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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입산수련기
게시물ID : diet_1202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차흑랑
추천 : 3
조회수 : 4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2/11 23:4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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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운동 이야기 이면서 멘붕 이야기라 고민하다가 멘붕게 분위기를 보고 거긴 아닌거 같아 

운동 이야기가 많은 다이어트 게시판에 씁니다=ㅁ=a

-

때는 바야흐로 한때 격투기 선수로 작성자의 십대 시절(대략 고1 때였을 겁니다), 무도가 코스프레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저와 동갑이자 같은 무도 수련생인 돌쇠군(별명, 가칭)은


(사실 돌쇠란 별명은 많이 순화시킨 단어이고, 원본은 겁나게 적나라한 별명입니다.

보통 무술가에게 별명 같은 게 붙는다면 대부분은 그 사람의 파이트 스타일에 기반을 둔 별명이기 마련인데,

이 돌쇠군은 아무리 때리고, 때려 거리를 떨어트려도 우직하게 얻어맞으며 다가와 후두려패는 극강의 인파이터 스타일을

베이스로 가지고 있어, 그것이 마치 발정 나 달려드는……헛, 흠흠…*-ㅅ-*)


도장에서 한참 그 날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던 제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달려왔습니다.

 

“흑랑아! 너 최배달 알아?”

“알지. 근데 왜?”


무도(武道)가들 중에 극진 가라데(극진 공수도)의 창시자이자,

무도인의 이상향인 고 최영의 선생님(최배달)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때의 저는 극진 가라데를 수련하신 분과 몇 번 스파링 했던 경험 밖에 없어

간접적인 경험이 전부인지라 급작스레 최영의 선생님을 언급하는 돌쇠에게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극진을 포함한 가라데 계열의 무술들을 직접 수련해보게 된 것은 조금 뒤의 일입니다)

 

“최배달이 왜 강했는지 알았어! 산에 들어가서 수련하면 된데!”

 

돌쇠가 뭔가 대단한 걸 알았다는 듯이 콧김을 내뿜었지만, 저는 시니컬하게 코웃음을 쳤습니다.

입산 수련이야 무술 계열 뿐만이 아니라,

일반 체육계열에서도 선수급이라면 연례행사로(?) 하는 게 입산 수련인지라

별 감흥이 생기질 않았거든요.

 

“작년에도 단체로 같이 다녀와 놓고 뭔 소리하는 거야 멍충아……”

“아냐, 아냐! 우리처럼 깔짝 들어가는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들어갔다 나오면 그렇게 되나봐!”

 

그러면서 돌쇠는 격앙된 얼굴로 손짓 발짓을 동원해 최영의 선생님의 입산수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라면 이 녀석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를 이상한 수련법들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엉덩이를 걷어 차주던 저였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습니다.


저희 도장에 스파링을 위해 오신 다양한 무술가들 중 저와 돌쇠를 그렇게 고전하게 만들어 뇌리에 강렬한 기억을 새긴

그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이시자 존경하는 무술가인 최영의 선생님의 수련법이다 보니, 

저 또한 어느새 돌쇠의 이야기에 감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럼 뭐 언제 산에 가자고?”

“지금 가야지! 난 벌써 준비 다 해놨어!”

 

해맑게 웃는 돌쇠의 엉덩이를, 결국 다시 한 번 차줍니다.


“야, 이 미친X아! 지금 한 겨울이야! 얼어 죽어!!!”

"아냐! 최배달은 겨울에도 도복만 입고 수련하셨다고 했어! 똑같이 해야 우리도 강해지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돌쇠의 논리는 왠지 그럴 듯 해보였고,

저 역시 단호하게 ‘겨울에 산에 들어가야 진정한 무도가가 된다’ 며 버티는 돌쇠에게 슬슬 동화되었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돌쇠의 의견에 따라 저는 몸만 같이 가는 걸로 결정하였고,

이 일을 가장 큰 사형에게 얘기하자, 자신감 가득한 두 후배 동생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 등신들……”

 

이라는 대답으로 허락(?)을 받은 저희는 다음 날 텐트와 각종 장비가 담긴 배낭을 메고 고속버스를 타

돌쇠의 고향에 있는 이름 모를 눈 덮인 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하고 꽤 깊은 산 이여서 산 전체를 봐도 사람이라고는 돌쇠와 저 단 둘밖에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적막하고 고요한 겨울 산 속에서 텐트를 친 저희는 곧 도복으로 갈아입고 최영의 선생님이 입산수련 중 하셨다는 운동법을 시작했습니다.


음, 일단은 팔굽혀펴기를 1000개를 해야 한답니다.

손가락을 하나씩 바꾸며 200씩 5세트를 하면 된답니다.


.......(푸쉬업 중)


하악, 하악 1..9...9...200..!

크헛,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기분에 눈밭에 벌러덩 드러누운 제가 하악거리고 있을 때,

돌쇠는 바들바들 떨리는 검지를 애처롭게 구부리다 결국 손가락을 삐끗해버렸습니다.

매일 도장에서 기본적으로 300개의 팔굽혀펴기를 하던 저희였지만,

평범한 팔굽혀펴기 100개, 가로로 주먹 쥔 자세로 100개, 세로로 주먹진 자세로 100개를 하던 방식인지라

손가락만으로 몸을 지탱하며 하는 팔굽혀 펴기는 400개 2세트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아직 600개의 개수가 남아있었지만 더 이상 지속했다가는 내일의 수련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아

푸쉬업은 이정도로 마무리 한 저희는 산 정상까지 전력 대시를 하기로 했습니다.

 

......(달리는 중)

 

“크헙!”


눈이 잔뜩 쌓인 산길에 엎어진 저는 에퉤퉤 하며 입안 가득한 눈과 흙을 뱉어내고,

그 옆에서 돌쇠는 에로틱한 자세로 나무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합니다.

결국 뜀박질을 포기한 저희는 기어가다시피 산을 올라 결국 정상에 도달했지만,

다시 텐트가 있는 곳까지 내려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우울해졌습니다.


“돌쇠야…다음은 뭐해야 하냐……?”

“응…대련 연습이래……”

 

꼬깃꼬깃한 종이에 적힌 최영의 선생님의 수련법을 보며 돌쇠는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입산한지 반나절 만에 집에 가고 싶단 생각이 가득한 저희였지만,

한 겨울 매서운 추위는 우리가 가만히 쉬고 있으면 흘린 땀으로 인해 바들바들 떨게 만들어 살고 싶으면 몸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대련 중)

 

“으으…돌쇠야 왠지 여기서 스파링 하니까 더 아픈거 같지 않냐?”

“헉, 헉 진짜 장난아냐. 뭉둥이로 맞는거 같아”


그렇습니다. 겨울 산바람에 예민해진 살갗과 추위에 움츠려진 근육으로 인해 저희는 때리는 것도 더 아프고, 

맞는 것도 더 아픈 희안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최영의 선생님은 이런 혹독한 입산 수련을 몇 년간 하셨기에, 그 강함은 저희 같은 새파란 무도인들에겐 짐작조차 되질 않습니다.

새삼스레 이런 혹독한 수행을 거치셨을 여러 선배 무도가들을 떠올린 우리는 텐트까지 내려가며

앞에 보이는 나무들을 한 번씩 주먹이나 손날, 정강이, 또는 발차기로 치고 내려오며 비명과 함께(;;;) 고통스럽게 아래까지 내려왔습니다


사실 준비한 훈련 목록의 반도 하지 못한 저희였지만, 이미 온 몸이 쑤시고 오한이 들어 더 이상의 훈련은 불가능했습니다.

어느새 어둑해진 산 속에서 드러누워있던 저는 서글픔과 배고픔이 느껴져 돌쇠에게 물었습니다.

 

“도, 돌쇠야, 배 안고프니…? 나 뱃가죽이 등에 붙을꺼 같아……”

 

기력이 쇠한 약간 울음 섞인 제 물음에, 아까 삐끗한 손가락을 칭칭 감은 돌쇠는 초점 잃은 눈빛으로 메고 온 배낭 하나를 가리켰습니다.


오호라, 이 녀석이 그래도 식량은 제대로 챙겨온 모양입니다.

‘으어억’ 하는 신음과 함께 기어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배낭을 열어 검은 봉지에 쌓인 식량을 확인한 저는,

그만 울화통이 터져 그 식량(?)을 쭈그려 앉아있던 돌쇠에게 집어 던졌습니다.


“이 미친 새X아! 무슨 콩만 한바가지를 가져왔어?!!”

“최배달은 산에서 콩만 먹었다고 그랬어……”

 

돌쇠가 배낭 한가득 넣어온 식량은 바로 ‘콩’ 이였습니다. 그것도 생콩을 말이죠…….

울분에 차 생 콩을 입에 우겨넣어보았지만 잔뜩 얼고 딱딱한 콩은 제 치아에 강렬한 통증을 선사 할 뿐 전혀 씹히질 않았고,

어느새 눈물이 고인 저는 입에 넣은 콩을 흩뿌리며 돌쇠를 때렸습니다.


“이 또라이 새X야! 그럼 진작 불려 놔야 할 것 아냐! 이 등신아!”

“까먹었어……”


어느새 저와 같이 눈물이 고인 돌쇠는 면목 없다는 듯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는 제게 고개를 떨어뜨렸고,

잠깐 놓아버린 이성을 되찾은 저는 미친 듯이 다른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신은 우릴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배낭 맨 밑에 바로 버너와 코펠, 그리고 라면 네 봉지가 나온 것입니다!


<잠깐만~우~리~함께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안내말씀 드립니다~

산에서의 취사행위는 산불로 번질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흡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십대시절이라 멋모르고 산에서 취사를 해보려던 저희이지만, 이게 불법인 걸 나중에서야 알았고,

이후 두 번 다시 이런 행위는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무척 반성합니다>


허겁지겁 저는 미친 듯이 떨렁 하나만 있던 부탄가스 캔을 버너에 연결시켰습니다.

자기도 최후의 비상식량으로 라면을 챙겨왔던 걸 뒤늦게 깨달은 돌쇠는 코펠에 어느새 물을 담아왔습니다.

방금까지 무기력한 저희였지만 사람의 생존본능은 활력을 되찾아주었고,

우리는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긋 웃으며 버너에 불을 붙였습니다.

 

[틱, 틱]


“어? 이게 왜 안 켜지지?”


[틱, 틱, 틱]


불이 안 켜집니다. 심각해진 표정으로 돌쇠와 저는 부탄가스 캔과 버너를 몇 번이고 해체하고 연결시켰지만 불이 안 켜졌습니다.

캔에 가스가 없나 싶어 몇 번이나 흔들어 확인했지만 찰랑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 가스는 만빵이였습니다.


[틱, 틱, 틱, 틱, 틱, 틱]


나사 빠진 인형처럼 점화 버튼을 반복적으로 돌리고 있는 저와, 라면조차 먹을 수 없는 현실에 무너져 다시 울고 있는 돌쇠…….

그렇습니다. 부탄가스라는 놈은 온도에 민감해 추우면 불이 안 붙는 놈이었던 겁니다!

결국 생라면을 뽀개먹으며 라면에 뿌린 스프 맛인지 눈물 맛인지 모를 짭짜름한 라면을 씹어 먹고

우리는 콩을 물에 불린 채 잠이 들었습니다.

자다가 ‘엄마……’ 라고 부르며 울고 있는 돌쇠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지만,

본인은 한사코 아니라고 하니 제가 환청을 들었었나봅니다.


“흑랑아! 흑랑아 큰일 났어!”


시름시름 앓으며 자고 있던 저를 돌쇠가 다급히 깨웁니다.

떠지질 않는 눈을 억지로 뜬 저는 울상인 돌쇠가 가리키는 그릇을 보았고,

그 안에는 어제 자기 전 불려놓은 콩이 들어 있는 그릇 위로 솟아난 봉긋한 얼음 덩어리가 들어왔습니다.


“……콩은 이제 글렀구나…”


불린 콩은커녕 얼음덩어리를 씹어 삼켜야 할 처지가 된 우리는 결국 콩을 포기했습니다.

식량이 떨어진 우리는 대책 회의를 했고, 하루 만에 도망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는 돌쇠의 주장에 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 될 대로 되라는 생각에 자포자기 상태였던 저는 돌쇠의 주장인

‘산에 난 나물 같은 걸 캐 먹으면 된다’ 라는 말에

입산훈련이 생존훈련으로 변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넋이 나갔고,

돌쇠는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저를 보며 미안했던지 눈에 불을 켜고 눈 덮인 산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정도 따로 떨어져 산을 탐색해 본 저희가 찾은 것은

제가 찾은 쑥 한주먹과 돌쇠가 찾은 손가락만큼의 양인 고사리뿐이였습니다.

허기진 저희는 그거라도 나눠먹었지만 너무 써서 뱉어낼 수밖에 없었고,

쑥과 달래만 먹고 사람이 된 우리의 조상 웅녀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집에 가자고 주장하는 제게, 돌쇠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단호히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아까 고사리 캐다가 토끼가 뛰어다니는 걸 봤어! 내가 토끼를 잡아올게!”

 

토끼……? 저는 이 겨울 산에서 생명체를 본 기억이 없는 데 돌쇠는 토끼를 봤다고 하니,

행여 고기 한 점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토끼를 잡을 도구를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을 다친 돌쇠가 할 수 없는 섬세한 도구 만들기 작업(?)을 마친 제가 건넨 나무창을 받은 돌쇠는,

진지한 표정으로 저와 눈을 마주쳤고 이글거리며 꼭 살아남고 말겠다는 그의 단호한 눈빛에

저 역시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토끼 사냥에 나선 저희 둘은 아까 돌쇠가 토끼를 목격했다던 장소로 향했는데,

근처로 가니 과연 회갈색 작은 토끼가 멀리서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눈앞에 뛰어다니는 식량을 목격한 우리는 베어그릴스가 빙의된 채 창을 휘두르며 토끼를 향해 뛰어갔고,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원시인과 같은 거지꼴의 적들을 감지한 토끼는 바람처럼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철푸덕!]


앞서 달려가던 돌쇠가 넘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안위보다 달아나는 식량이 더 급했던 저는 무시하고 토끼를 쫒으려 했지만,

넘어진 돌쇠가 데굴데굴 굴러 밑에 있던 나무에 부딪이자 내지르는 ‘으악!’ 하는 비명으로 인해

추격을 멈추고 돌쇠에게 달려갔습니다.

 

“돌쇠야! 괜찮아?”

“엉엉~흑랑아, 너무 아퍼……! 엉엉~”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통증을 호소하는 돌쇠가 부딪힌 곳을 살짝 누르자 산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는 게,

아무래도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습니다.

속에서 자꾸 목구멍 너머로 튀어나오려는 거친 욕설을 최대한 누르며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돌쇠를 데리고 텐트까지 와 배낭을 다시 메어 결국 산을 떠났습니다.

 

하루 반나절 만에 끝마친 저와 돌쇠의 겨울 입산수련은 이렇게 돌쇠의 10번, 11번 갈비뼈를 제물 삼아 끝나게 되었고,

돌쇠의 고향이었던 지역인지라 손주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오신 할머니에게

등짝을 냅다 두들겨 맞고 있는 돌쇠의 애처로운 눈빛을 그 겨울산의 차가운 바람처럼 외면한 저는,

그 당시 거주지인 인천으로 거지꼴을 한 채 홀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당당하게 입산 수련을 떠났던 두 동생들 중 한명만 도장에 복귀한 것에 의문을 가진 큰 사형이 자초지정을 물었고,

긴 한숨과 함께 돌쇠와의 서글펐던 하루 반나절의 입산 수련기를 털어놓자 배를 잡고 꺄륵거렸고,

그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다른 사형들의 놀림을 돌쇠와 함께 군 입대 전까지 무한 반복으로 듣게 되었던,

그런 서글픈 추억이 담긴 십여년 전 무도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크흡...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무도가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님들!

겨울 산엔 단체로 프로그램을 짜서 가는 겁니다!

저랑 돌쇠처럼 멍청하면 이렇게(?) 됩니다...! ㅠㅅㅜ


P.S 보고 싶은 돌쇠에게…….


망할 돌쇠…잘 살고 있냐?-ㅅ-

차마 네 원래 별명은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부르기 남세스러워 바꿨지만

이야기를 봤으면 너일 줄 알거라 믿는다.

벌써 이 일이 15년 전이라니…세월 참 빠르다.

나는 뭐 이제 서른 하나 먹은 아재가 되어버려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데, 너는 뭐하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낭.

나와는 달리 순수 무골인 너였으니, 지금은 아마 도장을 운영하고 있겠구나.

요즘 애들은 우리처럼 무술바보들이 아니니, 살살 가르쳤으면 한다.

행여 이 글을 보면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다른 사형들한테도, 또 후배 동생들에게 전해줘.

인연이 닿게 되면 꼭 한번 다시 봤으면 한다 돌쇠야! 보고싶다!

출처 게시판 미아인 저는 오늘도 게시판을 찾아 30분을 헤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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