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북저널리즘 <새터데이 에디션>의 인터뷰이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입니다. 2월 23일 안 전 지사를 만나 두 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피해자가 밝힌 마지막 성폭행 발생 이틀 전의 일입니다. 그날 인터뷰에서는 젠더 폭력에 대한 언급도 있었습니다. 안 전 지사는 “밟으면 꿈틀해야 못 밟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성폭행 의혹이 보도되었습니다. 고심 끝에 인터뷰 내용 중 성 인식에 관한 부분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사건이 안 전 지사 개인 신상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문제이고, 모든 폭력과 차별에 반대하는 민주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아는 한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 그가 가진 마지막 단독 인터뷰입니다.
안 전 지사가 논란의 중심에 있는 만큼 인터뷰는 최대한 원문 그대로 옮겼습니다. 괄호로 처리된 부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편집자 주입니다. 이와 더불어 성추행 의혹 이후 고은 시인이 저희 편집부에 전해 온 짧은 입장도 함께 전합니다. - 최근 1~2년 사이에 인권과 양성평등에 대한 연설을 많이 했다. 지난해 경선 과정에서 화제를 모았던 소수자 발언도 있었고. 이 문제가 머리에 각인된 이유가 있나?
“나는 직업 정치인이고 민주주의자로서, 젊은 날에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했다면 지금은 반차별 민주화 투쟁을 하고 있다. 반차별 관련 과제는 인종, 외국인 이주노동자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지막 남은 인류의 숙제 중 하나가 여성과 젠더 문제다.
여성과 젠더, 성 인지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시민 사회나 공공 분야 등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지난 2016년 촛불집회 당시 한 여고생이 ‘박근혜, 최순실을 감옥에 넣는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있는 박근혜와 최순실은 어떻게 할 거냐’고 말한 적이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과제는 폭력과 특권을 일삼는 독재자를 무찔렀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황무지 개간으로 치면 큰 돌멩이 하나 얹어낸 거고, 사실은 황무지 개간 사업의 마지막은 잔돌 줍기다. 잔돌이라고 해서 작은 과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더 많이 곳곳에 널려 있는 주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 가장 큰 과제는 곳곳에 숨어 있는 젠더 문제일 것이다. 이 젠더 문제는 결과적으로 인권 문제와 연결된다. 나는 민주주의자로서의 성장 과정에서 과거에는 국가 권력과 정부 조직의 민주주의(화)와 제도화,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이제 인간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모든 폭력과 차별로부터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세상으로, 다시 말해 정부, 법제, 제도의 민주주의(화)로부터 문명, 문화, 정신과 시민 생활 속에서의 인간의 차별을 극복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방향이 확산되고 깊어졌다고 봐야 한다.”
- 과거 연설에서 김대중 정부 때 정부 차원에서 교내 체벌을 이슈화한 것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지금도 정부 차원에서 인권, 양성평등 관련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민주주의는 곧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일체의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 평화라는 것이 옛날에는 강력한 통치에 의해 규율되는 평화를 말했지만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도달해야 할 평화에선 폭력의 요소를 없애야 한다.
폭력의 근원이 되는 요소에는 국가, 자본, 차별의 문화가 있다. 이 세 가지의 요소가 폭력을 만들어낸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가장 큰 폭력인 전쟁을 일으켰고, 자본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의 삶에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더 어려운 과제는 우리의 역사와 시민 사회에 뿌리 깊게 남은 차별의 문화다. 문화, 종교, 기호, 선택, 취향에 대한 차별이다. 예를 들면 왼손잡이들은 (일상에서) 무수한 폭력에 시달린다. 왼손잡이가 느끼는 일상에서의 차별도 굉장히 큰 거다.
하물며 남녀, 다문화와 이민족에 대한 차별의 문화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폭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문제들을 걷어내야만 평화로운 질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고 그래야만 황무지의 개간자, 민주주의자가 일을 잘했다고 볼 수 있는 거 아닐까. 민주주의자로서 나는 그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젊은 날에 화염병을 던지는 심정으로, 젊은 날 반독재 투쟁을 했던 심정과 각오로 똑같이 임하고 있다. 옛날 것이 더 비장하고 지금 것은 덜 비장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임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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