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과 문재인의 공통점이 있죠.
사람냄새가 납니다.
김대중이 평생을 통틀어 항상 강조했던게 국민과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야한다는것이었습니다.
앞서가더라도 반발 한발 이상은 안된다고 말하곤했죠.
나이든 세대 학력이 중졸이하입니다.
상당수 어르신들이 초졸이거나 중학교중퇴학력이에요.
이런 분들 상대로 엘리트냄새 풀풀 풍겨가며 가르치려드는 건
옳지못하다고 본거죠
예전에 김대중이 연설할때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지하철이 촘촘하게 깔리기 전이라 주교통수단은 버스였죠.
그러나 버스로 그 많은 사람들을 실어나를순 없었고 하는수없이
걸어서 이동했죠.
줄지어 이동하는 행렬이 장관이었습니다.
연설의 철칙은 쉬운 단어의 사용이었습니다.
반복해서 말하는것이었습니다.
낮은 자세의 준용이었죠.
문재인도 비슷합니다.
인권변호사는 문재인말고도 있어왔죠.
하지만 그처럼 낮은 자세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다소곳하게 긴시간 지치지않고 들어주는 사람은 드물었죠.
인권변호사에게도 인내력 한계라는게 있습니다.
지금도 인권변호사들은 어려운 사건이나 남이 피하는 사건을
기꺼이 맏아주고는 합니다.
그러나 가다보면 한계라는것이 와요.
여기까지 함께 해드리겠습니다 뭐 그런거요.
인권변호사도 사람이기에 답답하거나 피곤한게 도를 넘어서게
되면 자리 털고 일어납니다.
좀 더 사회적으로 이슈되고 보람을 찾을수 있는 일에 관심이 더
가는것도 사실일겁니다.
문재인은 모두가 털고 일어설때 그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아서 함깨 해준 사람이죠.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속에 많이 회자되는것이구요.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의뢰인들이 어려워할까봐 말을
적게하고 많이 듣다보니 언변이 그리 훌륭하진 않게되었다라고
하죠.
맞는 이야기입니다.
말이고 글이고 많이 할수록 늘게 되어있으니까요.
늘 공부하고 책과 서류더미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복잡한 사안의 요체를 파악하고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내는
능력이 훈련된 사람입니다.
실을 버리고 다시 사거나 가위로 뭉퉁 짤라버리는건 쉽습니다.
그러지않고 예전 어머니들이 실뭉치가 꼬이면 조용히 하나씩
풀어내서 다시 감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김대중이야 말해 무엇하겠어요.
삶의 마지막순간까지 공부하고 사색하던 분입니다.
이게 노무현 이해찬 유시민으로 계속 이어진거죠.
정치인중에 위로 올라갈수록 의외로 공부안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어느 정도 짬을 먹으면 정치판 거기서 거기지뭐하면서
정체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기 일쑤가 됩니다.
그러다보면 국가중대사를 조중동쪼가리나 줏어 보고 읖조리는
수준으로 전락하게 되는거죠.
어디서 봤냐.
조선일보에서 봤다.
그 기사의 제공원이 누구냐.
누구긴누구야.
너지.
너는 조선일보 보고 떠들고 조선일보는 네가 떠든거
오피셜화한거라고 하고.
지금이 2018년입니다.
시민들의 의식은 빛의 속도로 진화하고 있고 넷상에서 의제를
놓고 토론하며 결론내리는 과정은 신속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수준은 갈수록 몰락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이나 문재인은 어떤 거창한 담론을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당연한 소리를 하던 사람들이죠.
지금은 상식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그러지않았던것들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입니다.
지난하게 뚜벅뚜벅 이야기하다보니 오늘날 많은것들이 상식이
되었습니다.
남편이라도 아내를 함부로 때리면 안된다, 노동자에게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피의자에게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경찰은 법을 집행할때 영장을 발부받아야한다..끝이 없죠.
이게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안그래도 되는것이었고
심지어 처벌조차 없었던것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식을 말하고 있죠.
문재인이 뭘 엄청나게 잘 해서 지금 지지율이 높습니까.
아니죠.
그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뿐입니다.
문재인의 언변이나 글 솜씨가 탁월한가요.
아니죠.
다만 맞는 이야기를 일상적인 사람들의 언어로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을뿐입니다.
왜 청렴하게 살았는가.
원래 착해서.
그게 다가 아닙니다.
내가 바르게살지않고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수
없었기때문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면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맞서야하고
그러다보면 먼지털이당할 것은 당연지사고 그 벽을 넘지못하면
아무것도 할수없었기 때문이죠.
조중동 보세요.
부패한 안희정 이재명은 놔두고 문재인 이해찬 임종석 추미애
박원순 김경수 탁현민만 죽어라 털어대잖아요.
본인들이 문재인이 그토록 싫다면 문재인을 죽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문재인을 별것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리면 됩니다.
상식을 지키고, 생각한대로 말하고, 약속을 했으면 이행하면
됩니다.
당원을 정당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인정하면 됩니다.
국민소환제 받고 헌법제정은 국민에게 일임하면 됩니다.
특히 권력구조.
그런데 그렇게 안하죠.
자유당뿐만 아니라 정의당조차 그래요.
왼쪽적폐 정의당하는 몰골 보세요.
소수를 존중해달라고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에서 소수목소리는
다수의 힘으로 철저하게 짓밟습니다.
비정규직타령하면서 열정폐이를 강요하며 노예처럼
부려먹습니다.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면 법을 무시해도 정당하다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조금만 항의를 받으면 고소고발을 남발해
뭉개버립니다.
그토록 자신들이 욕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했던것처럼
권력구조개편에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국민은 의원내각제를 결사반대하는데 본인들의 권력향유를
위해서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죠.
국민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야한다라는 정신을 망각하고 여전히
엘리티즘에 빠져서 계몽타령을 하고있습니다.
자유당지지하는 노동자나 서민은 무식하기때문으로 적극계몽에
나서야한다.
아직까지는 엘리트가 정치해야한다.
왜냐하면 정치의식이 후진적이니까.
학벌인맥과 짬밥은 철저하게 존중되어야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함께 죽도록 고생했으니까.
이런 꼰대들이 겉으로는 청년이나 저학력자나 사회초년병을
주인공으로 모시겠다고 외치고있죠.
혈연 지연 학연 인맥 짬밥의 늪에서 벗어나지못하는것들이
도대체 무슨 놈의 진보에요.
최근에는 의무는 싫고 권리만 챙겨먹는 뷔페니즘 발호로 아주
영원히 문을 닫는 그 날을 향해서 맹렬히 질주중이죠.
이러니 사람들이 김대중을 그리워하고 지금의 문재인을
좋아하는것입니다.
문재인이 아닌건 아니라고 말하고 거짓과 위선을 지적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재인은 남의 허물을 지적하기보단 그냥 본인을 바로세워서
주위를 부끄럽게하는 사람이죠.
지적과 비판은 국민의 몫이 되었습니다.
국민을 정면으로 상대하다보니 이제 수구집단들은 이길수가
없는것이죠.
김대중이 역사속에서 승리하려면 국민과 손잡고 함께하는
길밖에는 없다라고 말했던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죽어도 정치를 하지않으려고 했던 문재인이 결국 정치를 하게
된것은 서거직전의 김대중의 유지때문이죠.
"이제는 당신들이 민주주의를 지켜줘야 한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없는 황량한 벌판속에 들어서서 그는 그렇게 대통령이
되었고 이제는 거대한 시민들속의 작은 등불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역사는 발전하지만 숱한 굴곡과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정치발전이라는것은 결국 모든 국민 정치수준의 성숙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도달하기 위해서도, 유지하기 위해서도, 도약하기 위해서도
끝없는 피와 눈물을 흘려야만 하죠.
그래서 민주주의는 비탈길에 놓은 수레처럼 늘 위태롭다라고
하는것이겠죠.
예전에는 대부분의 국민학력이 초졸부근이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국민학력이 고졸 대재 부근이죠.
그러나 가르치고 계몽해야하는 시대는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것입니다.
그게 필요하다면 그저 본인이 바로 서서 바른 삶을
살아나감으로서 시민들속의 작은 등불이 되면 됩니다.
김대중으로부터 시작해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것을 잘
해내왔고 그러한 사람냄새의 공유가 현재 우리사회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