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귀찮음★ 바이러스(2/7)
게시물ID : panic_978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곤한뒷목
추천 : 7
조회수 : 105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1/27 03:00:08
옵션
  • 창작글
  • 외부펌금지
2부 : 그녀의 특징
그녀는 성큼 성큼 내게 다가왔다. 160cm도 안되보이는 작은 체구와 달리 걸음걸이는 성큼성큼 거침이 없었다.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움찔 거리며 뒤로 살짝 물러섰다.
 
- 사람맞죠? 생존자 맞죠? 다..다행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달빛에 서서히 들어낸 그녀의 얼굴은 매우 앳되보였다. 머리 카락은 헝클어져 있었지만 밝은 갈색으로 구불구불한것을 보아하니 분명 이 사태 전에는 꽤 아름답게 머리가 잘 관리되었을 거란 생각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적인 보호 장구인 마스크조차 하지 않은 점이 의아했지만, 마스크를 하지 않은 그녀의 하얀 얼굴 속 작은 입은 쉴새 없이 나를 재촉했다.
 
- 배가... 배가... 너무 고파요. 며칠동안 물로 버티느라 재대로 음식도 먹지 못했어요. 저기요? 저기요?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그녀는 얼굴이 더욱 가까이 들이 밀었다. 갸름한 얼굴에 눈썹끝이 내려간 상냥한 눈망울, 그리고 달빛에 반사되는 매력적인 콧날. 얼굴이 순간 화끈 달아올랐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여자와는 대화할일도 없거니와 이렇게 아름다운 소녀라면 말 할 없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 저기요? 괜찮아요? 혹시 먹을 것이 있나요? 너무 배.. 배가 고파요.
- ...
 
순간 가방 안의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이 생각났다. 물론 그녀에게 나눠줄 수 있지만, 그것은 내 생존가능성을 절반이하로 떨어뜨릴 것이다. 이 황량하고 고독한 세상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는지 떠올렸다. 불과 일주일전에도 롯데마트에서 혹시 다른 사람과 조우 하더라도 절대 함께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나의 생존 규칙 3번째 '절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 규칙을 어긴다면 나 역시 무사하지 못하리라.
 
조금 잔인했지만 나는 그녀를 도울 수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 그녀를 버리기로 했다. 일단 그녀를 무시하고 아까 보았던 [Lucky7] 편의점으로 반사적으로 걸아갔다. 그녀가 나를 부르며 쫓아 왔지만 이미 생존 규칙을 지키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편의점만 살펴보고 조금 힘들더라도 뛰어서 그녀를 떨어뜨릴 생각이었다. 작은 체구에 그녀. 더욱이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다면 아무리 오타쿠인 나라고 하더라도 떼어놓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Lucky7] 편의점은 문은 다행히 열려 있었다. 그녀를 무시할 생각으로 신경질적으로 식품코너를 살폈다. 제발 이쯤에서 알아서 떨어지면 좋으련만.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아무 도움 안되는 작은 소녀 한명과 여행?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저도 아까 여기 와봤어요. 이미 다른 사람이 먹을 거리를 다 가져가서 아무것도 없었다고요. 저기요. 제 말 안들려요?
- ...
- 혹시 외국인이에요? 저기요? 여기 안에는 먹을게 아무것도 없다고요.
 
신경질적으로 식품코너를 헤집었지만 그녀 말대로 먹을 식량은 전혀 없었다. 더 늦기전에 어서 그녀를 떨치고 쉴 곳을 찾아야 한다. 가게 입구로 다시 나가서려 하자. 작은 그녀가 제빨리 입구를 막았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 제가 식량을 축낼까봐 그러는 거에요? 제발 ... 며칠 동안 먹지 못했단 말이에요.
- 비...
- 네?
- 비켜.
 
엄마 외의 여자에게 말도 못 거는 주제에 고작 처음 본 예쁜 소녀에게 하는 말이 비켜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내가 살아야 하니까. 그런 세상이다. 그녀가 빨리 포기하도록 돕는게 오히려 좋을 것이다. 나는 더 승질을 냈다.
 
- 비키라고!!
 
그녀가 놀란듯 추춤거린 사이 그녀를 살짝 밀치고 가게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너무 힘이 없었던 탓인지 뒤로 살짝 나자빠졌다. 그녀가 [으윽] 작은 신음을 내쉬며 넘어진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놀란 모양이다. 이걸 의도한게 아니었는데. 의도치 않은 사고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 미... 미안 일부로 그런게 아니야. 너가 길을 막으니까... 제길 비키라고 했었잖아.
- 말할 수 있었잖아요? 그럼 제발 저를 혼자두지 말아요.
-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만큼 한가한 시절이 아니라는거 너도 잘 알잖아.
 
그녀의 떨리는 음성을 듣자 마음이 약해졌다. 검은 나이키백을 뒤적 뒤적 살펴 4조각 남은 식빵 중 2조각을 꺼냈다. 그녀에게 식빵을 건내는 내손이 떨렸다. 이 두조각이면 족히 이틀은 버틸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다. 그녀도 일단 당장의 허기를 면할 것이고.
 
- 정말 미안.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우리가 함께 하면 둘다 얼마가지 않아 죽을거란거 너도 잘 알거 아니야. 자 이거 받고 더 이상 날 쫓아오지마.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채념한 듯 보였다. 마음 굳게먹자.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푸른 코트위로 식빵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뭐라고 하기전 가게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험한 세상에 불쌍한 소녀를 버리고 가다니 최악이다. 최악.
 
뛰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본다면 마음이 약해질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뒤를 쫓는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마음 굳게 먹자. 지금까지 처럼 살아야 한다.
 
[헉 헉] 내 숨소리가 내 귀에 들어갈 만큼 열심히 뛰었다. 나 또한 식량을 아껴 먹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계속 걸은 탓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뛰는 내내 땅이 울렁 울렁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뛰다보니 우체국 앞 벤치가 보였다. 이쯤이면 이제 따라 오지 못할테지. 안녕이다.
 
너무 숨히 차올라 벤치에 바로 앉지 못하고 손으로 벤치를 짚고 헉헉 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굵은 땀방울이 추운 날씨를 뚫고 샘솟듯 흘러 옷을 적셨다. 땀이 머리를 타고 흘러 짭짜름한 입맛이 느껴질 때 쯤 이었다. [제발 잠깐만요]하는 메아리가 들렸다. 부디 환청이길.
 
- 하아 하아, 제발 잠깐만 잠깐만요.
 
포기하고 벤치에 털썩 주저 앉아 뛰어왔던 거리를 응시하자. 도로 위 아주 느린 속도로 달리는 작은 소녀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녀 또한 지친듯 더 이상 뛰지 못하고 천천히 걸어 내 곁으로 접근했다.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소녀에게 상황을 다시 알리기로 마음 먹었다. 걸어오는 그녀에 대고 소리쳤다.
 
- 후. 내가 먹을 것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아까 내가 너한테 준게 그게 내가 갖고 있던 식량 절반이라고!! 지금이 어떤 세상인지 잘 알잖아. 우리가 같이 다니다 한명이라도 발병하는 순간 끝이라고 끝.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버텨왔느데 왜 이렇게 방해하는 거야!!
 
감정이 격해진 나는 목에 있는 힘을 주며 핏대 세워 이야기 했다. 여전히 그녀는 발을 질질 끌며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불과 10미터 밖에 떨어져있지 않았다.
 
- 그치만...
- 뭐?
- 무서워요. 혼자 있는게. 그리고 너무 외로워요.
 
외롭다.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외롭다는 이유 때문에 이 고생을?
 
- 외? 외롭다. 장난해. 지금 외롭다는 생각은 너무 사치라는 거 알아? 너도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알잖아. 그런 생각할 시간있으면 감염되지 않게 마스크부터 구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지?
- 나도 알아요. 그치만 너무 외롭단 말이야요. 이제 더는 혼자 있기 싫단 말이야. 흐흑.
 
눈물. 처음 본 여자얘를 울리다니 정말 난 최악의 저질이다. 나 혼자 살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는 도대체 내가 어떤놈일지 알고 이토록 나에게 매달리는 걸까? 이 순간 그녀는 내 지척까지 접근했다. 마음이 약해져 톤을 낮쳐 조용히 말했다.
 
- 소리쳐서 미안해. 하지만 이게 최선이야.
 
흐느끼는 그녀를 두고 다시 일어섰다. 이게 최선이다. 이게 최선. 되내이며 다시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하자 그녀도 속도를 올렸다. 그만하라고 말해줄 양으로 뒤돌아 보자, 보였다. 그녀의 절뚝이는 모습을. 그녀는 절뚝이는 걸음으로 나를 목숨걸고 쫓아온 것이다.
 
- 어... 언제부터 이런거야?
- 아... 이거. 아까 편의점에서 넘어질 때 살짝 접질렀나봐요. 괜찮아요. 그보다...
 
가슴 속 미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그녀의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자. 눈에 눈물이 맻혔다. 감정이 북받치자 아까의 어지러움이 더 심해졌다. 대체 몇 시간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움직였던 거지? 아까부터 일그러져 보였던 땅이 눈앞으로 일어났다. 스르륵 눈이 감겼다.
 
- 저기요? 저기요?? 아 이런
 
그녀의 다급한 음성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
 
아직 내가 공부에 매진했던 어린시절 집 앞 지척거리에 있던 미용실에는 하늘 하늘 거리는 긴  펌 머리가 예뻤던 미용사 누나가 있었다. 그때는 그 누나가 몇살인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와 비슷한 21~22 정도였지 싶다. 처음 그녀에게 머리를 자르던 날 어린 내 등뒤로 살짝 살짝 닿는 그녀의 긴 머리. 어찌나 가슴이 설래던지 어린마음에도 머리를 자르겠다고 엄마에게 오천원을 받아 그 미용실을 찾아가는게 낙이었던 일이 떠올랐다. 물론 그녀에게는 그저 조그만한 자주 오던 꼬맹이에 불과했겠지만. 혹시 그녀도 알았을까? 어린 순정을?
 
- [사각 사각...]
 
긴 머리가 내 등에 닿은 채로 웃음기를 가지고 내 머리를 자르던 그녀. 지금도 내 어깨에 닿았던 그녀의 긴 머리가 생생한다. 응? 사각사각?
황급히 눈을 떳다. 시간이 꽤 지난듯 아침햇살이 건물안으로 들어왔다. 웃음기를 머금은채 가위를 들고있던 예의 그 소녀의 하얗고 갸름한 얼굴이 보였다. 둘러보니 '우편창구','보험' 등의 팻말이 보였다. 어제 그 우체국 안인 모양이다.
 
- 히익. 이.... 이게 무슨 짓이야?
- 대체 머리 자른지가 언제에요? 꼭 '내 친구 바야바'에 나오는 바야바 같잖아요.
 
자뭇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그녀. 이 상황에 머리 손질이라니. 당황하는 사이 그녀가 헬로키티가 그려진 작은 손거울을 눈앞에 내밀었다.
 
- 자, 어때요? 훨씬 낫죠? 아무리 세상이 그래도 그렇지. 머리 안자른지 반년 넘었죠?
그러고 보니 정말 머리 안자른지 반년 아니 7~8개월은 되었다. 집에서 칩거하며 혼자 머리를 자른 적이 있었지만 혼자 머리를 예쁘게 자르기도 힘들었고 더 이상 인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후로는 머리 스타일쯤은 신경에서 끈지 오래였다. 그녀가 내미는 거울 속에는 그 전보다 훨씬 단정하고 가지런하게 잘린 머리카락이 보였다. 응 근데 저 가위는 분명 내 가방에 있던 가위였을텐데?
 
- 그 가위 어디서 났어?
- 당신 가방에서요. 쿠쿡. 아 나보다 나이 많아보이니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그녀의 놀리는 듯한 질문은 무시한 채 가방을 두리번 거리면 찾았다. 나의 여행동지. 우리 반대편 의자 위 불쌍하게 입을 벌리고 놓여 있는 가방이 보였다. 제발 제발 하며 가방을 뒤졌다. 다행히 먹을 것은 남아있었다. 조금 남은 참치캔 그리고 음료수 패트병 또 식빵 한조각. 엥 식빵 한 조각?
 
- 너 혹시 식빵 한 조각 먹었어?
- 네. 어제 오빠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식빵 반 주신다고 했잖아요. 처음에 오빠가 준 식빵 두개는 오빠가 도망치는 통에 먹지 못하고 버리고 쫓아 왔잖아요. 너무 비겁하지 않아요. 이렇게 가얄픈 여자를 두고!
 
머리가 아파 한 손으로 머리를 짚은채 소리쳤다.
- 누... 누가 오빠야. 그거 어떻게 구한 건데. 그 아까운 두 조각을 그냥 버렸다고.
 
난 정말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거면 생존 이틀분이다. 이틀!
가방을 주섬 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역시 생존은 혼자 해야 한다. 그 때 그녀가 뒤뚱거리며 나에게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안쓰러웠다.
 
- 아직도 많이 아픈거야?
- 아 괜찮아요. 그보다 또 어제처럼 저 혼자 두고 도망갈 생각은 아니시죠? 이렇게 두고가면 저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요.
- 후... 하지만 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생존 규칙 3번째 어기는 것은 곳 죽음이다. 그렇다면...
 
- 알았어. 대신 조건이 있어. 우리만의 규칙을 정하는 거야.
- 네? 조건?
 
그녀는 나의 처분을 바란다는 양으로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 좋아요.
- 자! 첫번째 규칙. 여행 시 나와 너의 간격은 적어도 2미터를 두고 걷는다.
- 에? 왜요?
- 그래야 혹시라도 누가 발병하더라도 피할 시간이 생길거 아니야!
- 좋아요. 알았어요.
 
옳지.
 
- 자. 두번째 규칙이야. 생존에 필요한 식량은 스스로 구한다. 즉 자기가 구한 식량만 먹을 수 있단 뜻이야.
- 에? 너무 하지 않아요? 그럼 옆에서 내가 굶어죽어가도 그냥 둔다고요?
 
그건 심한가?
 
- 좋아 그럼 정말 생명이 위급할 때에 한하여. 식량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하자. 단!
- 단?
- 이때 얻어먹은 식량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갚는다. 동의해?
- 오... 오케이.
 
그녀는 침을 꿀떡삼키며 말했다.
 
- 마지막 세번째. 후우. 혹시 서로 중 한명에게 발병의 징조가 보이면 망설이지 않고 버린다. 그리고 버려졌다고 원망하지 않기.
- 그건 너무 심하지 않아요?
- 동의 못해? 그렇다면 할 수 없고.
- 아. 알았어요. 해볼께요.
 
그녀가 내 어깨를 잡아끌며 동의했다. 내 어깨에 닿는 그녀의 하얀 손길. 따스했다. 순간 다시 볼이 뜨거워지는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외면한채 가방을 주섬주섬 싸며 말했다.
 
- 방금, 말한 약속. 아니 규칙 꼭 지키는 거야. 특히 세번째. 내가 혹시 버리더라도 원망하지마. 마찬가지 상황이면 나도 원망안할꺼니까.
- 네 알겠어요. 그럼 저기 그쪽 이름 알 수있을까요? 계속 저기요 할 순 ...
- 이건. 이건이야. 됐지 가자.
- 제 이름은...
- 됐어. 일단 출발하자 혹시라도 이렇게 열려있는 공간에 감염자가 들어오면 우린 꼼짝없이 끝이라고 약속대로 2미터는 떨어져서 걷는거야. 내가 앞장설 테니까.
- 저.. 저는...
 
가죽 가방을 어깨에 걸고 출발했다. 우체국 문을 살며시 나서며 살폈다. 다행히 감염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걷기 시작하자 발목을 다친 그녀때문에 자꾸 속도가 떨어졌다. 한숨을 쉬며 그녀를 돌아봤다. 입을 꾹 닫은채 열심히 걷던 그녀는 내가 돌아보니 의아한 모양이다. 가방 지퍼를 열고 다시 안을 뒤졌다.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마스크를 꺼냈다. 나도 아껴둔 마스크였지만.
 
- 이거라도 껴. 어떻게 이렇게 무방비로 지금까지 살아남은거지?
- 고마워요. 저는 세리에요. 박세리.
- 됐고 2미터나 잘 지켜.
- 넵!
- 그리고 딴 생각하며 느슨하게 걷는거는 발병 확률은 높여주는 거 알지? 열심히 걸어
- 넵!
 
듣는둥 마는둥 다시 돌아섰다. 세리라 박세리.
그렇게 그녀가 내 마지막 여행길에 들어왔다.
 
 
 
 
------------------------------------------------------------------------------------------------------------------------------------
 
그녀와 함께 한지 3일이 지났다. 여자 아이와 먹고 자고 함께하는 여행이라. 그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지금도 내 등뒤를 파란 코트깃을 휘날리며 열심히 쫓아오고 있는 세리는, 경험해본 결과 몇가지 특징이 있었다.
 
정리를 해보자면 우선 세리는 
..
무모했다. 모든 일에 무모하게 나섰다. 가만히 뒤에 서서 보호 받기 싫어했다.
쉘터를 찾거나 식량을 찾기 위해 필연적으로 가게나 빈집을 찾아야 했는데 그때마다 세리는 나섰다. 굳이 발목을 다쳐 나서지 말라고 해도 짐이 되기 싫다며 나섰다. 새로운 곳을 수색하는 과정은 위험하다. 혹시라도 운이 나쁘게 수색하는 가게나 집에 상급 감염자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둘다 감염되는 불상사도 막고 또 후방의 수색을 위해서 우리는 2인 1조로 움직였다. 한 사람이 안을 살피면 남은 한 사람을 밖을 살핀다. 이 과정에서 안에 들어간 사람은 훨씬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다. 그래도 남자라고 내가 들어가는 역할을 택한다고 했지만 세리는 한사코 말렸다. 공평하게 번갈아 가면서 하자고 그래야 공평하데나.
 
하지만 무모하게 혼자 일을 하려다 그르친 일도 많았다. 운 좋게 발견한 카페의 생수통을 작은 키로 선발에서 꺼내다가 깨뜨린 일도 있었고 무거운 여행 가방을 뒤져본다며 끙끙거리다 [쿵]소리를 내 심장이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만약 쿵소리 난 곳에 감염자가 있어 우리가 그 감염자의 휴식을 방해하기라도 했다면. 휴. 나는 전전긍긍하면 안과 밖을 살폈다. 힘들다.
 
그리고 세리는 또 다른 특징은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그래 서툴다. 그녀는 모든 일에 서툴었다.
우리는 일부로 번화했던 도심보다는 한적했던 교외지역에서 쉘터를 찾기로 했다. 그것이 일단 감염자와의 조우를 줄여줄 방법이었고 아무래도 외진곳에 빈집이나 식량이 더 남아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고 세리는 옆에서 응응 했을 뿐이지만.
 
그렇게 과거 사람이 넘쳤을 수원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 북수원의 교외지역을 향해 이동할 때였다. 멀리 작은 빌라가 보였다. 4층 짜리 건물이었는데 도시였지만 도심에서 제법 벗어낫을 뿐만 아니라 주차장에 남아있는 차가 보이지 않았다. 집 안의 주인들은 최소 대피했거나 감염자가 되어 집에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즉 나의 판단으로는 이 정도의 위치라면 한 집정도는 우리가 들어갈 안전한 집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빌라 출입문에 살금 살금 도착했다. 귀마개를 빼고 살며시 빌라안의 기척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가 들어가자고 신호하자 세리가 머뭇거렸다. 빌라 입구가 잠겼기 때문이다. 으이그 내가 몇번이나 알려줬자나. 빌라 출입문에 분명 비밀번호가 적혀있을 거라고. 출입문을 살피자 검정팬으로 쓴 [4335]란 숫자가 보였다. 기계에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세리는 [아!]하며 쫓아왔다.
 
1층, 2층, 3층 모두 잠겨 있었다. 4층을 401호... 402호 빙고! 어떤 연유인지 문이 열려있는 집을 발견했다. 자동으로 잠기는 검정 도어락이 있었지만 얼마나 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문을 열어두고 집을 비운 모양이다. 도어락이 애석했다. 나는 엄지를 세우며 세리를 바라봤다. 눈 웃음이 마주쳤다. 드디어. 내가 먼저 들어가려고 하자 세리가 제지했다. 자기 차례라는 의미였다.
 
세리가 집안으로 들어가 살피기 시작했다. 살필 때는 방안에 감염자가 있는지 또는 옷장안에 있는지 철저히 살펴야 한다. 초조해 하며 계단 밑과 집안을 번갈아 가며 살핀지 5분정도 지나자 세리가 마스크를 벗고 환약 표정으로 집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문을 살며시 닫으며 소리쳤다.
 
- 오빠! 아무도 없는거 같아.
- 지... 진짜?!
- [띠릭~]
 
도어락이 자동으로 잠겼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세리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짐짓 괜찮다면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말했지만. 속안에서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나 혼자였으면 필시 여기에서 새롭게 정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이 작은 소녀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화를 내봤자 이미 지난간 일이고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 건이 오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화났어?
- 아... 아니야. 근데 오늘 날씨가 왜 이렇게 덥지.
 
몸에서 열이나고 있었다. 급격한 스트레스 반응. 세리는 연신 미안하다며 나를 따랐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노숙이다. 일단 급한대로 빌라안 복도에서 자기로 했다. 대리석의 차가운 기운이 올라왔지만 밖보다는 따뜻했다. 나이키 가방을 뒤져 계단에 간단히 모포를 깔았다. 세리가 찾은 물건이다. 내가 생존에 꼭 필요한 도구를 챙기는 것과 달리 세리는 불필요해 보이는 물건도 깨끗하다면 가지고 가려했다. 이 모포도 캠핑가게의 창고에서 처음 찾았을 때 무거워요 보여 두고 가려 했지만 세리가 한사코 가져가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챙긴 터였다. 그래도 의외로 도움이 됐다. 병주고 약 받은 격이다.
 
작은 4층 계단통로에 모포를 깔고 우리는 등을 대고 누웠다. 이제 본지 며칠 안된 여자애와 나란히 눕다니.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슬며시 몸을 움직여 계단창문에 턱을 괴고 일어났다.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 건이 오빠 안자?
- 먼저자. 혹시 감염자가 이 밑을 막아버리면 큰일이니 내가 조금 망 볼께. 지금 9시 정도니 한시간 후면 [기면]시간이니까 안전할꺼야 그때 되면 나도 눈좀 붙일테니까. 자고 있어.
- 근데 오빠 진짜 22살이야.
- 그래 말했잖아.
- 헤에 나보다 두살 위라니 안 믿기네 난 처음에 25은 된지 알았는데? 바야바씨 쿠쿡
- 빨리 자라.
 
세리는 20살이었다. 갓 대학에 입학하여 일학년 겨울을 나던 중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나처럼 성적은 좋지 못하여 좋지 못한 대학에 다녔지만 그래도 열심히 배워보겠다며 학비를 벌기위해 아르바이를 꽤 열심히 한 모양이다. 편의점, 옷가게(옷가게에서는 꽤 오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베스킨라빈스 까지. 베스킨라빈스는 아이스크림을 풀때 팔목이 너무 아파 이틀하고 그만두었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가족에 대해서는 물어보려 했지만 지금 이 시절에 가족이라니 그녀도 필시 나처럼 무슨 연유로 가족을 잃었을 것이다. 다른 이야기는 했어도 우리는 불문율처럼 가족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 건이 오빠 평소에 취미가 뭐였어? 그러니까 바이러스가 퍼지기전에. 지금 생존전문가처럼 굴기 전에 말이야.
- 으.. 음...흠흠. 그러니까 너는 잘 모르겠지만 뭐라 해야 하나. 음 영화 전문가였어. 트....특히 일본 영화말이야.
 
말하면서 땀이났다.
 
- 구체적으로 어떤?
- 그... 그러니까 아주 조금 매니악한건데 일본.... 저기 ... 만화... 저기 뭐더라
- 아 진짜? 그럼 포켓몬스터?
- 아니 그건 너무 좀 유치하고 좀 더 어른스러운거
- 그럼 가장 좋아하던 애니가 뭐였는데?
 
애... 애니라. 뽀록나기 직전이다.
 
- 어 케케케 켄...
- 혹시 '켄과 유이짱의 러브 러브 라이브?
- 아 맞아! 어떻게 알아?!
- 당연히 알지 나도 틈틈이 봤는데. 유명 연예인 켄지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사쿠라 유이하고 만나면서 일어나는 러브 코메디 잖아!!
 
놀라웠다. 나는 고개를 돌려 흥분하여 세리와 러브 러브 라이브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누군가와 재밌게 이야기 한 적이 언제더라. 더욱이 엄마 이외의 여자와 마주보고 신나게 이야기 한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난생 처음. 그녀는 주도하여 얘기하기 보다 다른 사람이야기를 끄덕이며 잘 들어주는 타입이었다. 덕분에 나는 편안히 켄지가 얼마나 이기적인 놈이지 사쿠라가 얼마나 아름다운 캐릭터인지 설파할 수 있었다.
 
흥분하여 이야기 하다 문득 핸드폰 시계를 봤다. 10시 58분. 아 아까운 수면 시간 한시간을 날렸네.
- 거의 11시야. 자자. 그리고 핸드폰 밧데리 이제 빨간색이네 어디선가 충전을 해야 할텐데.
- 내꺼는 못쓴지 오래야. 참 오빠. 크흐흐.
- 왜웃어 뭐 묻었어?
- 켄지 오빠! 오빠한테 켄지라고 불러도 될까? 잘 어울리는 것 같아.
- 뭐? 뭐어?
 
켄지는 애니에서 일본 최고의 고교생 인기 연예인으로 나온다. 그와 나를 비교하다니..그에 비해 나는 초라한 오덕일 뿐인데...
얼굴이 달아오를쯤 별안간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 오빠 지금 빌라안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세리를 잡아 끌고 세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 헉 헉 헉!
- 잠깐 아! 아파 아파
 
황급히 나오는 통에 세리 팔목을 잡고 나왔던 모양이었다. 깨닫고 나자 부끄러워져 세리 손을 던지듯이 놓고 시선을 외면했다. 쓰레기 더미가 보였다.
 
- 에~ 저거였네.
 
[뽀로로 자판기놀이]라고 쓰여진 박스가 보였다. 강한 바람에 바닥에 구르는 뽀로로 그림이 보였다. 밤바람에 날려 쓰레기 더미에서 떨어진 터였다. 참 [기면]시간이었지. 우리는 조심 조심 빌라안으로 다시 돌아가 늦잠을 청했다. 4층으로 올라가니 두고 간 모포와 그리고 검정 나이키 가방이 보였다.
 
난  내 목숨처럼여겼던 나이키 가방을 버리고 세리를 택했다. 이젠 왜롭지 않았다.
잠에 들며 모처럼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
 
우리는 계속 걸었다. 어는덧 우리는 애초에 2m규칙을 어기고 나란히 걸었다. 정말 안전하고 버틸 수 있는 쉘터를 찾기 위해. 근데 막상 쉘터를 찾으면 그 다음에는 뭐를 해야하지. 무흣한 상상히 머릴스치자 절래 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아직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방안의 식량이 컵라면 두개 초콜릿 반개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료수 4분에 1통쯤. 세리와 함께한 뒤로 난 온전히 7등분 규칙을 지키기 어려웠다. 둘이 먹으니 식량도 훨씬 빨리 떨어졌고, 같이 누군가와 눈을 마주보고 먹으니 신기하게 음식 절제가 잘 안되었다. 음식 맛을 다시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저 생존용이 아니라 음식맛을 즐기고 있었다. 예전에 칼같이 7등분해서 먹던 규칙은 많이 완화해서 새로 구한 음식은 3등분하여 보관했다. 최악의 경우 우리의 생존 시간은 3일이다.
 
수원시를 벗어나 안양에 들어섰다. 안양에 들어서니 감염자가 종종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내가 있던 천안이나 거쳐왔던 수원보다 감염자를 보는 회수가 늘어났다. 우리는 마스크를 조이고 더 숨죽일 수 밖에 없었다.
 
- 켄지오빠. 아까부터 저 멀리 감염자가 저 쪽을 빙글 빙글 배회하는 것 같아.
 
세리가 가르키는 곳을 보니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분수대를 시계 방향으로 열심히 돌고 있는 감염자가 보였다. 운동복을 입은 감염자. 그는 필시 생전에 이곳에서 조깅을 즐겼을테다. 분수대의 물은 마른지 오래되었지만 그는 죽을 때 까지 달릴 것이다. 완전히 몸의 기력이 다할 때 까지.
 
분수대 길을 피해 아파트가 많은 지역으로 들어섰다. 위험한 곳이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빈집을 찾을 가능성도 높아질 터였다. 멀리 아파트 촌 뒤로 [홈플러스]가 보였다. 음식도 떨어져 가니 위험을 무릎쓰고 마트를 뒤져보아야 하나 하며 길을 걷던 도중 낯익은 흰색 차량이 보였다.
 
LF 소나타. 부모님이 십년 넘게 사용하던 차였다. 흔하 차였지만 왠지 눈에 익었다. 왼쪽 차문에 스크래치. 형이 서투룬 운전 실력으로 부모님 차를 빌리고 담벼락과 뽀뽀한 탓에 생긴 스크래치였다. 이 LF소나타는 매우 익숙해보였다.
 
세리를 잊고 소나타 쪽에 달려가서 살펴보았다. 01버23xx. 맥이 탁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았다.
뒤늦게 쫓아온 세리가
 
- 오빠 왜그래 무슨 일이야?
- 하. 이런. 이 차.
- 이 차가 왜?
- 부모님 차야.
- 무슨 말이야?
- 내 부모님 나 낳아주신 이 못난 아들 낳아주신 부모님 차라고.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6개월전 하루 종일 부모님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았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날이 후끈하게 달아온 여름 날. 하루 종일 연락이 닿지 않자. 나는 담담히 포기했다. 부모님을. 이 시절에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부모님은 나를 포기 하지 않은 모양이다. 인천에서 천안이면 안양이 길목이었다. 어찌보면 자신들의 발병시기가 얼마남지 않았음을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나를 만나기 위해 마지막 여행을 나섰던 것이다. 게으른 부모라고 불평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극복할 만큼 나를 사랑했다. 이 못난 아들을.
 
울음이 멈쳐지지 않았다. [끄억 끄억] 소리내며 세리 앞에서 처음으로 못난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는 생존 전문가인척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얼굴을 무릎사이에 파묻고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세상은 내 기대와는 반대로 돌아간다. 울음이 조금 잣아들자 담담히 세리에게 부모님과의 일을 이야기 했다. 내가 얼마나 게으른 부모라고 불평했는지 그리고 전화 연락이 끊겼을 때 얼마나 담담히 포기하고 마음을 정리했는지. 그리고 결심히 섰다.
 
- 세리야. 여기에서 헤어지자.
- 무슨 말이야 켄지오빠?
- 부모님을 찾아야겠어. 혹시 운이 좋다면 살아있을지도 모르지 두분 중 한분만이라도 살아있다면 꼭 찾아내고 싶어. 그래 어쩌면 핸드폰 배터리가 충천하지 못하거나 망가져서 연락이 안될뿐인지 몰라. 근데 여기처럼 감염자가 많은 곳에서 계속 찾는 다는 건 위험한 일이야. 너까지 위험에 처하게 할 순없어.
 
가방을 세리에게 내밀었다. 남은 식량도 모두. 세리가 살아남길 바랐다.
 
- 이봐 켄지 약속 지켜야지.
- 무슨 약속?
- 규칙 기억안나? 3번째 규칙 한 명이 발병하면 매몰차게 버린다. 근데 지금 오빠가 발병안했는데 버리라고 그건 계약 위반이야.
- 이봐. 그게 그뜻은 아니잖아.
- 됐고, 알았으니까 열심히 찾아봐. 생존 전문가의 모습을 보여달라구.
 
세리는 툭툭 어깨를 치며 말했다.
 
-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너라도
- 알았으니까 앞장서 켄지가 감염되면 정말 매몰차게 버릴테니까 약속대로 원망이나 하지마.
 
생각을 정리해 보니. 2가지였다. 첫번째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 부모님이 감염 됐을 확률이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평소 쉬는 모습으로 발병했을 텐데 게으른 엄마와 아빠라면 어디로 갔을까? 두 번째는 가능성은 지극히 낫지만 살아있을 경우. 그렇다면 차가 여기있다면 역시 부모님은 안전한 방법으로 주변 거쳐를 찾았을 것이다. 그래 게으른 아버지 성격을 믿어보자.
 
내 판단으로는 두 경우다 이 차에서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주변 아파트 촌을 둘러보기로 했다.
푸른 아파트. 부모님이라면 분명 멀리 안갔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푸른 아파트부터 뒤져보자.
 
우리는 푸른 아파트를 돌고 돌았다. 다행인점은 수색범위가 전력이 들어오지 않은 탓에 많이 줄었단 점이다. 아파트 동 현관입구가 대부분 기계작동의 멈침과 동시에 잠겨있었다. 그렇다면 열린 곳을 우선 순위로 찾기로 했다.
 
푸른 아파트는 복도형 아파트였는데 잠긴 문은 슬쩍 열어보고 지나치고 열려있는 집을 찾기로 했다. 을싸한 분위기가와 감염자의 두려움으로 세리가 내 등뒤로 더 바짝 붙었다.
 
- 근데 켄지. 만약 부모님을 찾는다면 어떻게 할꺼야?
세리가 조심스럽게 속삭이듯 물었다.
이말은 아마 앞의 두가지 경우 다 가정하고 물었음에 틀림없다.
- 글쎄 살아계시다면 같이 함께해야지. 최악의 경우... 그래 그냥 부모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으로 됐어.
- 켄지 부모님이 꼭 살아있으리라 믿어. 이왕 상봉하는 것 감염탓에 선글라스 끼고 볼 수는 없잖아. 맨눈으로...
- [사락]
 
우리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젠장 감염자였다. 선글라스 너머 뚱뚱하여 살이 처진 감염자가 보였다. 배를 불뚝 내밀고 있는 감염자의 머리는 듬성듬성 머리가 빠져있을 뿐 예전에 여성이었다는 것을 짐작케했다. 분명 저 분은 평소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을테지. 조심히 방해만 하지 않으면 다가 올일은 없다. 우리는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 [파삭]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신문지에 내가 뒤뚱했다. 선글라스를 낀 탓에 바닥이 잘 구분되지 않은 탓이었다.
 
- 오.. 오빠.
- 귀... 찮..............................아!!
 
별안간 감염자가 우리 쪽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읽었던 생존팁이 생각났다. 그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다면 불상사는 없다. 다만 방해했다면 불상사가 생긴다는 의미다. 그리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록 상급 감염자일 확률이 높다는 팁도 떠올랐다. 만약 상급 감염자라면 근처로 거리가 좁혀지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다.
 
우리는 빠르게 계단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살찐 감염자는 우리를 쉽사리 쫓지 못했다. 다행히 동입구로 나갈 때쯤, 전방에  검은 형체가 느릿 느릿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 켄지 오빠 여기 감염자가 너무 많아 저 감염자도 이쪽으로 오는것 같아.
다급하게 세리가 이야기 하며 내가 앞서지도 뒤로가지도 못하며 추춤거리는 사이!
 
- 아악
- 크아악!
어느 덧 뚱보 감염자가 우리 등뒤로 덥쳤다. 반사적으로 한 손에 가방을 움켜졌다. 나의 오랜동지 나이키 가방을 질끈 던졌다.
 
음료수의 무게 때문에 직격으로 날아간 가방이 감염자의 머리를 정통으로 마쳤다. 나는 가방을 포기하고 세리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그러자
 
- 귀...
- 귀...
- 귀 찮.....
- 귀...
- 귀.. 찮....
....
 
감염자의 수 없는 울부짓음이 들렸다. 나는 손을 잡고 자꾸 뛰었다. 힐끗 돌아본 등뒤로 여섯명 정도의 감염자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엿다. 여기서 끝날 순 없다. 나는 아파트 단지를 미로 삼아 지그 재그로 뛰었다. 그들은 머리가 좋지 못한다. 최소한 멀쩡한 사람의 머리는 따라잡을 수 없다. 그들은 뛴다는 이야기, 공격성의 이야기를 인터넷상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었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진화하는게 아닐까? 생존자를 잡아 자기 개체를 늘릴 수 있도록.
 
우리는 숨이 컥컥 막힐 때까지 지그 재그로 뛰었다. 마침내 멀리 강변이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세리의 손을 놓았다. 그러자 쌓였던 분노가 터졌다. 생존가방을 버린 순간 정말 우리 남은 시간은 3일 이내 인 것이다.
- 하악 하악
- 괜.. 괜찮아 켄지 오빠?
- 젠장, 우리가 어떻게 모은 식량인데 젠장 젠장.
- 괜찮아 오빠 다시 찾을 수 있을 꺼야 일단 그래 차라리 우리 돌아가자 안양은 너무 위험해 일단 수원쪽으로 돌아..
 
나는 세리를 무시하고 터벅터벅 강변으로 갔다. [안양천]이라 쓰인 도로 표지판이 보였다.
그래 이곳이 안양천이구나. 1년전에는 사람들이 운동을 위해 열심히 뛰었을 이곳 나는 절망의 시선으로 털썩 주저앉아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어찌보면 인간의 종말. 그것은 흐르는 강물처럼 거스를수 없는 흐름일지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발악해봤자.
 
그리고 옆을 보자. 움직이지 않은 검은 형체를 발견했다. 약 30미터 쯤에 있는 형체 눈에 익었다. 나는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래 우리 게으른 아버지라면 이런 풍경좋은 곳에서 마지막을 하고 싶겠지.
 
경치좋은 안양천 강변 그 곳에는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자세로 서로를 의지하여 바치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였다.
 
---------------------------------------------------------------------------------------------------------------------------------------
 
 
 
 
- 역시 그래도 부부 금술은 좋았단 말이지. 
- 오빠 왠일로 선글라스 벗었어. 오빠가 어떤 경로로 감염되는지 모르니 눈도 보호한다고 하...
- 저기 있어.
- 응?
- 우리 부모님.
 
나를 따라 세리도 안경을 벗었다. 마침내 안경점에서 나를 따라 보호하는 안경을 찾았다고 좋아하던 그 안경. 나를 따라 벗어버렸다. 어차피 늦고 빠름의 차이였다. 내가 아무리 발악한들 강물을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그리고 이정도면 오래 버텼다. 다만.
 
- 세리야 미안하다. 여기가 우리 마지막이야. 내가 지금까지 부모님 기대를 어기고 살았지만. 마지막은 함께 하고 싶어. 나도 부모님쪽으로 가면 감염되겠지. 상관없어. 그리고 너무 지쳤어.
- 무슨말하는 거야? 켄지.
- 미안하다. 끝까지 챙겨주지 못해서. 지금 부터 잘들어.
- 그만해.
- 첫째, 깨어있는 시간은 무언가 항상 매진해야 돼. 너도 들었지 우리 몸안에서 언제 발병할지 모르니까 항상 무언가에 계속 집중해야 발병을 막을 수 있다고. 지금까지는 나와 함께 있었으니까...
- 그만해 켄지.
 
세리의 표정은 굳어갔다. 나도 내가 이기적인것을 안다. 여기 까지 끌고 오고 책임을 못져 주다니. 하지만 돌처럼 굳어 서로를 의지하는 부모님의 마지막 감염의 말로를 보니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이제 끝내자. 지긋지긋한 생존.
 
- 둘째, 먹는 것을 구하면 꼭 7등분으로 남겨. 맛있다고 한번에 먹지 말고. 아끼는 순간 최소 일주일의 생명은 벌은 거야.
- 그만하라고!
- 셋째, 아무도 믿지... 그래
 
미소가 맺혓다.
- 그래 믿을 사람을 만난다면.... 꼭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의지하고 버텨. 꼭 살아가는 거야.
- 그만하라고 !!
- [짝~]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맞아본적이 없었다. 태어나서 마지막 순간에 여자얘한테 손찌검까지 당하다니 정말 최악이다. 최악. 볼을 매만지며 놀란 눈으로 세리를 바라보는 사이 그녀가 나에게로 안겼다.
 
- 그만...켄지가 없어지면 나는 당장 내일이라도 감염될 꺼야. 오빠가 여기서 나를 버리는 순간 분명 머지 않아 감염자들한테 나도 잡혀서 똑같은 처지가 되고 말꺼라고!
 
내 가슴을 콩콩 때리며 울부짓는 세리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 그리고 오빠 부모님이 이런걸 원할 것 같아? 아들이 자기들 따라서 감염되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자 선택해 만약 오빠가 여기서 혼자 자살하겠다면 나도 따라 감염될꺼야. 어차피 오빠 없이 나혼자 살아야 이틀이야.
- 미안해. 하지만 살사람은 살아야지.
- 됐어. 선택해 같이 죽을거야 살거야!!
 
세리를 억지로 밀어 떼었다. 세리는 눈물, 콧물 범벅으로 엉망이다. 나역시.
다시 부모님에게로 가려하자. 세리가 내 팔을 부여잡고 말했다.
- 켄지 오빠만 가족을 잃었을 것 같아. 나도! 아니 난 심지어 내 눈 앞에서 아빠가 감염되는 것을 봤다고. 오빠 혼자 만 아픔을 짊어진거 같아. 이 이기적인 놈아.
 
세리가 자리에 주져앉았다. 그래 나만 아픈게 아니다. 세리 역시 큰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나보다 더 큰 슬픔을
다리에 힘이 풀려 세리를 안고 속삭였다. 미안해, 미안해. 나는 세리만큼은 내 힘이 다하는 것 만큼 보호해 주리라. 우리를 둘러싼 태양이 지고 있었다.
 
해가 지는 핑크빛 오후. 초저녁. 나는 깨달았다. 세리의 마지막 특징 그녀는...
세리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세리는 따뜻하다.
나 따위 보다 훨씬 가치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망부석인 된 나의 부모님처럼.
 
 
이윽고 정신을 차리자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세리가 이야기했다.
- 이봐, 울보 켄지 오빠. 혹시 만약 섬으로 들어가면 안전하지 않을까?
- ...
- 도시는 감염자도 넘치고 그래 섬에가면 농사 질 땅도 있을거 아니야. 어차피 도시에서 쉘터를 찾든 먹을거를 구하려면 위험을 무릎써야 하는데 차라리 무인도로 들어가 버리면 감염자도 없고 농사 지어서 먹을 것도 구하고 일석이죠 아니냐구!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 발상이다. 그렇다면
- 인천쪽으로 가면 섬이 많이 있을 꺼야.
- 좋아. 다음 목적지는 인천이다. 일단 먹을거 부터 찾고 짐챙겨서 다시 떠나는 거야.
 
아이러니 하게 나는 나의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일부로 떠나왔던 고향으로.
 
---------------------------------------------------------------------------------------------------------------------------------------
 
 
 
 
우리의 여행은 더 이상 운이 없었다. 방향은 인천으로 잡았지만. 거리는 멀었고 문제는 식량이 떨어진 탓에 기운 역시 떨어져갔다.
다행히 비가 중간에 내려 빗물을 빈 페트병에 담아 식수는 조금 해결했지만 먹을 것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감염자가 눈에 띄게 많이 보인 탓이다. 우리가 가고 싶은 번화가 쪽이나 상점가 쪽은 여지 없이 감염자들이 출몰했다. 상점가 앞에서 [기면]하는 시간에 조심 조심 살펴봤지만 이미 상점안들은 깨지고 물건은 사라져 우리가 가져갈만한 식량이나 물품을 찾기 힘들었다. 마침내 세리가 다 썩어가는 참외에 손을 댓다. 난 손을 철썩 때리며 말렸다.
 
- 안돼. 그거 먹으면 진짜 끝이야. 우리는 지금 상비약도 없고. 식중독 걸리면 어쩌려고.
- 그치만 너무 배고프단 말이야. 이거 먹고 소화제 찾아 먹으면 되잖아. 마침 옆에 약국도 보이네.
너무 대책없는 친구다. 세리는 참 알 수 없는 녀석이다. 이런데 어떻게 알바를 많이했지. 분명 사장도 꽤나 골머리 썩었을 것이다.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상점가를 감염자의 [기면]시간에 맞춰 기다려 들어가기 보다는 시간 낭비도 막을 겸 계속 인천쪽으로 향하기로. 운이 좋다면 식량도 가는 길에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의 운도 여기까지였다. 안양을 떠나 시흥을 거쳐 인천에 갈 생각으로 시흥으로 일단 방향을 잡았는데(광명같은 도시보다 감염자를 만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 판단했다) 실수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는 탓에 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여기에는 감염자도 없었지만 끊없이 펼쳐진 도로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식량 또한 없었다.
 
걷는 속도는 현저히 떨어지고 남은 물도 세리에게 양보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끝나더라도 최대한 그녀 만큼은 보호하자. 더더욱 운이 없는 것은 정말 도로에서 노숙해야할 처지라는 사실이었다. 마땅한 거처를 못찾았다. 고속도로 휴게소라도 있겠지라고 쉽게 생각한점이 뼈아펐다. 하긴 네비게이션 지도도 더 이상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 보지 못하는 처지였으니 어쩔 수 없다.
 
찬 바람이 부는 고속도로. 그 안의 어찌보면 인류 최후의 남자와 여자. 우리마져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세리는 애써 괜찮다 괜찮다 하였지만 내가 자꾸 권하는 물을 거절 못하는 것을 보니 그녀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듯했다. 이상하게 물은 세리에게 양보하느라 거의 마시지 않는데 자꾸 오줌이 나왔다. 자꾸.
 
세리에게 잠깐 기다리라 하고 고속도로 갓길 한켠으로가 지퍼를 풀었다. 그런데 분명 오줌이 마려웠는데 막상 오줌이 나오지 않았다. 바닥이 울렁 울렁.
이 기분은 분명 지난번의 느낌이다. 귀에서 [윙]하는 이명 소리와 함께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 켄지! 켄지 오빠!!
세리의 내 몸을 흔드는 기척과 따뜻한 음성. 생각해보니 분명 바지풀고 꼴 사나운 모습으로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퍼를 다시 잠글 힘도 없었다. 22년 만에 만난 내 사랑 앞에서 이런 꼴 사나운 모습으로 죽어가다니. 씁슬하다. 세리의 모습이 흐릿해질쯤 갑자기 강한 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 호오라. 생존자들이었네.
 
남자의 음성에 눈을 뜨니, 덜덜덜 거리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빛이 보였다. 그리고 옆을 바라보니 왠 청년이 나와 세리를 내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안경을 쓴 전형적인 안겹잡이 공부잘한것 같은 인상. 그 청년은 자동차키를 빙글 빙글 돌리며 우리를 응시했다. 더 이상 버틸힘이 없었다. 이 장면을 끝으로 다시 눈이 감겼다.
 
 
<2부 그녀의 특징 끝.>
 
 
 
 
 
 
 
 
 
 
 
 
 
 
 
 
 
 
 
 
 
 
 
출처 내 머리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