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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돌아보기 - 7
게시물ID : freeboard_17147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번째커튼콜
추천 : 2
조회수 : 2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2/13 16: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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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솔직해진 그 날 이후 내 기분은 많이 홀가분해졌다. 의사선생님께서도 아주 잘했다며 칭찬해 주셨고 나 또한 스스로 용기가 생긴 기분이었다. 친구가 알려준 그 옥상에 올라가있는 시간이 늘어갔고, 나름 내 마음을 풀어내는 방법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의 병증도 많이 나아지고 있는것 같았다. 그날이 오기전까지는.


이때쯤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집근처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의 배정은 지망하는 학교보단 거주지에서 가까운 학교로 추첨을 통해 보내는 방식이였는데 (남녀공학을 지망했으나 안타깝게도 집에서 가까운 남고로 배정되었다.) 그 덕분에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들 대부분 같은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적응도 그만큼 편했다.

당시 우리 학교는 한해에 소위 말하는 SKY 입학생을 몇명씩 배출하는 나름 괜찮은 학교였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중에도 중학교때 좋은 성적을 유지했던 나는 학교 입학과 동시에 담임선생님 및 학년 주임 선생님의 기대학생 목록에 올라갔다. 덕분에 학기초에 선생님들과 개인 면담을 하였고 그때 아버지 직업을 본 선생님들은 나를 대하는 행동이 조금 달라지셨다. 나는 그 모습이 속물같다고 느끼며 환멸을 느꼈지만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기때문에 선생님들은 내 속내를 알턱이 없었고 학부모회 뭐 그런 일로 선생님들이 아버지와 면담을 하신 이후로 나에대한 기대와 노력이 더 높아졌다.

나는 그런 어른들의 행동이 참으로 싫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그걸 그들에게 표현할만큼의 용기는 가지고 있지 못했으므로 그냥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모범생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내 속마음은 불만에 가득차 있었을지라도 겉으로의 나는 말잘듣고 공부 잘하는, 장래 학교의 현수막에 한자리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으로서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친구 몇몇 (처음 친구에게 고백한 그 날 이후로 나는 몇명 더, 친한 친구들에게는 고백을 마친 상태였다.) 외에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나는 전혀 문제가 없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얼마나 지난 때였을까? 여느때와 별 다를게 없는 어느 날이였다. 무엇이 문제였는지까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느때와 비슷한 이유였겠지만) 잔뜩 화가난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시자 마자 어머니를 쥐잡듯이 잡기 시작했고 방안에 있던 나는 또다시 끔찍한 소리를 견뎌야했다. 아버지의 고함소리와 어머니의 절규, 무언가 벽에 던져지는 소리와 쿵쾅거리는 소리. 겁에 질려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해야한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이미 아버지와 비슷한 정도의 신장(173cm)이였고 고등학생이었다. 비록 59Kg밖에 안나가는 저체중이긴 했지만. 더 이상 이렇게 비겁하게 숨어있을 수 만은 없었다.

닫혀있는 얇은 방문을 사이에 두고 어릴때부터 나를 쥐락펴락하던 공포심과 더 이상은 이렇게 숨어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이만큼 성장했으니 (정신적으로는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지라도) 내가 어머니를 지켜야한다라는 생각에 심장이 터질듯이 뛰었다.

몇분이나 고민했을까 결국 나는 없는 용기를 쥐어짜내 방문 밖으로 뛰쳐나갔고 어머니 앞을 막아서서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사실은 대들었다기보다 그냥 어머니 앞에서서 아버지를 막는게 고작이였다. 심장은 터질듯이 뛰었고 공포심에 다리는 후들거렸으며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머리는 어질거렸다. 단지 더 이상 어머니가 맞는것을 보고만 있어선 안된다라는 생각이 몸을 움직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 정신까지 강해지는것은 아니었다.


항상 순종적이고 (겉보기에는) 조용히 숨어있던 작은아들의 반항에 배신감을 느끼셨는지 아버지는 더욱 흥분하셨고 결국 난 어머니 대신 아버지께 두들겨 맞았다. 맞을때의 고통이나  아픔은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을 막아선 나를 쳐다보던 아버지의 눈빛만큼은 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있다. 광기어린 그 눈빛.

누가 신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금 지나지 않아 경찰이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집에 들이닥쳤고, 나 역시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아버지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달라고 경찰에게 요청했다. (어렴풋이 내가 직접신고했던것 같기도 한데 그날밤의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가 없다)


그렇게 아버지는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나 역시 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로 이동했다.

경찰서로 이동하던 나의 상태는 마치 고장난 인형처럼 멍한 상태였다. 주변의 모든 상황이 뭐랄까 나에게 와닿지 않는것 같은 느낌.

경찰서에 도착하여 뒤로 수갑이 채워진채로 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러느냐!’ 라며 호통치는 아버지의 고함소리도, 내 옆에서 내 손을 붙잡고 흐느끼던 어머니도, 아버지를 진정시키며 나에게 뭐라고 계속 말을 걸던 경찰 아저씨도 모두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자동으로 에어백이 터지듯 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동으로 내 마음속 에어백이 터진듯 했다. 그날 밤 겁쟁이였던 나는 나를 지키기위해 내 마음속 깊은곳으로 도망쳐버렸다.


그 와중에 내가 기억하는건 아버지가 전화를 쓴지 몇분도 되지않아 부대에서 달려온 아버지의 부하직원이었다. 경찰관에게 ‘감히 이분이 누군줄 알고 이러느냐!’ 는 호통 몇마디에 아버지의 수갑은 풀렸고 그렇게 아버지는 멍하게 앉아있는 나를 뒤로하고 경찰서를 나섰다.

난감한 표정으로 나에게 미안하다 하시던 경찰아저씨의 얼굴 너머로 나는 참담한 현실에게 배신당했다.


나의 모든 용기를 쥐어 짜내어봐야 아무것도 변화 시킬 수 없다.

그 씁쓸하고도 참담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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