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예전에 동국대학에서 북한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근현대사 역사를 공부하다 중퇴하고 지금은 전공과 전혀 무관한 개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계에서도 북한 역사가 왜곡되거나 달라진 부분도 많고, 사실과 새로운 사실들등 새로운 사료,자료등도 공개되면서 북한 관련 역사도 수정되어 갔습니다. 저는 다행히 동창들이나 선,후배들이 현직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아서 모임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알수 있었고 저는 업그레이드 할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한국전쟁 전,후 사실을 진실 그대로 02편으로 나누어서 글을 올리게습니다. 내용이 길더라도 끝까지 정독 부탁드립니다.
총 02부편..
01편..
한국전쟁은 사실은 1년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 늙은이 이승만 : 1949년 초부터 주한미군이 슬슬 철수를 시작하자 이승만은 몹시 불안했다.
" 지금 미군을 철수할 때가 아닙네다."
이에대해 미군의 한 관계자가 " 소련군도 작년 12월에 모두 철수했다고요."
* 늙은이 이승만 : "이러다 빨갱이들이 쳐들어 오면 큰일납네다."
하지만 쉽게 말이 통하지 않았고 이럴 때 이승만이 생각해낸 것은 한반도 내의 위기감 조성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게 한국이라는 변방의 작은 나라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기 때문에
일반 미국인들 : " 코리아? 그런 나라도 있었나? "
이런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관심을 끌 수 없었다.
* 늙은이 이승만 : " 전쟁만 발생하면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 ! "
* 늙은이 이승만 : " 국군은 나의 명령을 기다리라 ! "
이런 식으로 공갈을 때리고 외신기자를 통해서도 널리 알렸다.
* 늙은이 이승만 : " 우리는 북한땅을 되찾을 것이며 북한 동포들은 우리들이 소탕할 것을 희망하고 있습네다. "
하지만 결과는 냉담했다. 미국은 당최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 늙은이 이승만 : " 좋아! 그렇담 다음 수가 있지. "
이번에는 좀 더 과격한 방법이었다.
38선 여기저기에서 국지적인 도발을 감행하게 된 것.
이런 무력 도발 역시 이전에는 없다가 1949년 초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전투싸우는 남한 국군,군인들: 쾅쾅쾅 " 대북 북괴군 초 소 몇개 부수고 돌아가자 !"
전선에서의 국지적인 도발은 훗날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주 써먹었던 고전적인 수법 중 하나다.
"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군사 무기를 얻어내려면 한반도에서 위기 상황이 필요했기 때문이지.! "
이승만은 트루먼 독트린이 실천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 양놈 트루먼 : " 앞으로 미국은 반공을 표방한 정부에 대해서는 경제적-군사적 원조를 아끼지 않을 것임. "
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고 결국 1949년 6월 미국은 완전 철수를 하게 된다.
그러자 절망한 이승만은 더욱더극단적으로 어필한다.
반공을 국시로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이승만 정권고 그 추종자들.. : &반민특위를 강제해산 시키고
&국회프락치 사건을 일으키고 정적이던 거물급 정치인 김구도 암살했다.
* 늙은이 이승만 : " 누가 친일파야? 반공투사라고 !
친일파 잡자는 넘들이 오히려 빨갱이들임 ! "
이승만 정권은 1. (보도연맹을 조직하고), 2. (학도호국단을 조직하고), 3. (우리의 맹세를 강제로 암송하게 하는 등) 대대적인 국가전시체제를 조성했다.
* 늙은이 이승만 : " 국민 모두가 반공으로 하나가 되라 ! "
여기에 38선에서는 연대급 병력까지 동원하며 도발을 감행하고 있었다.
북한조선인민군 : 콰 쾅쾅쾅쾅 ! 날래 퇴각하라우 !
미국에 " 반공 " 을 어필하고 한반도의 " 위기감 "을 조성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이승만을 두고 " 말썽꾼 " 혹은 " 전쟁 도발자 " 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각인시키고 있었다.
" 흔히 이승만을 가르켜 외교의 귀재라고 하지만 당시 이승만은 너무 나이를 먹은 탓인지.."
" 주변에 대한 관찰력과 판단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다고 하지. "
(참조글: **만 한국현대사 *책 1950년 1편 p32에서의 글..)
오히려 북한의 젊은 김일성을 자극하여 남침을 기획하고 실천하도록 만들었으니 이보다 더 큰 자충수도 없었다.
" 사실 북한은 1949년부터 시작된 이승만의 도발이 있기까지.."
" 전쟁이 아닌 남한 내 비밀조직과 빨치산 활동을 통한 내부 붕괴 방식에 더 초점을 두고 있었음."
( 김성* 外 북한현대사 p.89) 참조..
*** 사라진 빨치산과 남로당 비밀조직
남한 내 빨치산은 1948년 10월 여순사건을 계기로 죄익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면서 그 역사는 시작된다.
북한에서는 처음엔 그저 관망했다.
* 빨갱이 두목 김일성 : " 알아서들 민중봉기 하갔디 뭐 ! "
하지만 이듬해 이승만의 도발이 거세지자 통일 전략을 전면 수정하게 되었고
1949년 5월부터 지리산으로 지도자를 파견하고 직접 빨치산 부대를 내려보내는 등
남한 내 빨치산들과 연계를 강화하게 된다. 이때 지리산에는 빨치산 아지트 라고 많이 세워졌다고 한다.
북한 정권 및 관련자들은 " 조만간 조국해방전쟁이 있을테니깐 그때까지 제 2전선을 잘 구축해서 후방을 교란하라우 ! "
이런 목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10월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에 나섰고
(참고로 이때 지리산에는 팻말들이 많았는데 팻말들이 꽃인데는 " 이지역은 게릴라가 소탕됐으므로 안심해도 좋다." 라는 의미로 꽃혀 있었다고 한다.)
그로인해 대부분의 빨치산들이 소탕되게 된다.
(당시 자료에서는 1949년 12월의 전국의 빨치산 현황은 : 총 760명이라고 되어있다.)
" 애초에 구빨치 수는 많지가 않았음."
( 한국전쟁 이전의 빨치산을 구빨치, 한국전쟁 이후를 신빨치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남로당 지하세력들이 대거 와해됐다.
여기에는 회유책이 주효했다.
" 자수기간 내에 자수하면 용서해준다."
그랬더니 전국에 숨어있는 남로당원들이 1949년 11월에 대거 자수했던 것이다.
이때 정부는 총 4만여 명의 남로당원들을 진짜로 용서해줬다.
" 물론 자수한 사람들은 보도연맹에 가입되야 했기 때문에 "
" 이들 중 상당수는,다들 아시겠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사하기 어려웠을테지만.."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들의 처형 장면의 사진들이나 목격건들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자수기간이 지난 12월 이후로는 얄짤 없었다.
걸리면 무조건 감옥행이었고
이들 중 많은 이들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치범이라는 죄목으로 사살되게 된다.
그렇게 1949년 말이 되면 전국적인 빨치산 소탕, 남로당 색출로 인해 남한 내
좌익조직들은 거의 소멸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의외로 박헌영과 김일성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이 화가 나서 박헌영한테 따진 유명한 일화가 있다.
* 빨갱이 두목 김일성 : 박헌영한테 술병을 집어던지며 " 전쟁이 나면 봉기한다던 20만 명 남로당원들은 다 어디갔음매? "
* 쫄보 빨갱이 박헌영 : 음 " ... "
사실 이때 김일성이 박헌영 주장을 거부하다가 결국 박헌영의 말을 받아들여 서울점령지에서 3일간 멈춰서 그렇지,,만약 이때 김일성 생각대로 밀고 나갔다면, 만약 그랬다면,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든 뭐든, 우리 대한민국은 꿀꺽.. 으.. 소름이 끼침...
& 1949년 3월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
1990년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되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문서들이 대거
공개가 되어 당시 우리는 냉전시대를 살면서 배워왔던 많은 정보들을 대폭 수정하지 않으면 안됐다.
가장 이슈가 되었던 문서는 1994년 옐친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한
2,000 페이지 상당의 한국전쟁 관련 비밀문서였다.
흔히 ' 옐친문서 ' 라고 부르는데 핵심적인 내용만 발췌하자면 이렇다.
먼저 1949년 3월 김일성과 박헌영이 스탈린을 만나고 있던 때다.
* 빨갱이 두목 김일성 : " 요즘 남조선 반동세력들의 도발이 점점 격해지고 있슴메다."
* 빨갱이 두목 김일성 : " 우리도 육군은 있지만 해군은 전무함메다. 지원 좀 해주시라요."
* 빨갱이 대마왕 스탈린 : " 남조선에는 군대가 있습니까? "
* 빨갱이 두목 김일성 : " 있슴메다. 약 6만 명입메다."
* 빨갱이 대마왕 스탈린 : " 혹시 경찰을 포함한 겁니까? "
* 빨갱이 두목 김일성 : " 아임메다. 정규군 숫자입메다."
* 빨갱이 대마왕 스탈린 : " ( 웃으며 ) 걔내들이 두렵습니까?"
* 빨갱이 두목 김일성 : " 기건 아임메다. 하지만 해군을 갖고 싶슴메다."
* 빨갱이 대마왕 스탈린 : " 지금 어느 쪽 군대가 더 강합니까? "
* 쫄보 빨갱이 박헌영 : " 우리 군대가 더 강합니다."
* 빨갱이 대마왕 스탈린 : " 해군 창설을 지원해주죠. 군용기도 주고.."
* 빨갱이 대마왕 스탈린 : " 혹시 남조선군 내부에 당신 사람들이 침투해 있습니까? "
* 쫄보 빨갱이 박헌영 : " 있긴 하지만, 모두 하위계급이라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
* 빨갱이 대마왕 스탈린 : " 잘한 일입니다. 지금은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됩니다. 남조선도 북에 첩자를 보냈을겁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
* 빨갱이 대마왕 스탈린 : " 요즘 38도선 사정은 어떤가요? 남조선군이
침범해온다던데 사실인가요? "
* 빨갱이 두목 김일성 : " 남조선군이 초소를 공격해서리 우리 군인들이 많이 피해를 당했슴메다. 요즘 그런 도발이 부쩍 많아지고 있습메다."
* 빨갱이 두목 김일성 : " 우리가 남침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으면 함메다.
지금 남조선에는 내부에는 강력한 빨치산 부대가 지원을 기다리고 있습메다."
* 빨갱이 대마왕 스탈린 : " 지금 남침은 불가합니다. 남조선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 빨갱이 두목 김일성 : " 기카면 가까운 장래에 통일의 기회는 없게 됨메다. "
* 빨갱이 대마왕 스탈린 : " 적들이 만약 침략한다면 그때를 노려서 반격하세요. 그때가 되면 우리도 지원을 하겠소."
& 급속도로 달라진 정세 ( 1949년 하반기 )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스크바를 다녀온 이후 상황은 신기할 정도로 북한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다.
!!! 크게 5가지 요인이 있었다.
1. 먼저 1949년 6월 미군이 한반도에서 완전 철수하게 되었다.
북한으로서는 남침의 장애물이 사라진 셈이었지만 불안해진 이승만은 북침을 하겠다는 공갈포가 늘어나고 38선 부근에서의 지엽적인 도발에 더욱 열을 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