 방문할 있으니까. 앞으로 사라지게 될...
 
- 이야 사장님 여기는 밤에도 자리 잡기 힘드네요?
- 아이고 우리 아들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 얼굴 잊겠구먼.
- 왜요. 이모 사장님은 날로 더 이뻐지는거 같아요. 파전 한개 막걸리 하나 주세요.
- 아이고 뭔 말을 못하나.
윤준이와 대화하며 남사스럽다며 손을 휙휙젓는 이모 사장님의 몸짓과는 별개로 정작 외모 칭찬이 싫지 않나보다. 사장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떠있었다. 그래 그걸 눈치챌만큼 여기온지도 꽤 되었지. 매주 오는 당골은 아니어도 계절이 바뀔때 쯤 마다 찾아오는 계절손님은 되니까. 
 
- 그럼 니 이야기 한 번 계속 들어볼까? 아까 시간여행이야기 말이야.
- 하하!! 그래도 이렇게 집요하게 물어보는건 니가 처음이다.
 
[탕~] 둔탁한 쇠음을 내며 막걸릿잔이 공중에서 부딫쳤다. 윤준이도 흥미로운 모양이지만 나도 이런일은 처음이라 흥분한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 좋아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믿고 안 믿고는 윤준이 너 자유다. 난 그럼 마음껏 짓거려 볼테.
- 그래 어디 한번 들어보자.
- 그러니까 내가 대학교 졸업하고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부터 시작해야겠네. 2011년 가을이었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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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영웅이 되고 싶었다. 내 유년기를 같이 보낸 그량죠나 그레이트 다간의 주인공들처럼 거대 로봇을 타고 악당들을 물리치는 꿈을 꾸곤 하였다. 크다 보니 악당은 그런 허무맹랑한 거대 로봇 기계들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평범하게 인간의 모습을 한 사악한 악당이 진짜배기란 악당이란걸 알은 거지.
 
그래서 중학교의 최고 영웅은 희대의 명작 '바람의 검신'에 '켄신'이었다. 구두룡섬!! 바람의 검신의 켄신이 쓰는 필살기인데 칼질 한번에 9개의 방향으로 벨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나도 크면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저런 화려한 검술로 지키는 꿈을 꾸곤했다. 걷으로는 아무렇지 않은척 교복을 입고 하교하는 길에도 나의 망상에 세계에서는 사랑하는 여자를 화려한 기술로 지키는 검객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호태,윤준,국봉이 같은 친구들과도 잘 맞았다. 나의 망상을 이해해줄수 있는 녀석들이니까. 오... 오타쿠라고는 하지 말자
 
그러다 대학에 낙방하며 현실을 깨달았다. 정말 현실. 현실의 영웅은 거대 로봇의 박력있는 파워나 켄신의 빠른 검술은 필요가 없다. 단지 빠른 머리회전과 암기 능력이 필요할 뿐이다. 아니 어찌보면 현실에 영웅은 없다. 영웅은 필요가 없다.
 
현실을 파악하고 그렇게 재수끝에 수학능력시험을 치뤄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부모님은 내가 거창한 꿈을 가질 수 있는 경영학과나 법학과를 가기를 희망하였지만 난 국어교육과 즉 사범대학에 가기로 했다. 그래도 인생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훌륭한 사람으로 이끌고 보면 내가 그 학생들만의 영웅이 된것 아니냐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것은 특출나지 않아도 한국말 하나는 기가차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거대로봇을 이끄는 영웅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실 영웅은 되는 셈이었다. 그래 나도 어찌보면 드디어 보통사람 된 것이다. 큰 꿈보다 현실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운거다.
 
누가 그랬지? 대학에는 캠퍼스의 낭만이 있다고? 다 옛날 이야기이다. 막상 입학한 사범대학교의 끝에는 임용고시라는 거대한 보스가 기다리고 있다. 그 보스를 무찌르기 위해 다시 4년간의 보통 삶을 살아야했다. 학기중에는 교수와 동기들의 눈치를 보며 과제질을 해야 했고 방학중에는 노량진으로 몸을 실었다. 다행히 4년간의 보통 삶을 대가로 나는 임용고시 보스를 클리어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평생 입에 풀칠은 못할 일은 없겠다고 뒤늦게나마 좋아하였고 어머니는 그래도 같은 '사'자 들어간 직업아니겠냐고 의대 다니는 사촌형을 둔 큰엄마에게 같이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걸로 된 거겠지.
 
그렇게 보통 삶을 살아가던 내게 치명적인 버그가 발생했다. 난 보통 삶을 쭉 살아가게 프로그래밍 되있을텐데. 내 삶에도 특별한 순간이 주어진 것이다.
- 야 드디어 내 친구중에 공무원 하나 나오는 거냐?
- 야 공무원이 뭐냐 선생님이라고 해라 선생님.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거라고!! 앞으로 내앞에서 초딩, 중딩하지 마라!! 엄연한 학생들이니까.
호태와 고교친구들의 옥신각신하는 축하를 받으며 술파티를 벌이고 있는 주말밤이었다.
 
- '띠링~'
[11년도 임용합격자 장유빈선생님은 9월1일자로 k중학교로 발령받았습니다. 다음주월요일에 교육청에서 발령장 받아가시고...]
- 아 술맛 떨어지게 어떻하냐 다음주부터 출근하게 생겼네. 나 이제 다 놀았다. 엉엉!!
- 축하한다. 야 그래도 아직 우리 취준생보다 좋은 거지 안그러냐 국봉아?
윤준이의 축하를 받으며 이렇게 k중학교로 발령받게 되었는데 이게 일생일대의 사건일 줄이야.
 
- 자 그럼 오늘 발령받아 오신 장선생님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
- 예, 감사합니다 교감선생님. 아직 학교생활이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고 실수투성이겠지만 선배 선생님이 잘 이끌...
- 아니, 그런 이야기 말고 여자친구 있나요? 여기 기대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아요.
- 없... 없습니다.
 
초임 선생을 환영하는 환영회의'와~'하는 박수소리와 환호소리
그렇게 나는 나의 보통 라이프를 학교에서도 이어갈 참이었는데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하고 말았다.
치명적인 오류발생 3초전!!
발생2초전!!
 
환영사를 마치고 술 자리를 옮겨 다니며 여러 선배들에게 시달리다 마지막 테이블에는 그래 문제의 바이러스가 앉아있었다.
평범한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그녀. 평범한 인생을 특별한 인생으로 바꿔 줄 그녀가 있었다. 나의 아내.
 
발생1초전!!!
-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k대학교를 졸업하고 응?
-...
- 안녕하세요? 선생님?
- 예... 아... 안녕
- 아 정선생 미안 내가 대신 인사해줄께 여기는 우리학교 원어민 선생 '셀리'라고 해
 
사실 워낙 앳되보여 선생인지도 긴간민가 했는데 미국인?? 나는 하필 국어교육이 전공인 영어 무식자인데? 상극인지라 자리를 살살 피할 변명을 찾으며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심장이 멎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특별해진 순간.
새하냐 피부에 연갈색의 단발머리 그리고 오른쪽 새하얀 볼위의 애교점까지 내가 딱 좋아하는 귀여운 상이었다. 아몬드를 닮은 동그란 눈동자의 선한 눈빛은 나의 시간관념을 상실하게 했고 그리고 그녀의 작은 체구는 나의 다소 작은 키와 딱 어울리겠다는 이런 망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 이봐 장선생 여기좀 잠깐 ? 이봐 장선생?
- 네... 넵 선배님 !!
현실로 돌아온 나는 여러 테이블로 다시 한번 순회공연을 하다 필름이 끊어지게 되었다.
 
다음날 뭔 선생들이 이렇게 술을 많이 맥이냐는 어머니의 타박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출근하며 든 생각은 한 가지였다.
'다시 한번 보고 싶다.'
하지만 말도 안돼는 이야기인게 난 선척적 국어교육과로 영어한마디 못해 연애할 가능성 0에 수렴한다.
후~ 하는 한숨과 함께 그녀와 함께하는 망상을 펴치다 안되겠지 하는 현실로 돌아오는 상황을 3번정도 반복할즈음
나는 웃엇다 찡그렸다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표정을 고치고 후하는 한숨과 함께 다시 버스에서 내린 순간
우리는 운명처럼 다시 마추쳤다. 그래 운명
나의 눈 앞에 치명적인 바이러스 그녀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출처 보통사람의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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