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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30).
게시물ID : love_412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32
조회수 : 1857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8/02/21 20:39:27
나에게 주말이란 재충전의 시간이었다...술...왜 핸드폰 밧데리 80%남아있어도 충전기 꽂고 그러잖아...

느즈막히 일어나 뒹굴거리고 있노라면, 누군가 "낮술"하고 운을 띄우고, 다 나올거면서 이래저래 비싼척들 하다가 하나둘씩 기어나온다.
1차는 대개 설렁탕집에서 각자 1그릇에 수육시켜서 한병씩 빠는걸로 시작해서...밤늦게 다시는 니들 안 본다. 니들이랑 또 이래 술먹으면 내는 개다.라며 절교선언을 하고, 다음 주말에 또 멍멍 거리며 술먹음ㅋ



일어나야하나말아야하나하고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노라면, D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한 3초 정도 고민하고는 이얏!!!소리와 함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내 위로 날아든다.
"엌ㅋㅋㅋㅋㅋㅋ. 야!!!! 내 갈비뼈는 뭐 티타늅합금이냐???"
"일어나~아침이야."
"...9시...한밤중이네. 굿나잇. 일루와. 굿나잇뽀뽀해줄께."
"일어나. 오빠 어제 술먹고 들어왔잖아. 해장국있어."
"...이따 자정에 먹을께..."
"뼈해장국..."
"밥공기에 푸지말고 대접에다가 밥퍼라."

그 즈음 D는 사장님이 
"아무리 그래도 일요일엔 좀 쉬어. 일한걸로 쳐줄테니까. D씨 열심히 한다는 말 자꾸 들리는데,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하루는 쉬어야지."
라며, 일요일에 쉴 수 있게 된 후였다. 
상무님이 건의하신거고, 그렇게 사장님께 허락받은 후 상무님은 부장님과 D를 불러서 그렇게 지시하고, 
"D씨. 그 날 회사일 빼줬다고 알바하고 그러지마. 만일에 그랬다간 정말 용서안할거야."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그래두 눈꼽은 떼고오라며 등떠밀려 화장실가서 세수를 하고 나오면, 따란~하고 아침밥이 차려져있다.
나는 귀찮아서 오마니가 반찬통에 세팅해준거 그대로 들고나와 먹곤하는데,
D는 아니. 내 집 찬장에 이런 그릇이 있었어??? 싶은 그릇들에 딱 먹을만큼 반찬을 덜어내온다. 참으로 정갈하게.
이러면 설거지 많이 나오잖아.라니까, 도와달라고 안해.라며, 항상 이렇게 내온다.

"오...이 맛은 길건너 상가 1층에 있는 국밥집 스타일이구만."
"미식가시네."
"칼칼한 맛이 덜한것이 내 입맛에 맞춰 덜 맵게 해달라고 하셨고."
^^

다른 여자한테 이런 말 했음. 이 쉐키 뭐야. 이랬을텐데, D는 나의 하나마나한 소리에도 잘 웃어주었다.
그 예쁜 미소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나의 아재개그력은 초고속으로 렙업해댔고.

"...잘 먹었다...더는 못 먹진 않을것 같은데, 더 먹으면 안될것 같애."
"그릇줘."
"설거지는 오빠가 할께."
"아냐아냐. 양치해. 내가 할테니까."
"둘이 먹는데 이렇게 그릇 많이나와서야...오빠가 할께."
"오빠 내내 일하고 이제 쉬는 날이니까 쉬어."
"...너는 뭐 놀았냐?"
"말 좀 들어주세요. 손. 화장실가자. 양치해야지."
"내가 개여?"

양치하고 미안해서 커피마실래? 네~라며, 커피를 탄다. 그 노란색 믹스커피.
"잘 타네. 우리 오빠."
"맥심이 단골이라 신경 좀 쓰는듯. 입으로 맛보고 코로 느끼고 눈으로 즐기는 단골이거든."
"눈?"
"그런게 있어."
"뭔데뭔데?"
"있다니까 참."

공부쪽으로는 참 똑똑한 애가, 노는쪽 상식으로 가면 참 모르는게 많았다. 
맥심하면 남자라면 대개 생각하는 그거를...D는 모르더라. 
D는 얼굴에 거짓말합니다.라고 광고하고 거짓말하는 애라 견적이 나오는데, 
이 맥심은 진짜 모르겠는데요?하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식후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나는 거실에서 플스를 하거나 뒹굴거리고, D는 그 옆에서 상을 펴고 공부를 한다.
아. 이건 아닌데.하고 한 2주인가, D공부할때 플스를 안하고 있었더니, 평소처럼 맹렬히 공부하던 D가 책에서 눈도 안뜨고 묻더라.
"오빠."
"응?"
"요즘엔 왜 게임안해?"
"게임?"
"ㅇㅇ. 항상 하던거 있잖아. 주말마다."
"...아. 플스? 너 공부하는데 방해되잖아."
D는 책을 탁 덮었다.
"왜?"
"나 공부하고 있을땐 옆에서 음악소리 크게 틀어놔도 신경안써. 괜찮아. 그냥 해두 돼."
"...말이 되냐? 너 인체의 자율신경을 무시하는 소리를 하는데, 난 책상에 앉으면 우주 저편에서 암흑물질 날아가는 소리까지 들려서 공부안된다고."
"정말이야. 신경안쓰고 게임해도 돼. 오빠 옆에서 게임하는게 방해됐으면 나도 여기서 공부안하지."
"...나 진짜 한다?"
"응. 오빠 안절부절하는거 보니까 하고 싶은것 같은데, 나 때문에 그러는건줄 몰랐어. 나 정말 괜찮으니까 해."
"...오케이...오늘 플스에 먼지낀거 한번 털어보자."

D의 집중력은 무시무시했다. 
내가 옆에서 열심히 바스를 뒤쫓으며 총질하고 멱따는동안, D는 꼼짝안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애가 진짠가.싶어, 옆구리를 콕 건드려봤더니, 팔을 뻗어 내 얼굴을 당겨 쪽!하고 볼에 뽀뽀 한번 해주고는 다시 책으로 눈이 돌아간다. 반했음.




그러다가 D가 아.하고 고개를 드는 시간은 내 배가 살살 꺼질 시간이었다.
"오빠, 배고프지?"
"...너 애엄마냐? 애기 젖 줄 시간되면 애찾게?"
"배고플 시간인데?"
"나가자. 너는 뭐 주말에 나 밥만 해줄거야?"
"안돼안돼. 외식비싸."
"시러시러. 모르는 사람이 해주는 밥 먹고 싶어."
그렇게 둘이 또 투닥투닥하지만, 내가 너 이렇게 하루에 세끼먹으면 식비 받을거다.라고 해야 아 진짜 안되는데...라며 외출준비를 한다.

"...너 안춥겠어?"
"응? 뭐가?"
"...치마말이다. 바지입지."
"오빠 나 치마입으면 좋아하잖아."
"내가 언제 임마."
"난 다 알고 있어."
"애가애가 나 또 이상한 사람만드네."
"자. 가시죠."
"야. 너 진짜 춥다니까?"
"괜찮아. 오빠가 따듯하니까."




"...왜 또 울상이야?"
"...여기 비싼집이잖아."
"주말은 어디가나 다 비싸."
무려 호텔뷔페를 갔더니, D가 기겁을 한다. 
친구가 준 할인권에다가 이거 카드 추가할인붙으면 싸다고 하고 나서야 겨우 입장을 할 수 있었다.

"크다...으리으리해."
"고기가 어딨나...고기..."
"여기 진짜 비쌀것 같은데..."
"그러니까 츄리닝에 쓰레빠 찍찍 끌고나왔어야 이런델 안오지. 누가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으래."
"...오빠한테는 항상 예쁘게 보이고 싶은걸..."
찌잉...나 11살 어린 여자애한테 이런 말도 들어본 사람임.
그래. 이거 내가 차린건 아니지만 많이 먹어라.

원래 많이 먹는 나와, 그 작은 체구에 어디 들어갈데가 있는지 정말 잘 먹는 D의 먹방이 시작된다.
우리...진짜 이런데 왔으면 품위있게 먹자며, 둘다 고기 하나씩 채우고 와서 시작했다. 
맛있다. 이거 무슨 고기랬지? 
오리였던가? 너 언제 중국출장때 우겨넣어서 갈 수 있음 가보자. 베이징덕먹어봐야돼. 내가 눈치가 없어서 사주면 진짜 기깔나게 시켜먹거든. 응? 내 돈으론 안먹지. 월매나 비싼데. 그런데 그럴때 갈때는 주로 접대받을때라 감ㅋㅋㅋ

그렇게 마주보고 먹고있다보면 나는 어느새 내 앞의 D에게 시선을 뺏기고 만다.
좀 허겁지겁 먹는 편인 나와 달리, D는 항상 일정한 속도로 먹는데 그 흐름이 너무나 예술적이었기 때문이다.
"...왜?"
"너 먹는게 너무 예뻐서."
"...너무 많이 먹었나?"
"내 지금 그람수가 7,800그람쯤 돼. 78,000그람까지는 내가 허용할테니까, 넌 살 좀 붙여."
"아아아...너무 돼지같이 먹었나?"
"아니라니까-_-"

그때 D의 옷 속으로 손넣고 허리만져본 후, 좀 과감하게 밥먹고 난 다음에 D의 옆구리를 확 잡아본적이 있는데...
나와 다르게 D의 배와 허리는 뭐 먹은 티를 안내더라. 나는 벨트 한 칸 풀었는데...
그래서 애 기생충 한 3m짜리가 있는게 분명해.하고 나 먹을때쯤 해서 구충제도 한번 먹여본적 있음.




"잘먹었습니다."
"별 말씀을. 할인권을 후원해주신 A군에게 줄거면 전액을 다내라고 항의전화나 한 통 해줘."
"아. A오빠가 준거야?"
"어...흐음..."
"왜?"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나오셨는데, 데이트나 좀 해주시죠?"
"약속해."
"뭔?"
"또 어디 비싼데 안간다고."
"너의 그 비싼 기준에 맞추려면 우리 전철도 못타. 지금부터 걸어가야돼."




나는 D의 고향도 물은 적이 없다.
애보다 몇년을 더 서울서 살았어도 지금도 사투리가 막 튀어나오는 나와 달리, D는 정말 사투리가 잘 안나왔다.
그래도 정말 가끔 튀어나오는 사투리 고유명사로 남부지방 어디쯤으로 추정은 하고 있었다.

그렇게 D가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왜 니가 뭐라하냐.는 내 생떼가 먹히지 않는 날에는 우린 주로 인사동이나 명동을 싸돌아다니거나, 박물관을 가곤 했다. 
다행히 내가 걷는거 싫어하질 않고 박물관 가는것도 좋아하는 편이라 이렇게 데이트하는것도 썩 나쁘진 않았는데...D는 박물관가면 정말 하나하나 망막에 새길듯이 너무 천천히 봐서 문제였다. 
그래도 그 다양한 박물관을 다니면서 어느 관람품 하나하나 대충 지나치지 않는게 참 신기했다. 
그런 D를 두고 가까운 의자에 앉아 저 애가 언제쯤 나 여기있는가 눈치채나.하고 있는것도 퍽 재밌었다.
진짜 그러다가 어? 오빠는??? 하고 두리번거리는거 보는게 진짜 재밌음. 
그리고 저기 앉아있는 나를 보면 또 뿌우!!!하고 볼 빵빵하게 하고 나한테 오는게 너무나 귀여웠다.




그 날은 D가 걷고싶다고 해서, 전철타고 동대문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걸었다.
"왜 하필 청계천?"
"여기만 쭈욱 걷는동안은 오빠가 돈 쓸 일 없잖아."
"...커피사서 내려갈건데?"
"그거그거 내가 사줄께."
"...내가 전에도 말했지? 나 10살 넘게 차이나는 여자애한테 커피얻어마시는 취미없다고?"
"싫어. 왜 맨날 오빠가 써."
"너 해장국값 안줬잖아."
"그건 그거지."
"그게 이거입니다. 가시죠. 너 달달한거 먹어."
"배불러. 아메리카노먹을래."

너 손시려우니까 장갑껴.
오빠 손 따듯하니까 괜찮아.
그렇게 D는 청계천 걷는 내내 내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아 쫌 악력 조절하라니까.

...청계천 걷는게 이렇게 즐거웠던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청계천이란 솔로지옥커플천국의 나와 다른 이세계였고, 
한번 용기내서 술김에 내려갔더니, 만취한 친구놈이 야!!! 내가 민물매운탕끓여올께!!!라며 청계천에 뛰어든 후. 그곳은 나에게 금기의 장소였다.
...그 친구랑 다시는 술 안마시겠다며 헤어졌는데, 담 주에 애들아. 내가 그 날 회가 너무 먹고싶었나봐...노량진으로 오렴. 하니까 다들 맨발로 뛰어나갔음.

그날 D는...그 애한테 뭐가 맛있는게 없었겠냐만은...맛있는거 먹고 기분이 좋았는지, 평소보다 훨씬 말이 많았다.
어찌나 재잘재잘 이야기하는지, 
공장같애.
뭐가?
너. 입김이 멈추질 않넼ㅋㅋㅋㅋ
라며, 또 D의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그렇게 걷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D는 곤히 잠들었다.
나도 잠오는데 나는 운전하고 너는 자냐?하며, D의 왼쪽뺨을 툭툭 건드려봤지만, 으응~할뿐 계속 잔다.

내 지난 몇년간 이런 주말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내가 너 덕분에 사람다운 주말을 보낸다.
신호대기할때 주위 차들 다 나보다 낮지? 어디 그럼...하고...
자고 있는 D의 왼뺨에 뽀뽀를 했더니, D는 살짝 미소지으며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어...애 안자네;;;;
야;;;; 너 악력악력;;;;;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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