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칭 밀레시안 시점. 1인칭 그 사람 시점도 생각은 했는데 쓸 지는 모르겠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논커플링을 생각하고 썼으나, 커플링으로 보셔도 괜찮습니다. 애초에 공식에서 떡밥을 그렇게 던져놨는데 뭐 어쩝니까 유저는 낚여서 파닥댈 뿐...
* 역시 이전 글들과 같이 '상황' 자체는 같으나 세부 묘사에서 갈립니다. 이번에는 스크립트 찍은 거 보면서 쓰는데도 그럴 겁니다.
실드 오브 트러스트. 내가 그에게서 배웠던 신성력 스킬 중 하나.
모르겠다. 아까 내 몸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던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무의식적으로 그 스킬이 생각나는건지.
내가 쓴 실드 오브 트러스트에 그의 눈동자가 아까처럼 커다래진다. 아까와는 그래도 좀 다르다. 그 때야 경악이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무슨 생각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그의 표정과 별개로 나는 할 말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또 그 기대대로 움직이길 바란다는 건 알고 있어."
가볍게 운을 떼고 나니 이만큼 시원하게 말이 나오는 일도 참 오래간만의 일 같았다.
"알아. 나에게 기대하는 이들은 많아. 신도 있고, 같은 밀레시안도 있고, 이번에는 톨비쉬 '당신마저' 그랬지."
여전히 그는 말이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어차피 상관없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만 했으니까.
"근데 난 단 한 번도 누군가의 기대대로 움직인 적이 없어. 전에 말한 세계를 구하는 일 쯤은 몇 번 있던 일 아니냐고 했지만, 그게 내 의지대로 한 건 거의 없던 일이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만 주절주절 떠들다가 처음 듣는 대답에, 오히려 그 말에 등을 떠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당신은... 이번 일도 당신의 의지대로 행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틀린 말은 아니니까. 신이니 뭐니... 내 눈으로 봤는데도 그래. 잘 모르겠어. 톨비쉬가 왜 그렇게 나와 공통점을 찾으려 하는 지도. 그래도 그건 이해는 하지만 거기까지야."
계속 나만 말을 하는 상황이라 목이 조금 타들어가긴 했지만, 아직 본론은 얘기하지도 않았다.
숨을 크게 들어마시니 칼칼해진 목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에린에 오면서 여러가지 것들을 배우고, 그런 것들이 나중에 세계를 구하는 일에 조금씩 보탬이 되었지만, 그런 걸 바란 적은 없었어.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모여 '나'를 만들잖아. 그 중에는 당신이 알려준 이 스킬도 선연히 살아있지."
".....!"
"무슨 뜻인지 알겠어? 당신 말대로 '신'이 돼었다고 해도,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 내가 살아온 시간, 배워온 것들, 이야기들.... 그 전부가, 나야."
가슴에 손을 대어보니 심장의 맥박이 조금 강하게 들려온다. 생각해보니 그 모습으로 변하고, 되돌아왔을 때부터 아까 전 칼에 뚫린 사람같지 않게 회복속도가 빨랐다. 아까 전 톨비쉬는 분명 내 모습을 '신'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그 단어는 나에게 낯선 울림이었다. 이번에도 또 딱히 생각한 적 없던 걸 얻어버렸네가 아마 제일 가까운 감상평이 아닐까.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모습도 이제 조금씩 눈에 익었다. 새삼스럽게도, 지금 이 모습이 원래의 모습인 걸 아는데 그간 만났던 톨비쉬의 모습과 이상하다 싶을 만큼 합이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근데 그런 모습이 이제야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저에게는... 잠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원을 사는 자에게 '잠시'란 시간은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일까. 나 또한 죽지 않으며 밀레시안으로 살아왔는데도, 평범한 이들의 '잠시'라는 말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말하는 건지 적응하지 못했다. 그와 나의 잠시는 순전히 1시간, 하루 수준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무한한 시간, 끝없는 고뇌.....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그의 무거운 짐들. 떨쳐버리라고 하기엔 쉽지만, 본질적으로 불멸자가 된 그와 나 사이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그 힘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서 나는 모르고, 그는 안다. 그렇기에 고민의 끝에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일 테고.
그게 옳은 지는 솔직히 말해, 지금도 모르겠다. 내가 톨비쉬의 앞을 막아서고 아발론의 힘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게 옳았을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나에게도 던져진 셈이었다.
"모두에겐 미안합니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미로 속에서 길을 찾은 것마냥 다시 빛을 찾았다.
"기다려주세요. 밀레시안."
그 말에 어떠한 대답도 듣지 않겠다는 듯, 아발론의 문이 닫혔다.
- 무신론자+종교없는 사람 입장에서 톨비쉬의 선택은 극단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1인칭 톨비쉬 시점을 못쓰겠어요.
- 그나저나 아튼 시미니는 좋겠네요. 저런 충직한 종의 믿음을 받고 있으니. 물론 밀레시안 입장에선 왠간한 신 다 맞짱떴으니 맞짱뜨러 레이드 갈 지도 모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