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르륵 자게이에서 망명 3일차가 된 오유 아쟁어입니다. (아재징어?)
망명온날의 환대에대한 감동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스르륵 분들과 같은 실력도 없고, 또 보여드릴것도 없는 삶을 살았던지라..
그 환대에 대한 보답을 제 나름대로 할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해도 딱히 떠오르는게 없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그냥 날것 그대로의 내 모습을 벗어 보여드리는 수 밖에..
이젠 아쟁어가 된 40대 중반의 평범한 한 남자의 쑥스럽지만 솔직한 모습으로 벗어가면서 서로간의 이해와 융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부끄럽게 시작합니다.
먼저 10여년전 스르륵의 발을 들여놓을때로 돌아가겠습니다.
저의 스르륵 입문의 동기는 스르륵에 노크하게되는 수많은 이유들중 많은 부분을 차지할것으로 생각합니다.
첫 아이가 태어납니다..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모습을 손가락 빨고 있는 모습을 남겨놓고.. 또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습니다.
큰맘먹고 DSLR을 장만하고 스르륵 포럼을 돌아다니며 하나씩 배워가며 사진을 남겨갑니다.
자신의 형편없는 사진을 올려놓고 혼자 히죽댑니다.
아빠진사의 탄생이죠..
남들 눈에는 별것아닌 시뻘건 핏덩이의 사진이 나에게는 어느 거장의 인생작보다 더한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내 아이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찍어주기 위해 매일마다 스르륵에 들러 하나씩 배워갑니다.
여기 망명오신 분들이 자신의 짤들을 올리며 자신의 아이들의 모습을 올립니다.
오유분들이 질겁을 하더군요.. 이 사진들이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며..
그러나, 그 아이들이 스르륵 난민들의 생활의 이유이고 삶의 즐거움입니다.
자게에서 세상 모든것이 다 까여도 한가지는 까지못합니다.
자신의 아이 사진을 올려놓은 댓글에는 모두 다 작품으로 인정합니다.
여기 역대급의 작품들은 다 까일 이유가 있어도..
흔들리고 화밸엉망이고 개조 엉망일지라도 자식 사진은 까질 못합니다.
왜냐면.. 그 사진을 찍어서 스르륵에 올려 자랑할때의 마음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가장 훌륭한 작품이란걸..
(그럴땐 그냥 입을 닫습니다. 열심히 찍어 올렸는데 댓글하나 없을때의 허망함이란.. ㅠㅠ)
하옇든 그렇게 스르륵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르륵 포럼에서의 눈칫밥이 어느정도 익어갈 무렵.. 눈은 자게로 넘어갑니다.
포럼의 분위기는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 장비병으로 옮아가게 되어있고, 한번씩 두번씩 자게를 들르면서 빠른 글 리젠에 눈이 익어갈 무렵 카메라는 장롱으로 들어가고 포럼보다는 자게로 가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허세들이 장난이 아닙니다. 재치도 놀라웁구요..
다들 1억 연봉에 스포츠카를 몰고 다닙니다. (이때 살짝 주눅이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한켜 두켜가 모이며 그 삶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어딘선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두발 단단히 가족들을 떠받들고 있는게 보여집니다.
그게 익숙해지면서 자게이로 변태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변태는 곤충들 탈피하는겁니다.. 아무대서나 까놓고 하는거 그거 아.. 아닙니다.)
그렇게 그렇게 세상 소식의 전달창구가 자게가 됩니다.. 자게만 보면 그날의 가장 큰 이슈들이 가장 빨리 정리가 됩니다.
그리고 소통이 됩니다.. 때로는 같이 분노하고, 때로는 싸웁니다..
모여서 신문에 광고도 내고, 세월호는 컵도 만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무런 이유없이 모여서 술도 마십니다.. (그렇게 멸치잡이 배로 팔려가기도 하구요. 쿨럭..)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의 놀이터가 됩니다.
흠.. 조금 더 벗겠습니다.
요즘 20~30대의 모습을 보면 사실 좀 미안합니다.
저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입니다.
학교나와 취직하고 서른즈음에 결혼해서 애 셋을 놓고 살고 있습니다.
조그마하나마 살 집도 마련이 되고, 애들 밥 안 굶기고 큰 욕심없이 (학원 뺑뺑이 못돌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결혼 앞둔 후배들 인생 상담이라도 할라치면 사실 답이 안나옵니다.
다해봤자 직원 30명의 조그만 회사에서 많지않은 월급을 받지만 공무원고시 준비한다며 백수로 손가락빨고 살고 있는 자기 친구들보다는 나은 조건의 후배가 결혼문제.. 결혼해서 살 집 문제.. 등등.. 여러가지 고민들을 얘기하는데 사실 답을 해주기가 힘들때가 많습니다.
제가 이 글을 어디다 올릴까 고민하다가 고민게시판에 올리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사실 고민해서 고민게시판에 올리는 단순한 놈입니다.)
사실 돌이켜놓고 생각해보면 저는 좀 운빨좋게 태어나고 자란것 같습니다.
89학번이라.. 그래도 학교앞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백골단이랑 돌도 좀 나눠보는 기회도 있었지만.. 87년의 전설로 내려오는 그때만큼의 매캐함도 아니었구요..
그렇게 수업제끼고 낮에는 돌던지고.. 밤에는 술퍼마시다가.. 아.. 이러다 폐인되겠다.. 군에나 가야지 하니깐.. 전설의 땡보직.. 장간조립교 몇번들고 삽날 두어개 망가뜨리면 제대되는 공병이 되었구요.. (요즘 디스크가 도졌습니다.. 쿨럭..)
학자금이야 대충 방학때 노가다 두달 뛰면.. (공사장 현장 잡부가 일당 5만원정도 되었던것 같습니다.) 당시 한학기 등록금 110만원정도는 해결할수 있었죠..
졸업해서 나름대로 뭐하나 해보겠다고 1년동안 백수생활하다가.. 아.. 이거 힘들구나.. 다시 돌아가서 과 사무실에가서 있는 몇개의 원서중 맘에드는거 하나 써서 대기업에 들어갔네요..
들어가서는 백수시절동안 컴터 좀 만졌다고.. 연구소로 보내더군요.. (당시 기업연구소.. 땡보직입니다.. 뭘 개발해본적이 있었어야지..)
암튼.. 본능에만 충실하면 그 다음 스토리는 알아서 준비되었었습니다..
시쳇말로 스펙쌓기 뭐 이런거 상상도 못했습니다.. (인생 통털어 토익이란거 딱 한번 쳐봤습니다. 대기업 입사때 요식행위로.. 300점이었나.. 400점이었나..)
학교 교정에 걸려있는 버케블러리인가하는 그건.. 졸업때까지 벌레 탐구 서클인가 했었구요..
회사에 들어오니.. 좋더군요..
대략.. 그때 월급이 백만원 내외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너스 800%.. 두달에 한번씩 두배를 받아가고.. 설 추석에 100%를 줍디다..
그리고, 시간외 근무수당이..OT2, OT4, 철야가 있었습니다..
저녁밥먹고 8시까지 놀다가면 OT2, 10시까지 놀다가면 OT4, 새벽 두시까지 놀다가면 철야.. 뭐 이랬던 기억입니다..
그때 팀장이 총각들은 밤에 할일없잖아.. 저녁먹고 OT2까지는 하고 가라고 했었습니다.
저는 기억에 맥시멈.. 철야 10번에 OT4 14번.. 나머지 OT2해서.. 보너스 없는달 최대 230인가까지 땡겨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달 자기 개발비인가 해서.. 만원짜리 도서상품권..
암튼.. 그땐 좋았습니다..
구미 공장에서는 기숙사가 모자라서.. 어느 아파트 단지 꼭대기층 한층을 회사에서 전세내서 24평 한집당 6명.. (방 둘 거실 하나, 방당 2명씩) 기숙생활을 했습니다..
뭐 있겠습니까? 마셔야죠..
서울 연구소로 올라오니.. 기숙사 지원은 안되는데.. 중앙연구소라 단가가 좀 세더군요.. 적어도 두달에 한번씩은 룸에 가서 팀 회식했습니다..
(당시 제 담당 아가씨 있었습니다.. 그리고 순진해서 주말 낮에 그 아가씨 뭐 쇼핑할때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다녀주고 했습니다.. 내 자취방에 자기 고향음식 채워준적도 있구요. 아.. 그립다... 잘 살겠지? 잉? 아.. 아닙니다.)
뭐.. 의례히 그렇듯이 내리막은 시작됩니다..
시작은 회사 합병이었네요.. 흠.. 얘기할까말까 망설였지만.. 뭐.. 벗기로 한거..
큰 반도체 회사 둘을 하나로 뭉쳤었습니다.. LG반도체.. 현대전자..
그러면서, 그때 첨 들어봤지만 요즘은 심심찮게 들리는 단어를 들었죠.. 구조조정..
저는.. LG전자로 넘어갔습니다.. 당시 내가 하던일이 전자랑 같이 하고 있는 업무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역시 운빨 좋았습니다..
그 다음 내리막이.. 전국민이 다 아는 IMF..
아무리 중앙 연구소라지만.. 결과물없이 띵까띵까대던 팀들이 정리되더군요..
OT2. OT4..이딴거 없어진지는 오랩니다.. 그래도 뭐.. 당시 분들 고생에 비하면 그런소리하면 내가 나쁜놈입니다.
그다음.. 김대중 정부에 와서.. 벤쳐창업열풍이 붑니다..
우리 팀장.. 그래.. 이거다!! 외칩니다..
별똥대로 먼저 기어나와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자리를 시작해서 지금까지입니다..
지금은 인생대박 포기한지 오랩니다.. 근근히 풀칠합니다..
걍.. 능력될때까지 납땜하고.. 이젠 눈이 침침해져서 납땜하기 힘들면 나가서 몸팔수밖에..
그래도, 요즘 젊은 분들의 모습에 비교하자면 운빨 좋았다고 진심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고민이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저도 그 나이땐 첨 가는 길이라 두렵기도 했었고.. 또 매번 고민이 있었습니다.
동일한 나이때에 의례히 해야하는 동일한 고민도 있었고.. (여자? 군대? 공부???? 흠.. 쿨럭)
그때의 시대상의 문제때문에 해야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민주화? NL/PD? IMF?)
때로는 그 고민에 좌절도 있었고.. 때로는 극복도 하고, 어떨때는 견디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이 되고.. 하면서 공력이 쌓이더군요..
나이가 들어간다는게.. 고민이 적어지는게 아니라.. 고민과 어울리는게 가능해지는것이라고 생각되어지기도 합니다.
조금 전 시대의 청년기를 살았던 자로서.. 지금 시대의 청년기를 살고 있는 분들께 해드릴수 있는 말씀은 부끄럽게도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버텨라.. 그럼.. 지나간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살지말고 현재를 느끼며 살자.. (까르페디엠 인가??)
어느 중년으로 접어들어가는 한 남자의 재미없고 변태같기도한 누드쇼를 하면서 서서히 본론으로 접어들고자 합니다..
망명 1일차 얼떨껼에 보트에 실려와 살려줍메 하며 왔을땐 오징어에 놀랐습니다.. (잉?? 여기가 말로만 듣던 깐따삐아 꼴뚜기 행성???)
조금 지나니.. 여기가 참 맑더군요.. 친절히 알려준 이곳의 금기사항들을 보며.. 흠.. 자게이가? 이걸? 걱정이 되더군요..
잘 정돈된.. 잘 길들여진 착한 징어들의 나라..
스스로의 사건사고에.. 스스로의 규칙을 만들어 스스로를 지켜가는 나라..
자게는 그런거 없습니다.. 또다시 누가 멸치잡이로 팔려나갈지라도.. 또다시 어딘가에서 모여서 술퍼마시며 서로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모여.. 서로의 닉을 부르며 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합니다.
앞으로 이 두부분이 어떻게 전개가 될건지.. 걱정반 기대반입니다..
이제 20대.. 30대.. 40대.. 그 위 뇐네까지 한 울타리가 되었네요.
조금은 더 이해의 폭이 넓어졌네요..
그래도 여기분들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고 보여집니다.. 소통하고 공감할수 있는 분들입니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도 어느부분 이상 소통이 안되고 공감이 안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울 마님 말구요.. 직장 사람들 중에..)
그치만.. 얼굴 한번 본적 없지만.. 이렇게 글로써 소통되고 공감 잘되는 분들이 모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걱정보다는 기대가 살짝 더 됩니다..
앞으로.. 더 즐겁게 또 치열하게 지내봅시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지금까지 배나오고.. 살쳐지고.. 피부 탄력 줄어든 중년 아쟁어의 재미없는 변태쇼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환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PS) 제가 자게이였던지라.. 글자 예쁘게 이모티콘 빵빵.. 이딴거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원래 글은 이딴 글이 아니라 좀 멋있는 중년 남자의 인생.. 살아보니 이렇더라.. 뭐 이딴거 였는데..
쓰고나서 읽어보니 흠... 졸필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저기 위쪽에 수정/삭제금지.. 표시해놓은거 급 후회됩니다.. 인생 최대의 고민입니다.. 흐아.. 매사 이런게 고민입니다..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