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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주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꾼 한 발명의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978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삼도리
추천 : 54
조회수 : 607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1/28 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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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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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그리그 - 산왕의 궁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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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미국 워싱턴의 한 인구조사국에서 일하던 20살의 젊은 직원인


허만 홀러리스(Herman Hollerith)는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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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달리는 차 창에 턱을 괸 채 골똘히 생각에 빠진 원인은


바로 얼마 전 통계국에서 내려온 한 장의 공고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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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고 정확한 획기적인 인구 조사 방법 설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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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 국민에 대한 통계자료를 처리하던 1880년대의 미국의 통계국은


엄청난 이민자들의 물결로 인해 범주화할 자료를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독립 직후 1790년부터 10년마다 전체 인구를 조사해온 통계국은 9차 조사였던 


1870년엔 조사와 집계에 5년이 걸렸지만 지금 당장 실시하는 10차 조사에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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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는 이유는 당시의 인구조사법이 모든 것을 손으로 


일일이 세고 적는 매우 원시적인 수작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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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1870년에 3,885만 명이었던 총인구수가


1880년엔 5,019만이라는 숫자에 육박하게 되자 다음 조사엔 12년이 걸릴 것이란


예상이 나오기 시작했고 일각에선 아예 인구조사 자체를 하지 말자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제시될 정도였다.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통계국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상금을 걸고


해결책을 각지에 공모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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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러리스는 오래전 학교에서 배운 한 놀라운 방직기계를 떠올렸다.


이전의 방직 기술에선 정교한 무늬와 같은 화려한 천은 사람의 손으로만 만들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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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프랑스의 발명가 조제프 마리 자카드(Joseph Marie Jacquard)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카드식 방직기는 마치 사람이 직접 제작하는 것 처럼 화려한 무늬의 천을 자동으로 만들어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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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방직기계는 실을 자동으로 끌어와 천을 짜는 여러 개의 쇠막대로 작동했다.


이런 쇠막대의 움직임을 통제하면 특정 색상의 실들을 끌어올 때 자동으로 섬유의 


패턴을 만들 수 있는 점을 주목한 자카드는 종이에 구멍을 뚫어 쇠막대와 실 사이에 놓아


구멍이 뚫린 부분은 실이 엮어지고 구멍이 뚫리지 않은 부분엔  쇠막대가 막혀 실이 엮이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내어 마치 사람이 만드는 듯한 무늬의 천을 기계를 통해 대량으로 제작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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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렇게 기계가 인구의 숫자를 자동으로 셀 수만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하지만 직조기의 시스템은 단순하여 실을 선택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2가지 차이밖에


없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방식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인구 조사와 같은 


다양한 변수가 있는 작업엔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이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던 홀러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하기를 포기한 채


혼잣말을 내뱉었다.




`까막눈인…. 내가 뭘 하겠어. 그저 말도 안 되는 공상일 뿐이지.`




어릴 적 극심한 학습장애인 난독증으로 인해 쓰거나 읽는 것이 힘들어 


정규적인 교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홀러리스는 다른 분야인 기계 설비와 


기계의 작동 원리에 대해선 누구보다 해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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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정비사의 길을 가고자 했던 홀러리스는 1년 전인 1875년에


뉴욕 컬럼비아 탄광 대학에서 천신만고의 노력끝에 학위를 받아 졸업하여 


꿈에 그리던 탄광 정비사가 되었지만  내성적인 성격과 문서를 작성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그에게 탄광 정비사의 길마저도 지속하기 어렵게 되었다.




결국, 자신이 꿈꾸던 길을 포기한 홀러리스는 고향인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도망치듯 떠났고


단순히 숫자를 세는 업무가 전부인 인구조사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차 창 밖을 바라보며 이번 일은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한 


홀러리스의 귀에 조그마한 금속음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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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그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보자 말쑥한 차림의 역무원이 승객들에게서 


승차권을 받아 확인하는 눈에 들어왔다.




찰칵-




역무원은 승객에게 짧은 인사말을 건네며 승차권을 받은 후 손에 든 작은 도구를 사용하여


구멍을 뚫고 다시 승객에게 돌려주었다.




지난 역에서 갈아탔던 홀러리스는 그 광경이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반복적인 인사말과 작은 금속음이 울리고 난 후 홀러리스의 차례가 되었다.


역무원이 홀러리스에게 미소 지으며 승차권을 요구하자 홀러리스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에게 승차권을 전달했다.




"추운 날 환승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부디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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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짧게 이야기한 후 승무원이 승차권에 작은 구멍을 내었고


승차권을 돌려받은 홀러리스는 지난 역에서 생긴 구멍 밑에 새롭게 구멍이 난 자신의


승차권을 자세히 쳐다보자 그곳엔 빼곡하게 적힌 조그마한 글들로 가득했다.


홀러리스는 곧바로 역무원에게 말했다.




"어떻게 제가 환승했다는 걸 아시나요?"


그의 물음에 역무원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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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권에 난 구멍으로 알지요."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듯 황당한 얼굴로 역무원이 홀러리스를 쳐다보자


그는 역무원에게 어째서 승차권에 구멍을 뚫는 것으로 환승 여부를 확인하는지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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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무원은 이것이 오래전 개척시대 때 유명한 열차 강도들이 판을 치던 시대에서 내려오던 전통이라 말했다.


당시 열차 강도들은 그들의 일당 중 한 명을 손님으로 가장해 열차에 태웠기 때문에


역무원들은 혼자 탄 남성이나 요주의 인물을 확인하여 승차권에 표시하는 방법이 생기게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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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열차 강도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이 전통은 무임승차자들을 감시하거나 같은 승차표로 여러 번 운행하는 


승객들을 막기 위해 구멍을 뚫었고, 역무원들이 뚫는 구멍의 위치의 따라 승객의 환승 여부나 성별과 심지어 


체격과 머리색깔까지도 구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자랑스러운 듯 설명했다.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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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거야!!`




역무원의 설명을 듣던 홀러리스의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홀러리스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면에 옮겨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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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러리스의 아이디어는 역무원들의 행동에서 착안하여 지폐 크기의 종이에 구멍별로 


인종, 나이, 성별, 지역 등의 조사 항목을 일정한 순서에 따라 작성하여 이것을 정렬한 후 


조사결과에 맞춰 해당 위치에 구멍을 뚫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종이를 자카드식 방직기와 같이 구멍만을 따로 선별하는 기계에 넣어 


조사의 결과를 자동으로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었다.


홀러리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통계국에 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액의 상금을


손에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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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홀러리스는 이 기발한 아이디어에 특허를 냈고 1884년 


자신이 개발한 이 특별한 종이 카드를 읽어내는 태뷸레이터라는 장비를 발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10차 인구조사가 7년이 지난 1887년이 돼서야 작업이 끝나게 되었지만 


홀러리스의 발명품이 나온 후인 1890년에 시행된 11차 인구조사는 


미국 전체 인구가 6,262만 명이란 통계가 발표되기까지


고작 2년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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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사 집계에서 증명된 이 천공 카드 시스템(PCS: Punched Card System)의 성능을 본


많은 기업과 학계가 홀러리스의 발명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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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러리스는 1896년 태뷸레이팅 머신 컴퍼니(tabulating machine company)란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천공카드와 태뷸레이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홀러리스는 연 1천$에 자신의 발명품을 관청과 기업에 임대했고


임대하기가 무섭게 제품들은 각지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1911년 성공한 발명가이자 사업가가 된 홀러리스는 자신의 회사를


뉴욕의 잘나가는 금융가 찰스 플린트에게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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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된 후 회사의 이름은 C-T-R Co.(Computing-Tabulating-Recording Company)로 바뀌게 되었고 


홀러리스는 회사의 고문으로 머물다 1921년에 은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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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러리스가 은퇴한 이후에도 그의 발명품은 사람들에게 널리 쓰이게 되었고


인구조사와 통계에 탁월하다는 것을 눈여겨본 유럽의 한 정당이 자신들의 나라에 


지사를 설립해 달라는 러브콜이 올 정도로 회사 역시 거대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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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가 만들어낸 발명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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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의 시초가 되어 컴퓨터가 개발될 수 있게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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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회사는 이후 유명한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rporation)의 모태가 되었다.




홀러리스는 은퇴 후 8년 뒤인 1929년 69세의 나이로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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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난독증으로 고통받고 학업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20살의 젊은 청년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획기적인 발명품이 


자신과 다른 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게 될 거라고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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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에 생긴 일은 절대 그가 바라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홀러리스의 발명품은 말 그대로 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게 되었다.


































불행히도 그의 사후 10년 후 








홀러리스의 발명품이 인구조사와 통계에 탁월하다는 것을 눈여겨본 유럽의 정당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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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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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히틀러의 지시하에 이루어진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기 전 나치 지도부는 


홀러리스의 기계가 단지 간단히 수를 세는 정도가 아닌 데이터를 분석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이것을 인구 정책의 모든 분야에 차용하기 시작했다.




1939년 인구조사 업무를 위탁받은 IBM 독일 지사는 75만 명의 인구조사원들을 고용하여


독일 전역에 퍼져 열성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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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이 홀러리스의 발명품을 사용하여 작성한 것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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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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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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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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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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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대인의 목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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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록은 1942년 나치가 실시한 인종청소의 살생부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고


나치가 점령한 지역 어느 곳에서나 홀러리스의 천공카드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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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에 올라간 수많은 사람은 IBM 독일 지사가 관리하는 독일철도망 시스템으로 분류되어


가족과 친지들과 흩어지게 되었고 곧 끔찍한 수용소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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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수감자들을 16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학대와 처형 방법의 규정 역시 홀러리스의 천공카드로 관리되었고


수감자들은 이름이 말소된 채 카드에 적힌 번호로만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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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약 20만 명의 달하는 사람들이 홀러리스의 천공카드가 찍어내는 


구멍들로 인해 낙인 찍혀 학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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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러한 사실은 2000년 초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경험담과 고소로


세상에 알려지기 전 까지 자신들이 전범기업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선 


IBM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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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의 젊은 청년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획기적인 발명품이 



'죽음의 계산기'라 불리며



다른 많은 사람의 삶을 송두리 채 바꾸게 될 거라고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출처 53stor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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