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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금요일, 그분이 떠올라 술을 펐다.
게시물ID : sisa_10522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애널의유머
추천 : 24
조회수 : 91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8/04/30 17:38:46
너무 설렜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우리 한민족은 원래 하나의 민족이니 언젠가 반드시 뜨겁게 손맞잡아야한다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평화는 절박하다. 아니 맘 속에 그 절박함이 있다는 사실을 3차정상회담 그날 깨달았다.

김정은 위원장을 손을 잡고 문프가 군사분계선을 살짝 건넜다가 다시오는 그 순간 흐르는 눈물의 정체를 추적하다가 깨달은 바다. 

'아 내 맘 한 구석에는 나는 애써 외면하던 전쟁의 공포가 존재했구나, 오늘 그 응어리가 풀린 것이로구나'라고.

사람들이 열광했다. 술집에서는 '통일 가즈ㅏㅏㅏ'를 외치며 다들 유쾌하게 TV를 보며 잔을 부딪히고 있었다.

문득 그 분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07년 가을. 

기레기들의 농간끝에 지지율 바닥을 치던 내 맘속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육로로 북한을 건너가고 있었다. 

2000년 첫 정상회담과 달리 시민들의 기대도 약했고, 한나라당은 '또 속으러 가냐', '대선 앞두고 쑈한다'고 조롱했다.

그때 조중동은 펼쳐보지 말자.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저주와 조롱과 비난과 오만함이 가득차 있을 터이니. 

노짱이 중간에 차에서 내렸다. 

군사분계선이 그어진 곳을 권양숙 여사와 손을 잡고 넘었다. 의미를 말했다. 

감동보다는 쓸쓸함이 밀려왔다. 

당시 북미관계는 최악이었다. 2000년 즈음만해도 클린턴 행정부 말기, 북미는 평화협정과 수교 얘기까지 나오는 분위기였지만, 

1차적으로 공화당 의회에 의해 일이 좀 틀어졌고, 그나마 앨 고어가 됐다면 달랐겠지만 그냥 공화당도 아닌 네오콘 공화당은 지금까지 우리가

본적도 없는 강경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이념적 공세주의적 집단이었다. 

상황은 꼬여갔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 뒤통수를 때리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승계하고 나서는 김정은이 훨씬 많이 뒤통수 친것도 사실이다.)

그때도 '00월 한반도 전쟁 위기설'은 끝없이 나돌았다. 뭐 작년과 같은 분위기가 약간 약하게 길게 지속됐다고 보면 된다. 

한반도에 드리운 전운. 민족이란 단어가 오그라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이땅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자. 우리들의 운명이 바람 앞 촛불같던 그 상황.

노통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어떻게든 평화의 빛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그 조롱과 비난 속에서도 그 길을 갔다. 

필사적이었다. 쓸쓸했다.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힘들어보였다. 그건 역사의 무게였고, 한 나라와 국민의 생명과 안정을 건 무게였다. 

이미 대선승리가 확정돼 들떠있던 가짜 보수들이 비웃을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날 그의 어깨가 내 눈에 다시 비쳤다. 심지어 2000년 정상회담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악수장면은 이번 정상회담에 비교되며

오버랩 되는 영상이 여기저기 흘러나왔지만, 그 어려운 상황에서 최악의 지지율과 조롱 속에서도 문제를 돌파해내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상대적으로 거의 조명되지 않았다. 

내가 뽑은 자랑스러운 문프가 해낸 일에 가슴 벅차면서도, 그래서 너무 좋아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나는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주종을 바꿨다.

소주를 시켜 잔에 따른 뒤, 아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그분을 위해 잔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노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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