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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게시물ID : lovestory_143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산삼불알'
추천 : 24
조회수 : 114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04/09/05 16:57:02


<1> 
그날, 지하철 안에서 잠이들어 30분이나 늦어버린 소개팅 시간때문에 
그 높은 이대역 계단을 헉헉거리며 뛰어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땀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소개팅 장소에 도착했을때 
그녀는 웃으며 내게 하얀 손수건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와 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2> 
그 뒤 우리는 자주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100일이 되었고, 전 그녀에게 맛있는것을 사주고 싶어 
난생처음으로 스테이크 요리집에 갔습니다. 
가기 전날, 요리매너책을 보면서 스테이크를 주문할때는 
"well done-잘 익힌것, medium-중간으로 익힌것 rare-덜익은것" 
이라고 외웠습니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요리집에 가서 웨이트레스가 "어떻게 해 드릴까요?"하고 
물어보니 무척 떨렸습니다. 
그러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어제 책에서 본 영어로 해 보고 싶었고, 중간으로 익힌것이 좋을 듯 해서 그렇게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가까스로 말을 한다는게 
"middle로 주세요..."
"예? medium 말씀하시는거에요?" 
순간, 난 말을 잘못했음을 알았지만 그녀앞에서 
망신 당할수는 없어서 "그럼 well done으로 해 주세요." 
"medium well-done 말씀하시는거에요?" 
결국 전, 
"그냥.... 바싹 익혀주세요...." 
그날 너무 바싹 익혀서 딱딱해져버린 고기를 씹으면서도 
그녀는 저를 향해 웃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런 그녀가 좋았습니다.

<3> 
전날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전 다시 그녀를 데리고 
T.G.I 프라이데이를 갔습니다. 
무지 비싼걸 알았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요번에 음식을 시킬때는 저번처럼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메뉴에 나온 이름도 처음보는 수많은 음식들 대신에 
제일 친숙한 "햄버거" 를 두 개 시켰습니다.
이번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나온 햄버거는 제가 매일 보아 왔던 햄버거와는 
다른 모양이었습니다. 
빵 따로, 고기 따로, 야채 따로, 그리고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전 고민했습니다. 
과연 따로 먹는걸까, 아니면 합쳐서 먹는걸까... 
결국 다른 사람들 먹는걸 지켜보려고 그녀와 음식을 앞에 놔두고 
그냥 실없는 얘기를 하며 다른 테이블을 보았지만 20분동안 
아무도 햄버거를 먹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이라도 덜 망신스러우려고 전 다 합쳐서 한입에 먹고 
그녀는 따로 나누어 먹기로 했습니다.
햄버거는 정말 맹숭맹숭하게 맛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햄버거를 먹을때 뿌리는 케찹과 겨자는 
테이블에 따로 놓여있다는 걸.... 
그리고 나중에 알았습니다. 
내가 부끄러워 할까봐 그녀는 알면서도 그냥 먹었다는걸... 

<4> 
그녀와 이제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같이 술을 마신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생일날, 그녀와 처음으로 맥주집에 갔습니다. 
함께 처음 먹는 맥주라서 비싼걸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없는 돈을 털어 밀러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밀러가 나오자 병마개에 물에 젖은 냅킨이 
올려져 있는걸 보았습니다. 
전 병을 깨끗이 닦아 먹으라는건 줄 알고 그녀 것까지 
열심히 닦았습니다. 
그리고 병 따개를 찾아보았지만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병따개를 달라고 하자 주인아저씨는 그냥 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테이블 어딘가에 병따개가 달려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테이블이 고정되어 있는 철판 모서리에 병마개를 대고 
뚜껑을 따려했습니다. 
그러나 뚜껑은 열리지 않았고, 이를 보다못한 아저씨가 와서 
뚜껑을 돌려서 열어주셨습니다.
그날 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셨고, 
그녀는 그런 저와 같이 술을 마시고는 
제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습니다. 
전...그녀의 머리에서 풍기는 여릿한 샴푸냄새에 
취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5>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와 제가 만난지도 1000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린 이 날을 기념하려고 1000일째 되는날 밤기차를 타고 
동해로 갔습니다. 
겨울바다는 하얀 눈과 함께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전 갑자기 영화 "러브스토리"에 나오는 장면중에서 주인공들이 
서로 눈을 던지며 달려가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눈을 한웅큼뭉쳐 그녀의 옷에다 집어 던지고 웃으며 
막 도망쳤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눈 밑에 가려 안보이던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뒤따라오던 그녀도 저에게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희는 처음으로 키스를 했습니다.

<6> 
우리가 만난지 5년, 그리고 이제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턱시도를 차려입고 결혼식장에 서니 무척이나 떨렸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에서 전 행복에 
겨워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주례 선생님의 말도 저 멀리서 누군가가 그냥 혼잣말을 하는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주례선생님은 오래도록 영원히 함께 사랑하며 살겠냐는 
질문을 세번이나 해야했고, 저는 엉겁결에 "예, 선생님~!" 하고 
소리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식장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비디오 찍은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웃은 이유에는 제 바지 자크가 열려있던것도 
포함되어 있었다는걸... 

<7> 
이제 저희도 다 늙어버렸습니다. 
어느덧 아이들은 전부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났고, 
영원히 검을것 같던 머리도 눈처럼 곱게 희나리져 갔습니다. 
그녀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되어버렸습니다. 
가끔 자다가 이불에 오줌도 싸고, 길도 잃어버리기도 하고, 
저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 기쁩니다. 
그동안, 그 긴 세월동안 제 수많은 실수들을 미소로 받아주었던 
그녀를 이젠 제가 돌볼 수 있으니까요. 
전 그녀를 영원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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