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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버티고 살아간다
게시물ID : lovestory_849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리게요정
추천 : 3
조회수 : 4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3/22 20: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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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고픈 시절은

지친 골목길에 

수명이 다해 깜박거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

이제는 사라진 노량진역 육교 그늘에

공덕동 시장골목 막걸리 주전자 뒷편에

무던히도 부딪혀야하는 강남역 11번출구 지하계단 한켠에

어제 만났던 그 사람처럼 서있다



달콤한 그날이 언제인지 아시나요?



길가는 당신에게 수천번이고 수만번이고 묻고 싶지만

되려 두려워 물을수가 없었다

뭐가 그리 두렵냐하니

달콤한 날이란 것은 

가질 수 없는 헛된것이라 답할까 두렵다했다

빈 지갑을 가진 남자의 앞을 가로막은 쇼윈도 뒷편의 갓구운 빵처럼 말이다



고달픈 고픔은 어찌 참아내야할까


냉수 한잔도 사치스러워

먼지 가득한 들숨으로 공허한 포식을 즐긴다




 



 허기진 하루가 만든 공복이 그리 고프지 않았다


씁쓸한 웃음으로 너의 물음에 홀로 답해본다.


너와 술 한잔을 기울이는 이 삶이 고팠다고








어찌 흘러간 삶이었는지 기억은 나지만 어찌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인지는 지금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스물 여덟에 졸업해 그토록 자부심 느끼던 건축설계전공을 버리고 얼마간의 돈을 더 벌어보겠다며 건설이나 영업직 취업을 준비하였으나, 나는 그저 이정도일 뿐인것만을 알게되었다.

달콤한 유혹에 선배의 컴퓨터 학원 창업을 도왔으나, 이 또한 나의 것은 아니란것만을 깨닫는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또다른 선배 덕분에 또는 때문에 창업이란 것을 시작하게 되었었다.


학생시절에도 그리 풍족한 하루들은 아니었으나 이때부터 꽤나 고프게 살게된것 같다.

시작 뒤에 시작의 다음이 아닌 또다른 시작만이 계속되니 나가는 것만 있고 들어올 것이 없었다. 그저 버텨나가야만 했다. 


살기위한 일이란 걸 알게된것도 이때부터였다.


사무실하나 차리겠답시고 재건축이 예정된 무허가건물 1층 15평 공간에 월세 25만원을 내고 들어앉았다. 월 15만원짜리 반지하 월세방에서 폐병걸려 쫒기듯 나와 들어앉은 곳이지만, 보다 나은 열악함일 뿐이었고 결국 먹고 자는 것은 친구집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도 의무적으로 내야할 돈이다보니 무엇이든 해야했다.


이때 했었던 일이 '수산물센터'와 '우유배달'이었다.


나름 사업을 하겠다고, 사업을 하기 위한 일이라 스스로를 위안하고 넘치는 자부심으로 버티어냈던 슬픈 날들.


수산물센터는 새벽 4시부터 아침 9시나 10시까지 일을했다. 사업이란걸 하려면 사업은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해야했고, 그 일을 유지하기 위한 돈벌이는 밤이나 새벽에 해야했다.

그곳은 회를 팔고하는 수산물센터가 아니라 수협에서 임대하는 수조 창고였는데 그곳에서 고무바지를 입고 수조에서 출하할 양식광어를 빼내고, 상자에 담고, 그 상자를 나르고, 수조를 청소하는 그런 일이었다.

이따금씩 두바이 등지의 해외로 출하해야할 상품들이 있었는데, 국내는 보통은 비닐에 물을 채워 활어상태로 넣어두고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테이핑을해서 내보내지만 해외출하의 경우에는 광어의 피를 빼내고 얼음을 박스에 채워 보내야했다. 

동이 틀 무렵 내 허리높이의 고무 다라이 십여개에는 수백마리의 광어들이 나뉘어 담겨있고 하나씩 바닥에 쏟아 붙는데, 나는 식칼을 들고 광어의 아가미 옆쪽을 찔러댔다. 한통 한통씩 수백마리의 물고기들을. 그 모두가 피를 개운하게 쏟아낼 때까지.

하루를 깨우는 영광스러운 태양은 세상을 비추는데 나의 세상은 그 넓은 수조창고의 바닥을 가득 채우도록 시뻘겋게 피로 물들여져 있었다.


내리는 눈이 녹을새도 없이 한층 더 얼어붙던 겨울 날. 칼날 같은 바람이 눈과 함께 몰아치던 그날의 기억들.

쓰린맘조차도 옥죄어 버리던 차가운 수조의 물의 감촉은 겨울이 다가올적마다, 겨울같은 고달픔이 찾아올적마다 소름끼치게 되뇌어져온다.


그렇게 고달픈 삶을 알았다. 고픈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처량한지 알고 있다.

수조의 차가움 이후에도 쓸개빠진 놈처럼 자존심이란 것은 삶에서 중요하지가 않았다. 

나는 딸각발이가 아니었고, 배고픔을 두려워하는 버려진 들개일 뿐이었다.


갯벌에서 깊은 바다로 걸음을 옮기듯 그 수렁은 쉽사리 벗어나 지지않을 것만 같고 돌아갈 수 없는 절망으로 빠져드는 것만같았다. 그러다보니 삶을 그만두는 데에 관대해지고 떠나감 인색함이 없는 퀭함이 따라다녔다.


허나, 그렇게 바닥이 드러나니 작은 달콤함에 쉽게도 취해버려 미련이란 것도 쉽게만 커져가더라. 

한잔의 술이 세상이 되고, 사랑한다는 당신의 농담마져도 내 삶을 이끄는 신이 되어주더라.

삶이란게 그렇게 쉬워진다. 약에 취해 살아가듯 술 한잔 반 농담 한잔으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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