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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와 돈까스
게시물ID : love_409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끼리코귤
추천 : 46
조회수 : 235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8/02/04 15:19:33

우리는 만나면 보통 떡볶이를 먹던가, 그런 계열의 매콤한 분식을 먹었다. 데이트하는 커플들이 으레 먹을 법한 파스타 따위는 먹어본 적이 별로 없다. 시도해 본 적은 있는데 둘 다 시큰둥해서는 그 후로 먹자는 이야기를 누구도 꺼낸 적이 없었던 것 갔다.

 

그래서 그런지 헤어진 후로, 먹을 때마다 그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있다. 대부분은 원채 먹지도 않았거나 딱히 찾아 먹지 않았던 음식들인데, 왜인지 이제는 굳이 찾아먹게 된 음식들이다. 가령 나는 자몽을 절대로 먹지 않았다. 그 시트러스 과일 특유의 하얀 섬유질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떫거나 쓴 맛 때문에. 하지만 내가 입을 앙 다물고 있으면, 그 아이는 어떻게든 내가 먹기 편하게 하려고 그 얇은 섬유질을 일일히 벗겨 우리 엄마가 깎아준 사과처럼 내 앞의 접시에 담아주곤 했지. 나 스스로 그렇게 자몽을 사 섬유소를 떼어 먹을 열정은 없지만, 그래도 왜인지 모르게 탄산수를 살 때는 자몽향을 집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 내가 자몽향을 다 먹네 하면서 그 아이를 떠올리는 것이다.

 

혹은, 떡볶이만 보면 입에 군침이 돌 때. 도대체 대학가라고는 믿을 수 없도록, 우리 학교 동네에는 맛있는 떡볶이 분식집이나 포장마차 집이 없었다. 그래서 터미널 같은 시내로 나오면 제일 먼저 맛있는 떡볶이 집을 찾아가 떡볶이 플러스 알파를 시켜 먹었다. 나에게는 떡복이는 엄마가 굳이 사오면야 먹는 음식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음식들을 주워먹다보면 원망이 슬금슬금 차올랐다. 나는 이렇게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다 기억하고 있지만, 너는 그렇지 못하겠지. 왜냐면 너는 튀긴 음식도 싫어하고 단단하게 눌은 밥도 싫어했으니까. 나는 네가 맛있는 것만 먹으면 좋겠어서 네가 좋아하는 음식점들만 줄기차게 갔었다. 하지만 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기억할까? 아니, 알기는 할까. 이렇게 나는 너를 배려 했었는데 너는 나를 하나도 배려하지 않았어, 하고 찌질한 원망을 뒤늦게서야 삼키곤 했다.

 

음악도 그랬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커피 한잔을 마시거나 대충 세수를 할 때 마저도 음악을 듣는 취미가 있던 너는 네가 좋아하던 달달한 인디 음악들을 틀어 놓아서 나는 가끔 거리를 지나다가 그 음악들을 들으면 심장이 내려앉곤 했다. 그래, 너는 항상 네가 좋아하는 음악들만 듣느라 내가 좋아했던 음악들은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 아니 알기는 할까?

 

하지만 이제서야 뒤늦게 후회를 하는 것이다. 너는 슬프지 않을까? 나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없어서, , 하면 생각하는 음악이 없어서. 싫다는 너의 팔목을 잡고 굳이 내가 좋아하는 돈까스 집을 갈 걸. 대낮에 부대찌개 집에 들어가 사리를 듬뿍 추가 해놓고는 병 맥주를 한 잔씩 나눠 마실 걸. 네가 세수를 하는 동안 네 플레이리스트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 한 곡 즈음은 몰래 추가해볼 걸. 그때는 그게 배려인 줄만 알았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네가 좋아하는 음악만을 함께 듣는 게. 그런데 어쩌면 너도 내가 궁금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음식을 먹으면 너도 그것들을 사랑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 네 덕분에 알게 된 음악들과 떡볶이의 매콤함, 자몽의 씁쓸함이 얼마나 훌륭한 지를 이제서야 알게 되니까 더 그렇다. 너에게 내가 좋아하는 그 많은 것들의 매력을 알려주었다면, 그것이 너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되었을 탠 데.

 

때로는 배려만큼 이기적인 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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