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아리에 들어와서 처음 본 너. 생긴건 낙지처럼 생겨가지구선 성격은 또 어쩜 그리 쌀쌀맞은지. 완전 비호감이었다. 근데 너랑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면서 네가 좋은 사람이란걸 알았어. 그리고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어 다시 만난 너 너 몰라보게 예뻐졌더라. 아니 내눈에만 예뻐보였을까. 어느샌가 모르게 나는 너만 보고있더라.
우리 좋은 친구사이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널 여자로 생각했나봐. 우리 항상 동아리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고 때로 서로 투닥거리면서 나 정말 많이 행복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아팠어. 내가 자존감도 많이 낮구 숫기도 없잖니. 너한테 말해보려다가 늘 입술끝에만 좋아한단 말 맴돌았어. 고백해볼까. 아냐아냐. 너는 손이 큰 남자를 좋아해. 키크고 근육질인 남자를 좋아해. 나처럼 키도작고 피부도 검고 여자애처럼 가녀린 손을 가진 나를 좋아할리가 없잖아. 실패하면 나는 너를 어떻게 봐야할까? 니가 날 피하면 어쩌지? 나같은게 고백했다고 불쾌해하진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너를 잃을까봐 너무 두려웠나봐. 너와 모르는 채 어색한 사이로 지내게 되는건 상상조차 하기 싫어서 나는 비겁하게 뒤에서만 널 좋아했어.
그래도 자꾸만 늘어가는 열등감과 자조속에서도 너를 볼때마다 행복한건 어쩔수 없더라. 너를 좋아하는 내 자신이 소중하고 뿌듯하더라. 어떻게 하면 좀더 잘생겨보일까 거울 앞에서 오래오래 고민하고 관심도 없던 옷을 사모으면서 조금씩은 달라지는 내 모습이 나조차도 낯설더라. 안된단거 알면서도 너에게로 향하는 마음에 나는 수없이 용기를 달라고 빌었단다. 그거 알아?
나 이번 여름방학엔 알바도 해서 옷도 사고 피부과도 다녀보구 운동도 해서 근육을 만들어봐야지 생각했었어. 짜식 오늘 좀 남자같은걸 하는 그 칭찬을 들을 생각 하나로 내 마음 풍선처럼 부풀었어.
근데 너 오늘 뜬금없이 나한테 전화하더라. 남자친구가 생긴것 같다구 너무너무 기쁘고 심장떨려서 어떡해야할지를 모르겠다구. 그 한마디 듣는 순간에 정말로 심장이 멎어버릴것만 같았어. 그 후로 명치 아래서부터 묵직하게 올라오는 아픔에 난 어째야 할지를 몰랐어. 숨조차 제대로 쉴수 없는데도 내 입은 정말 잘된 일이라구 너무 부럽고 축하한다구 어떤 남자인지 궁금하다구 기계처럼 이야기하더라.
난 좋은 친구니까. 이게 니가 나에게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테니까. 수화구 너머 기쁨으로 떨리는 니 숨소리를 들으면서 정말 심장이... 이런 아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해서 뭐라고 써야할지 조차 모르겠어. 간신히 전화를 끊고 한참 창밖만 봤어. 1초 1초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내 심장을 관통하는 칼날이 되고 바람에 잎새 흔들리는 걸 보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더라.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럴까? 난 이런 아픔 한번도 느껴본적 없어서 이 아픔을 어째야 할지 정말로 알 수 없는걸.
한번의 실수로 원치 않던 대학에 온 이후로 방황만 거듭하던 나에게 넌 단 하나의 의미였어. 그런 니가 물거품 처럼 사라진 지금 어떡해야할지를 모르겠는걸.
내가 가졌던 행복 내가 가진 행복 내가 꿈꾼 행복 모두 너였는데. 정말 모르겠어. 넌 웃지만 난 비참해 넌 달콤한 꿈을 꾸겠지만 난 끝없는 악몽에 빠져버렸어. 넌 연인을 얻고 친구를 지켰지만 난 연인도 친구도 모두 잃어버렸어.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비참한건 여전히 널 좋아하는걸 그만둘수 없는 나 햇살처럼 눈부시게 웃는 너 썰렁한 농담에 눈 흘기며 어깨를 때리는 너 우리 정말 좋은 친구라고 난 니가 너무 좋다고 웃으며 말하는 너 단 하나도 버릴수가 없어 하나하나 너무나 아파
난 아직 너무 어리고 약해서 도저히 이 깊고 날카로운 아픔 한조각도 견딜수가 없는 걸 시간을 단 하루만. 하루만 앞으로 돌릴수만 있다면 지금 너에게 달려가 말해줄텐데. 너에게 내 사랑 보여줄텐데. 내 사랑에게 너무 미안해. 난 끝까지 비겁하고 용기가 없었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어.
ㅎㅇ아. 언젠가 이 아픔도 잊혀질까? 시간이 이렇게 크고 비참한 고통도 지울 수 있을까? 다음엔 내 사랑이 시간보더 좀더 빨리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지금 이 바보같은 이야기조차 너에게 영원히 닿지 못하겠지만. 나 다음엔 용기 낼게. 또다시 사랑을 만나면 시간보다 빠르게 달려 품에 안을게.
혹시 이 이야기가 너에게 닿는 기적이 일어난대도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해. 전처럼 나에게 그냥 웃어줬으면 해. 빈집에 갇힌 가엾은 내사랑에게 어색한 표정 보이지 않았으면해.
너의 행복을 나는 언제나 빌겠지만 이 깊고 긴 아픔은 어째야 할지 나 정말 이 밤이 너무나 두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