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에 가보니 저희 가족과 가깝게 지냈던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도 있어서 이상하긴 햇는데 저는 단지
학교 수업에 빠진다는것이 마냥 기뻤습니다.
당시에 어머니께서는 안산인가 서울에있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갑자기 어머니꼐서 제가 보고싶다고 하셔서 저를 데리고 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저희집은 전라도 익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눈치를 채지 못했나 싶었죠. 병원에는 친척분들도 다 와계셨는데 저보고 마음 굳게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설마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TV나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이 일어난거죠.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어머니는 무척 힘들어 보이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괜히 힘든소리하면 안될것 같아서 엄마한테 "엄마 중환자실 나가서 다시 병실로가면 나랑 같이 꽃보러가요 밖에 꽃
이폈는데 엄마닮아서 이쁜거같어" 라고 하자 어머니는 눈물만 흘리고 계셨습니다.
멍하니 복도에 서있는데 아버지꼐서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했습니다.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울지말자 울지말자...
그러나 어머니 몸에 껴있던 그 수많은 주사바늘은 온데간데없고 어머니께서는 숨을 쉬시지 않았습니다.
몸에 힘이빠지고 눈물만 흐르더군요.
다시 익산에 내려와 어머니 장례식치르고 무덤에 묻는와중에도 실감이 나지않았습니다.
엄마가 폐암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 엄마는 자주 몸이 쑤신다고햇는데 저는 게임에 미쳐서
그 힘들지도않은 안마도 귀찮아서 짜증내면서 했었는데.
정말 제자신이 죽도록 미웠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가신지 두달후... 저희집에 아버지 고향 친구라고하면서 한 아주머니가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반찬도 해주시고하셔서 고마웠는데, 너무 자주오시는 거였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버지 꼐서는 재혼을 하신거였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이혼이 이미 되어있었구요...
그리고 아버지는 술로 사셨고, 술주정을 심하게하시면서 누나와 항상 다퉜습니다.
어머니께서 병원에서 오래 생활하셔서 갑자기 저희집은 빛더미에 앉았고... 아버지는 변했고,,,
제 성격도 변했습니다. 활발했던 제성격이 조용해지고, 이제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누나도 대학갈때 아버지께서 돈을 보태지 않았습니다. 돈이없다고...
저는 아버지께 대들었습니다 ㅅㅂ 나같으면 빛을져서라도 자식 교육은시키겠다고
맞았습니다... 하지만 아픈거보다 정말 서러웠습니다. 어떻게 몇개월만에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됫는지...
누나가 3개월간 야간 알바뛰어서 등록비 내고 갔습니다.
제가봐도 대단한 누나입니다 정말. 그렇게 3년을 살아오면서 엄청난 갈등을 빛었습니다.
학교를 때려치라는둥... 차라리 일나가서 돈을 벌라는둥...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재수없고 X같은 인생을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하죠 "너보다 어려운사람들을 생각해"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힘들면 똑같이힘든거지 나보다 더어려운사람이 어딨어"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힘든 경험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많이 있고. 오유나 다른 사이트에서 저보다 더 힘든
더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그래도 행복하다는 사람의 글을보고는 변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길
지금 하루 3끼를먹고 학교도 갈수잇고 따뜻한 잠자리에서 잠을 잘수잇다는것.
그 자체로 정말 행복하지 않나요?
아무리 더럽고 힘들게 산다고해도 이렇게 지금 숨쉬고 있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그리고 그 글 쓴사람의 마지막에는 "사람이 힘들다 죽고싶다는 생각을 언제할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이 나태해졌을때라고 합니다. 목표를 가지고 하루를 바쁘게, 다른 생각 들지 않을정도로 바쁘게 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마음을 바꿨습니다.
독한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중상위는 됬었기 때문에 조금 열심히 하니깐 성적도 오르고
꿈이 생겨서 뭘 해도 즐겁습니다.
제 1차목표는 법대에 가는 겁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 께서 왜 법대에가고 싶냐고 묻고, 권력을 쥐고싶냐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제 꿈은 법조인이 되어서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힘쓰고 싶습니다.
항상 약자의 편에 속했던 제가... 조금이라도 더 노력해서 저보다 힘든사람들을 돕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