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와 천하를 다퉜던 초한지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장자방"이라는 인물은 익히 들어보셨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장자방 장량은 젊은 시절 낚시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다가 말년에 주나라의 천하평정을 도왔던 강태공, 삼국시대 조조, 손권과 다퉜던 제갈공명과 함께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인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초한지를 읽어보면 의외로 장자방의 활약은 제갈공명처럼 예리하고 직접적이지 않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략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전투에 빛을 발하다 보니 뛰어난 전략가의 역할은 대장군 "한신"이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에서는 장자방을 한신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인정한다. 왜냐하면 장자방은 세세한 전투보다는 외교적인 책략과 시대의 흐름을 아는 처세에 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방이 결국 항우를 무너뜨리고 드디어 부귀영화가 눈 앞에 다가올 때 한심하게도(?) 자신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며 조용히 은거해 버려 결과적으로 개국공신 중에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 전쟁만큼은 제갈공명에 뒤지지 않았던 한신은 끝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려다가 비참하게 비명횡사하게 되버렸다. 결국 초한지에서 한신은 전쟁 너머에 있는 큰 판을 전혀 읽지 못한 2% 부족한 천재로 그려지게 된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죽 지켜보면서 최순실, 우병우, 안종범, 차은택 등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렸던 비선실세들이 모두 단죄를 받고 있는 지금, 마치 장자방처럼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마냥 태연하게 이 국정농단의 피바람을 비켜나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정윤회였다.
그의 전 아내 최순실조차도 최후 진술에서 "정윤회처럼 3년 전에 박근혜를 내가 떠났더라면 오늘의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하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정유라는 정윤회가 유일하게 "형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김관진 전 국방장관 밖에 없다고 하고 있고, 수많은 언론 보도에서 정윤회와 린다 김 커넥션에 대해 보도를 했다.
최소한 정윤회-린다 김(전 맥도날드 더글라스 로비스트)-김관진(맥도날드 더글라스 수석 장학생)만 연관지어 봐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방산 비리가 떠오르는 데 말이다. 다들 시간이 돈인 분들이었는데, 이분들이 자주 만나서 노래방에서 같이 춤추고 노래 불렀던 것이 우리처럼 여흥을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CJ는 회장님을 구명하기 위해 독도까지 수 억원이 든 돈가방 싸들고 정윤회를 찾아가기도 했다고 많이 보도되었다. 이 분들은 만남 자체가 돈이다보니 시간을 쪼개서 사람을 만나주기만 해도 돈이 되는 분들이다.)
또한 정윤회가 박근혜 비서실장하고 있을 때 직접 채용된 수족들이 바로 문고리 3인방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소름이 끼치는 한국 경찰의 최고 에이스 박관천 청와대 행정관은 "1위는 최순실이지만, 2위는 정윤회"라고 했고 십상시로 불리는 사람들과 서울 모처 식당에서 여러 차례 비밀 회동을 했다고 하고 있다. 나는 경찰 내에서 손꼽히는 수사력을 가진 경찰로 평가받아 청와대까지 파견 나간 박관천 경정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정윤회에 대해 그렇게 평가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
(물론 당시 박근혜의 견찰에서는 비밀 회동 자체가 없었고 모두 박관천 네가 음해한거라며 되려 박관천을 감방으로 보냈지만 말이다. 하지만 박근혜 견찰에 따르면 다스 주인도, 4대강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겠지.)
게다가 박근혜에게 육영재단을 강탈당한 박근령, 신동욱측에 의하면 당시 육영재단 강탈의 행동대장은 정윤회라고 지목하고 있다. 어느 날 평화로운 오후 박근령, 신동욱 부부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정윤회가 지시했다고 추정되는 깡패들이 안방까지 들이닥쳐 밥 먹고 있는 부부를 길바닥으로 끌어냈다고 한다. 수십 년째 일관된 주장도 하고 있고 증거도 많이 있다고 하니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은 상당히 신빙성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윤회는 백조처럼 자신은 아무 일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듯이 고매하고 유유자적하게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으니 참으로 대한민국의 장자방으로 불려도 부족함이 없다 하겠다.
나는 이 위대하고 뛰어난 분의 말년이 더욱 궁금해진다.
"누가 이런 불장난을 일으켰는지 다 밝혀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