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메일과 한 통의 까똟과 한 통의 전화.
나는 D에 대해 이름 나이 학교 전공 좋아하는 음식 정도만 알고 있었다.
보이는것만 해도 충분히 내 맘을 설레게 할만한 아이였고, 첫 만남이 워낙에 임팩트가 있는지라 과거는 굳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나도 과거있는 남자인데, 내 여자가 과거 좀 있으면 어떠랴. 지금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한 통의 메일은, D가 고등학교때 사귀었던 놈같았다.
심적데미지가 1도 안오는 유치찬란한 내용의 메일이었다.
나도 글을 참 더럽게 못쓰지만, 이건 의무교육 받는 내내 국어책 1도 안보지 않는 이상은 이렇게 오탈자많고 맞춤법 하나도 틀리기 힘들 정도였다.
"이게 그 외계어라는건가...귀여니던가 뭐시기 뺨치네."
진짜로 그 머슴아가 보낸 메일은 연습장펴서 한 문장 한 문장 해석하면서 읽어야했다.
내 여자에게 손때라. 나이처먹고 어린애데리고 뭐하는 짓이냐 등등...
보니까 대충 고등학교때 헤어졌고, D가 연락을 받지않자 혼자 미쳐날뛰며 어쩌다가 군대에서 오라니까 간 놈 같았다.
"패기보게...지 부대를 적어놨어...내가 가서 맞아주면 군인이라 형법 군형법 다 쳐서 형량 2배인데 깜찍도 하지...그런데 이 부대 어디서 많이 본것 같은데...아!!!"
"..."
"오~어쩐 일로 전화를 다하냐?"
"충성통신보안. 대위 XXX입니다. 무슨 용무로 전화하셨습니까?...전화예절은 니미럴 어디다가 내다 팔아먹은거여?"
"ㅋㅋㅋㅋㅋ 쒜끼 농담은."
"농담아닌데? 너네 대대장 바꿔."
당시 모 사단 모 대대 작전장교로 있던 친구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소문 들었다? 11살 어린 아가씨랑 만난다며?"
"...그런건 아니다. 야. 너네 대대에 XXX일병이라고 알아?"
"누구???...아. 우리 대대에 있어 왜?"
"민간인에게 근거없는 협박질을 하는데, 헌병대에 넘기기 전에 작전장교님에게 상담 좀 할라고."
"널 왜?"
"작전장교한테 원한 품은걸 왜 내한테 쥐뢀이야."
"걔가 나를?"
"그건 아니고..."
나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고, D를 살리네 죽이네 하는 메일 내용만 간단하게 전해주었다.
"처리해. 영창 안보내고. 할 수 있지?"
"...메일 나한테 전달 좀 해라."
"딱 그 부분만 짤라 보내도 되지?"
"원문 전체로."
"안돼. 졸라 찌질해보이잖아."
"너 원래 졸라 찌질해 븅신아. 얼른 보내. 짜증나게 하지말고."
"워~군인아찌 민간인한테 버럭한다. 지금이 5공이여?"
"개소리말고 얼른 보내."
이렇게 메일을 받은 친구는...야...이거 어떡게 해석해야돼? 아니다. 본인 불러서 물어볼께.라며 짜증 이빠이 나서 전화를 끊었다.
세상 좁지...자기 대대 작전장교가 전여친 남자친구의 친구라니.
며칠 뒤, 중대장 행보관과 상의해서 원만하게 민원(ㅋ)처리했다고 연락이 왔고,
아주아주 공손하고 맞춤법도 올바르게 적힌 다시는 안그러겠다는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한 통의 메일건은 처리하였다.
"..."
"여보세요?"
"XXX씨?"
"네. 누구세요?"
"누구긴. 니가 익명으로 까똟으로 성가시게 하는 사람이지?"
"저...전화 잘못 거셨어요;;;;"
"동작그만."
"...어...어떡게 제 번호는..."
"구글링 이 쉐끼야. 물이랑 구글은 답을 알고 있어. 콩만한 쉐끼가 되질라고, 주무시는데 까똟을 졸라게 보내? 차단하면 아이디 바꿔가면서?"
"..."
"그러고 보내면 형이 너 못 찾을 줄 알았냐?"
"저기!!! 저 D 포기못합니다!!!"
"ㅉㅉㅉ. 그럼 니가 그동안 내한테 까똟보낸거 고대로 D한테 보여줄께. 아니다. D 혼자만 고민하고 그럴것 같으니, 너네 과에 좀 알리자."
"어어어. 그거 협박..."
"너도 이 쉐키야 충분히 협박이야. 형은 임마, 여기 변호사 아저씨들한테 물어봤어. 경찰서 들고 가라는거 젊은 놈 공직길을 싹 막아버릴까하다가, 좋은 말로 할때 조용히 끝내려고 이러는거 아냐. 형이 이렇게 관대해."
"저기요!!! 아저씨!!!"
"너 경찰준비하는 애가 법공부 안하냐? 벌금형이든 뭐든 하나만 붙으면 너 하던 공부 접고 가서 장사해야돼...너 지금 내가 그냥 밑도 끝도 없이 구글링 몇번 해서 너 찾아내서 전화 바로 한거 같냐?"
"저...저기..."
"여기 판 좁다. 그리고 공부하는 쉐키가 뭔 놈의 SNS질은 그렇게 해대. 니 아이디로 숫자 몇개 넣으니까 아주 자~알 놀고 있더만. 너 노량진 XX독서실 X충 35번 자리...D말고 다른 여자애한테도 그 쥐뢀 털고 있더만?"
"네????????"
"발품도 안 팔았다. 구글링 20분이면 다 나와 이 쉐키야."
"자...잘못 했습니다."
"...니 전화번호, 지도교수 이름, 너네 어머니 핸드폰 번호, 구글링으로 다 땃다-_- D한테 고만 찝쩍거려라...아니 이라고 드럽게 찝적거리지 마라...대답은?"
"네네!!! 잘못했습니다."
"세상은 넓고 미친X은 너만 있는게 아녀. 야...종만이...조심해...형 살짝 기분 나빴어...자다깨다자다깨다해서..."
"네네!!! 죄송합니다!!!"
"형은 경고 두 번 안해. 복학생형씨. 알아들었겠지?"
"...네."
"어. 끊는다. 피차 서로 또 얽히지 않게 살자. 니가 조심해라. 형은 이대로 살테니까...대답."
"네. 조심하겠습니다!!!"
이걸로 한 통의...아니아니...지난 몇 달간 새벽마다 오던 까똟도 해결.
까똟프사랑 대충 키워드 잡히고 SNS열심히 하고 그러면 웬만한 개인정보는 구글링 20분이면 윤곽나옴. 진짜로.
내가 그래서 SNS는 게임동기화용 페북아이디 하나 밖에 없음ㅋ
"어어. 여기있네. 여기 이 사람."
나는 회사건물관리실에 앉아있었다. 아저씨랑 커피를 마시면서 CCTV를 돌리고 있었다.
"내 차 긁고 간 강아지쉐키가 이 새키다 이거죠?"
"어. 그리고 그 인턴아가씨. 거기도 졸졸 따라다니고..."
"하아...장대리가 봤다는게 이건가...고맙습니다. 아저씨. 이거 녹화 따셨죠?"
"고럼고럼. 김과장 부탁인데 해줘야지."
"맨날 신세만 집니다ㅋ"
"신세는 무슨~ 필요한거 있음 더 말혀. 그리고 이 사람 또 나타나면 바로 알려줄께."
"어우. 이거 뭐 주전부리라도 하나 넣어드려야겠네요."
"됐어. 이 사람아."
"속상해~"
D는 내가 세차하러 나가면 따라나오는걸 좋아했다. 워낙에 뭐 치우는거 좋아하는 애라 따라와서 상당한 도움이 되는 편이다.
"여기 문 또 긁어졌어...오빠 그러니까 운전 살살하라니깐."
"나는 빨리 밟지 어디 부딫히고 그러지는 않어-_- 손시렵다. 그만 닦고 차에 들어가 있어."
"차 안에 먼지 좀 털께."
"마스크끼고 해. 아니아니. 방독면 끼고 해-_-"
"오바하시기는."
D는 ㅋㅋㅋ 웃고는 차 내부를 닦기 시작했다.
지난 두 달간 7번을 긁었고, 나는 차곡차곡 증거들을 모아나가고 있었다.
"야이쉐키야. 긁을려면 철수세미로 확 긁어버리지, 콘크리트못가지고 되겄냐?"
잡았다요놈.
왔어왔어. 방금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어.
경비아저씨 전화를 받자마자, 지하주차장으로 뛰어내려갔다.
갑자기 지하주차장 셔터가 내려가서 당황하던 이 놈은 유일한 출구에서 내가 나타나자 졸라 당황한 표정이었다.
나를 아는 놈이로구만, 나는 너 처음 보는데.
이 멸치대가리는 우어어어어어!!!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예전에 권투를 배운적이 있었다. 진짜 3개월 넘게 줄넘기만 하고 3개월을 더 다니며 배웠는데, 우락부락한 뱃살과 다르게 가는 팔다리와 조막만한 주먹을 가진 나는 아무래도 권투가 태생적으로 안 맞는 사람이어서 그만두었다.
그렇게 펀치 대신에 안 맞는 법을 대신 배워온 나인지라, 슬쩍 피해서 발만 걸었다.
니 놈이 때린건 안 맞지.
D가 때리는건 왜 맞냐고??? 애정이 담겨있잖아.
"너 뭐하는 새끼야?"
진짜 이 놈은 전혀 실마리가 안잡히던 애였다.
경찰에 신고해서 동네 CCTV를 다 까볼가 싶을 정도로 성가신 놈이었다.
"너...너가...D 새 기둥서방이냐?"
"아오. 이 쉐키를 확!!!"
인상더러운 애 손 올라가자 이 멸치대가리는 처맞을까봐 움찔한다.
애초에 손댔다가는 형사입건이 가능한지라 칠 생각도 없었지만.
"너 D랑 뭔데?"
"나...나랑...D는 서로 사랑ㅎ...우으읍!!!!"
듣기 싫어서 그 주둥이를 손으로 막아버렸다.
"술집에서 뵀어요? 거기서 술 좀 따라주고 하니까 니 여자같애? 아오. 이걸 확마..."
"아니야!!!! 니링 D는!!!!"
"뭐? 잤냐?"
"...그건 아닌데..."
"이걸 진짜-_-..."
나는 아까 내 발에 걸려 자빠지면서 떨어뜨린 그 놈의 핸드폰을 주워서 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비밀번호 걸고 다녀. 종만아...야. 니 번호 찍었다. 또 나대라? 어디서 뭐하는 놈인지 몰라서 다음으로 안 넘어갔는데, 이거 완전 훌륭한 스토커새끼네."
"어어어???"
"어어어는 니미. 왜 똑바로 말을 못해? 야. 니 얼굴, 전화번호...너 차번호 XX에 XXXX이지?"
"아아아..."
"경찰에 신고해서 찾을까하다가 냅뒀더니, 지 발로 걸어와서 잡혀주네. 야."
나는 그 놈의 핸드폰을 주차장 셔터 너머에 떨어뜨렸다.
"꺼져. 한번만 더 나타나면 니 주위에 다 알릴껴. 나는 잃을거 없다. 해볼까?"
두고보자!!!하고 그 놈은 주차장 셔터에 달라붙어서 몸개그를 하다가 나를 피해서 건물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갔다.
"...네. 아저씨. 전데요, 셔터 올려주세요...뭐 안올거예요. 제대로 미친X이었으면 경찰 불렀을건데, 적당히 미친X이네요. 다시 나타나면 그때 신고할께요."
그리고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경비아저씨가 나를 찾는 한 통의 전화 건도 해결했다.
"..."
"...오빠."
"어? 왜?"
"밥 맛 없어? 간이 좀 짯나?"
"아니. 졸라 맛있는데, 왜?"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먹어요?"
"졸라 감상하면서 먹으니까 그래. 한그릇 더."
"헤헤헤. 진짜 맛있어?"
"배꺼진다. 얼른 한 그릇만 더 주세요."
"그래두 배 나오니까 꽉 안 담아줄거다?"
"내 배도 좀 이뻐해주고 그래봐."
"예뻐. 오빠한테 안 예쁜데가 어딨어. 그런데 오빠 건강에 안 좋으니까 그렇지."
"말은 참 곱고도 아름답게 하지."
D는 생긋 웃으며 밥을 한그릇 더 푸러 갔다.
너도 참 맺고 끊는거 잘 못하나 보구나. 옛날 남자들이 여즉도 껄떡대는걸 보면.
난 진짜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네.
과거없는 사람은 없으니, 그냥 지금의 D만 보고 있었다면...
"오빠 다 알면서도 내 앞에서 그렇게 태연하게 있었던가야?
내가 그럼 뭐가 돼? 오빠 앞에서 착한 척 가식떠는거 밖에 안되잖아.
차라리 날 막 대하지 그랬어.
오빠 상처줘벼렸잖아."
훗날, D의 이 말이 내 가슴을 후벼파는 날이 온다.
별로 상처받지도 않았는데, D는 그날 역대급으로 펑펑 울었다.
그냥 가슴 속에 묻어두고 훗날 검은머리 파뿌리 될때 슬쩍 정산하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