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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돌아보기 - 3
게시물ID : freeboard_17087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번째커튼콜
추천 : 3
조회수 : 2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1/29 1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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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해 우리 가족은 인천에 정착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이제 중,고교 학생이 되는 우리 형제에게 계속되는 전학은 학업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계급이 올라가면서 예전처럼 많이 발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원주로 발령받아 2년정도 혼자 떨어져 계신적이 있었는데, 그 2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솔직히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은 내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서 언제가 더 과거였고 언제가 미래인지 잘 기억해 낼수가 없지만 최대한 기억해내 봐야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 형은 더욱 나와는 다른 노선을 걷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일진이 되어 싸움을 하고 다니기 일쑤였던것 같다. 학교가 달라 내가 목격하진 못했지만 주위에서 들리는 소문과 가끔 상처가 생겨있는 형의 얼굴을 생각해보면 꽤나 과격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듯 했다. 하지만 집에서 부모님께 반항을 하거나 한건 아니였고, 집에서의 형은 그냥 과묵한 아들이었다.

형과는 다르게 나는 역시나 순종적인 모범생이 되어 있었다. 모범생이라는건 그저 학교 성적이 잘 나오는데서 오는 평가였을뿐이고 나는 그냥 소극적이고 겁많은 성적이 조금 잘 나오는것 말고는 특별한 재주라고는 없는 학생이였을 뿐이다. 한가지 바뀐점은 나는 중학교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키가 컸다는 점이다. (중 1 입학때 147Cm에서 중학교를 졸업할땐 173Cm)


그리고 이 무렵 나는 아버지가 성공한 직업 군인으로서 사회적 지위가 상당하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 참관수업이 있을때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일일교사(당시 부모님 일일교사라고하여 부모님이 학교에 와서 하시는 일에 대한 소개와 이것저것을 알려주는 날이 있었다)로 학교에 오신다거나, 학부모 모임이나 학교 행사에서 선생님이나 다른 학부모님들이 아버지를 대하시는 모습에서 어렴풋이 눈치채게 되었다.

형과 내가 커가면서 아버지의 주폭도 조금 줄어드는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별로 목격하지 못했던 것이거나.


이 무렵 엄마는 아파트 앞 상가에 있는 미용실 아줌마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 미용실은 30대 초중반의 사장부부 내외가 함께 운영하는 미용실이였고 새로 이사온 어머니가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몇 안되는 분이였다. (몸이 좋은 편이 아니였던 어머니는 항상 약을 달고 살았는데 그래서인지 약국 아주머니와도 친해지셨다.)

그 미용실 부부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는데 (1~2살정도였던것으로 기억한다) 어느날 부터 어머니께서 부업삼아 집에서 그 아기를 돌봐주시기 시작하셨다. 당시 나는 그냥 어린 동생이 생긴것 같아 신기한 기분이였고 그저 반가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당시 아버지는 원주로 발령을 받아 원주에서 근무를 하고 계셨고 한달에 한두번 어머니께서 주말에 원주에 내려가 아버지 살림을 돌봐 주셨는데 그 떨어져 있는 시간이 독이 되었는지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의심하기 시작하셨다. 바로 미용실 남자 사장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의심하신것인데 그 미용실 사장님은 쉬는날 없이 매일 부인과 함께 미용실에 근무를 하셨고, 어머니와의 접점은 아이를 데려올때와 데리고 갈때 (물론 부부가 함께) 뿐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각이란게 그렇듯 아버지의 의심은 점점 자라서 확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그러하듯 본인의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사람은 이성을 잃는다.

어느날 어머니와 아파트 앞 상가 미용실에가서 머리를 하고 미용실 부부와 어머니가 얘기를 나누고 있을때 아버지가 들이닥쳤다. 앞뒤 사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정확히 기억하고 싶지만 내 머리가 정확히 기억하길 거부하는건지 정확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정황이 어렴풋이 머리에 남아있을뿐) 아버지는 어머니의 머리채를 붙잡고 상가를 질질 끌고 다니며 폭력을 휘두르셨고, 나는 약국 아주머니가 챙겨주셔서 약국 책상 아래 떨면서 숨어있었던것이 기억난다.


이제는 취중에서만 폭력이 이뤄지는게 아니였다. 그건 큰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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