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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스포] 공포영화 곤지암
게시물ID : movie_737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약물도매상
추천 : 11
조회수 : 317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4/06 20: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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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_image (1).jpg

난 요즘 공포영화를 안 봐왔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극한의 스릴과 심장을 조여드는 듯한 공포를 느끼고 싶을 땐, 가상화폐투자가 짱이다. 마치 내가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강남아파트냐, 마포대교냐.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농담이고, 내가 급식을 먹을 때나 공포영화 보면서 귀신 나올 때마다 벌벌 떨고 요실금 증상을 체험해보지, 20대 중반인 나는 이제 공포영화에 면역이 되어 있다. 내가 담력이 세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아니, 솔직히 자랑하는 것이긴 하다. 나는 인시디어스2와 컨저링 2를 하품하면서 봤다. 귀신 나올 때마다 실실거리면서 웃게 되고 심지어 사람 깜짝 놀래키는 게 나한테는 씨알도 안먹혀가지고 지루해서 '언제 끝나지?'라고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런 내게 이 '곤지암'이라는 영화는 아주 신선했다. 예전에 유행했던 폐병원인 곤지암 정신병원, 그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고인 사골물을 영화로 모티브를 딴 걸 모자라 곤지암 인근 주민들의 집의 땅값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명분을 줘가지고, 어그로를 끌 목적으로 작정하고 고소고발을 당할 각오를 하고 만든 듯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길고 긴 민사재판 전에 실제 곤지암 병원 실소유주한테 합의금도 줘야 할 수도 있을 만큼 최대한 뽕을 뽑아야 되는 영화다. 

예고편에 '보지 말아야 할 영화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라고 쓰여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욕만 먹고 망할 줄 알았는데, 평론가들이 꽤 호평을 한다. 어라? 내 예상이 틀린 걸까?  

일단 예고편부터 파격적이다. 특히 하나의 예고편이 상당히 인상깊은데, 예고편을 통해서 미리 고지하는 영화의 스토리? 그런 거 없다. 그냥 관객들이 영화 보다가 깜짝 놀라는 게 다다. 이런 예고편을 보여주는 영화의 전형적인 특징은 무서운 거 말고 딱히 보여줄 것 없다는 건데, 적어도 감독이나 배급사나 사람 간 떨어지게 하는 데에는 자신감이 있다는 거다.

일단 영화 처음에 초딩인지 중딩인지 애매모호한 두 관종 꼬맹이들이 겁도 없이 곤지암에 처들어가서 '마의 402'호까지 당도하고, 문을 열려고 아등바등하고 아프리카tv에 자신들의 생쇼를 송출하면서 추가수익도 노리다가 3개월 정도 행방불명된다. 

그리고 고스트 타임? 인지 뭔지 무슨 개인방송을 하는 것 같은 남자가 병원의 악명성과 공포에 대해서 진지하게 호도한다. 이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격리수용시킨 다음에 병원 원장이 자살했다든가, 환자들을 고문했다든가, 치료방법의 잔인성에 대해서 '은근히 그럴법하게' 설명해서 그런지 곤지암 근처의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되게 좋아할 것 같은 영화다. 

아무튼, 이 공포의 폐병원에 들어갈 명분도 이유도 모르겠고 딱히 들어가서 얻는 것도 없는데, 더군다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남자애는 팀을 모아서 곤지암에 들어가서 진짜 귀신이 있나 없나 체험해보겠다고 한다. 스릴을 느끼고 싶나 보다. 그냥 집에서 주식투자나 하지... 그게 더 안전하고 훨씬 더 무서운데... 

아무튼 그래서 총 일곱 명이 '자진해서' 이 방송에 출현해서 귀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멤버는 남자 넷 여자 셋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자 세 명 다 개성이 뚜렷하다. 깔끔한 외모에 랩을 굉장히 잘 할 것 같은 아가씨와 간호학과에 다니고 있는 단아하고 청순한 여인과 계속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데 왠지 저렇게 잘난 척하다가 나중에 영화에서 제일 험한 꼴 당할 것 같은 여자 이렇게 세 명 다 성격과 인상이 다르다. 아 참고로 남자애들은 관심없다. 알고 싶으면 영화 보셈.

그래서 일곱명이서 어떤 카페에 모여서 토마토를 던져서 입으로 받아먹고 잘 받아 먹으면 박수쳐 주고, 술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서 병나발불고 곤지암 병원 가다가 중간에 바다에 뛰어 들고 ('ㅡㅡ...이거 공포영화 맞아?'라고 생각했음) 온갖 똥꼬쇼를 신나게 하다가 폐허와 공포와 사골의 온상 곤지암에 도착한다. 참고로 드론도 띄우고 텐트에 모니터도 3개 연결하고 차도 있고, 이 공포방송을 주최하는 남자 주인공 돈도 참 많나 보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얘는 좀 웃긴 앤데, 마치 이런 놈이다. 엄마 아빠가 성격차이로 이혼하려고 하고 부모님이 얘한테 '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어보면, '돈 많은 쪽이 더 좋아.'라고 말할 정도로 물질욕이 강하다. 사람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금융시장에 아주 적합해 보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 녀석은 큰 그림을 그린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방송을 이용해서 곤지암에 무단으로 침입해가지고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어서, 조회수를 높여서 떼돈을 벌겠다는 계획이다. 알다시피 요새 유투브에 동영상을 올려서 내 동영상이 조회수가 높으면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이 꽤 쏠쏠하다고 하지 않은가? 그야말로 프로 관심종자다. 

게다가 자기가 무슨 시뮬레이션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여섯 명 멤버는 발품 뛰면서 개고생하는데 혼자 텐트에서 팝콘 먹고 여섯 명한테 명령이나 내리고 조회수 확인만 하고 돈은 지가 다 챙기려고 하고 하여튼 보통 창렬한 놈이 아니다.

여섯 명은 건물 안에 들어가니, 역시 별 거 없다. 대장 남자애는 무전으로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행동하라고 지시하는데,  여기서 남자 애 두 명은 또 병원 내에서 공포감을 조성하려고 사전에 남자 대장하고 주작을 시전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심령현상이 일어난다고 개호들갑을 떨어대지만 결국 다 얘네들이 만들어 놓은 속임수라는 거다. 당연히 이런 돈밖에 모르는 철없는 젊은 애들에게 귀신들은 정의구현을 실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안 그래도 병원에 쳐박혀서 쉰내밖에 안 나는 곳에 짱박힌 원혼들의 어깨가 근질근질하다. 영화가 시작한지 40분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도덕수업이 시작된다.

우선 '살자'라고 칠한 글을 반대로 바꿔서 그 영어하고 한국어를 섞어서 쓰는 여자가 다시는 스스로가 이중언어구사자임을 뽐내지 않을 수 있게 영화에서 추한 꼴 다 당할 때까지 한국어만 쓸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팔이 부상당한 제일 큰 언니와 이 유학파 동생은 '귀신이 무섭다'며(ㅡㅡ...아니 귀신 보려고 왔다며...) 남자 주인공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냥 밖으로 나가 버린다. 

그 다음 장면이 제일 인상깊은데, 이 뛰쳐 나간 두 여자 애들은 병원 안에서 발견한 물품들(귀여운 인형과 치킨 한 마리)이 밖에서 나뒹굴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유학파 동생은 큰언니가 갑자기 아무 말도 안하고 움직이지도 않고 바닥을 보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 걸 발견한다. 그래서 '언니, 왜 그래? 언니...' 하는데 그 순간....


'흐뤃랗러하렇라허라허라허랗러할허라허라허랗'

알고 보니까 이 언니는 전직 래퍼였다. mc스나이퍼나 배치기보다 휘황찬란한 라임과 적절한 음운은 관객으로부터 경악을 불러 일으키고, 네이버 영화에서 이 여자 영화배우의 명대사는 이 명품 랩 말곤 없다. 랩에 너무 감동받은 유학파 동생은 텐트에 들어가 보지만, 알고 보니 자기가 텐트라고 생각한 곳은 텐트가 아니라 402호였다. 그리고 눈 앞에 귀신이 있고 서로 한 1분 정도 간보다가 처절하게 절규하면서 귀신에게 질질 끌려간다. 개인적으로 랩하는 장면이 가장 재밌었다.

그리고 귀신이 탁구공 던지고 나머지 애들도 홀리고 귀신이 깜놀하고 방송 송출에 이상이 생기자, 프로방송러인 남자 주인공은 '니들이 안 하면 나라도 한다'라며 카메라하고 드론 들고 직접 병원 안으로 들어가서 몸소 돈의 소중함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당연히 돈보다 소중한 게 있다는 원혼들에게 정의구현을 당한다.

각설하고, 이 영화는 정말 스토리가 없다. 처음에 나오는 자질구레한 평상시의 이야기는 그저 후반부의 공포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점점 관객들이 영화의 공포에 몰입하고 익숙해지도록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감독의 능력은 굉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난 이 영화 재미있게 봤다. 물론 아재라서 무섭진 않고 훈훈하게 웃으면서 봤지만, 갑자기 눈알이 깜깜해지고 비정상적으로 커져서 '도버자도ㅓ밪더밪더밪ㄷ' 랩하는 건 되게 신선했다. 최고의 영화, 끝내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더운 여름과 초미세먼지 때문에 지친 사람들이 말초적인 공포를 체험하고 싶다면, 이 영화는 당신의 영화다.   

결론 - 진정한 공포를 느끼고 싶다면, 귀신이고 나발이고 그냥 집에서 주식투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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