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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44).
게시물ID : love_421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29
조회수 : 4095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8/04/21 20:10:59
그날 발인은 좀 살풍경했다.

사장님은 주고객인 내 친구 최실장봐서 서비스로 어깨좋은 형아들 몇명 보내주셨고,
그 동네 공사판 현장소장으로 와있던 친구도 떡대좋은 직원들 몇명이랑 와주었다.

그 사장님은 우리 최실장 친구 건드리면 가만안두겠단 식으로 보낸거고,
내 친구는 오늘 현장에 일 한가해서 심심해서;;;;

덕분에 그 친척들이 D와 사촌언니 주변에는 얼씬도 못했다.

지난 3일 엉엉 잘도 울던 D는 정작 할머니가 화장터에 들어가자 그때부터 눈물을 딱 그쳤다.
1년 넘게 D의 다양한 표정들을 관찰해온 결과, 지금 뭔가 굳게 결심한 표정이었다.
눈이 탱탱 부어있는거 빼면 딱 그 표정이었다.



수고비...
아뇨. 사장님이 자리만 지키다 오랬습니다. 들어가보겠습니다. 그 최실장님께 말씀 좀 잘 전해주십쇼.
네. 이 먼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수고비...
나 너 오라고 한적 없다-_-

그렇게 그 어깨들과 식충과 이 식충을 소장님이라고 따르는 불쌍한 직원들을 보내고, 
D와 사촌언니를 태우고, 서울로 향했다.

D도 그 사촌언니도 다른 가족들에게 눈길조차 주지않았다,



뒷좌석에 탄 둘은 손만 꼭 잡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휴게소만 보이면 통감자통감자...아...하고 서울로 바로 올라왔다.



"나 잠깐 회사에 들어갔다 올테니까, 집에서 좀 쉬고 있어. 언니분도 출국 내일이랬죠? 둘이서 이야기도 좀 나누고 그러세요."
회사는 개뿔...야!!! 너 없으니까 일 졸라 잘된다!!! 휴가증 올리지말고 사직서 올려라!!!하고 마음에도 없는(?)소리 하는 팀장님의 문자를 이미 받아놔서, 둘을 쉬라고 집으로 보내고, 사우나가서 씻고 수면실에서 잠 좀 자다가 밤 늦게야 들어갔다.

"어머나. 깜짝이야. 왜 불도 안켜고 이러고 있어."
불 다 꺼져있길래, 자나?하고 있었는데, D는 거실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있었다.
"...다 운거야?"
"고마워 오빠..."
"별 말씀을. 언니는?"
"인천에 친구만나고 내일 바로 갈거래. 아까 친구가 데리러 와서..."
"아...."
"거짓말쟁이."
"뭐가?"
"회사갔다온다더니, 샴푸비누냄새 다 나. 사우나에서 있다온거야?"
"너 앞에서는 숨도 가라로 못 쉬겠다. 다 걸리네."

어디에 앉아야 하나...하다가 D랑 마주보고 앉았다.
아직 붓기가 남은 눈으로 D는 나를 보고 살짝 미소짓는다.

"...빨리 말해."
"뭐?"
"나 얼굴에 뭐 묻었길래 그렇게 빤히 봐. 아 묻었구나. 못생김."
D의 옅은 미소가 한단계 더 밝아졌다.

"나...진짜 오빠 안만났으면 어떡게 됐을까?"
"잘생김이 덕지덕지 묻은 남자 만났겠지."
발로 콩 내 도가지를 찬다. 
"우리 오빠가 뭐 어때서 그래."
"내가 말했지. 이제 우리 엄마도 우리 아들 잘생긴 '편'이라고도 안한다고."
"오빠."
"왜."
"나 안아줘. 춥다."
"후훗. 그런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영차. 무거운 몸을 일으켜 D쪽으로 옮기고, 쪼끄만 D를 꼭 안는다.
내 등 뒤로 깍지낀 D의 악력을 보건데, 기력이 좀 회복된 모양이다.

"...할머니 나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하시고...그냥 나 안데리고 사셨으면 큰집 작은집에서 다 모시고 살았을텐데...불쌍해...우리 할머니..."
"마. 그런말 하지마."

그러다 어? 통장이 있었네?하고 본다. 
내 주거래 은행은 따로 있어서 거래하지 않는 이 통장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뭐냐 이거?
달달이 백얼마씩 찍혀있는 통장. 
쉬는날 없이 뼈가 부서져라 일해도 20살 여자애가 버는 돈에는 한계가 있는데,
도시인의 최저생활수준이하로 살면서 모은돈 꼬박꼬박 할머니한테 보내고 있었던 그 통장.

할머니는 그 돈을 한푼도 안쓰고 모아오고 계셨다. 

통장 첫 장에 "우리 막내손녀 D한테 줄 것."이라고 써져있었고, 할머니 동네 친구분이 내가 그 사장님이랑 밖에서 담배피고 있을때, 슬며시 와서 통장이랑 도장을 전해주셨다고 한다. 너한테 줄려고 자기가 몰래 들고있었다면서. 저것들이 또 이거까지 뺏아먹을까봐, 너 할머니가 생전에 자기한테 무슨 일 생기면 임자가 우리 막내손녀한테 꼭 좀 전해달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하며 여기 있다고 숨겨놓은 반짇고리에서 슬쩍 가져다가 주셨다고 한다.

"...어휴...야...보내드려도 너 먹고 살거는 생각하고 보냈어야지."
"맛있는거 많이 사먹고, 나 보고 싶으면 이걸로 차비쓰고 나 보러 서울오라니까...한번도 안오고..."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할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다.
D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내 품에서 계속 할머니한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나 유학갈래. 공부 다 마치고, 이 사람이랑 결혼할거야. 할머니가 그랬잖아. 착한 사람 만나라고. 이 사람 정말 착해. 나 이 사람 정말 좋아. 많이 공부해서 이 사람 놀고먹게 만들정도로 내가 돈 벌게."

그 진중한 와중에 그 말 듣고  ㅋㅋㅋㅋㅋ하고 웃어버렸다.
D도 내 웃음소리듣고는 품속에서 ㅋㅋㅋㅋㅋ하고 웃었다.
그러다가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어깨가 들썩인다.
할 말 다하고 났더니, 다시 울음이 나오나보다.

"자자. 누워서 오빠 팔베게하고 실컷 울어. 그러다가 자자. 아까 팀장님이 그냥 내일까지 쉬래. 부장님께 보고 드렸대. 오늘 푹 자고. 내일 나가서 맛잇는거 먹게."
"내가 사줄께."
"또또또 기승전돈이야기. 너 그게 그냥 돈이야? 할머니가 남겨주신 소중한 돈이잖아. 그거 들고 유학가서 팡팡 써. 너 그 통장에 든 돈 들고 그대로 유학가. 까불지말고."



침대에 들어가서 D는 내 팔베개하고는 내 옷을 꼭 잡고 잠깐 훌쩍거리더니 깊이 잠들었다.



'팀장님. 저 내일 휴가 한번 더 부탁드려요.'
'ㅇㅇ 걱정마. 사직원처리할께ㅋ'
'엌ㅋㅋㅋㅋㅋ irp계좌 보내드려요?'

휴가보고는 개뿔. D랑 하루 쉬려고 구라친거지. 
밤늦은 시간에 까똟보냈더니, 팀장님은 진지하게 내 퇴사를 검토해주셨다. 망할 양반.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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