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미투 칼럼 읽다가 기가 차서, 문단마다 주석을 달아 보았습니다. 편의상 반말도 섞여 있습니다.
180325 한겨레 칼럼, [편집국에서] 나에게 미투는… / 이재명 디지털 에디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7589.html
에디터 직책을 맡은 뒤 첫번째 다짐은 부서원들과 평등하게 격의없이 소통하자는 것이었다. 얼마 뒤 동료들에게 “부서 운영의 책임자지만 저 역시 구성원 중 한명입니다. 그러니 제 의견을 ‘지시’가 아닌 ‘여러 생각 중 하나’로 받아들여줬으면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제목이나 사진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어때?”라는 나의 의견 제시는 대개 “바꾸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졌다.
[나 : 상급자의 권력의 예기치 않은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나. 잘 포착했네]
가끔 “점심 약속 없으면 같이 식사할까?”라는 권유마저 더러는 거절할 명분이 없어서 함께했다는 걸 눈치채기도 했다. 떡볶이를 선호한 여성 후배는 순댓국을 먹자는 내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하지 못했다. 권력관계의 불균형, 비대칭성은 결코 내 생각을 ‘대등한 여러 의견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권한이나 특권은, 그것을 가진 이에게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 : 계속해서, 상급자의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는구나. 그래 맞아 실제로 이런 일이 자주 생기지]
미투는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에서 촉발되긴 했으나 본질적으로는 남성이 태생적 기득권자로 존재하는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냈다. 성적 대상화와 차별을 공기처럼 체감하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지금까지는 물론 어쩌면 영원히 그런 현실을 모를 수도 있다. 이런 무지 탓에 나도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긴장과 두려움이 말과 행동을 움츠러들게 한다. 주변 남성들도 지금 자신의 규범이나 행동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경계 안에 있는지를 두고 혼란을 겪고 있다.
[나 : 아니, 직장 상사의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남성이 태생적 기득권자로 존재하는 가부장 사회”라는 추상적인 이야기로 비약을 하는 거야? 이런 비약 없이도 상급자의 권력 개념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는데? 왜 굳이, 본인도 설명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이야기를 끌어들이지?]
나에게 미투는 정치적 올바름이 내포한 이중성을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미투의 대상이 된 이들 중엔 평소 인간의 존엄과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차별이나 편견과는 거리가 먼 언어를 써오던 유명인이 많다. 덕분에 이들은 권력을 앞세워 저질렀던 밤의 악행을 오랫동안 은폐하고 아침이 되면 완벽한 여성주의자, 평등주의자로 변신할 수 있었다. 안희정 전 지사가 “미투를 지지한다”고 외치던 모습은 이명박 전 대통령 집안의 가훈이 ‘정직’이라는 사실만큼이나 위선적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되레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드러내는 데 장애물’이 된 셈이다.
[나 : 안희정 사례도 상급자의 권력이 작용한 것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사례인데? 따라서 남성이 “태생적 기득권자”라는 등의 이야기 굳이 꺼낼 필요는 없었는데?]
‘여성의 몸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는 사회는 법·제도와 같은 거시적 수단만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음도 깨닫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양성평등 시스템을 갖춘 스웨덴에서 벌어진 ‘미투 쓰나미’가 이를 보여준다. 장관의 절반, 국회의원의 40%가 여성인 스웨덴은 ‘페미니스트 정부’를 자처한다. 그러나 미시 권력이 지배하는 일상에는 여전히 남자들의 패권이 구석구석 스며 있었다. 지난해 가을 발화한 미투운동을 통해 정치·언론·문화 분야 등에서 지금까지 스웨덴 유력인사 40여명의 추악한 성범죄 행위가 폭로됐다. 엄청난 충격에 빠진 스웨덴인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는 건, 그동안 추진해온 양성평등 정책이 뒤늦게나마 여성들이 두려움 없이 미투에 나서게 한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나 : 찾아보니까 스웨덴의 사례들도 주로, 동종 업계 내의 권력 관계에서 생긴 사건들인데? 가부장 사회의 남성의 태생적 권력이니, 미시 권력이 지배하는 일상에서 남자들의 패권이니 하는 추상적인 따라서 당신도 설명하기 벅찬 개념들을 굳이 동원할 필요가 없는데? 다음 내용 참고. “지난해 거물급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에 대한 할리우드 배우들의 릴레이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을 본 W는 이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가해자의 이름 옆에 “X가 내게 약물을 먹이고 강간했다”라고 쓴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피해자는 W만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X에게 당한 여러 명의 여성도 비슷한 내용의 고백을 올렸다. 나쁜 인간은 X만이 아니었다.곧 스웨덴의 유명 예술가, 언론인 등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글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위원도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주로 일로 연관되어 있었다. 가해자는 주로 자신의 지위와 권력, 영향력을 이용해 여성을 희롱하고 폭행했다. 피해자들은 여러 방식으로 조직 내에 이를 알렸지만,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출처 : 180220 슬로우 뉴스, 안전지대는 없었다: 지금 스웨덴은 미투 ‘혁명’ 중 – 오현아 :http://slownews.kr/68264) ]
미투 운동의 향방을 예측하긴 어렵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냉소도 있지만 적어도 시곗바늘이 미투 이전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한 건 미투가 남성패권적 공동체에 대한 깊은 불신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만의 외로운 투쟁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편견의 안경을 벗고 진심 어린 호기심으로 남성 바깥의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난 남성과 여성이 대등하게 공존하는 총천연색의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없었던 가부장 사회 안에서 자라왔다. 그건 적어도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듣지 않는 건 내 잘못이다. 무지가 면죄부를 주던 시대는 끝났기 때문이다.
[나 : 최대한 당신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이야기하자면, 가부장 사회, 남성의 태생적 기득권, 남성패권적 공동체...뭐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권력 구조이고, 업무상 권력 관계는 여기에 기초하고 있다 뭐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대충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긴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초하고 있는지 당신 설명할 자신 있습니까, 없죠? 그럼 먼저 관련 내용을 공부한 다음에 쓰든가 하세요. 그리고 사실은 굳이 공부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부장 권력과 업무상 권력이 토대와 표면의 관계를 맺고 있는지 몰라도, 이건 학자들이 연구하면 되는 거고, 어차피 실무적으로 사용할 기준은 표면적이고 구체적인 것, 가령 업무상 권력 같은 것이니까요. 당신이 언급한 안희정 사례, 스웨덴의 사례들 판단할 때도 업무상 권력 개념으로 충분하고요. 그럼에도 쓸데없이 ‘가부장 사회’이니, ‘태생적 기득권’이니, ‘미시 권력’이니 하는, 독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그리고 당신들도 잘 모르는 개념들을 끌어들이니까, 당신들의 미투 개념에 혼돈이 생기고, 그래서 당신들 눈에는 민병두 건이든 정봉주 건이든 죄다 미투로 보이는 거 아닙니까. 제 정신이 박힌 기자라면, 민병두나 정봉주 건이 미투임을 주장할 때, 근거랍시고 저런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지껄일 것이 아니라, 국내나 해외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례가 미투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인정되게 만드는 구체적인 기준들이 무엇인지 취재해서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물론 암만 찾아봐도 그런 사례는 없겠지만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똥 폼 좀 그만 잡고, 알아들을 수 있게 구체적으로 좀 쓰세요 ㅆ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