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있다 국. 콩나물국은....솔직히 우리 엄마보다 너가 더 잘 끓여."
D는 수고롭게도 밥먹다말고 숟가락 탁 내려놓고 수고롭게 식탁 너머로 와서 내 어깨를 푹 치고 다시 돌아간다.
좀 아픈걸 보니, 이건 부끄러워서 때린거다.
"너 어제 기억나지?"
"...전혀. 정신차리니까 오빠가 나 침대에 눕혀준것만 기억나."
"그 다음에 우리 뜨거웠던 밤을 기억 못하는거야?"
"어???"
"내가 너 감기걸릴까봐 전기장판 보일러 쎄게 틀어놓고 나갔거든."
D는 수고롭게도 밥먹다말고 숟가락 탁 내려놓고 수고롭게 식탁 너머로 와서 내 어깨를 퍽 치고 다시 돌아간다.
이번엔 진짜 아픈걸 보니, 이건 진짜로 부끄러워서 때린거다.
D는 자기 감정을 정말 꽁꽁 숨기려 드는 애였다.
그 전 여자친구가 그랬다. 쑥스러워서 그러는거, 오빠는 다 괜찮다. 얼마든지 너 좋은거 싫은거 다 말해라. 나 너 그렇게 속으로 앓고있는다고 알아주고 그러는 사람 아니니까, 차라리 속 편히 말해라. 좋은거면 같이 기뻐하고, 너가 싫다는거 안하고 고칠테니까.
그게 3년 걸렸고, 그러고 6년 지나니까 그 애는 나를 질려했고, 10년 되기전에 나랑 헤어졌다.
그렇게 내 20대는 없어졌다.
나는 그렇게 내 청춘을 버려놓고도 D에게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넌 말이지, 그렇게 오빠좋아완전좋아 해놓고는 담날 되면 내외하드라. 그럼 내가 뭐가 돼. 흐름을 이어줘야 오빠도 아이좋아~해줄거 아냐."
"...또 때리러 가?"
"...아. 미안."
"...국 더 줄께. 오빠 어제 술 많이 마시더라."
"그거 내가 안 받아마셨으면 장대리 너 퍼먹였을거여. 이따가 출근해서 봐바. 나는 피골이 상접해있는데, 장대리 쌩쌩하게 있을거야."
"...잊어줘 제발."
"이런 말 하기 뭐한데 말이다...지금까지 나 그렇게 좋다고 표현해준거...니가 처음이야....앞으로 니가 말한거 좀 고칠께."
입에 밥알이랑 콩나물대가리 남아있는데(콩나물대가리떼버린 콩나물은 취급 안함) D는 다시 숟가락 탁 내려놓고 수고롭게 식탁 너머로 와서 계속 맞고있던 왼쪽 어깨 오른손으로 가드올리던 내...그 크다고 인증해준 얼굴 잡고 입을 맞추었다. 롱롱타임.
"...안 고쳐도 돼. 오빠는 나한테 항상 최선을 다해주는걸....사실 오빠도 그냥 내가 좋아한다니까 ㅇㅇ그래. 해주는게 절반인거 알아."
"야야야. 그건 아니지. 나는 내가 마음없으면 1도 안해. 너 나 회사에서 일하는거 봐도 알잖아. 나 하기싫으면 안해. 차라리 그것때문에 불려가서 욕먹으면 내가 이걸 왜 해야됩니까. 하고 욕 한 바가지 더 먹고 술 한자리 먹고 마는 사람이야.
내가 너 좋아하는 마음 1도 없이 그저 동정심으로 이럴 사람이야?
어우야~언니 사람 잘못 봤어."
그렇게 아침부터 D를 울려놓고 출근했다.
"누굴까요?"
"뭬가요?"
"D가 좋아한다는 사람."
과장님. 해장국 가실거죠?
해장술 먹자는건 아니지?
...업무시간이예요.
마케팅에 있으면 언제든 술 한잔 빨 각오는 해야한다구.
정신차리세요 좀.
그렇게 장대리랑 둘이 오붓하게 황태해장국을 들이키고 있는데, 장대리가 그런다.
"어제 D, 눈빛 초롱초롱해서 말하는거 봤어요?"
"...남의 연애이야기에 내가 언제 관심가지는거 봤어?"
"너무 예쁘더라. 그 착실하고 똑똑하고 예쁜 애가 좋아하는 사람 누굴까요? 들어보니까 그렇게 잘생기고 그런것 같지는 않던데."
못생겨서 미안하다 임마.
"내가 남자였음 말이죠, D같은 애랑 사귀면 엄청 행복할거 같애."
"...국식는다. 좀 드셔요."
"...과장님 법카 가져왔죠?"
"...어제 술값 내가 냈다. 이건 좀 사라."
"어? 내가 낸 줄 알았는데?"
"...우와...장대리도 이제 끝났네. 장대리님. 어제 동전노래방 3천원 내셨어요."
그렇게 점심먹고 사장님께 신년사업계획브리핑하고 타이슨한테 처맞은 샌드백이 되어 내려오니,
장대리가 출근한 D를 데리고 휴게실로 가는게 보였다.
"팀장님. 저 커피 한잔 마시고 들어갈께요."
"어. 나도 담배 한대 태우시고 들어갈께."
"커피 안드세요?"
"욕을 그만큼 처먹었는데 목구녕으로 담배연기만 넘어갈거 같애. 야. 금연 깨. 한대 할래?"
안돼. D가 뽀뽀할때 시궁창냄새 맡게 할 순 없지.
"됐습니다. 휴게실에 있을께 커피생각나시면 연락주세요."
"오냐."
둘이 몰래 휴게실에 가만히 들어가 사각지대에 앉았다.
"D. 언니봐바. 너 얼굴 왜 그래? 눈 왜 그렇게 부었어?"
"네??? 아니예요."
"아냐. 너 울었어? 눈이 부었잖아."
"정말요? 많이요?"
"응. 너보구 깜짝놀랬다. 무슨 일 있어?"
"아...아뇨...그냥요..."
"언니한테는 다 말해두 돼. 무슨 일인데?"
"...그게...대리님..."
"이런 이야기할때는 그냥 언니라고 불러도 돼. 무슨 일이야? 응?"
"...대리님...아니...언니...그 사람도 나 좋아한대요...너 도와주고 대가바라는게 아니라...그 사람두 나 좋아한대요."
"일루와. 언니한테 안겨."
"네??? 사람들이 봐요."
"어쩜어쩜어쩜. 너 정말 그 사람 많이 좋아하나보다."
"네???"
"어제부터 언니가 보니까 너 그 사랍 이야기할때 어쩜 애가 이렇게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니. 너무 예쁘다."
"그...그래요?"
"그래. 맞다. 언니가 밥사줄께. 언제 그 사람 불러. 응? 너 형부 본적 없잖아? 넷이서 같이 밥먹자."
쿨럭.
"어?...과장님. 거기서 뭐해요?"
"...커피먹다 사레들리는중."
"들었어요?"
"뭐? 나 짤린대? 드디어 권고사직대상된건가?"
"아니 우리 이야기한거."
"우리?...어? D씨 왔네."
"안녕하세요. 과장님."
"과장님 일루와봐요."
"벌써 일루 와있어요. 이야기해."
"잠깐만 이리로 와봐요...과장님. 어제 들은거 과장님 친구한테 이야기하고 그럼 안돼요."
할 수가 있나. 그 친구 이름이 동수여. 이야기는 들은적 있는데 본적은 없는 친구.
"안해. 내가 그런 이야기 누구한테 한다그래."
"소녀의 꿈을 우리가 지켜주자구요."
"내 꿈도 좀 지켜줘. 다음 주 로또 1등되면 나 회사 안나올거야. 장대리랑 최대리가 피 좀 봐. 화아팅."
"또 엉뚱한 소리하시네. 암튼 말하지 말아줘요."
"글쎄 말 안한다니까."
그 날 밤.
"너 내일 출근안해도 된대지?"
"어? 응. 부장님이 내일 출근안해도 된다셨어. 이번 주말은 우리 부서 단 한명도 열외없이 쉬라구."
"그려. 너도 여기 오고나서 알겠지만 주말에도 우리 부서 3명 이상은 상근하다시피 일했거든. 부장님도 지치신게지.
너 일단 갈아입을 옷. 세면도구. 핸드폰. 딱 이것만 챙겨."
"...왜?"
"넌 내일 나랑 통영간다."
"통영?...경남 통영?"
"ㅇㅇ. 여행가자."
"안ㄷ..."
"너 또 돈이야기 할려고 그러지? 어우야. 나 내일 통영으로 도망안치면 내일 또 꼭두새벽부터 친구들이랑 새벽술 아침술 낮술 오후술 저녁술 밤술 먹어야돼. 조선시대 임금들도 이렇게 밥 안먹었어. 너 나 살리는셈치고 가자. 내일 7시 출발. 밥은 휴게소에서 먹을거야. 너 또 입모양 돈이다? 이럴땐 그냥 좀 따라와. 돈 걱정을 니가 왜해.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너 통영에 무슨 안 좋은 추억있냐?"
"...알았어. 돈 이야기 안할께;;;; 가본 적 없어."
"오케바리. 내일 저랑 1박2일 여행 좀 가주세요. 짱구굴리지말고, 나 하자는대로 좀 해주세요. 네?"
D의 그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날 보건데, 이거 또 내가 어제 그랬다고 이 사람 또 신경써준다고 그러나...싶었을거다.
놉. 그냥 내가 겨울바다 보러 가고 싶었음.
남들 다 이럴때 동해가던데, 이 시기에 동해가면 은근 성수기때만큼 비쌈.
그리고 길 뚫리기 전에 동해나, 남해나 그냥 서울서 한 두시간 차이지 도진깨진임...물론 통영은 좀 멀지.
그런데 내가 통영은 좀 좋아하는 편이라, 보나마나 안가봤을것 같애서 한번 데려가기로 했다.
그날 밤, D는 오빠 돈 많이 쓸껀데 어떡하지.하며 여행에 대한 기대보다는 또 짱구굴리느라 잠 못들고,
나는 일단 저질렀는데, 어딜 데려가야 애가 좋아할까. 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곳은 딱 정해져있다.
예전 그 여자와 같었던 그 곳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