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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돌아보기 - 1
게시물ID : freeboard_17082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번째커튼콜
추천 : 4
조회수 : 2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1/28 16: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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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오늘 나름 큰 결심을 하면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미루던 일들을 하나하나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그 중의 하나였던 과거 돌아보기.

몇년동안 눈팅만 하던 이곳에 왜 글을 남기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많은 생각이 들기전에 시작해보기로 합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다소 두서없는 글이 될것 같네요.



그냥 막연히 그동안의 내 삶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일종의 자서전일지도 일기일지도 모르겠다. 자서전을 써내려갈만큼 거창한 삶은 아니였을지라도 왠지 이 기록의 끝엔 내 스스로를 더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뒤죽박죽 섞여있는 기억들과 내 현재의 정서를 보다 올곧이 인정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썩 괜찮은것 같다. 평소에도 낙서를 즐겨하는 편이니..

여러가지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머리 속에 뒤섞여 있지만, 이 기록의 끝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셨다. 나의 유년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아버지는 꽤나 능력있는(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직업군인이셨고, 능력과 업무량은 비례하는지 혹은 업무량이 많아야 능력을 인정받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깨어있는동안에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신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항상 내가 일어나기전에 출근하셨고 내가 잠든 이후에 집에 돌아오시곤 했다.

어머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위해 살아가시는 분이셨다. 유치원시절부터 아버지가 없는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시려는 듯 두 아들을 데리고 여러 놀이동산과 뮤지컬, 영화관을 데려가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의 사진속의 우리 형제는 항상 깔끔한 복장에 웃으며 사진을 남겼으나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은 거의 드물었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 형제를 위해 노력하셨고 헌신하셨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으로 기억이 난다. 어느날 저녁에 어머니께서 형과 나를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이제 여기서 살지 않을것이니 형과 내가 잘 지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어머니의 첫 탈출 시도 였으나 어렸던 나는 그런 사실따위 알지 못했고 그저 엄마를 따라 나서겠다고 때를 쓰던 기억이난다.

결국 우리 형제를 버려두고 나오지 못한 어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허름한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보내셨고 다음날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 아직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집을 떠난다는게 쉬웠을리가 있으랴.

난 어린시절에 대해 별로 기억을 못하는 편인데 이날의 기억은 지금도 머릿속에 사진을 찍어둔 것처럼 선명히 남아있다.

한칸짜리 좁은 여관방의 빛바랜 장판, 캐묶은 곰팡이 냄새.

마냥 철없이 신나하던 나의 뒤, 방 한켠에서 울고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직업 군인이신 아버지때문에 우리 가족은 자주 아버지의 근무지에 따라 이사를 다녀야 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내가 기억하는 살았던 도시는 서울, 순천, 공주, 대전 등이였고 초등학교때는 서울에서 시작하여 강릉, 부산을 거쳐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렇게 자주 이사다니다보니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귈때쯤 또 전학을 가기 일쑤였다. 어린 나도 친구를 새로 만나고 사귄다는게 힘들었으니 우리 어머니도 항상 외로우셨을꺼다. 그무렵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다.


초등학교 3학년, 강릉. 아버지의 군 가족 부부동반 회식자리에서 처음 사건이 터졌다. 아니 처음 사건을 목격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웃고 떠들고 화기애애한 회식자리가 끝나갈 무렵 어른들의 술자리에 실증을 느낀 형과 나는 회식장소였던 횟집 앞 바닷가에 나가 조개껍대기를 주으며 놀고있었다. 얼마나 놀았을까, 해가 지고 다시 돌아온 횟집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였다. 술에 취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한 그 무언가는 테이블을 다 뒤집어 엎고 사람들 앞에서 어머니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폭행 하고 있었고 너무도 공포스러운 그 모습에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가만히 앉아 흐느끼며 아버지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던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뿐이였다. 아버지의 운전병아저씨가 나를 그 자리에서 급히 데리고 나올때까지..


그날 이후, 그런 아버지의 주폭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마치 평소에 눈에 보이지 않던 얼룩이 한번 보이고 난 뒤에는 계속 눈에 거슬려 신경이 쓰이는 것처럼.

술에 취한 아버지의 분노의 방향은 항상 어머니를 향해 있었고, 아직 어렸던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단지 두려움에 책상밑에 움추려 숨죽이고 있는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한번 각인된 공포는 내 안에서 계속 자라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은 점점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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