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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노덕술'을 아는가?
게시물ID : bestofbest_1436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생존과허무
추천 : 383
조회수 : 23024회
댓글수 : 35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01/11 11:56:33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1/10 22:40:20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고등계 경찰이었다.
 
 그는 악질친일경찰로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데 대단한 프로였다.
 
 얼마나 악랄했으면, 민중들 사이에서도 '친일 고문경찰=노덕술'로 통할 정도였다.
 
 그는 고문과 고문치사를 통해 급속도록 승진했으며,
 
 중일전쟁 발발시 일본 선전, 각종 시국간담회 참석 및 지도하는 등
 
 전시 업무를 적극적이고 충실히 이행하여 총독부로부터 훈8등 서보장을 받았다.
 
 그 외에도 수송보안과장으로 군수품 수송으로 일본의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광복 후, 평양경찰서장이었던 노덕술은 공산주의 세력에게 구금된 후 풀려난다.
 
 이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월남하여 장택상에 의해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에 기용된다.
 
 이 때, 반이승만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을 숙청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에 이승만으로부터 '반공 투사'라는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순리되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며,
 
 뻔뻔하게도 반민특위 조직원들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한다.
 
 하지만 이틀 뒤 이승만은 '노덕술은 반공투사다. 그를 풀어줘라.'라고 했으나,
 
 반민특위는 이를 거절했다.
 
 이에 이승만은 국회프락치사건, 6.6반민특위 습격사건으로 반민특위를 와해시켰으며,
 
 노덕술은 풀려나 경찰부 보안주임이 된다.
 
 이후, 헌병 중령으로 변신하여 육군본부에서 범죄수사단장, 서울 15범죄수사대 대장을
 
 지내며 대공업무 조사를 담당하게 된다.
 
 다행히도, 1955년 재임 시 뇌물혐의로 징역살이 6개월을 하게 된다.
 
 이건 있어서도 안 되며,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노덕술은 뻔뻔하게 196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정말 정말 다행이도, 낙선하게 된다.
 
 그 외에도 1948년 초 장택상 피습사건 용의자를 고문하던 중 폭행으로 사망하자,
 
 고문 중 사망한 것이 알려지면 큰 일이 날 것을 두려워해,
 
 취조실 창문을 열고 '저놈 잡아라'라고 외친 뒤, 용의자가 도망친 걸로 꾸민 후,
 
 혼란을 틈타 한강에 시체유기를 하게 된다.
 
 노덕술은 이를 수도경찰청장인 장택상에게 보고했는데, 직무를 충실하게 이행했다며,
 
 보너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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