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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련변호사 페북에 새 글이 올라왔는데 가관이네요
게시물ID : sisa_10194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팔삼이
추천 : 31
조회수 : 330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8/02/03 00:09:09
염치있는 사람이 답하라.  2013.6.21. 공직출근 첫날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으로 출장을 갔다. 피해할머니들을 뵈었다.  공직생활하는동안 사람들이 나를 권익국장이 아니라 위국장이라불렀다. 위안부피해자지원업무가 내 업무의 7할쯤되었었다.  참 힘들었지만 의미있었다. 지방에 사시는 할머니들도 모두 찾아뵈었다. 나는 생존 위안부 피해할머니를 전부 직접 만나뵈었다.  위안부피해문제에 대한 시민운동은 적극적 성과가 있었으나, 연구성과물, 보고서는 많지 않았다.  20세기 최대규모 전시성폭력, 피해규모는 우리나라가 가장 큰 역사적 비극인데 교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활용할만한 교재도 마땅치 않았다.  위안부 피해에 대한 정부백서 발간을 추진했다. 학생들 교육시 참조할수있도록 역사선생님들과 교과참고자료를 만들었다. 학생들 대상 공모전을 통해 미술, 연극, 강의로 위안부 피해를 공부하고 발표하는 행사를 추진했다.  위안부문제를 연구해오신 국내외 학자들을 초청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시작했다. 할머니 한분한분을 기록하는 미니 다큐를 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에 참가하여 2박3일 밤을 새며 일본측방해에 맞서 전시를 성황리에 마쳤다.  위안부 기록물을 국가기록물로 지정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유네스코 등재추진을 하면서 관련 시민단체들의 협조를 요청했었다. 그리고 인권진흥원안에 신혜수교수님을 단장으로 하는 팀이 꾸려졌었다. 여성정책연구원에 할머님들의 외상후스트레스에 대한 연구요청도 했었다.  아는 신부님께 부탁하여 2014.8월 교황님 한국방문시 할머니들을 만나 위로드리는 일도 추진했었다. 명동성당미사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유엔에 가서 정부주관 최초 전시성폭력근절위한 심포지움을 진행했었다. 위안부문제를 주제로 한 시나리오 공모전을 했고 거기서 당선되어 영화화된 작품이 아이캔스피크다. EBS 3부작 다큐도 제작했었다.  위안부피해 상설전시관을 건립하기 위해 순국선열회, 광복회, 서대문형무소, 용산전쟁기념관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 실패를 거듭했었다.  이것이 내가 여가부 담당국장으로서 추진한 일들이다. 성과도 있었고 추진하는중 비판도 많았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언젠가는 시작해야하는 일이기에 참 열심히 일했다.  위안부피해는 역사문제, 인권의 문제인데 어느 순간 우리는 이 문제를 정치적, 이념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안타까웠다. 안타깝다.  나는 이런 일들로 위국장이라 칭해지곤 했었다. 그런 이유로 공무원 그만둔 후 정부요청으로 화해치유재단에 참여했었다.  혹여 재단이사들이 한방향으로 나갈 때 나라도 목소리내야지...하는 심정으로 참여했었다. 그러나 재단 이사님들 생각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관점과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염치없지만 나는 위안부피해문제와 관련하여 이런 일들을 했었다.  염치많은 당신은 그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일들을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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