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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늦은 2016년 12월 9일 일기
게시물ID : freeboard_14361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동네잉여왕
추천 : 2
조회수 : 17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10 11:31:29
최태성 선생님(aka 큰별쌤)의 트윗을 보고 일기를 써야겠다, 나만의 역사에 기록을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2016년 12월 9일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분명 할 일이 굉장히 많은데, 계획은 많이 했는데 집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사실 이건 내가 잉여롭기 때문이다-_-

 나는 아토피가 있다. 생긴지 몇 년 안된 성인 아토피다. 처음엔 아프고 서럽고 얼굴 등지에 올라와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날 괴롭혔기 때문에 엉엉 운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살고 있다. 비록 여름철엔 피가 나고 진물이 배어나오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날 몰아쳤지만 겨울이 된 지금은 좀 나아졌으니 간사한 사람 마음이 그새 좀 적응을 했다. 남들은 여름에 낫고 겨울에 심해진다던데 나의 청개구리기질은 쓸데없이 여기서도 발휘됐구나 싶다.
 그런 아토피가 요즘은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에 완전히 안착했다. 손가락을 조금만 구부리면 살이 갈라지고 찢어져 수줍게 선홍색을 드러낸다. 그럼 난 또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연고를 떡칠하고 반창고를 감아준다. 그러면 손가락 굽히기가 또 어렵다. 그래서 펜 잡는 모양이 좀 이상해졌다.

 한동안 못했던 모바일게임을 했다. 퍼즐을 모으면 캐릭터를 주는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시간을 투자하고 전략을 사용했다.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는다. 정오도 되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어디서 정오의 사이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환청임이 틀림 없지만 오늘은 들릴법도 한 날이다.

 요즘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 하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E.H.카까지 갈 것도 없이 나와 나의 주변만 봐도 충분하다.
 나는 내가 지금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다들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난 19살 12월 31일 밤에서 20살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시간, 평소와 아무 것도 다르지 않았던 그날 밤을 기억한다. 지금이 마치 그런 것만 같다. 분명 역사에 변곡점이 찍히는 날인데(20161209는 19791026이나 19800518처럼 외우게 되겠지) 이상하게도 내 일상은 그대로다. 역사의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4800만 국민중 하나인 내게, 개미이자 파편이고 숫자에 불과한 내게, 역사란 과연 무엇일까?

 점심이 됐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점으로 죽을 조금 먹은게 전부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니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내장이 마비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가지 않는다. 3시 표결이라는데 아직도 2시밖에 안됐다. 게임 미션은 해결했다. 퍼즐을 다 모으고 캐릭터를 받았다. 콜렉션에 하나 더 추가됐다.

 졸리지 않지만 잤다. 밤에 고생할 걸 알면서도 무료함과 초조함을 견딜 수 없었다. 메트로놈이 귓가에 똑딱였다. 내 심장소리가 귀에 웅웅댔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넘기기 위해 자서 그런지 일어났는데 개운하지 않고 없던 두통까지 생겼다. 오후 3시 반. 컴퓨터를 켜고 JTBC 생중계를 틀었다. 팟수들과 함께하는 JTBC! 하지만 채팅은 보지 않았다ㅋㅋㅋ

 결과가 나왔다. 1/234/56/7 우주가 도와준 탄핵 가결이라고 사람들이 웃는다. (사실 자막 뜨기 전 정세균 국회의장의 말을 듣고 233인줄 알았다ㅋㅋ) 당연히 나도 웃었다. 그리고 미친듯이 박수를 쳤다. 손바닥이 아파서 발바닥으로도 쳐봤다. 건강해지는 기분이 약간 들었다.

 그런데 무슨 개소리가 들렸다. 새누리당 의원이 또 문재인 탓을 했다. 얘넨 북한이랑 문재인 없으면 정치 어떻게 하려나? 파수꾼에서 늑대를 만든 촌장처럼 가상의 적을 만들겠지. 기분이 나빠 컴을 껐다.
  
 미친듯이 배가 고팠다. 냉동실을 열자마자 본 만두 한 봉지를 전자렌지에 집어넣고 기사와 커뮤니티를 돌아보며 기쁨을 나눴다. 이 만두가 맛있다고 유명한 만두긴 한데 이렇게 맛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한 봉지를 다 비우고 배가 불러 여유있어진 마음에 칼로리를 봤는데 아뿔사.. 먹고 칼로리 보는 건 어디서 배운 못된 습관이란 말인가ㅠㅠ 만두 칼로리가 이렇게 높을 수가ㅂㄷㅂㄷ 천 칼로리에 육박하다니.. 숫자를 보고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후식으로 하와이안 호스트를 쳐묵쳐묵했다. 마카다미아가 들어간 이 초콜릿은 가끔 안에 들어간 마카다미아 맛이 이상해서 기분을 잡치게 할 때도 있는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맛있는 마카다미아가 연속 당첨됐다. 식욕이 다시 수직상승했다. 낄낄. (일기를 쓰는 지금 생각난 김에 또 초콜릿에 손을 댔다ㅋㅋㅋㅋㅋ) 

 인터넷 창을 두 개 띄워놓고 미뤄놨던 웹연재 소설들을 봤다. 심심하면 오유도 새로고침했다. 그렇게 멀티플레이어처럼 시간을 보냈는데, 좋지도 않은 몸뚱아리에 이것저것 쑤셔넣었더니 또 위장이 그새 탈이 났다. 난 참 섬세한 잉여다. 좋은 건 얼마를 먹어도 반응이 안오는데 몸에 안좋은 짓 쫌만 하면 난리가 난다.

 누워서 마저 잉여짓을 했는데 헐~ 내가 하는 모바일 게임에 퀘스트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발견했다. 아니 애초에 퀘스트 열린 지도 몰랐다ㅠㅠ 아까 퍼즐 모으는 거에 정신이 팔려서는!!
  퀘스트는 두 종류가 있다. 정오부터 자정까지 12시간 열리는 퀘스트,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자정까지 29시간 열리는 퀘스트. 대부분 후자가 많이 열린다. 그래서 당연히 7시에 접속했는데 오늘은 12시에 열린 거다ㅠㅠ 새 숙제인데 얼마 남지 않았다. 젠장.

 본격적인 게임과 환풍을 위해 손가락에 붙여놓은 밴드를 풀었다. 신기하다. 어제만 해도 피가 배어나오던 갈라진 손가락이 오늘은 아물었다. 내가 열심히 관리해준 덕분이다. 하지만 방심하면 몇 시간 안에도 다시 찢어진다. 내 몸뚱아리지만 정말 섬세하다..
 
 다 아문 손가락을 놀리며 새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눈을 굴렸다. 

 어느 때와 다름 없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조금 기쁜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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