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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생존 공포 멜로 소설)★귀찮음★ 바이러스(1/7)
게시물ID : panic_978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곤한뒷목
추천 : 6
조회수 : 117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1/26 15: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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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부 : 접촉

- 후욱 후욱 후욱 후욱 후욱 ...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빠른 속도로 걷고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번화가의 상점거리. 나이키를 비롯하여 여러 유명 브랜드의 간판히 줄지어 보였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거리를 걷는 사람이 나 혼자라는 사실뿐.

거리는 1년전 2018년 12월 그대로 시간이 멈쳐있었다.
거리 한편에 [문화의 거리]라는 커다란 철제 입간판이 보였다. 문화의 거리라... 이제는 다시 인류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지는 못하리라. 사람들의 손이 닫지 않는 물건들은 금방 해졌다.  여러 상점들 사이에 걸려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간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여 여기저기 꺽여 기괴한 몬스터 형상으로 변해있었다. 어릴적 온라인 게임에서 던전에 들어가면 볼 수 있던 나무모양의 괴물. 전등에 불이 들어온지 오래된 간판들은 녹이 슬어 빛이 바랬고 깨진 유리창들과 바닥에 나뒹구는 여러 물건들은 세기말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주었다. 

사람이 사라진 번화가는 모든 전등이 꺼졌고 과거의 화려한 색을 잃은채 콘크리트 구조물만 남아 거리는 회색빛으로 변했다. 속보로 [문화의 거리]를 걷다가 발로차인듯 밑둥이 심하게 찌그러진 음료수 자판기를 발견했다. 사람의 흔적이 남은 음료수 자판기. 허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자판기로 가서 음료수를 찾아본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생존의 몸부림속 이미 자판기는 속이 비어있었다. 털린 자판기에는 남은 음료수는 없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배가 고프다. 허탈한 마음에 철푸덕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며 무심코 자판기 밑을 바라보자 반짝이는 무엇가가 보였다. 나는 정신없이 손을 뻗어 자판기 아래 바닥과의 빈 공간을 휘져었다. 드디어 손끝에 걸리는 차가운 감촉. 반가운 알루미늄 캔의 느낌이다. 조심스럽게 캔을 꺼냈다. [펩시콜라]. 다행히 속이 꽉찬 녀석이다. 펩시라는 글씨를 응시하며 예전에는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콜라가 이제는 생존의 동앗줄이 되다니' 하는 생각을 하자 쓴 웃음이 나왔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혼자다. 공허한 거리속 [딸깍]하는 캔음료의 삶의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회색빛 거리를 걷는 인류최후의 사람. 그게 바로 내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불과 서너달전만 하더라도 생존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지만 인류최대의 재난을 맞은지 1년이 되는 지금, 생존한 사람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지 거의 반년이다. 

- [꿀걱 꿀꺽]. 하아. 이렇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빨리 다시 걸어야지. 빨리 새로운 쉘터를 찾아서...

혼자 된지 반년째. 점점 더 혼잣말은 많아졌다. 여유부릴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마음을 놓는다면 나도 역시 '그들'과 같이 변할테니까. 인류 최대 최악의 재앙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1년전 쯤 시작되었다. 한국항공 비행기 추락사 사건. 그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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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이건'. 짧고 간결한 이름은 평소 게으르고 잠 많은 아버지가 분명 깊이 생각안하고 지은 이름일테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만큼 게으르지 않았지만 귀찮은 일은 개입하지 않는 성격이다. 친형 역시 부모님의 성격을 닮아 귀찮니즘의 대명사이지만 나는 우리 집안의 돌연변이였다.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나는 어렸을 적부터 무언가 하지 않으면 지루해 버틸 수 없는 성격이었다. 이런 성격이 그때는 대재앙속 생존의 비결이 될줄은 몰랐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이런 바지런한 성격을 공부해 매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선생님들의 기대를 받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는 나의 흥미를 오래 끌지 못했고 새로운 문화에 눈을 떴다. 게임문화. 게임은 오래해도 질리지 않았다. 물론 성적은 반비례로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게임은 새롭고 재밌었으니까.

밤 늦도록 게임하는 사람은 하수다. 인간 하수. 게임한다고 나는 부지런한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아침 일찍일어나 게임에 매진했다. 정해진 시간에 밥먹고 씻고 게임하고 다시 일찍 잠자리에. 나의 캐릭터가 전국 랭킹 1위에 다달았을 즈음 이번에는 게임에 흥미를 잃었다. 나의 흥미의 최종 종착적은 일본만화와 캐릭터였다. 소위말하는 오덕문화. 오타구. 

부모님은 어린시절 나의 공부재능을 아쉬워하며 쓴소리를 했지만 나는 오덕문화에 심취해 내 방 깊숙히 나의 소장품을 늘려갔다. 그렇다면 시사 프로그램에 나오는 살찌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오타구를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그건 하수다. 나는 역시 부지런하고 일정하게 일찍 일어나 학교에 다녀오고 학교에서 쉬는 시간 틈틈히 못본 만화를 시청하고 집에 일찍 들어와 일본 캐릭터 커뮤니티 활동을 했다. 물론 잠도 일찍 들었다. 

드디어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자 내 세상이 왔다. 소위 말하는 하류대학 지방대에 호텔관광학과에 진학하여 나의 자취방을 얻은 것이다. 그 게으른 부모님이 나에게 한번만 더 해보자고 울고불며 재수를 사정했지만 나는 호텔 경영에 비전이 있다며 그 손길을 뿌리치고 나왔다.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나는 오로지 나의 오덕 세상을 아무 잔소리 없이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나의 소장물들이 자취방을 덮어갈 때 쯤 그러니까 2018년 겨울 인터넷에 한국항공 추락사고가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올라왔다. 한국 항공 소속 점보 비행기가 산에 추락하여 200여명의 사상자가 난 큰 사고였다. 하지만 사상자의 규모보다 더 큰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하여 블랙박스를 조사했는데 그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었던 까닭이다.

귀찮음. 그것이 사고 원인이다. 뭔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블랙박스 속 조종실의 녹음이 공개되자. 전 세계는 난리가 났다.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던 조종실 속 기장의 음성이 들렸다.

- 아~ 귀!찮!아!. 부기장 너가 해.
- 에~ 저도 하기 싫어요. 귀!찮!아!
- woop! woop!(비행의 충돌을 알리는 경보음)
- 드디어 쉴 수 있겠....

잠시후 '쾅'하는 소리와 함께 녹음 기록은 종료되었다. 귀찮아서 착륙하던 비행기의 조종을 멈쳤다? 처음 교통당국은 의도적인 자살의 여부를 살펴보았지만 이것이 결코 우연히 아님이 밝혀지는 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그 사고로 부터 한달 후 한국항공 사고와 똑같은 이유로 전세계의 비행기들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운석충돌, 갑작스런 기후 변화, 생태파괴로 인한 대재앙. 심지어 좀비 바이러스까지. 그래 오히려 좀비 바이러스로 인류가 멸망했다면 좀 더 낭만적이었겠지. 인류 멸망의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하여 막기 위해 노력한 인류는 차마 '귀찮음' 바이러스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인류 최후를 맞고 있다니. 정말 속수무책으로 인류 사회는 무너져갔다.

이 바이러스. 사실 바이러스일런지도 불명확하지만 어쨋든 귀찮음 바이러스라고 하자. 세계 각국은 바이러스를 막기위해 노력했다. 이 바이러스에 걸리면 갑자기 [귀!찮!아!]라는 말을 내뺃고는 모든 생산적인 행위를 중지한다. 학교 안의 교사들은 귀찮아라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상점안이 판매원은 돌연 가게문을 닫고 집으로 귀가한다. 이쯤만해도 생존에 크게 위협되지 않으니 다행이다.

자, 그럼 더 위협적인 모습을 나열해보자. 항공기는 언제 귀찮음 바이러스로 추락할 줄 모르니 줄줄이 운행을 취소했다. 배편도 마찬가지 곧 대중교통이 자취를 감췄다. 그 다음은 경찰도 곧 집으로 향했다. 모든 공기관이 문을 닫았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인간에 식품을 생산하는 농부든지 식품공장이라든지 모든 것이 생산을 중단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위기를 인류가 곧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WHO 국제보건기구가 조사해 나섰다는 둥 대통령이 사태해결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다는 둥 희망찬 메시지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귀찮음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도 언젠가 돌아올지 모른다. 

바이러스 창궐 후 3달후, WHO의 연구결과 발표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인류 역사상 처음있는 대규모 심리바이러스라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어떤 기재로 인간에 침투하는지 어떤 형태의 바이러스인지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였지만(아마 이미 많은 연구 인력이 귀찮음 바이러스로 집으로 돌아갔으리라...) 곧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행동지침이 배포되었다.

그 지침은 첫째 사람이 모여있는 곳은 자리를 피할것!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 한 사람이 발병하면 그 집단은 순식간에 '귀찮아'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세계 모든 공기관과 기업들은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나야 학교에 안가면 더 땡큐였으니까.

둘째, 집에서 칩거하며 집을 나갈 때는 꼭 마스크와 선글라스 귀마개등을 착용할 것! 감염경로를 잡아 낼 수 없으나 감염자를 처다 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근거리(3미터 내)에 있으면 거의 100퍼센트 확률로 감염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과의 접촉은 곧 죽음이다. 그러자 가족끼리도 이야기가 단절되는 가정안까지의 해체가 일어났다. 세상은 혼자이게 된 것이다. 어차피 혼자 자취방에서 덕질하는 나는 해당될 일이 없다.

셋째, 혼자 있더라도 집에서 한 쉬도 쉴새없이 무언가 매진하라. WHO 조사 결과 아무도 접촉하지 않고 독방에서 생활한 실험자 역시 발병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아무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 바이러스가 발병하는 것과 다르게 무언가 매진하는 사람 최소 게임이라도 깨있는 동안 계속하는 사람에게서는 발병률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또한 선척적으로 부지런한 (그것이 비록 덕질이라도)  끊이없이 무언가하는 내 성격상 생존에 유리한 지침이었다. 

이 결과 나는 살아남았다. 내 자취방 오덕질과 함께.

나는 감염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인터넷에는 생존한 사람들의 생존팁이 계속 올라왔다. 덕질 중간 중간에 나는 이를 놓이지 않고 꼼꼼히 확인했다. 

감염자는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가족이 감였되었다 하더라도 매정히 버려야 한다. 생존을 위해.  

바이러스 감염자의 행동 형태는 제 각각이다. 어떤 감염자는 바닥에 누어있기만하기도 하고 또 어떤 감염자는 끊임없이 먹기만 한다.

감염자의 행태는 반복적이다. 즉, 어떤 감염자는 같은 지역을 빙글 빙글 끊임없이 배회했다. 어떤 감염자는 계속 게임을 하기만 또는 책을 읽기만 한다.(추측에는 그들이 생존했을 시 가장 좋아하던 쉬는 방법이라 한다. 물론 추측이다.)

최악의 경우는 [점거]라는 행동이다. 주로 감염된지 3개월 이상된 상급 감염자들이 보이는 형태이다. 상급 감염자들은 생존자들이 집을 잠시 비운 사이 그들이 집에 침입하여 생존자의 집을 [점거]한다. 모든 것을 귀찮아 하는 그들이 왜 노력을 들여 침입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렇게 들어간 감염자는 결코 다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렇게 된다면 집을 뺏긴 생존자는 길거리에 나가 큰 위험을 마주하게 된다. 

또 상급 감염자들의 전염성은 일반 감염자들과 차원이 다르다.(어떤 유저의 말에 의하면 감염 범위가 일반 감염자의 두배 이상이라고 한다)

이런 절망적인 팁과 다르게 희망적인 팁도 올라왔다.

일정한 시간(명확히 확인된것은 아니지만 대략 밤10시에서 새벽2시 사이)에 감염자들은 단체 '기면'상태가 되는데 이 시간대에 생존을 위한 물품을 편의점 등을 털어 확보해야 한다.

생존자들이 감염자의 쉬는 형태를 크게 방해하지 않는다면 영화 속 좀비처럼 쫓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를 구성하여 생존해 관한 팁을 공유하며 누군가 이 사태를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희망을 가지고. 하지만 이런 희망은 바이러스 창궐 5개월 차가 되자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미대통령의 연설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정치인들과 티비 매체 앞에선 그는 연설했다.
- 여러분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집안에서 거주하며 생존에 힘써 주십시오. 인류는 과거에도 많은 역경을 해쳐 나갔습니다. 이번 역경도 인류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많은 국가기관과...

이런 희망적인 멘트를 이어나가던 그는 돌연
- ... 미 당국은 모든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고, 그리고, 그리고... .... 아 귀!찮!네.
- 네 대통령님 무슨?
- 집에나 갑시다. 귀찮아서 원
이를 끝으로 모처럼의 아니 마지막 인류 생방송은 종료 되었다.

그리고 곧 발병 6개월째 WHO 또한 백기를 들었다. 당국의 인원 부족으로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할 수 없다. 부디 생존방식을 잘 숙지하여 인류 생존을 위해 힘써달라는 최후의 메시지만을 인터넷상에 남기고 더 이상의 정보 업데이트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방송매체들도 아나운서의 귀!찮!다라는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인류의 최후가 드디어 온 것이다. 이 움직이지도 않고 꾸벅 꾸벅 게으름을 피는 게으름 좀비들에 의해...

부모님은( 인천 내 자취방은 천안이었으므로) 대중교통이 사라진 후 만나지 못하고 간간히 전화로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발병 6개월 후 부모님의 전화기는 신호음만 갈 뿐 더 이상 받지 않자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에는 이제 나 혼자다. 그리고 인터넷에 생존자의 소식이 뜸해질때쯤 인터넷 서버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기도 끊기게 되었다. 이제 정말 나 혼자의 지식과 노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시절이다.

지금까지 너무 우울한 얘기만 했나.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1년을 버텼는지 한번 말해보자. 나는 나만의 3가지 규칙을 만들고 이를 철저히 지켰다.

첫째, 깨어있는 시간은 오로지 생존에 매진한다. 나는 살기위해 끊임없이 무언가에 집중했다. 끊나지 않은 덕질은 칩거 6개월만에 자취방의 컨텐츠가 떨어져 마침내 지겨워질 때 쯤 색다른 일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전기가 끊기자 근처 편의점과 서점을 털어 만화책, 오래된 신문을 구해 그것에 집중했다.

둘째, 모든 식량은 7등분 한다. 모든 식량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언제가 필연적으로 식량이 고갈되는 시점이 다가올것 이다. 그리고 이미 냉장보관 되지 않는 식품들은 썩어 먹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은 캔으로 보관된 식품으로 인류 전체 식품의 20퍼세트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식량을 아껴야 한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새로 구한 식품은 7등분한다. 그것으로 나는 최대 일주일의 생존시간을 번 셈이다.

마지막, 아무도 믿지 않는다. 많은 똑똑한 생존자들이 이 부분에서 실패했다. 사람이 그리워 다른 사람들과 그룹을 이룬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 빨리 무너졌다. 그룹에서 한 명의 발병은 곧 파멸을 의미한다. 나는 어차피 오타쿠이므로 지금까지 가족외의 친구도 교류도 없었으므로 철철하게 이 부분에서 유리했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모든 오타쿠 매체들과 영화들을 섭렵할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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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마치고 엉덩이를 툭툭털며 일어났다. 제길 망상은 위험하다. 끊임없이 무언가 해야한다. 그리고 내 규칙대로 펩시 음료를 7분의 1쯤만 마시고 검은 나이키 가죽 가방안 패트병에 넣었다. 

검정 가방안에는 많은 생존 도구들이 있었다. 소독약, 밴드, 손전등, 건전지, 테잎, 노끈 등 많은 도구들이 있었다. 길을 걷다 생존에 필요한 도구가 있으면 가방안에 넣었다. 이 생존가방만이 나의 유일한 친구다.

가방의 물품은 늘었지만 식량의 양은 점점 줄었다. 냉장고가 가동되지 않아 도시의 음식들은 대부분 썩고 캔음식을 구해야 하는데 점점 구하기 어려워졌다. 지금도 가방안에는 약 반쯤 남은 참치캔하나, 운좋게 발견한 식빵 4조각 그리고 음료수를 모아 넣은 패트병 반병 정도였다. 다이어트에는 적이지만 탄산음료는 생존에 좋았다. 제길 며칠전에 실수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길거리에 위험하게 나오지 않았을 텐데! 빨리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했다.

일주일전이었다. 그때까지 방안에서 칩거하다 규칙적으로 밤 열시에서 새벽두시까지 생존 물품을 구하곤 했다. 진동으로 핸드폰 알람을 새벽1시반에 맞추고 꼭 2시까지는 자취방으로 들어오곤 했는데, 그날따라 새로 안 가보았던 새로운 구역을 탐험한것이 화근이었다. 그전까지는 철저히 안전하다고 생각한 내가 다니던 대학거리앞을 탐험했지만 슬슬 먹을거리나 떨어져 용기내어 롯데마트로 찾아간 것이 실수였다. 

아니 롯데마트에 간 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다만... 감염자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며 식료품 코너에서 얼마 남지 않은 캔음식을 챙기고 또 그날 따라 대형 생선 냉동고속 뜬금없는 식빵(대체 이게 왜 여기있었을까 아직도 의문이다)을 발견하여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조심조심 장난감 매장을 지나 가전제품을 둘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적적으로 파란빛을 발하고 있는 노트북을 보았다. 노트북에 가보니 거기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애니 '켄과 유이짱의 러브 러브 라이브'가 재생하고 있었다. 아! 얼마만에 보는 나의 사랑스런 애니인가. 그것을 보느라 잊었던 것이다. 핸드폰 진동을. 

그리고 그때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사람들이 사라진 후 분명 아직까지 계속 켜있었다면 이미 이 노트북은 배터리가 소진되었겠지. 그렇다면 이건 누군가 최근에 다시 전원을 켠게 분명하다. 어쩌면 오늘 아침 아니며 한 두시간전! 

미친 듯이 마트를 돌며 찾았다. 강한척 했지만 나 또한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울음이 터져나왔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통화연결이 끊어진 후 반년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다시 터졌다. 서럽다. 

한 참을 울다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래 나의 생존 규칙 세번째는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이다. 설령 살아있던 사람이 있었던들 그와 함께 한다면 나의 생존에 위험요소만 높아진다. 아무도 믿지 말자. 그 덕에 나는 인류 최후의 사람처럼 남아있으니까. 인류 최후의 생존자가 오타쿠라니. 하하! 웃음이 나오고 다시 활력을 찾았다. 그래 어차피 사람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작동 또는 정말 기적적으로 노트북이 켜진거겠지. 그리고 윈도우 켜짐과 동시에 단순히 자동재생시켜 놓은 '켄과 유이짱의 러브 러브 라이브'가 재생되었겠지. 그림체가 좋아 노트북 화질 홍보용으로는 딱이니.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 봤다. 늦었다. 새벽 2시 3분!!. 나는 미친듯이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쉘터로!

집 근처에 다다러 문을 여는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의 인기척. 문을 살짝 열고 조심조심 방안으로 걸어갔다. 찬바람이 들어왔다. 주방쪽 창이 열려있었다. 나는 창을 열어둘 일이 없다. 그렇다면...

침실로 걸음을 옮겨 방안을 조심히 응시했다. 소리를 듣기 위해 귀마개를 살짝 뺏다.
[후욱 ~ 후욱~ ] 기면하는 감염자의 숨소리 내가 지금까지 버텨왔던 나의 생존공간에 그 빌어먹은 녀석이 침인한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후욱~ 후욱~ 응 으응?]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빌어먹을 녀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염자의 휴식을 방해하면 불상사가 생길지 모른다는 팁을 떠올렸다. 나는 미친 듯이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더욱 여미고 선글라스를 조였고 있는 힘껏 도망쳤다.

- 제길, 제길, 제길!!

입에서 욕이 자꾸 나왔다. 분명 그 녀석들이 이렇게 정교하게 집을 침입하여 [점거]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내가 본 사례는 실수로 문을 닫지 않았거나 애초에 창문이 쉽게 열리는 구조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2층 자취방에 배관 파이프를 타고 올라와 침입했다. 이들은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제길, 제길!

그게 일주일 전이다. 그렇게 나는 세기말 세상 밖과 마주한 것이다. 더 이상의 나의 쉘터는 없다. 나 또한 빨리 새 쉘터를 못찾는다면 감염자에 의해 전염되든 추운 겨울에 얼어죽든 굶어죽든 할 판이다. 

그렇다고 아무집이나 들쑤실순 없다. 확실하게 안전히 확보된 열린 집을 찾아야 한다.

[문화의 거리]를 지난 번화가를 벗어났다. [헉 헉] 숨소리는 거칠어졌지만 맥 놓고 걷는다면 내 생존이 위험하다. 곧 밤이다. 핸드폰 시계는 밤9시를 표시했다.

일단 따듯하게 잘 곳을 찾자. 그리고 그들의 기면 패턴에 맞춰 나도 잠을 청하자. 두시면 다시 이동해야 한다. 운 나쁘게 배회하는 녀석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중 [경기도 수원시]라는 교통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꽤 멀리 걸었구나. 수원은 대도시이니 역이나 열린 상점등 운이 좋다면 좋은 휴식 공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자 [Luck 7편의점] 노란간판이 보였다. 셔터도 내려지지 않은. 운이 좋아 내부에 감염자만 없다면 오늘은 이곳에서 쉴수 있겠다. 그리고 식량도 챙길 수 있다. 걸음이 가벼워졌다. 조금만 더 힘내자. 그렇게 옮기던 찰나 텅빈 버스 정류장의 검은 형상이 힐끗 눈에 들어왔다.

가..감염자인가. 쓸쩍 고개를 들려 형상을 살펴 보았는데 미묘하게 귀마게 사이로 소음이 들어왔다. 언뜻 손이 귀마개에 닿았다. 안된다 호기심에 감염확률을 늘릴 수 없다. 

- ...요.........요.

귀 사이로 미묘하게 논리정연한 인간의 언어형태가 느껴졌다. 감염자는 이렇게 문장으로 말하기 힘들다. 눈을 질끈 감고 솜을 뺐다.

-....하다고요!
- 네?

시선을 돌려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니 왜소한 체격에 사람 형체가 보였다. 어린 소녀인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자 그녀가 보였다. 추운날 옷도 잘 챙겨입지 못하고 파란 코트를 챙겨입은체 잔뜩 움크린 소녀였다. 살짝 긴 펌머리 사이로 소녀의 하얀입이 움직였다. 이윽고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하다고요!!
-네?
-배고프다고요 도와주세요!!

그녀가 나에게로 돌진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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