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간다. 지인이나 애인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의 장소로, 약속된 만남을 위한 준비의 장소로, 개인의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하지만 나는 이들과는 약간 다른 이유로 카페에 간다. 표면적으로는 혼자서 노트북을 들고 공부나 잔업을 하는 것처럼 꾸몄지만 오직 나만의 이유로 나는 카페에 간다. 처음 카페에 가게 된 것은 여름 때문이었다. 여태 십여년의 세월을 에어컨 없이 살아왔는데 유독 그 여름에는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것도 계기랄까? 아마 내 안의 히키코모리의 한계가 멜팅아웃 되버린 게 아닌가 싶다. 그 여름에 나는 가장 싸게 더위를 피할 생각으로 에어콘 바람이 가득 찬 곳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여태 히키코모리로 생활했던 나는 혼자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이 너무 버거웠다. 사람들의 시선과 말소리가 온 몸의 털이 송연하게 하고 소름끼치에 긴장되어 땀구멍에서 식은 땀이 나고 심하면 놀이기구를 탄 것 처럼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 어지럽고 현기증이 났다. 하지만 더위는 어차피 죽어가고 있는 나를 뜨거운 냄비에 담군듯 고통을 줬고 그 고통 떄문에 인터넷을 하지 못해 죽을 것 같았다. 하일없이 '제발 나를 좀 살려줘.'라는 심정으로 찾은 카페의 서늘한 에어컨 바람은 가슴에 난 상처 틈새로 흘러나오는 내적 갈등까지 차갑게 식혀줬다. 안면 없는 사람들과 낯선 장소로 인해 날카로워진 신경은 빈자리가 있는 카페를 찾아 돌아다니는 동안 더위라는 용광로에 녹아 단단하지 못했다. 있을 장소를 찾기 위해 내리 쬐는 볕을 등지고 걸어다녀 상의에 여기저기 땀에 젖은 흔적이 보일 때 쯤에 겨우 찾은 빈 자리는 평생 갈구해온 내가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행복한 환상향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에어컨 바람에 한 동안 넋나간듯 멍하니 행복감에 젖어 있다가 다시금 나 자산을 자각하게 될 때면 노트북에 시각과 청각을 가둬 외부와 나를 분리시킨다. 이러면 오래 버틸 수 있다. 속으로 '이러면 오래 버틸 수 있다. 좋아!!' 라고 쾌재를 부르며 말이다. 겨우 더위를 피할 수 있게 되어 제대로 뭔가 즐겨 볼만한 상태가 되니 인터넷을 하는 즐거움이 다시 느껴졌다. 35도가 넘어가는 실내에서 하는 기분과는 천지차이! 그야말로 압도적인 환경의 차이! 마치 십여kg의 배낭을 등에 메고 등산을 하며 인터넷을 하는 것과 차에 타고 해변의 도로를 달리며 인터넷을 하는 수준의 차이...? 아니 좀더 경험에 비유하자면 집에 부모님이 계시는 주말에 혼자 문 잠그고 거실로 나가질 못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고픈 상태에서 인터넷 하는 것과 새벽에 몰래 거실에 나가서 밥과 반찬을 잔뜩 챙겨 방에 들어와서 먹으면 인터넷을 하는 차이이다. 그야말로 행복, 압도적인 행복. 다만 주변의 시끄러운 잡담 소리에 섞인 웃음 소리가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아머팩을 잔뜩 먹은 게임 캐릭터처럼 나는 에어컨의 바람과 노트북의 화면 그리고 소리로 스스로를 단단히 무장시켰던 것이다. 옛 우화 중에 태양과 구름이 여행자의 옷을 벗기는 경쟁을 하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구름은 비와 바람으로 여행자의 옷을 강제로 벗겨내려고 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양이 미칠듯한 더위로 여행자를 괴롭히자 더위에 지친 여행자가 옷을 벗어, 태양이 구름을 이기는 이야기. 그 해 여름 내내 더위를 피해 쉴 곳을 찾아다닌 나는 세상을 피해 존재할 곳을 찾아다녔던 히키코모리인 나와 같았고, 오직 그 순간에는 생명의 숨결과도 같이 느껴졌던 에어컨의 바람은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바람이 되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면서 내 인간관계는 혈연조차 남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인터넷을 통해, 게임을 통해 나는 누군가와 이어져 있었다. 심지어 그게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내 작은 세계는 그 해 여름에 찾아온 폭염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외부의 장소로 옮겨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시원한 장소를 찾아 방바닥에 붙어 체온을 식히는 바람에 인터넷을 할 수 없게 된 나의 생존 투쟁이었다.
후에 내게 카페는 내가 주위에 많은 또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혼자 앉아있던 교실을 생각나게 했다. 친구도 뭣도 없이 그 때도 똑같이 혼자였지만 장소와 공간이 그리고 오가는 또래들이 수면에 일렁이는 파문처럼 내가 있을 작은 장소를 허해주고 종종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와 내 세계를 묻고 그 차이를 구분짓지 않는 동질감이랄까? 말하자면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나를 배척하거나 외면할 수단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 앉아 있으면 그로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누가 와서 내 의자나 테이블을 뺏어가지 않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실내 온도가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 자리가 비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 최대한 도도하게 "네"라고 한 마디 하여 그 자리를 허가하는 것이 큰 즐거움을 준다. 이 글들은 히키코모리인 내가 카페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겪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경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