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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978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깨동e★
추천 : 17
조회수 : 180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1/27 08:49:22
"우리가 왜 이렇게 싸워야하는지 알고 있나."
잔뜩 자세를 낮춰 이빨을 드러낸 그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오랜 싸움 내내 단 한번의 공격기세도 없이 날 설득하느라 피투성이가 된 그 녀석은 이미 지쳐보였다.
"안다, 싸움. 모른다, 생각."
나는 날렵하게 그녀석의 목덜미로 달려들어 어금니로 꽉 깨물고 흔들었다.
"명심하라고. 지게 되면. 너 역시도."
그 녀석은 그렇게 경기장밖으로 실려가 술이 벌겋게 오른 어떤 중년 남성에게 끌려나갔다.
*
"똘구야!"
아침이 되면 졸린눈을 부비며 일어나 내가 있는 이곳으로 제일 먼저 찾아오는 저 녀석은, 이집 아저씨의 아들로 보인다.
"어무니요. 똘구 또 와 이럽니꺼. 아부지
또 투견.."
"시끄럽다. 개.ㅅ끼 한마리 가꼬, 사내자식이 눈물이 저리 많아서야.."
내가 이렇게 한번 나갔다 오면, 저 아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붕대와 약을 이리저리 서투른 솜씨로 발라주고 싸매준다.
어제 질풍이라고 했던가. 그 녀석과의 싸움 도중 물린, 오른쪽 입술이 따갑고 쓰리다.
와당탕하며 마당으로 작은 소반상이 튀어나온다. 술이 덜 깨 얼굴이 벌건 아저씨가 부지깽이를 찾아들고 씩씩거리며 내가 있는 이곳으로 들이닥치면, 이 집의 아들은 온몸으로 안아 막아 세운다.
"아부지요. 똘구 좀 요. 똘구 피난다 아임꺼."
"개ㅅ끼. 죽어도 상관 없다! 개ㅅ끼, 개ㅅ끼."
날 막아 세우는 아들의 몸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무지막지하게 부지깽이가 날아든다. 피하려고 해도 짧게 메인 목줄덕에 피할수가 없어 그냥 아저씨의 성화가 가라앉기만을 바랄뿐.
어제 질풍과의 싸움이 문득 생각이 난다. 우리가 왜 이런 싸움을 해야 하는지 묻는 그 녀석의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때 질풍이란 녀석이 나에게 달려들어 내가 했던 그대로 나의 목덜미에 어금니를 깊숙히 박아 넣었다.
"아는가. 이 싸움. 왜."
"모른다. 싸움. 안다. 고기."
난 그렇게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경기장에서 끌려 나왔다.
그날 점심. 내 밥그릇에 고기가 잔뜩 담겼다. 그리고 정체모를 하얀 약도 위에 뿌려졌다.
텁텁 밥그릇을 한참 비우고 있는데 문득 그 녀석의 채취가 입안에서 감돈다. 순간, 꿀렁하며 구역질이 나왔다.
*
혓바닥이 바닥으로 끌릴만큼, 길게 나와 지친 똘구가 집으로 들어오면, 나는 똘구 몸에 걸린 타이어를 뜯어 창고에다 들여놓고, 똘구의 그릇에 차가운 물을 담아주고 똘구가 물을 먹으며 숨을 돌리는 사이 몸에 난 상처에 후시딘을 발라주는게 내 일상중에 하나다.
우리 아버지는 투견을 하신다. 똘구는 우리집에서 2년정도 살고 있는 녀석인데, 어제 밤엔 좀 많이 졌는지 아버지 성화가 정말 장난 아니시다.
전에 있던 바람이가 완전 대패하고 들어와서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을때, 아버지는 동네 개장수를 불러 바람이를 싣고 어디론가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저씨가 가져온 스티로폼 박스에 있던 고기를 소고기라며 내 국그릇에 한 그릇 갖다 퍼줬을때 나는 그게 본능적으로 바람이라는걸 알았다.
바람이는 무덤덤한 개였다. 아파도 아프단 티도 안내고, 그냥 자기 상처를 싹싹 핥기만 하고 있는 그런 개였다. 바람이를 닮은 똘구가 참 안타깝다.
똘구는 어제 지고 들어왔나보다. 입술이 찢어져 너덜거리고 목덜미가 찢어져 아직도 피가 흐르는데, 거기다 또 그냥 대충 실과 바늘로 얼기설기 꿰매놓은거 보면 너무 속상하다.
우~~~
그 날밤은 유난히도, 똘구가 구슬프게 울어대는 그런 날이었다. 똘구가 울기 시작하자 동네개들도 똘구의 울음을 똑닮은 울음을 토했다.
"개ㅅ끼가. 사람 잠도 못자게!"
술에 취한 아버지가 부지깽이를 들고 나가 똘구를 또 두들겨 팬다. 나는 맨발로 나가, 똘구를 안고 아버지께 빌어본다.
"아부지요. 똘구 죽슴더. 예? 함만요."
똘구는 머리 엉덩이 가릴거 없이 날아오는 매질에 지칠때도 되건만 똘구 는 전혀 그 울음을 멈출 생각이 없어보인다.
"똘구야. 그만해라아. 어. 아부지 화났다 똘구야. 제발 좀. 어?"
나는 똘구의 입을 두 손으로 꽉 잡아 똘구의 울음을 막아본다. 그렇게 동네개들의 울음이 잦아지고, 머리 몸통 가릴데없이 두들겨 맞은 똘구가 거품을 물고 쓰러지자, 아버지는 부지깽이를 멀리 던져버리고 방안으로 들어가셨다.
똘구는 거친 숨을 내 쉬어가며, 계속 얕은 울음을 토하고 있다. 딱 5분만이라도 똘구랑 이야기 해 봤으면 좋겠다.
*
그날 하루종일. 그 녀석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왜 싸워야하는가에 대해 말이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우리가 왜 싸워야하는지에 대해 단 한번도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어디론가 끌려가 실컷 싸우고 나면, 누군가는 파란 종이 몇장을 가지고 싱글벙글해져 나가고, 누군가는 잔뜩 화가나 싸움상대를 발로 밟고 몽둥이로 그 녀석들의 숨이 끊어질때까지 두들겨 패거나, 아니면 구석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또 다른 인간에게 끌고 가거나.
나는 궁금했다. 우리가 왜 싸워야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끌려간 또 다른 누군가는 어디로 가는지.
"아는가. 싸움."
아무것도 알수가 없었기에 나는 온 동네 의 그녀석들이 들으란 식으로 크게 내질렀다.
"모른다. 싸움. 안다. 죽이기."
"안다! 죽이는거! 피! 죽는다! 너!"
"고기! 물어 뜯는다. 사람. 싸운다!"
가끔은 알수 없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저기 건너마을에서 희미하게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자네도 투견인가."
"맞다. 개. 투견. 모른다. 왜 싸움. 모른다."
그때 나의 소리에 화가 난 이집 아저씨가, 뛰어나와 부지깽이로 날 후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집의 아들도 나와 눈물 콧물 쏟아내며 말려보기 시작했지만, 왜에서 시작한 궁금증을 막을수 없었기에 나는 계속 되물었다.
"싸움. 왜. 우리. 투견. 모른다."
"죽을때까지 싸워야한다네. 본능만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말일세. 그게 투견이네."
"싸움. 왜?"
"그래야지 인간들이 돈을 벌수 있네."
"이김. 돈. 짐. 그 이후는?"
"그 이후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다네. 여기 이곳에 매일 끌려 들어오는..."
머리로 날아든 부지깽이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직 내가 알고싶은건 다 알지도 못했는데...
*
똘구가 어젯 밤에 많이 울어서 많이 맞았다. 축 늘어져, 입가로 밀어주는 밥도 안먹는다.
나는 내 밥그릇에 밥을 일부러 고춧가루와 된장찌게에 말다시피해서 안먹겠다고 남겼다.
사실 똘구에겐 아버지가 보신탕 집에서 가져온 내장으로 밥을 주는데, 똘구는 쌀밥을 엄청 좋아한다.
그렇게 내가 밥을 남기면 똘구에게 주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쌀밥을 주고싶다. 나는 점심에 급식소 가서 많이 먹으면 되니까 오늘 아침은 똘구에게로 양보하기로 한다.
*
맵고 짠 그 밥을 억지로 이집의 아들이 밀어줘 억지로라도 삼키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집 아들이 집밖으로 나가면, 이 집의 아줌마는 뭔가를 챙겨들고 나가고, 이집으로 한 무리의 인간들이 들어와 한나절 보내는 사이, 해가 어둑해지면... 글쎄 나는 이 집 아들이 들어올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그래야지, 겨우 바깥으로 나가 걸어볼수 있다.
밤새 후들겨 맞은 자리를 혀로 싹싹 핥고 있을때였다. 한입거리도 안되어 보이는 그 녀석이 나에게로 다가선건 그때였다.
"문다. 너. 죽인다. 싸움."
"날 알겠는가."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춰 달려들려고 할때였다.
"어젯밤에, 기억하시겠는가."
"안다. 투견. 모른다. 그 이후."
"나는, 저기 건넛마을에 살고 있네. 인간들이 발바리라며 키우고 있지. 나 역시도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네. 그 녀석도 그랬어. 왜 싸우는지 나에게 물었었다네."
"모른다. 그 녀석. 안다. 싸움"
"자네와 같은 투견이었다네. 아마 이틀전에 내가 살고 있는 그곳으로 끌려들어 왔었지. 이곳은 지옥이네. 자네같은 친구들이 매일처럼 실려들어와."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말 다했지 않나. 단지 싸움에서 졌기때문이네."
"싸움. 짐. 죽음. 왜?"
"자네같은 친구들이 싸움에서 지면, 내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끌려들어온다네. 그리고 밧줄에 목이 메여 걸리지. 숨이 끊어질때까지 몽둥이로 맞고 나면, 그 후는 불로 온몸이 그슬려진다네. 배가 갈려 내장이 뽑히고 나면, 그걸 삶아 인간들이 먹는다네."
순간 치가 떨렸다.
"싸움에서 진 투견의 결말일세."
*
몇일 내내 똘구는, 밥도 먹지 않고 힘없이 바닥에 깔아 누워져 있었다. 몇일전에, 이웃마을 바둑이가 놀러와서 꼬리 흔들면서 놀고있길래.
나는 똘구가 제정신을 차린줄 알았는데 바둑이가 가버리자 똘구는 그냥 그자리에 가만히 있다가 몇일 내내 잠도 안자고 눈만 끔벅거리면서 누워만 있다.
똘구 줄을 풀어 동네 산책을 하려고 해도 안끌려 나오고, 그래서 아부지가 또 화내면서 똘구를 보신탕 집에 갖다 팔아버린다고 한다. 진짜 어쩌지.
*
다시 또, 밤이 되었다. 나는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아마 또 거기 그곳.
싸움터 일테지.
문득, 나는 이것에 대한 결론을 어떻게 내야할지. 덜컹거리는 차에 실려 가는 내내 고민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술에 취한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강제로 그곳에 끌려 나갔다. 항상 그랬듯 구석에선 겨우 숨만 붙어있는 그 녀석들이 줄지어 쓰러져 있고, 싱글벙글한 얼굴의 사내는 그런 녀석들을 차에 갖다 싣는다.
인파의 한 가운데 둥그런 원안에 다시 끌려들어갔다. 항상 그랬듯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
술취한 사람들이 둥그런 원 안에서 진행되는 짐승들의 싸움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챔피언 질주! 질주에 도전하는 똘구!"
마이크를든 사내의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 이내 환호의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원! 투! 쓰리!"
두마리 개의 목줄이 풀리자 똘구라고 부르던 녀석이 몸을 날려, 심판이라고 하는 자의 목덜미로 달려들었다.
목을 물린 사내는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다가 이내 피를 흩뿌리며 절명한듯 해 보였고, 장내에 이리저리 피냄새가 풍기기 시작하자 투견들은 흥분해 더 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싸움 상대를 잃어 잠시 멍하던 질주라는 개는 피냄새를 맡자 정신을 차린듯 이내 여기 저기 달려들어 날뛰기 시작했고, 두 마리개의 반란에 놀란 사람들은 허둥거리며 자기가 데리고 온 개의 목줄도 놓치는듯, 일대 아수라장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목줄 풀린 개들이 한마리씩 늘어나기 시작하자, 약속이라도 한듯 개들은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공격당해 쓰러지고, 부상 당하고 사망한 사람들만 남아있을때 쯔음.
약속한듯, 그들은 인간 사냥을 멈추고 줄을 지어 산으로 향하고 있다. 그곳에선 다시는 싸움이란 없을 그들만의 무리를 만들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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