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손석희 : "각하가 사라지고 있다, 한 팟캐스트 진행자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는 언론의 미투 보도 탓에 전직 대통령의 더 커다란 범죄가 가려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180313 앵커 브리핑 30초경)
해석1 : 김어준의 언론인으로서의 비정통성을 비하하기 위해 쓴 표현.
해석2 : ‘각하가 사라지고 있다’는 표현의 유일한 출처가 팟캐스트(다스뵈이다)임을 고려한 표현.
현재 스코어, 해석1이 유일하게 가능한 해석으로서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손석희는 비뚤어진 엘리트주의(?)를 이유로 욕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엘리트주의는 실력주의를 배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죠. 그리고 흥미롭게도 김어준이 가장 강조하는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실력주의). 그러나 저는 해석2가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손석희 앵커 브리핑의 전반적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종류의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다른 문제는 손석희의 비뚤어진 엘리트주의(비정통성을 비하함으로써 정통성의 상대적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심리)와는 관련이 없고, 그의 계몽을 요하는 순진함과 관련이 깊습니다. 이를 순진함 가설이라 부르겠습니다. 먼저 해석2가 더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한 후, 순진함 가설의 구체적 내용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베스트 손석희가 김어준에게 제기할만한 반대와 이로부터 김어준을 옹호하는 논리를 제시하겟습니다.
첫째, 해석 2가 더 그럴듯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손석희가 인용한 김어준의 ‘각하가 사라지고 있다’는 표현은 오직 아래의 발언에서만 등장합니다.
(2) 김어준 : "안희정에 봉도사까지, 이명박 각하가 막 사라지고 있어요. 미아 됐어 우리 각하가." (다스뵈이다 14회 1분 경)
뉴스공장에서도 미투 공작론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각하가 사라지고 있다’는 표현은 물론이고 이와 비슷한 표현조차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2)가 유일한 출처라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원래 발언의 출처를 강조하려는 의도를 갖고서 ‘방송인’, ‘언론인’ 등보다 ‘팟캐스트 진행자’라는 표현을 선택했던 것이라면 여기에 어떤 악의가 동반되었다는 시나리오는 상당히 부자연스럽습니다. 만약 손석희가 앵커 브리핑에서 인용한 발언이 뉴스공장에 나오는 것이었다면 뉴스공장은 팟캐스트가 아니므로 “한 팟캐스트 진행자”라는 호칭은 당연히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순진함 가설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손석희는 다스뵈이다의 김어준의 ‘미투 보도 때문에 각하(또한 삼성 및 적폐세력)가 사라지고 있다’는 발언을 “그의 주장”이라 지칭하며 주요 타겟으로 삼습니다. 이 타겟을 다음처럼 공격합니다.
(3) 손석희 : "그러나 세상이 그가 이야기하는 각하를 잊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전직 대통령은 내일 전 국민이 바라보는 가운데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이고 그를 향한 수많은 의혹의 불은 켜질 것입니다." (180313 앵커 브리핑 1분 경)
(4) 손석희 : “이제 그 [각하] 는 또다시 스무 개에 가까운 혐의점에 대해 이번에는 정면으로 대답해야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착잡함 속에 그 결과를 지켜볼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세상이 각하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80313 앵커 브리핑 3분경)
여기 나오는 말들을 아무리 봐도 손석희가 각하를 벼랑 끝에 내모는 데 있어 김어준의 결정적 공헌을 무시하고 있다고 추론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속마음으로 김어준을 무시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적어도 이 발언들에서 그것을 추론하기는 어렵습니다). 손석희는 그냥 시종일관 “그의 주장”을 논박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발언들 어디서도 비뚤어진 엘리트주의를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차라리 어떤 순진함이 발견됩니다. 다스뵈이다에서든 뉴스공장에서든 김어준의 핵심주장은 ‘미투 보도 때문에 각하가 사라지고 있다’가 아니고, ‘공작의 눈으로 보면 미투는 진보세력에 흠집을 낼 좋은 기회이다’입니다. 손석희가 김어준을 정말 논박하고 싶엇으면 이것을 타겟으로 삼앗어야 햇죠. 그런데 어째서인지 주변적인 주장을 타겟으로 삼앗습니다. 이 주장은 타겟으로 삼을만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하찮은 논쟁이 되었습니다. 미투로 인해 각하가 사라지고 잇다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고 사라지지 않앗다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죠. 둘 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고 이런 논쟁은 결판이 안 납니다. 그럼에도 손석희가 이렇게 김어준의 주변적 주장만 공격하고 그의 진짜 핵심 주장을 건드리지 않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제 가설은 그는 순진해서 ‘공작의 눈으로 본다면’과 같은 접근이 과하다고 보며 따라서 이를 상대하기를 꺼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진함은 두 측면에서 용인되기 어렵고 따라서 계몽을 요합니다. (가) 이명박근헤 정권 관련 드러나고 있는 증거들의 교훈은 ‘공작의 눈으로 본다면’과 같은 강한 사전 예방적 접근이 전혀 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 상대의 핵심 주장이 아닌 지엽적 주장을 공격하면서 상대를 이긴 것처럼 구는 순진함은, 일상 대화의 논쟁에서조차도 용인되기 어렵습니다. (너무 순진해서 뭐가 핵심 주장인지 식별조차 못햇을 가능성도 있을 거 같긴 합니다).
셋째, 베스트 손석희가 김어준에게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대가 있습니다. 먼저 베스트 김어준의 처방을 보겟습니다. <미투 보도가 악용될 수도 있으니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악용될 소지를 충분히 주의해가며 보도하라는 것이다>. 이에 베스트 손석희는 다음처럼 반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어렵다. 공작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은 진보 인사 미투 보도가 나면 일단 의심의 눈으로 볼 것이고, 실제로 현재 어느 정도 이런 흐름이 생겼음을 부인하기 어렵고, 이는 진보 인사에게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미투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드는 큰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투를 고려중인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심적 부담이 크다. 이 사람에게 이런 공작설이 도는 환경은 미투를 단념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일 수도 있다>. 다음으로 이로부터 김어준을 방어하는 논리를 제시하겟습니다. 두 측면에서 방어할 수 있습니다. (다) 한국에서 공작의 만연함의 문제와 미투의 문제는 둘 다 중대합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선시될 수 없습니다. (라) 공작을 한다 해도 기자를 섭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다면 제보자를 섭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댓글로 뒤를 받치겠죠. 따라서 애초에 기자가 기사만 잘 쓰면 공작의 계기조차 안 생길 수도 있습니다. 기자가 제보자의 제보가 증거와 정황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기사화를 보류하고, 증거와 정황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기사화하다면, 섭외된 제보자의 제보가 기사화되는 것이 원천 차단됩니다. 현재 공작 의심 여론이 강화된 결정적 이유는 김어준의 발언이 아니라 프레시안, 뉴스타파의 함량미달의 보도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기사만 똑바로 쓴다면 현재의 강경한 공작 의심 여론은 수그러들 것입니다. 기사만 똑바로 쓰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