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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으로 바라본 미투 운동의 힘의 근원(펌글 스압)
게시물ID : sisa_10326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밥우유다
추천 : 2
조회수 : 127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3/16 17: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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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텔링(Storytelling)으로 바라본 미투 운동(#Me Too)의 힘의 근원에 대하여 ]


[@ 도움받은 자료들 입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 마이클 티어노/ 아우라 출판)
(68. 세계를 바꾼 문화혁명/ 오제명, 김경석 ... / 도서출판 길)
(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 미셸푸코/ 나남 출판)
(영화 쇼생크 탈출 및 기타 ) ...

글의 내용은 모두 저의 100% 주관적 생각입니다. 따라서 정답이 있는 글이 아닙니다.
또한 글 주제가 민감하기 때문에 재밌게(?) 읽어보시라고 감히 말씀드리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정성을 다한 글이라는 점만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분량이 많아
너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도 당했다(#Me Too)" ~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폭풍전야 상태입니다.
또한 미투의 진앙지(震央地)는 법조계, 정치권, 언론, 문화예술, 학교, 종교계 등으로 종횡무진
바쁘게 공간이동을 하며 사회 전분야로 확산되는 양상입니다. ... 새로운 진앙지가 나타나면 마치
릴레이 경주처럼 바톤을 이어받고 이전의 모든 이슈들을 집어삼키며 힘의 크기를 더욱 더 크게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차기 유력 대권후보까지 무너뜨렸습니다.
[@ 이 글은 악(惡)을 물리치는 권선징악, 즉 선악구도의 시선이 아니라 미투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고 현재 무섭게 커져나가고 있는 그 힘(미투의 힘)의 실체에 방점을 찍으려고 합니다.]

당분간 (사회적 이슈측면에서)미투 운동의 대항마는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더불어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도 상당히 많이 발생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의(Justice)와
긍정을 추구하는 사회변화가 <급격성>을 띠게 되면 대부분의 사회는 혼란을 수반했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급격성은 개혁보다는 혁명의 속성과 유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정의를 위한)변화의 흐름 속에서 그 변화가 지향하는 지점(개혁점)보다 <절대선(絕對善)>을 도출하려는데
더 많이 열광하고 집중합니다. ... 프랑스가 자랑스러워하는 '프랑스혁명' 또한 그 과정의 이면에서는 상당한
추함이 뒤따랐습니다. [@ 절대선(善)의 문제는 뒤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글은 <미투 운동의 힘의 근원>을 살펴보는데 최대한 방점을 찍으려고 합니다.
"나도 당했다(Me Too)"라는 사회정의를 위한 용기 있는 고백이 어쩌면 단순한 남녀 간의 개별적
스캔들(Scandal)에서 힘없이 멈출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대한 "운동(movement)"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용기있는)고백과 큰 움직임(movement) 사이에서 어떤 기술적 기제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활발히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그 <기술적 기제>를
찾기 위해 현재까지 드러난 가해자와 피해자가 주장하는 (성폭력)사건의 진위여부를 따져보거나
또는 그에 대한 어느 개인 일방을 옹호(변호)하는, 혹은 비난하는 감정일변도의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한국 사회 미투(MeToo) 운동의 시발점이었던 서지현 검사의 JTBC 인터뷰
내용부터 들어보는 걸로 시작합니다.

======= [ 서지현 검사, JTBC 뉴스룸 인터뷰 내용 중 일부 발췌 ]
( 에이치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82419 )

[@ 서지현 검사: 사실 제가 범죄의 피해를 입었고 또 성폭력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거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 '굉장히 내가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구나' 라는 자책감에
굉장한 괴로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와서 범죄 피해자분들께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습니다.]

[@ 앵커: 다음 질문이 사실 저도 드리기 싫은 질문이기 때문에요.
2010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

[@ 서지현 검사: 제가 2010년 10월경에 어느 장례식장에 참석을 했었고요.]

[@ 앵커: 장례식장이요?]

[@ 서지현 검사: 네, 맞습니다. 거기에 모 검찰 간부가 동석을 하였습니다.
제가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고요. 사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여전히 떠올리기는
굉장히 힘든 기억입니다. 옆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상당시간 동안 하였습니다.]

~ (중략) ~

[@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정말 어려운 자리에 나와 주셨는데,
이렇게 해서 검찰 조직 내에 어떤 잘못된 문화가 있다면 그것을 바꾸는 데
일조하셨기를 바라겠습니다.]

[@ 서지현 검사: 저도 사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이 렇게 나오게 됐고요.
제가 나오게 된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저는 제가 성실히
근무만 하면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고 당당하게 근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검찰 조직의 개혁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요. 두 번째는 사실은 이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마는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를 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듯이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그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

서지현 검사의 서술을(표현방식)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녀의 말 속에는 이미 수사학(Rhetoric)적으로 여성들을 향해 던지는 상당히 강력한 메시지가
숨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서술에 숨어있는 강력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그 메시지를 찾아보고 싶은데 그러자면 먼저 레토릭(Rhetoric)과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뜬금없겠지만 저는 레토릭(Rhetoric)을 <판화(版畵)>에서 얻은 영감으로
대신 설명해 보고, 이후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대한 이야기로 계속 이어가 볼 생각입니다.

독일의 천재 항쟁 판화가 <캐테 콜비츠(Kathe Kollwitz. 1867-1945)> ... 주로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참상을 작품에 담았고, 종전(제1차 세계대전)이후 반전평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그녀의 작품은 후세대에게 판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특히 1930년대
중국은 콜비츠의 영향으로 목판화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0여 년 전,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거닐다 우연히 발견한 책! ~ <캐테 콜비츠와 노신(루쉰)(열화당, 1986)>
차분히 당시를 회상해보면 ... 알 수 없는 어떤 강한 끌림에 의해 그 책을 발견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마치 “나는 슬픈 책” 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던 습하고 어둡던 표지 그림과
100여 페이지 분량의 얇은 두께 중간 어디쯤인가를 지나가듯 펼쳤을 때 태양빛과도 같았던 눈부신
강렬함에 압도당하며 책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노동자와 농민들의
처참한 삶과 전쟁, 시체, 질병, 배고픔, 그리고 우울, 분노 등의 ... 사람이라면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마주하기 싫은 광경들이 그녀의 작품 속에는 모두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앙리 마티스가 (화려한)색채의 마술사였다면, 캐테 콜비츠는 흑과 백이라는 단 두 가지, 아니
어차피 ‘백(白)’이라는 색은 없는(여백)것에 다름 아니니 ... 콜비츠는 ‘어둠(黑)’ 이라는 단 하나의
조건만으로 시대의 참상을 모두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색의 마술사’는
콜비츠에게 더 어울리는 수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어둠(黑)’이 태양보다 더 강렬한 빛을
발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시 콜비츠의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고, 또 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힘이자 그녀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에 담긴 <죽음(캐테 콜비츠와 노신. 21페이지. 1986)> 이라는 작품(석판. 1893~1897)을 보면
당장이라도 숨이 막혀버릴 것만 같은 어둡고 좁은 한 평 남짓한 방안에서 어느 가난한 방직여공은
자신의 아이에게 더 이상 먹을 것과 치료약을 줄 수 없다는 비참한 현실을 맞닥뜨리자 모든 걸
체념하고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다가올 죽음을 조용히 기다립니다. ... 중앙의 촛불은 절망처럼
방안을 밝히고 있지만 이미 사신(死神)의 팔은 뒤에서 아이의 목을 조릅니다. ... 그리고 아버지는
뒷짐을 진채 사신 옆에서 이 잔인하고 비참한 상황을 멍하니 지켜만 볼 뿐입니다. ~ 작품은 체념한
어머니의 절반의 얼굴과 뒷짐 진 아버지의 손바닥, 중앙에서 절망스럽게 빛을 내고 있는 작은 촛불,
아이의 목을 조르는 가느다란 사신의 팔, 그리고 촛불보다 약간은 덜 빛나는 아이의 얼굴만이
하얀 여백으로 표현됐고, 나머지 광경은 모두 어둠으로 채워졌습니다.

콜비츠의 또 다른 작품(동판. 1907~1908) <능욕(캐테 콜비츠와 노신. 36페이지. 1986)> 에서는
꽃과 함께 처참히 짓밟힌 여성의 시체를 보여줍니다. ... 수많은 여성들이 강제 노동도 부족해서
강.간까지 당하고, 심지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밟혀져서 시체가 되고, 이에 영혼마저
억울해 하늘로 떠나지 못합니다. ~ 작품속의 (죽은)여인은 팔이 뒤로 묶여있고 강.간당하기 직전의
상황인 듯 턱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외치다 그친 모습입니다. ... 그리고 누워있는 여인의 한쪽에선
마치 범인을 알고 있다는 듯 검은 해바라기 무리가 증인처럼 서있습니다. ... 해바라기 무리와 죽은
여인의 턱은 어둠으로 표현되었고 여인의 시체 주변으로 혼란스럽게 흐트러져있던 수많은 야생화는
짓밟힌 흔적을 보여주듯 흑백이 슬프게 교차하며 채워집니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담는 사진은 시대를 얘기하는 데는 판화에 비해 불리한 요소가 많습니다.
사진이 모든 것을 담아 사실을 얘기할 때, 판화는 최소한의 선과 농담(濃淡.명암)으로 핵심을 강조하고
여기에 <없음(부재)>을 더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선사합니다. 한마디로 판화는 절제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부재(없음)의 예술>을 보여줌으로써 메시지의 질감을 한층 더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저는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 이후 용기를 내어 미투 운동에 참여했던
다른 많은 여성분들의 직접적인 발언내용들을 들어보면서 어쩌면 판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과
스토리텔링에서 현재의 미투 운동의 힘의 실체(기술적인 작동기제)를 찾아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2018년 6월 13일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각 지자체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거리에 선거를 알리는 현수막을 설치하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종종 보이기도 합니다.

[ “지방선거는 나와 이웃, 우리 아이들을 위한
민주주의의 출발점입니다.“ -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

선거를 알리는 홍보문구로는 무난해 보입니다. 다만 사무적, 행정적 느낌과 함께 우리가 선거
때마다 항상 보아왔던 진부함의 한계에서는 여전히 못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에게 좀 더 참신하고 강렬한 느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어떤 문구가 좋을까?

[ “6월 13일: 전 국민이 노는 날! ~ 투표하고 놀자!” ]

어떤가요? ... 수사(Rhetoric)의 기법은 잘만 활용하면 고정관념과 진부함을 동시에 깨뜨리면서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질감까지도 대중들의 뉴런에 강렬하게, 또 친근하게 각인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 여자 컬링대표팀이 외쳤던 <영~미!>라는 한마디는 성씨(Team Kim)와
마늘(지역), 건담(취미) 등을 동시에 내포한 그야말로 수사(Rhetoric)의 모든 걸 말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메시지에 (강한)질감을 불어넣었다면 이제부터는 상대(대중)의 <정체성 욕구>를
자극해야 합니다.

금전과 직업적 이익(승진)으로 상대를 유혹하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진정한 마음까지
얻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과 직장 내의 지위(승진) 상승은 (보편적으로)서로가
어떤 대가를 주고받는 일종의 거래형태, 즉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쉽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상대에게 <정체성>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호소하면 상대의 마음은 강하게 흔들립니다.

[ “이 일을 해낼 사람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
[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

타인의 <기대>를 상대에게 강하게 심어놓으면 상대는 절대로 그 타인을 배신할 수 없게 됩니다.
배신을 하려면 상대는 먼저 자기 자신을 파괴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
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 본인의 정체성 파괴!)

[ “이 일을 해낼 사람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 “아닙니다. 저는 능력이 없습니다.” ]
[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 “아니요, 모두 저의 잘못이에요!” ]

서지현 검사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성폭력 피해자분들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그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

서지현 검사는 <여성(女性)>이라는 정체성에 크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잠재적 범주를
여성 전체로 일반화하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잘못이 아니다!> 라는 농축된 언어를
사용해 그동안 잠자고 있던 ‘여성성(女性性)’이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환기시켜주었고, 여기에 가해자를
향해 거침없이 던진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하라!>는 일침은 <당신도 나처럼 할 수 있어!> 라는
기대를 무의식적으로 여성 전체 뇌리에 각인시켜 동질감과 연대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누구의 오줌 빨이 더 센가를 겨루던 혈기왕성했던 10대 시절, 우연히 ‘앉아서 소변을 보는 아버지’를
목격한 후 저는 한동안 큰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습니다. ... 남자는 당연하게 또는 무조건적으로
서서 소변을 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 살면서 어렵게 끌어 모은 나의 귀납적 추론이
<앉아서 소변보는 아버지>라는 단 하나의 반증으로 쉽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남자는 (당연히)서서 소변을 봐야 한다는 관념은 도대체 언제 나의 머릿속에 주입된 것일까?
또한 그것은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당위적인 관념인가? ... 태어나고 보니 ‘나’라는 존재는 이미 남근을
소유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질문은 소용이 없다고 한다면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은 오직 섹.스(S.ex)
라는 생물학적 차이 하나만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앉아서 소변보는 아버지>처럼
‘남성성(男性性)’과 ‘여성성(女性性)’, 즉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생활양식) 혹은 정치적 등의 다양한 이유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젠더(gender)의 개념입니다.... 한마디로 성별(性別)은 배꼽아래가 어떤 모양인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사회, 역사, 문화 등)로 <습득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 그래서 페미니즘은
섹.스(S.ex) 보다는 젠더(gender) 사용을 권장합니다. <“가족의 빤스는 엄마만 찾을 수 있다!”>에서
<“가족의 빤스는 아빠도 찾을 수 있다!‘>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여분 남짓한 인터뷰에서, 서지현 검사가 던진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라는
매우 짧고 강렬했던 레토릭(Rhetoric) 속에는 상반된 두 개의 의미가 하나로 압축되어 엄청난
무게의 메시지로 다시 재탄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 그동안 남녀를 섹.스(S.ex)로만
구분하며 사회 속에서 암묵적으로 강요당한 “여성다움” 이라는 틀을 이제는 과감히 부수고 나오라는
젠더(gender) 촉구의 메시지 하나와 “여성”이었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불합리한(구조적)
현실에 맞서 잘못을 변호하지 말고, <잘못> 그 자체가 여성에게 강제적으로 주어졌다고 항변하라는
<여성 정체성>에 대한 메시지가 동시에 포함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억압>속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찾고, <젠더>를 통해 여성해방을 쟁취하자는 두 개의 메시지를 서지현 검사는 아주 간결하고
강렬한 레토릭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로 압축시키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 결국 이와 같은 메시지
전달방식은 캐테 콜비츠의 판화처럼 핵심만 강렬하게 부각시켜 대한민국 전체 여성들에게
<여성 정체성과 젠더(gender)>의 의미를 동시에 일깨워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나 드라마는 대부분 이야기의 힘이 상당히 강합니다.(Storytelling)
더불어 이야기 속에는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여러 장치(조명, 카메라 앵글 등)들이 사용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플롯(plot)>입니다. 플롯은 사건과 사건이 필연적 인과 관계에 따라
흘러가도록 만든 (단순한 줄거리 보다는)좀 더 복합적인 서술구조입니다. 장면을 아무리 화려하게
연출한다고 해도 사건에 개연성 없다면 관객들에게는 단조로움만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Hitchcok, Sir Alfred)은
플롯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려면 작품 속에 <(시한)폭탄을 설치하라!”>고 강조합니다.

[@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 속에서 테이블 밑에 있는 폭탄이 갑자기
터진다면 좋은 영화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은 아마 좋은 본 보기일 것이다.
관객들은 테이블 밑에 폭탄이 있다는 사실과 그 폭탄이 ‘터질 것 같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야 한다. 관객들은 이러한 정보를 통해 “폭탄은 언제 터질까?”와 같은
극적이면서도 긴장된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자신들의 뇌를 행동하는 상태에
놓아둔다. 극중 인물들이 폭탄의 존재를 모른다는 사실은 관객들의 관심을 끌어당김과
동시에 관객들을 정서적으로 매우 흥분된 상태로 이야기의 행동에 참여하도록 몰아간다.
- (스토리텔링의 비밀. 41페이지/ 마이클 티어노/ 아우라 출판 )]

[ Mr. Hadley. Do you trust your wife? - 해들리씨, 당신은 아내를 믿습니까? ... (쇼생크 탈출) ]

영화 <쇼생크 탈출>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본 영화일겁니다. 아마도 7~8번은 넘게
본 것 같은데 ... 케이블 TV에서 워낙 자주 방송해주다보니 이제는 장면마다 저도 모르게
배우들의 대사가 자동적으로 흘러나옵니다. 그럼에도 지금도 TV에서 재방할 때면 질리지 않고
계속 빠져들게 만드는 (저한테는)마력을 지닌 영화입니다.

어느 날 교도소 건물 옥상바닥에 타르 칠작업을 해야 하는 사정이 생겨 몇몇 죄수들이 작업인부로
차출됩니다. 죄수들이 칠작업을 하는 동안 옥상 한쪽에선 교도관들의 대화가 오고갑니다. ... 그중에
쇼생크 교도소에서 가장 악랄하다는 교도관 해들리가 다른 교도관들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 [교도소 옥상 씬]

@ [해들리]: “형이 엄청난 부자가 됐다는 거야! 유전 같은 게 터져서 백만 달러정도 벌었다는데 ~”
@ [교도관1]: “자넨 얼마를 받게 되는데?”
@ [해들리]: “3만 5천을 남겨줬어!”
@ [교도관1]: “달러로?”
@ [해들리]: “그래!”
@ [교도관2]: “정말 대단한데 ~ 경마에서 1등한 셈이로군!”
@ [해들리]: “멍청하기는! 정부가 가만히 있겠나? ~ 한두 푼 뜯어 가겠냐고!”

@ [헤이우드(죄수1)]: “좋긴 좋아도 정말 열받겠다!”
~ 그때 주인공 앤디는 작업을 멈추고 교도관들의 대화에 집중합니다. ~
@ [레드(죄수2)]: “앤디, 정신 나갔어? ~ 걸레질이나 해!”

@ [해들리]: “세금이랍시고 엄청나게 뜯어갈 거 아냐? ~ 일단 차를 한 대 사더라도
세금에 유지비에 ... 애들은 또 허구한 날 태워달라고 조를 테고, 연말에 세금정산을
잘못했다간 또 돈 나가지 ~ 그놈의 정부! 알아줘야 해!“

~ 앤디가 교도관 해들리쪽으로 다가갑니다. ~

@ [앤디(주인공 죄수)]: “Mr. Hadley. Do you trust your wife?”
@ [해들리]: “정말 웃기는군! ~ 주둥이가 박살나면 더 재밌을 거야!”
@ [앤디(주인공 죄수)]: “부인이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냐고요?”
@ [해들리]: “끝났어!, 이 자식 사고로 처리해!”(앤디의 멱살을 잡고 아래로 떨어뜨리려 한다.)
@ [앤디(주인공 죄수)]: “(다급하게)부인을 믿는다면 3만 5천을 뺏길 이유가 없거든요!”

@ [해들리]: “방금 뭐라 그랬어?”
@ [앤디(주인공 죄수)]: “3만 5천이요! ~ 전부 다요!”
@ [해들리]: “전부 다?”
@ [앤디(주인공 죄수)]: “동전 한 푼까지도요 ~ ”

@ [해들리]: “자세히 얘기해봐!”
@ [앤디(주인공 죄수)]: “돈을 갖고 싶다면 전부 부인한테 주세요.
6만 달러 미만은 부인한테 선물로 줄 수 있게 돼 있어요!“
@ [해들리]: “그럼 세금이 면제되나?”
@ [앤디(주인공 죄수)]: “면제죠, 한 푼도 안 뜯겨요!”
@ [해들리]: “네가 바로 부인을 죽인 그 은행가 놈이지? 네 말대로 했다가 나도 여기 갇히라고?”
@ [앤디(주인공 죄수)]: “완벽하게 합법적인 거에요, 국세청에 가서 물어 보세요. 물론 내 얘기가
아니더라도 잘 알아서 하시겠지만요 ~ “

@ [해들리]: “당연하지! 너 같은 놈이 꼴값 떨지 않아도 다 안다고!”
@ [앤디(주인공 죄수)]: “그러실 테죠, 대신 일을 꾸미는 데는 돈이 들어요. 변호사 비용 같은거죠!”
@ [해들리]: “쓸개 빠진 변호사 놈들!”
@ [앤디(주인공 죄수)]: “제가 할 수 있어요. 양식만 준비해오면 거의 공짜로 해드릴 께요.
대신 동료들에게 맥주 3병씩만 제공해 주시면 됩니다. 실외작업을 할 때는 맥주가 제격이거든요
그냥 제 의견입니다.“

@ [레드(죄수2)]: “(독백) ... 1949년 봄, 오전 10시 지붕위에서 타르칠을 하다가 우리는 도란도란
모여 앉아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것도 쇼생크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간수가 주는 맥주를!“

@ [해들리]: “시원할 때 어서들 마셔!”

@ [레드(죄수2)]: “(독백) ... 그날은 놈의 목소리가 관대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햇빛아래서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자유를 만끽했다. 마치 우리 자신의 집 지붕에 타르를
칠하는 기분이었다. 조물주가 된 느낌마저 들었다. ... 그동안 앤디는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서
자신 덕분에 맥주를 마시는 우리들을 묘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 앤디는 보통 사람의 일상을
느끼고 싶었던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주 잠깐이라도 ..... ... “

주인공 앤디와 교도관 해들리의 극적인 순간이 지나간 후 ... 레드의 말처럼
앤디는 묘한 미소를 띠며 동료 죄수들이 따사로운 햇빛 아래서 평화롭게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쇼생크 탈출의 최고의 명장면중 하나입니다.

영화는 앤디의 미소를 통해 관객들에게 핵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더불어 이 질문은 플롯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것과 같습니다. 관객들은 앤디의 <미소>가 주는 의미에 대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합니다. ~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 관객들 각자가 생각하는 자유의
의미는 이야기가 흐르는 동안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증폭됩니다.

[ BROOKS WAS HERE - 여기에 브룩스가 있었다. ]

브룩스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쇼생크에서 가장 오랜 기간(50년) 복역하고 있는 노인죄수입니다.
교도소에서 그의 역할은 자신의 복역기간 만큼이나 오래되고 먼지 쌓인 도서관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어느 날 브룩스는 친했던 동료죄수 헤이우드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인질극을 벌입니다. 순종적으로
50년의 교도소 생활을 무난하게 이어오던 그였기에 다른 동료들은 이 힘없는 늙은 죄수의 인질극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 그리고 곧 브룩스의 인질극은 <가석방(자유)>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 일반 죄수에게 가석방은 당연히 <자유>를 뜻합니다. 하지만 50년을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한 브룩스에게는 석방되어 사회로 나가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감옥에 갇히는 것이며,
쇼생크의 생활이 진정한 <자유>를 상징합니다. ... 가석방 되던 날 브룩스는 새끼 때부터 키워왔던
까마귀 <제이크>를 창밖으로 날려주면서 자유를 선물합니다. 사회로 나온 브룩스는 슈퍼마켓에서
계산하는 일을 하지만 50년의 죗값은 그에게 ‘자유’ 대신 절망과 두려움만 줄 뿐입니다. ... 결국
브룩스는 쇼생크 동료들에게 편지 한통을 보내며 숙소 방 천장 아래 나무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목을 매는 자살을 선택합니다. ~ ~ ~ “BROOKS WAS HERE - 여기에 브룩스가 있었다. ”
진정한 자유에 대해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졌던 주인공 앤디의 <미소>는 이야기가 흐르는
동안 계속해서 증폭되었고 결국 브룩스의 자살과 함께 터져버립니다. 까마귀 제이크가 자유를 찾아
푸른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갔던 것처럼, 브룩스는 동료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편지(정신)가 되어
쇼생크로 날아와 자신의 진정한 자유를 되찾습니다.

[@ (브룩스의 편지): ~ 추락하는 악몽을 꾸다가 깜짝 놀라서 깨곤 하지
가끔은 여기가 어딘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어 ... 총을 가져다가 슈퍼를 털면
날 그곳으로 다시 보내줄 텐데 ... 덤으로 매니저도 쏴 버리면 더 좋고, 하지만
그런 짓을 하기엔 너무 늙어 버렸어 ~ 난 여기가 싫어, 항상 두려워하는 것도
지쳤고, 더 이상 머물지 않기로 했어, 나 같이 늙은 도둑에게는 별로 신경도
안 쓰겠지 ... (추신, 헤이우드에게 미안하네, 고의가 아니었어. ... 브룩스) ]

[@ 레드 - (브룩스의 자살 소식을 듣고 죄수들과의 대화에서)
“이곳에 길들여져서 그래! ~ 여기서 50년이나 있었어. 자그마치 50년!
그에게는 여기가 전부야! ... 여기선 그도 중요한 인물이고 똑똑한 사람처럼
대접도 받지만 밖에 나가면 아무것도 아냐, 관절염에 걸린 늙은 죄수일 뿐이지
저 울타리 때문인 건 확실해! ~ 처음엔 미워하게 되고 그 다음엔 익숙해지지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게 되면 의지하게 되는 거야 ~ 평생을 이곳에
있게 되면 인생의 전부가 되는 거야! ~ 최소한 일부라도 되는 거지“ ... ]

사람들이 스토리에 흠뻑 빠지게 되는 건 <공감> 때문입니다.
화려한 연출로 볼거리가 많아지는 것보다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현실에서 있을법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냅니다. ... 쇼생크 탈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즉 있을법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앤디와 동료들은
비록 ‘죄수’지만 <쇼생크 교도소>라는 그들만의 사회(구조) 안에서는 최소한 억압받는 선한 이미지로
소비됩니다. 죄수들은 교도관들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해도 항거하지 못하고, 노튼 (교도소)소장에
의해 노동력을 착취당하기도 합니다. ... 브룩스는 자살을 선택하고 앤디는 호모들에 둘러싸여 갖은
수모와 고초를 당합니다. 선한 사람이 거대 권력에 항거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저항 의지를 내려놓고
자신의 불행을 슬프게 받아들일 때 사람들은 연민과 공포와 분노를 느낍니다. 악당을 쓰러뜨리는
권선징악은 우리에게 통쾌함을 주지만, 대부분 그 이상의 큰 감동과 울림은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감의 메시지>는 영화 속 인물들이 자신과(자신의 처지) 닮거나 혹은 자신의 주변에서도 한번쯤
있을법하다 생각되는 상황에서는 더 큰 호소력을 발휘합니다.

서지현 검사의 짧고 강렬했던 한마디! ~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라는 레토릭(Rhetoric)은
한국사회 미투 운동에 폭탄을 심어놓은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 발언이후 수많은 한국 여성들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했습니다. ... <잘못>이라는 물음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차원을 넘어 <여성 정체성과 젠더>의 무게로까지 증폭된 것입니다. 또한 <잘못>에 담긴 함의는
(피해)여성 입장에서는 과거 언젠가 분명히 존재했었던 절망과 분노의 시간이었으며, 피해 여성이
아니더라도 모든 여성에게는 미래 언젠가 어쩌면 존재할 수 있는(있을법한) <공감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레토릭(Rhetoric)과 플롯(Plot)이 만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는 공감의 메시지가 형성되면
이제는 이야기(공감)의 완성도를 위해 정교하게 깎고 다듬는 기술적 요소(도구)들이 필요해 집니다.
바로 <행동(액션Action)>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행동(Action)을 이야기의 아이디어(Idea)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실제로 그는 행동이 사람, 곧 인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반드시 행동에 관한 것이어야 하며, 행동은 실제 우리의
삶보다 더 거대할 뿐만 아니라 그 삶을 함께하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 (스토리텔링의 비밀. 23페이지/ 마이클 티어노/ 아우라 출판 ) ]

“여대생 수지는 사진작가가 꿈입니다. 하지만 가난해서 카메라를 살수가 없습니다.”
사진작가를 꿈꾸는 여대생 수지의 이야기가 하고 싶다면, 단순하게 <꿈꾸다>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꿈꾼다는 것은 <액션(Action)>이 아니기 때문인데 ... 그래서 이때 사진작가를 “꿈꾸는” 수지 대신에
<“카메라를 훔친 수지“>로 설정을 바꿔버린다면 이야기는 훨씬 더 흥미로워집니다. ... ‘꿈꾸다’는
그냥 수지의 현재 마음상태를 나타내지만 <훔쳤다!>는 바로 <행동(Action)>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속의 <액션(Action)>은 주인공의 처지(현재 마음상태)를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이렇게
단 하나의 “행동(훔쳤다)”만으로 상당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그러나 아직은 <행동(Action)>
하나만으로는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입니다.

[@ (수지이야기) – 가난한 여대생 수지는 사진작가가 되어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모두 담고 싶어 합니다. ... 연인들의 사랑과, 아이들의 미소, 이웃들의 나눔과
청년들의 열정, 지역의 축제 등을 카메라에 가득 담아서 모두에게 나눠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지는 평소 갖고 싶어 하던 분홍색 카메라를 훔칩니다. 하지만 카메라 가게
사장이자 젊은 사진작가였던 동욱에게 발각되고 철창신세를 져야할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동욱은 카메라를 수지에게 돌려주며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일주일 안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풍경을 담아오면 용서는 물론, 카메라까지
주겠다고 합니다. ... 일주일 후, 수지는 카메라에 자신의 영롱한 두 눈동자를 담아 동욱에게
내밀었습니다. ‘아름다움만’ 쫓다보면 세상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것들을 외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지는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동안 아름다움만 쫓고자 했던 자신의 두 눈이
바로 가장 어리석고 어두운 풍경이었다며 눈물을 흘리면서 고백합니다. 이후 수지와 동욱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이들의 사랑은 진짜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관객들에게 공감을 선물합니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수지의 꿈을 “훔치다”라는 극적인 <행동(Action)>으로 교체함으로써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발전시켰습니다. 결론적으로 스토리텔링에서 <행동(Action)>은 긴 서술을
대신해 현재의 상황을 압축하고 플롯을 정교하게 깎고 다듬어 우리에게 매우 강렬한 (공감)메시지를
전달하게 됩니다. [@ 수지 야야기는 제가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 이므로 유치해도 그냥 참으시길
바라며 ~ ㅎㅎ]

영화 쇼생크 탈출 초반부, 교도소 식당에서 주인공 앤디가 밥(죽)을 먹으려 할 때, 밥에서 애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 영화는 이 한 장면[행동(Action)]을 통해
긴 서술 없이 쇼생크 식당의 부실함과 당시의 낙후된 시대상을 매우 강렬하게 포착합니다. 그리고
그때 늙은 죄수 브룩스가 앤디에게 (벌레를)먹지 않을 거면 자신에게 애벌레를 줄 것을 부탁합니다.
앤디가 벌레를 건네자 브룩스는 카디건(cardigan) 안주머니 속에 있던 새끼 까마귀 ‘제이크’ 입속으로
벌레를 넣어줍니다. 만약 이 장면에서 벌레가 브룩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면 죄수의 <야만성>을
부각시켰겠지만, 새끼 까마귀 제이크의 입으로 들어감으로써 죄수(브룩스)는 최소한의 <공존>의식을
소유한 사람임을 관객들에게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영화(쇼생크 탈출)에서 <행동(Action)> 하나가 이야기에 얼마나 큰 아이디어(Idea)와 공감의 메시지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장면(Action)이 있습니다. ... 주인공 앤디는
교도소 방송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모차르트)>을 틉니다. ... 그러자
목공소에서 일하던 죄수들, 병상에 누워있던 죄수들, 운동장에서 햇볕을 쐬며 거닐던 수많은 죄수들은
오직 천상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단 한 곳만을 응시합니다. 영화는 이 압도적인 장면[행동(Action)]
하나로 당시 죄수들의 정서적 공백을 포착했고 그 순간만큼은 쇼생크라는 세상을 정지시켜 버립니다.

“나는 피해자입니다!” 라는 외침은 현재의 마음상태를 단조롭게 보여주지만,
<나도 당했다, 나도 고발한다!>는 미투 운동(#Me Too)은 외침 자체가 바로 “행동(Action)”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이글 처음으로 돌아가 서지현 검사의 진술내용을 다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 서지현 검사: 네, 맞습니다. 거기에 모 검찰 간부가 동석을 하였습니다.
제가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고요. 사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여전히 떠올리기는
굉장히 힘든 기억입니다. 옆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상당시간 동안 하였습니다.]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 라는 <행동(Action)>은 서지현 검사의 당시 심경이
어떠했는지를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여성들에게 아주 강렬하게 전달됩니다.[#공감메시지의 강화]

[@ (배우 오달수가 모텔에서) 더운데 좀 씻고 이렇게 하자고 하면서 옷을 벗겨주려고
이렇게 손을, 제 몸에 손을 대려고 했어요 - 연극배우 엄지영 Jtbc 인터뷰 中 ]

[@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의 전화 심리 상담을 받으려고 전화도 한 적도 있었고요. ~ (중략)
지사가 최근에 저를 밤에 불러서 미투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 미안하다, 너 그때 괜찮느냐,
그렇게 얘기를 해 주셨는데. 그래서 오늘은 ‘안 그러시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결국에는 또
그날도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 김지은 충남도 정무비서 Jtbc 인터뷰 中 ]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고, 옷을 벗겨주려고 하고, (정신과)심리 상담을 받고 ... 이렇게
구체성을 띤 <행동(Action)>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어도 결정적으로 “여성을 대상(피해자)으로 한다”는
공통된 맥락(‘여성’이라는 대표성)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또한 이런 패턴이 반복적으로
대중(여성)들에게 노출된다면 (공감)메시지의 힘은 무섭게 커질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이런
<행동(Action)>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플롯)의 완성도를 높여주면서 나머지 이야기들을 삭제하는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한마디로 이제 대중(여성)들의 뇌리에는 오직 허리와 엉덩이, 모텔, 키스,
노출, 정신과 상담 등의 자극적인 메시지만 각인되는데 ... 이것은 곧 다른 모든 (지루한)진술을
부재로 만드는 <판화>의 메시지 전달방식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미투 운동은 스스로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레토릭(Rhetoric)과
플롯(Plot) ... 여기에 행동(Action)이 가미됨으로써 나름의 힘의 기반(폭탄이 심어짐)을 갖게 되었고,
이후 미투 운동의 참여방식에도 일정한 형식(표준화)이 자생적, 암묵적으로 형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예비 (미투)참가자들은 운동 참가(폭로) 전에 자신이 어떤 행동(Action.구체적진술)을 해야 할지를
본인의 뇌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되뇌이며 시뮬레이션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쯤에서 저는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향후 미투 운동은 아무런 부작용 없이 지속적으로 힘의 크기를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미투 운동에 대해 중앙일보 사설(2018.3.10)에서
미투 운동을 ‘제2의 민주화 운동’이라 부르며 한 세기 이상 진행된 한국 여성해방 운동의
역사에서 지금이 가장 커다란 해가 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참고: (중앙일보) 미투는 ‘제2의 민주화 운동’ ~ ( 에이치ttp://news.joins.com/article/22428961 )

이나영 교수의 말대로라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미투 운동은 여성들에게 혁명적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입니다. 방향의 긍정성은 차치하고서라도 향후 한국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올 것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 하지만 <변화> 그 자체가 모두 긍정을
대변하는 수식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미투 운동이 혹시라도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 방향성에 대한
부분은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여성해방, 억압, 군림, 통제, 수직적 위계 등(기사내용)>과
같은 페미니즘이 주로 남성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미투 운동을 ‘시민혁명’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 미투 운동이 이 교수의 말처럼 과연 희망만을 도출할 수 있을까?]

미투 운동의 ‘순수성(진정성)’만 놓고 따져본다면 방향성은 분명 사회정의, 사회정화를 위해
힘차게 달려가는 것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운동의 본질을 훼손하는
여성단체(페미)들의 문제점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저는 글 첫머리에서
<변화의 급격성과 절대선(善)>의 문제를 거론한 바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투 운동이 반드시
경계해야할 부분입니다.

1. 미투 운동에 참여하면 사회 정의 실현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2. 미투 운동에 참여하면 여성 해방과 빼앗겼던 권리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경쟁과 수익)
3. 미투 운동에 참여하면 남성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우리가 올라설 수 있습니다.(권력)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함이듯, 또 민주시민운동이 국민들의 주권회복을
위함이듯, 미투 운동 또한 그 근본적 목적은 썩은 살을 도려내고 새살을 돋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운동을 관통하는 공통의 정신, 즉 정당한 권리 찾기와 주권회복, 그리고 새살을
돋게 하려는 의지는 바로 사회가 <정상성>을 되찾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최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미투 운동에 편승해 <너희(남성)들의 시대는 갔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우리들은 너희들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 같은 공격적 구호를 외치며 남성중심 사회의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사회의 정상성을 위함이 아니라 대립과 갈등만 양산하며 오히려
사회를 비정상성이라는 구렁텅이 속으로 더 깊게 빠뜨릴 것입니다. ... 결국 이들 (페미)단체는
미투 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하며 사회정의가 아닌 스스로가 <절대선(絕對善)>이 되기 위한
격렬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권력을 달라!”>의
공식적 선언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권력에 신성(神聖)이 부여되면 그것은 이제
종교가 된다는 점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총체적 현상의 배후에는 바로 <변화의 급격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에 따르면 ~
예전 국가들은 죄수들을 다룰 때(벌할 때) 주요 목적이 <복수>에 있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두들겨 패던지, 아니면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오늘날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죄수들을 때리지 않습니다. 대신 일(노동)을 시키고 세세한 교정 규칙을
만들어 착한사람(길들여진 인간)으로 만들려는 <교화(敎化)>에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입니다.
[@ 몸에 대한 권력(처벌)이 생산(노동)하는 권력으로 이동]

시위를 하는 군중에게 국가가 <반정부 시위자>라며 곤봉을 들고 두들겨 팬다면 시민들의 분노는
더 크게 끓어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폴리스라인을 준수하십시오!”, “도로교통법을 지키십시오!” 같은
일종의 섬세한 법의 기준(시위 기준)을 정해놓으면 시민들의 시위 강도는 약화됩니다. 시위의 본질
보다는 시위의 <기준>이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김대리는 한심한 놈이다”에는 크게 화를 내겠지만
“김대리는 사내 보고서 양식을 아직도 모른다” 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 법과 규칙이
섬세하면 섬세할수록 사람들에 대한 통제(길들이기)는 더 쉬워진다는 게 푸코의 주장입니다.

반면 지금의 미투 운동에서는 푸코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폭력이라는 행위가 ‘법(法)’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문화(도덕범주)’라는 좀 더 넓고 포괄적인
대중적(상위) 영역으로 흡수되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대상(남성)에 대한 공격이 한층 더 쉬워졌습니다.
총으로 개미를 쏘는 건 어렵지만 멧돼지나 코끼리는 쉽습니다. 맞혀야 할 타깃(target)이 한 눈에
확 들어올 만큼 비대해졌기 때문입니다.(@ 법이 아닌 성‘문화’의 문제)

따라서 실명이든, 익명이든 관계없이 본인이 피해자(?)임을 자처하며 과거 <성폭력 문화>가
만연하던 시절에 피해를 입었다고 폭로하면 이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게는 ‘법(무죄추정원칙)’의
효력적용이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이미 그의 행위는 죄의 성질이 아니라 <성폭력 문화>라는
도덕(문화)적 범주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는 모호성의 증대로 더 이상 법이 끼어들 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구잡이식으로 사냥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절대선(善)]
이는 푸코가 지적했던 국가가 죄수들을 다루던 교정 권력에 역행하는 수순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둘에게서 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동일하게 발견됩니다. ... 푸코는
법(기준)의 섬세함이 통제 권력을 낳는다고 했지만, 미투 운동은 법의 느슨함(도덕적 포괄성)이
통제 권력을 생산합니다. ... 오직 다른 점은 푸코의 권력은 중앙이 가지며, 미투 운동의 권력은
대중(여성)이 가진다는 점만 다를 뿐입니다. [@ 국가(중앙)라는 단독주체가 소유했던 심판(법)
권력이 대중(여성)으로 이동한 것인데 ... 저는 이것을 "마이너스 푸코현상" 이라고 명명하려 합니다.]

서두에서 얘기했듯, 미투 운동이 이렇게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실체)로서
법위에 군림(@ 혹은 법을 미투 운동의 부분집합으로 강등)하게 되면 이제 자신들 스스로가 만든
소위 <미투 법률(심판권력)>을 사용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마음대로 재판할수는 있어도
정작 자신들(미투운동)의 오류는 재판 받지 않는 <절대선(絕對善)>의 위치에 올라서게 됩니다.
절대선의 문제는 극좌와 극우 등 대개 극단의 끄트머리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그래서
절대선은 항상 (미투 운동의)상한을 넘어서게 됩니다.

모든 (정치)권력은 인간의 '정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배꼽아래 남성은 정신보다는 '몸(본능)'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병법서들이 “장수를 쏘지 말고, 말을 쏘라!”고 말하는 것은 오늘날 상대의
정신보다 신체(본능)를 먼저 공격하는 것이 승리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 현재 상당수
한국의 여성단체(페미)들이 미투운동에 적극적인 이유입니다. ... 하지만 미투 운동은 여자와 남자가
승패를 겨루는 대결이 아닙니다. 운동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가장 시급한 것은 미투 운동에
대한 합리적 담론 형성입니다. 실천적 대안을 마련하고 이후 사회 구석구석에, 생산된 담론과 대안이
잘 스며들 수 있도록 골고루 뿌려주는 것입니다. 또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역시나
<변화에 대한 급격성과 절대선>입니다.

달걀의 모양이 비대칭 타원인 이유는 종족 번식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달걀 껍질의 쉘 구조는 외부 충격을 내력(외부 힘에 저항하여 원형을 지키려는 힘)으로 바꿔
얇은 두께에서도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달걀을 굴려보면 직선이 아니라 원운동을 합니다.
미투 운동이 중간과정(담론과 대안마련)을 모두 생략한 채, 오직 개인과 집단(페미)의 사적이익을
위한 목적이라면 미투 운동의 방향성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영원히 원 운동만 하게 될 것입니다.
미투 운동은 자신들(페미)의 세력을 키우는(번식) 원운동이 아니라, 사회가 <정상성>을 되찾는
일종의 진보(進步)적 운동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추위에 떠는 고슴도치>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 얼어 죽지 않으려면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고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데, 상대의 가시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 지금 한국사회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추위에 떠는 고슴도치> 상태라 생각됩니다.

 
출처 http://cho0kyu.tistory.com/446






http://issuein.com/index.php?mid=index&page=2&document_srl=10528508&comment_srl=10536285&rnd=10536375#comment_10536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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