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이 블랙하우스에 대한 소감문을 프레시안에 남겼습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90252
이 소감문의 핵심은 ‘정적정 전술’, 즉 정봉주의 적은 정봉주 자신임을 보이는 전술입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목표는 이 전술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다음 단계를 거쳐 이 목표를 달성합니다. 먼저 주요 용어들의 의미를 규정합니다(A). 다음으로 진중권이 정적정 전술을 이용해 어떻게 정봉주를 공격하는지 정리합니다(B). 마지막으로 이 전술의 한계를 보입니다. 이 전술을 쓰기 위해 요구되는 두 개의 조건이 있는데 진중권은 이 중 하나에만 신경을 쓰고 다른 하나는 시야에서 놓치며 이로써 이 전술이 한계를 갖습니다(C).
(A) 먼저 저는 주요 용어들의 의미를 규정합니다.
정봉주 원칙 : 성범죄의 가해자로 지목된 자는 범죄의 증거가 없더라도 피해자라 주장하는 자의 증언에 일관성, 구체성, 신빙성이 있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
이 원칙은 180227 채널 A 외부자들에서 정봉주가 제안한 것으로, 진중권이 자신의 소감문에 다음처럼 인용하고 있습니다. “성범죄는 뇌물죄와 비슷하다. 증거가 없다. 그래서 철저하게 본인(피해자)의 증언, 혹은 제3자의 증언에 근거해 처벌할 수 있다. 피해자의 진술의 일관성, 구체성, 신빙성이 있으면 처벌할 수 있다.”
정적정 전술 : 정봉주의 적이 정봉주임을 보이는 전술
즉 자승자박(自繩自縛) 전술입니다. ‘박적박’이 원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글에서 정적정 전술은 현재 정봉주의 증거를 강조하는 태도가 과거에 제시된 정봉주 원칙 즉 ‘증거 없는 증언도 존중하라’에 위배됨을 지적하는 전술을 가리킵니다.
(B) 다음으로 저는 진중권이 정적정 전술을 이용해 어떻게 정봉주를 공격하는지 정리합니다. 진중권은 자신이 안젤라 진술의 일관성, 구체성, 신빙성을 보이기만 한다면 이 전술이 성공하고 따라서 현재의 정봉주는 과거의 정봉주에 의해 패배를 선고받게 된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중권이 저 세 요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일관성 : <아무튼 정봉주가 제 입으로 한 얘기를 뒤집고, 거짓말로 애먼 사람 유령 만들고, 사진 780장 들고 타짜 행세하는 상황에서,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이가 있다. 바로 피해여성 A 씨다. 성추행이 일어난 시기는 12월 23일 오후. 장소는 렉싱턴호텔 카페 룸.>
② 구체성 : <묘사도 '구체적'이다. 창문이 없고 하얀 테이블이 있는 방. 문간에는 옷걸이. "준비하는 게 어느 언론사냐?" "성형수술 시켜줄 수 있다." "졸업도 축하해 주려고 했는데.">
③ 신빙성 : <'신빙성'도 있다. 당시에 남자친구에게 보낸 메일이 증거로 남아 있고, 복수의 친구들이 증인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증거를 조작하러 7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 현대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이로부터 진중권은 정적정 전술의 성공, 그리고 그 귀결로서 정봉주의 패배를 확신하기에 이르게 되어 다음처럼 말합니다. “내가 바쁜 시간 쪼개서 그의 신도들에게 온갖 쌍욕 먹어가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실은 그날 정봉주 전 의원의 이 발언 [정봉주 원칙] 에 깊이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 정봉주 자신이 제시한 기준 [정봉주 원칙] 에 따르면 이 정도 증거와 증언이면 법정에서 빼도 박도 못 한다. 정봉주 본인도 이를 안다.”
(C) 마지막으로 저는 이 전술의 한계를 보입니다. 이 전술을 쓰기 위해 요구되는 두 개의 조건이 있는데 진중권은 이 중 하나에만 신경을 쓰고 다른 하나는 시야에서 놓치며 이로써 이 전술이 한계를 갖습니다. 물론 진중권이 일관성, 구체성, 신빙성의 근거로 제시한 것들을 각개 격파하는 것도 그를 논박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상당한 노가다를 요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반면 상기한 방법은 쉽고 동시에 결정적입니다. 진중권은 정봉주 원칙이 요구하는 것이 ‘피해자를 자처하는 자의 증언의 일관성, 구체성, 신빙성’ 이거 하나밖에 없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 더 있습니다. ‘제보자가 묘사한 행위를 성범죄로 해석하는 데 거의 이견이 없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봉주 원칙이 ‘증거 없는 증언도 존중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종류의 성적 트러블에 대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 인용한 것을 다시 보겠습니다.
“성범죄는 뇌물죄와 비슷하다. 증거가 없다. 그래서 철저하게 본인(피해자)의 증언, 혹은 제3자의 증언에 근거해 처벌할 수 있다. 피해자의 진술의 일관성, 구체성, 신빙성이 있으면 처벌할 수 있다”.
“성범죄”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봉주 원칙을 적용하는 데 있어 분명한 제약 사항이 있습니다. 이 원칙은 오직 성범죄로 해석가능한 성적 트러블의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진중권은 안젤라 사례가 증언의 일관성, 구체성, 신빙성 조건을 만족하는지는 나름대로 열심히 검토를 했지만, 이 사례가 또한 성범죄 제약 사항도 만족하는지는 전혀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 검토해보면 바로 알게 될 것인데, 안젤라 사례는 이 제약사항의 만족과 거리가 멀고 따라서 이 사례는 정봉주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가 아닙니다. 안젤라가 묘사한 행위는 주진우 기자가 잘 표현했듯이 ‘뽀뽀 미수’입니다. 뽀뽀미수는 성범죄인가요? ‘뽀뽀미수는 성범죄이다’는 ‘하늘이 파랗다’처럼 하늘을 관찰하면 바로 그 진위가 결정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뽀뽀미수를 아무리 관찰해봐도 거기서 성범죄라는 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또한 이런 문제는 전문가의 개입으로 판가름 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시민들의 도덕적 직관에 의해 결정되는 종류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 진중권, 프레시안, 한겨레 등이 다른 시민들에 비해 어떤 비교 우위도 갖지 않습니다. 즉 이런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 오직 그들만 갖는 어떤 전문성이나 권위 같은 거 없습니다. 이들은 아마 뽀뽀미수가 성범죄라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 인터넷상에서 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네티즌들이 이번 뽀뽀미수를 성범죄로 보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오직 건강한 시민의 도덕적 직관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때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요? (민병두 사례에서도 뉴스타파와 네티즌들 간 비슷한 의견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안젤라 사례는 성범죄 제약 사항의 만족과는 거리가 멀다고 봐야 하고, 따라서 안젤라 사례에 정봉주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데, 진중권의 정적정 전술은 안젤라 사례에 정봉주 원칙이 적용된다는 가정에 의존하므로, 이번 블랙하우스 소감문에서 진중권이 사용한 전술은 실패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가 바쁜 시간 쪼개가며, 그리고 온갖 쌍욕을 들어가며 이 소감문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 정적정 전술에 대한 확신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그는 이번에 아무 소득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욕만 먹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