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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 오피스텔 607호…국정원 대선 개입 ‘역사 퇴행의 현장’
게시물ID : sisa_10196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로의오유
추천 : 50
조회수 : 317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2/03 22:42:0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3&aid=0000031908

 

12월의 서울 강남대로는 번득이는 전광판 조명과 가로등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 조명으로 흥청거린다. 하지만 이면도로를 끼고 바로 한 블록만 들어간 곳에 위치한 성우 스타우드 오피스텔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아마 오피스텔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어 호텔이나 유흥주점 같은 것이 허가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하게 일을 하기에는 적격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강남대로 양재역을 지나 국가정보원이 있는 내곡동까지 얼마 되지 않는다.

국정원 직원의 오피스텔 급습한 야당
18대 대통령선거 투표일 8일 전인 2012년 12월 11일 저녁 7시5분, 야당인 민주통합당(민주당) 김현 의원과 당 관계자,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서초경찰서 경찰관들이 이 오피스텔 607호를 급습했다. 그러나 집안에 있던 20대 여성은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저항했다. 경찰과 선관위 직원, 민주당 소속 변호사가 ‘국정원 직원이냐’는 질문에 이 20대 여성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20대 여성과 그의 가족은 오히려 ‘야간 가택침입’이라고 항의했고, 국정원도 ‘흑색 정치선전’이라고 강변했다.

사실 민주당은 국정원 내부로부터 결정적인 제보를 받았다. 대선 1년 전인 2011년 11월부터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전 부서를 심리정보국으로 격상시키고 3개 팀 총 70여명의 직원이 인터넷 포털 및 주요 게시판에 야당후보에게 불리한 댓글을 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이 오전에 국정원에 출근해 작업내용을 보고하고, 새로운 지시를 받은 후 다시 외부에서 작업을 벌이는 구체적 근무체계까지 담겨 있었다. 그 현장이 바로 이 오피스텔 607호였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성우스타우스 오피스텔 607호에서 발각된 국정원 댓글사건은 지금도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서초경찰서는 607호 주인에 대한 신원파악 대신 민주당에 제보한 사람에게 신고경위를 진술해 달라고 요구했다.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현행범의 신원파악과 검거보다 신고자의 신고경위 조사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집주인 김하영의 신원이 국정원 직원임이 곧 드러났다. 그런데도 김씨는 다시 오피스텔 문을 걸어 잠그고 증거를 파기했다. 현행범을 체포해야 할 경찰과 선관위는 40시간 넘게 오피스텔 밖에서 대기했다. 야당은 경찰과 선관위의 태도에 항의하며 파기되는 증거를 복구하기 위해 IT전문가를 대동하고 현장을 지켰다. 그 현장에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이 있었다.

12월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대선 3차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증거도 없이 2박3일 동안 여직원을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부모도 못 만나게 한 게 인권침해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 후보는 “그 여자는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다”라고 말했다. 김하영이 감금된 피해자인지, 아니면 불법 선거운동을 하던 피의자인지는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김하영은 산악·해양은 물론 공수훈련까지 받은 국정원 정예요원이었던 것이다.

김하영을 비롯한 심리정보국 요원이 했던 댓글공작은 무엇일까. 김씨와 같이 활동했던 ‘좌익효수’라는 닉네임을 가진 직원이 했던 작업을 보면 이들 공작의 실체와 수준을 알 수 있다. 이 좌익효수는 주요 포털과 인터넷에 5·18 광주항쟁을 “아따 전(두환) 장군께서 확 밀어 버리셨어야 하는디”,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등 공무원은 물론 정상적 상식을 가진 인물이라고 믿기 어려운 댓글을 달았다. 그는 또 “개대중(김대중) 뇌물현(노무현) 때문에 우리나라에 좌빨들이 우글대고…”라는 댓글공작을 폈다.

국정원은 이 좌익효수가 직원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검찰 수사 결과 직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야당과 5·18 관련단체는 좌익효수를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좌익효수는 잠깐 대기발령을 받고 다시 국정원에 근무하다 최근 언론에 그의 계속 근무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야 검찰은 불구속 기소했을 뿐이다. 이 사건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다시 정치, 특히 대통령선거에 개입한 반역사적이며 퇴행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여직원이 문을 잠그고 경찰의 검문을 거부하는 가운데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이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되살아난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망령
1961년 중앙정보부에서 시작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이어지는 51년 국가 최고 정보기관 역사에서 국정원은 숱한 정치적·사회적 파란을 겪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 18년은 ‘중앙정보부 시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정희 시대는 중앙정보부가 열었다. 3선 개헌, 유신 개헌의 견인차도 정보부였다. 그리고 마침내 10·26 암살로 그 시대를 닫아버린 것도 정보부였다. 안보 파수꾼, 외교 주역에서 정치공작, 선거조작, 이권 배분, …심지어 여색관리, 밀수, 암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올마이티의 권력 중추였다.”(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2012)

실제 2007년 국정원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힌 그동안 중정·안기부의 실상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거의 대부분 선거를 중정이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정희 시대 중정은 전두환 시대 안기부로 이어졌다. “1987년 대선은 안기부 특보인 박철언을 통해 ‘상록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 이르러서는 안기부가 노골적인 선거 총괄은 하지 않았더라도 여당의 입장과 이익을 위해 선거업무에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국정원 과거사위,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2007)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2015년 2월 9일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은 정치정보 수집과 도청의 잔재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선거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이런 기조는 노무현 정부 때도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중정·안기부·국정원의 방대한 자기고백서를 만들었다. 그동안 정보기관의 탈법·불법 사례의 진실과 잘못을 6권의 책에 고백한 것이다.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은 “우리가 만들어낸 잘못된 과거에 대한 쓰라린 성찰 없이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국정원,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정원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참담한 자기고백서를 낸 이후 정치개입, 특히 선거개입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본연의 역할로 되돌아간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노골적인 정치·선거개입 의혹은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말기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그 ‘저주스런’ 정보기관의 선거개입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 ‘망령’을 다시 불러낸 것은 다름아닌 임기말 이명박 정부였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국정원 직원이 여론조작에 개입했다면 미국 워터게이트보다 더 불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딛고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전인 2월 16일부터 시민·사회단체의 항의시위에 맞닥뜨렸다. 이후 학생·시민들의 규탄시위, 교수·종교인·언론인들의 시국선언, 정치권의 국정조사 등 진상규명·항의시위가 1년여 넘게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그해 7월 10일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홍만희 회장은 “부정선거의 원흉 이명박, 원세훈, 김용판, 김무성 등을 구속 처벌하라!”는 성명을 외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2월 31일에는 서울역 고가차도에서 이남종씨가 ‘박근혜 사퇴’를 외치며 분신자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권위주의 시절 있었던 집회·시위·시국선언·기도회·분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국민적 저항이 이때도 이어졌다.

국정원 댓글사건 1주년을 맞은 2013년 12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력’의 수사방해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국민의 항의 표시일 뿐이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권력기관이 총망라된 ‘거대한’ 부정이 개입된 것이다. 사건을 수사하던 서초경찰서에 대한 윗선(서울경찰청)의 수사 축소 외압이 폭로됐다. 어렵게 이뤄진 윤석열 특별검사(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는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와 법무부(당시 법무부 장관은 황교안 현 국무총리)의 집요한 방해에 부딪혔다.

결국 ‘보이지 않는 세력’은 윤 특검의 후원자인 채동욱 검찰총장을 낙마시켰다. 현직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한 언론이 폭로하면서 권력기관 사이의 힘겨루기는 결국 ‘검찰총장 사퇴, 윤 특검 해체’라는 수순을 밟았다. 이로써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오히려 경찰의 축소수사를 폭로한 서초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이 거짓 증언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권력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발생과정 자체도 ‘구태’였지만 그 마무리도 거의 ‘야만적’이었다. 실행 당사자인 국정원, 1차 부실수사 논란의 서울경찰청, 특검에 외압을 가한 법무부와 청와대 등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이 얽히고설켰다. 또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고, 동료 판사는 이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사법부까지 논란에 가세했다. 심지어 특정 언론은 검찰총장의 사생활 폭로전으로 이 사건에 가담했다. 결국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권력이 총동원돼 난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심에서 유죄가 선고돼 법정 구속됐다. 대법원은 일부 증거에 대해 파기 환송했지만 국정원의 대선개입, 즉 국정원법 위반이 분명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이고, 그 깊숙한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 댓글이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역사는 크게 퇴행한 것이다. 2007년 ‘다시는 안 하겠다’며 방대한 자기고백서까지 쓴 국정원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 사건의 수습과정을 보면 국가권력은 거의 ‘막가파식’ 난맥을 드러냈다.

역삼동 성우스타우스 오피스텔 607호에서 발각된 이 사건은 조그만 사건이 아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시대를 역행한 구태의 재연’이라는 매우 불행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역행한 구태의 재연은 시작에 불과했다. 국정 교과서를 부활시키고, 심지어 학생·시민의 시위를 무차별 진압한 백골단의 부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퇴행을 잉태하고 태어난 정부의 한계인가, 아니면 그것이 본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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