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죄를 지은 인간은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한다. 살아생전 지은 죄를 지옥에서 고통으로 치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지옥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뒹구는 각종 인간군상을 발견했다. 이미 지옥을 거친 우리들이 죽는다면, 어디로 가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신은 위대한 변덕쟁이이며, 우리는 단 한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지옥에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당시 있었던 사건에 대한 회고이며, 동시에 그녀에게 바치는 보잘 것 없는 속죄이다.
#2
1950년 10월 38선 수복 이후, 모든 부대가 일제히 북쪽으로 올라갔다. 당시 강원도 철원에 있던 나는 어느 한 부대의 조사 임무를 부여 받았다.
“아직 12월도 아닌데, 꽤 춥습니다.”
김 중사의 말에 나는 창문을 열었다. 후방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쌀쌀함이 느껴졌다.
“눈이 올까?”
“여긴 시월에도 내립니다.”
스스럼없이 말하는 김 중사의 옆모습에서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어두워 질 듯, 해가 지고 있었다.
“곧 도착할겁니다.”
창문에 팔을 대고 턱을 괸 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중사가 차를 멈췄다.
“여기서 부터는 조금 걸어야 합니다.”
차에서 내리자 앞쪽으로 희미한 불빛들과 함께 텐트들이 보였다. 언덕길을 오르자 곧 초병들이 보였다.
“누구냐.”
신분을 밝히려고 하는 순간, 초병들 사이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대대장이었다.
“어서 오게, 신 대위.”
김 중사는 그 모습이 좀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경례를 하고 위병소 앞으로 걸어갔다.
“충성. 대대장님. 작전 준비하느라 바쁘실 텐데, 이렇게 나와 계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으니 이렇게 나오는 게 당연하지.”
대대장은 말과 다르게 우리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를 경계하는 초병들의 눈을 통해서도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대대장님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현장을 안내할 사람 한 명만 불러 주실 수 있겠습니까?”
김 중사는 이미 초병에게 의무대가 어디 있는지 묻고 있었다. 하지만 대대장은 우리를 바로 현장으로 안내 할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급하게 가지 마시고, 차라도 한 잔 하시게.”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대대장은 막무가내였다. 내가 김 중사의 얼굴을 바라보자, 김 중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대장은 김 중사도 같이 오라는 듯 손짓을 했지만, 그는 이미 의무대 쪽으로 사라진 뒤였다. 대대장은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자신의 텐트로 안내했다.
텐트로 들어가자, 미리 준비한 것처럼 커피가 나왔다.
“여긴 날씨가 영 추워서 말이오. 이렇게 차라도 자주 마시지 않으면, 활동하기 힘들 거요.”
“감사합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대대장이 사용하는 텐트를 둘러보았다. 전쟁 중이긴 했지만, 침대부터 테이블까지 구색이 제법 잘 갖춰진 모습이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대대장은 손가락으로 커피가 든 컵을 툭툭 건드렸다. 나는 그의 행동에서 묘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부대 작전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필요한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저희가 먼저 요청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말이오.”
대대장은 어딘지 모르게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아무래도 이런 일은 부대의 사기에 영향을 준단 말이오. 그것도 심각하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맡은 임무가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무리 전쟁 중이고, 작전이 있다고 하지만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대장은 여전히 손가락 끝으로 컵을 두드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여자는 부대 사람이 아니오. 사인도 명백하고 말이오. 내 입장 에서는 이번 조치가 과하다고 생각 되는데, 신 대위 입장은 어떤지 알고 싶소.”
대대장이 말한 과한 조치는 작전부대 변경을 의미했다. 원래 선봉 부대로 작전 지역에 투입하기로 했던 것이, 후방 대기로 변경 된 것이었다. 전과를 올릴 기회를 처음부터 차단 당한 대대장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했다.
“사실, 말씀드리자면 이번 조사는 국군에서 지시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품에서 공문 한 장을 꺼내 대대장에게 건네줬다.
“그럼 어디서 조사를 한다는 말이오?”
대대장이 공문을 받아 들며 말했다.
“미군입니다.”
“미군?”
“죽은 여자에 대해 미군 측 군종장교가 이의를 제기 했습니다.”
내 말을 들은 대대장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대대장과 같이 생각에 빠진 듯 컵에서 멈추었다. 나는 커피를 마셨다.
“군종 장교가 무슨 권한으로?”
“그 여자에게 세례를 해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작전 중인 부대를 불러들여 조사 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 하시오?”
나는 커피를 다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이의 제기는 군종장교가 했지만, 공문 자체는 미군 사령부에서 보낸 것입니다. 부대 전체의 기강을 조사하라는 명목으로 말입니다. 국제법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말도 안 돼는!”
대대장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컵에서 커피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책상에서 공문을 들어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럼, 이만 현장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대장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신 대위. 솔직히 말해 나는 하루라도 빨리 전선으로 돌아가고 싶소.”
나는 그 말에 애매한 웃음을 짓고 밖으로 나왔다.
#3
의무대에 도착하자 김 중사가 텐트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미 기본적인 조사는 어느 정도 마친 것 같았다. 나는 그 옆에 서서 그가 담배 피우는 것을 기다렸다.
의무대에 오는 길에 본 부대는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사람이 죽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런 분위기였는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의무대의 천막을 들추자, 환자들이 엉성하게 조립한 야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처음 보는 얼굴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김 중사의 말에 나는 텐트에서 나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의무대 옆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텐트 옆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앞에는 초병 둘이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본 뒤,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김 중사는 그들을 의무대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지시했다. 창백한 백열전구 아래 여자가 누워 있었다. 명백한 현장감식 규정 위반이었다.
“대대장이 옮기라고 지시 했다고 병사들에게 들었습니다. 원래 여자가 사용하던 숙소인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 있는 게 부담이 됐나 봅니다.”
나는 누워있는 여자를 내려다 봤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는 전체적으로 하얀색 톤에 가까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목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기 힘든 부조리함과 범접하기 힘든 기묘함을 동시에 여자에게서 느꼈다.
“사인은 뇌출혈이라고 하던데.”
내 말에 김 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보이는 외상은 없어 보였다. 머리 쪽을 잘 살펴보면 혹이나 피가 난 곳 한두 군데 정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군의관이 확인한 사항을 다시 확인 할 필요는 없었다.
“미군 쪽에서도 다시 확인한 사항이니까, 맞을 겁니다.”
“그렇겠지.”
“뭐 하는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군이라니 그것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김 중사가 잘 이해 안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의 팔을 잡았다.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는 그를 향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발소리를 죽이고 텐트 앞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이미 어두워진 텐트 사이로 검은 형체가 뛰어 가는 것이 보였다. 김 중사가 쫓아가려는 듯 자세를 취했지만, 나는 그를 말렸다. 검은 형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텐트 주위를 다시 한 번 살펴본 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대대장이 우릴 별로 좋아 하는 것 같지 않아.”
그 말에 김 중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신원이나 어쩌다 부대에서 일을 하게 됐는지 확인 된 것 있어?”
김 중사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없습니다. 병사들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대대장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도통 이야기를 안 합니다.”
“대대장도 마찬가지야. 그냥 어쩌다 보니 일을 도와주게 됐다는 말만 하고. 좀 협조를 해 주면 편할 텐데.”
“그럴 리가 없겠죠.”
김 중사가 다시 담배를 꺼냈다. 나는 김 중사가 텐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다시 여자를 바라봤다. 범접하기 힘든 기묘한 느낌 때문에 잠시 망설이던 나는 원피스를 들어 여자의 몸을 확인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여자의 봉긋한 가슴이 보이고, 그 아래로 반쯤 벗겨진 속옷이 보였다.
“김 중사.”
나는 김 중사를 불러 여자의 몸을 보여 주었다. 그 모습을 본 김 중사는 나와 비슷하게 놀란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누가 악질적인 장난을 친 건지도 모릅니다.”
“초병이 지키고 있었잖아.”
나는 여자의 사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손을 댔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가능성이 낮았다.
“어떻게 보면 미군이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왼손으로 담배를 만지작거리며 김 중사가 말했다.
“무슨 말이야?”
“딱 정확하게 냄새를 맡았지 않습니까?”
나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그 냄새가 자기들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말에 김 중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 녀석들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죽어도 지키는 놈들이니까요. 거기다 이 부대 녀석들….”
김 중사는 다시 한 번 텐트 주위를 살폈다.
“확실히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뭔가 숨기고 있는데, 속 시원하게 말 해주지 않는 그런 것 말입니다.”
나는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 중사 말 대로였다. 미군이 군단을 통해 이의를 제기한 것도, 우리가 밤늦게 이곳에 온 것도, 대대장과 병사들이 우리를 경계 하는 것도 모두 어디에선가 이어져 있었다.
“최초 목격자들 좀 불러야겠는데.”
“알겠습니다. 한 대만 더 피겠습니다.”
김 중사가 담배를 들어 보였다.
#4
미군을 통해 접수된 공문은 이 부대의 기강을 조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대와 같이 작전을 하기 제한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엄연한 월권이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만한 힘이 없었다.
여자는 기독교인이었다. 출신도, 여태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는 이 여자는 어느 날 홀연히 부대에 나타났다. 부대에 온 뒤부터 주로 의무대의 일을 도우며, 주말마다 열리는 임시 교회에 참가했다고 한다. 거기서 친해지게 된 군종장교에게 세례도 받았다. 그리고 그 군종장교는 여자의 죽음에 대해 최초로 의문을 제기했다.
위병소의 초병들이 지나가다 부대를 방문한 군종장교를 거칠게 막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아마도 초병들이 조금 더 다른 태도를 취했다면, 여자의 죽음은 그의 눈에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부대에서 여자의 죽음과 자신을 경계하는 눈초리를 본 군종장교는 그 사인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다.
“최초 목격자는 두 명입니다.”
나는 대대장이 마련해준 텐트에서 진술서를 살펴보며, 김 중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의무대 뒤쪽 탄약고 초병으로 근무 교대를 하기 위해 이동하다가 여자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시간은?”
“거기 적혀 있는 대로입니다.”
진술서에는 새벽 여섯 시에 발견 했다고 적혀 있었다.
“탄약고면 의무대 바로 뒤쪽인데, 기존에 근무 서던 초병들이 여자의 움직임을 보거나 하지는 않았을까?”
“그럼, 그 전 시간대 초병들도 확인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부실하게 작성되어 있는 진술서를 손에 들고 천천히 읽어 내렸다. 일부러 지시를 받은 것처럼, 간단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김 중사는 어떻게 생각해?”
“어떤 걸 말입니까?”
“진짜 사인.”
그는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모르겠습니다. 어느 한 놈이 정말로 장난치려다 이렇게 된 거라면, 누군가 소리라도 들었을 건데, 하나같이 입을 맞춘 듯이 행동하니….”
그렇게 말하던 그가 피식 웃었다.
“어쩌면 대대장이 범인일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 말에 나도 피식 웃었다.
“일리 있네.”
“그럼 최초 목격자들부터 한 명씩 부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여자가 사용했다는 물건들 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자의 물건들은 여자가 사용했던 숙소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김 중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여보내겠습니다.”
김 중사가 텐트를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초 목격자 중 한 명이 텐트에 들어왔다.
“추…, 충성!”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병사는 사뭇 긴장한 듯 떨고 있었다. 나는 난로 위에 있는 주전자를 들어 커피를 탔다.
“마셔. 그리고 앉고.”
“가…, 감사합니다.”
그는 아직 학생인 듯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고서도 아직 불안한 듯, 눈을 돌려 좌우를 살폈다.
“이름이?”
“이, 일병 이성우입니다.”
나는 두 장의 진술서 중에서 그의 이름이 적힌 진술서를 앞으로 가져왔다. 목격한 내용을 이야기 해 보라는 말에, 그는 마치 외운 것처럼 진술서와 동일한 내용을 이야기 했다. 나는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그는 오로지 아는 것이 없다는 말로 답변 했다.
나는 그에게서 더 이상 확인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초병을 섰던 병사를 데려오라고 말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병사가 텐트에 도착했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답답한 마음에 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있으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김 중사였다. 김 중사 역시 나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없습니다.”
내가 어느 쪽, 이라는 표정을 짓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초병들과 여자 물건 둘 다?”
“네. 여자가 쓰던 물건은 물어보니 다 태워버렸다고 하고, 전 시간대 초병들을 찾아보니 지금 부대에 없다고 합니다.”
“그 초병들이 답을 알고 있겠네.”
내 말에 김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건을 태웠다는 장소에도 가 봤는데, 거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확인해야 할 내용에 비해 대대장의 태도는 너무나도 비협조적이었다. 그가 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그 너머에 이 사건의 진상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 다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미군의 요청으로 인해 잠시 후방에 머무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전선으로 돌아갈 부대였다. 아무리 미군의 요청이라 하더라도, 당장 눈앞의 적을 두고 한가하게 부대를 놀릴 지휘관은 없었다.
“병사들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앞으로 빠르면 이틀, 늦어도 삼일 정도 뒤에 전방으로 복귀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
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내용을 김 중사에게 이야기 했다.
“의무대.”
“네?”
김 중사는 마치 다른 생각을 하다 얻어맞은 사람처럼 대답했다.
“여자가 일 했던 곳.”
그제야 내 말을 이해한 듯 김 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직 의무대를 조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김 중사와 나는 텐트에서 나와 의무대로 향했다. 누군가 우리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정확히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의무대에 도착한 우리는 낯익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성우였다. 의무대 텐트 문 사이로 우리는 그의 얼굴과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챈 초병들이 그들에게 알려주려고 했지만, 김 중사가 막았다.
“…괴롭습니다.”
“네 잘못 아냐, 인마. 자책할 것 없어.”
“그래도…, 그래도. 아직….”
주변에서 이성우를 위로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는 어느새 흐느끼고 있었다.
“제가 봤었을 때는 아직…, 살아 있었어요. 살아 있었다구요….”
나는 김 중사와 눈이 마주쳤다. 의무대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누군가 내 어께를 잡았다.
“이 늦은 시간에 뭐 하는 거요? 신 대위.”
대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