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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증-
두희야.
난 놈이 속한 바른새자유당에 당원이다.
네가 살아있던 시대에 비하면 훨씬 정당가입이 편해졌지.
당사니 지부라는 곳을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되니까.
요새는 네 시대에는 없던 인터넷이라는게 있거든.
평소에 이용하는 PC방에 가서 당원신청서를 작성했지.
몇 가지 간단한 기본사항을 입력한 뒤 출력해서 우편으로 신청서를 보냈다.
우편을 보내는데 젊은 우체국 직원이 풋하고 웃는다.
-여기 미친사람 한명 더 추가요!
말은 안 했지만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무렴 어떠냐.
뜻을 이루는데 그깟 비웃음이나 조롱쯤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두희야. 사실 이건 너한테 배운거야.
네가 한국독립당의 대표인 김구 선생를 암살한 것처럼
나도 바른새자유당에 가입을 한 거지.
이런걸 눈에는 눈이라고 하나?
-한독당 당원 안두희가. 같은 한독당의 수장 김구를 죽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스토리 아니야?
-왜 죽였나?
-같은 당원으로써 도저히 지금까지 김구 선생의 파행을 눈뜨고 봐 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민족의 미래를 위해 죽였다.
물론
두희,
너의 암살이 성공한지 반세기도 훨씬 지난 지금도
너의 공범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 말이지.
아무렴 어때. 경찰이건 검찰이건 심문을 하면 나도 이렇게 말하려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그분이 적들의 모함탓에
그분께서 치욕 속에서 사시는 것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제 손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거사가 성공한 이후의 정치적 파장?
그런건 나도 모른다.관심도 없고.
누군가 자신의 일에 장애가 되는 경우에는
누구든 내 배후인물로 몰 수도 있겠고,
아마도 그럴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내가 누군가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는 그 즉시 석방되거나, 단번에 민족의 영웅으로 둔갑하겠지.
그렇게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필요한 때만 요긴하게 불러서 써 먹다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놈이 언제나 자신들의 하인들에게 그러했듯이
저만 쏙 빠져서는 발을 빼겠지.
-나는 죄가 없다. 하인들이 나쁘다.
두희야. 그래도 다행인게 하나 있다.
난 이미 큰병에 걸려있다.
뭔가를 내게서 빨아먹으려 해 봐야
내 삶 자체가 얼마남지 않았다는거지.
게다가 내가 이 나이에 돈을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으며
원래부터 없는 명예를 빼앗아 봐야 얼마나 빼앗을 수 있겠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진 이 정신만은 놈들이 빼앗을 수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여하튼
나도 빳빳한 당원증을 가지고 있으니
당비만 꼬박꼬박 내면 어지간한 당내행사에는 다 참가할 수 있다.
너무너무 기분이 좋다.
뭐. 놈이 행사장에 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
말 그대로
두희, 너처럼 당원증은 폼으로 만들었으니까,
놈에게 몸도 마음도 다 바쳤다는 가짜증거.
여튼
일단 시작하기로 했으니 끝은 봐야겠지?
앞으로는 더 열심히 바른새자유당에서 하는
모든 집회와 활동에 최대한 참가할 생각이다.
놈들이 잊을만하면 꺼내드는 보여주기식 관제데모도 대환영이다.
한번은
전당대회 참가요청이 있어 나갔더니
태극기 시위때처럼 슬쩍 용돈까지 쥐어주더라.
-꼭 이번 지도부 선출에 우리 OO의원님을 밀으셔야합니다. XX의원이 아니라.
그 놈 알고보면 생 양아치에요. 선생님도 아시죠?
-예,예. 알고있죠. 마땅히 그래야죠.
암살을 하려고 계획적으로 입당한 사람에게
용돈까지 쥐어주다니!
여하튼 용돈은 잘썻다.
그 돈으로 간만에 고기에 술까지 푸짐하게 먹었다.
두희야.
너도 암살 전날에 뭘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큰 일을 하려면 일단 속이 든든해야하지 않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