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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돌아보기 - 11
게시물ID : freeboard_17419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번째커튼콜
추천 : 1
조회수 : 2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01 16:25:04

조용하고 소심한 모범생에서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학교생활을 하는 예측불가능한 학생으로의 극적인 변화에 가장 당황스러운건 선생님들이였을것이다. 하지만 선생님들 사이에는 뭔가 함구령이라도 내려진듯 내가 수업중간에 등교하여 교실에 들어설때도 가벼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시는것 외엔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으셨다.


내가 원해서 했던 공부는 아니었지만 중학교때 했던 공부가 남아있는지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학교를 들쑥날쑥 나가도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 그게 학교 선생님들이 나를 더 건드리지 않는 이유였지 않았나싶다. 어떤 선생님들은 내가 학교를 잘 안나오는 대신 집에서 개인 과외를 받는다고 생각하시는 듯 했다. 하지만 어떤 선생님도 나에게 왜 학교를 잘 나오지 않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아마 물어보셨으면 대답했을지도 모르는데.


체육시간이면 나는 체육을 나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 창밖으로 친구들이 체육 수업을 하는것을 멍하니 내려다 보곤 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창가에 앉아서 열심히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고 있을때 옆자리에서 뭔가 인기척이 났다.

옆자리 책상에는 언제부터 앉아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선생님께서 앉아 계셨다.

그 선생님은 항상 화장기 없는 얼굴에 무표정한 표정으로 수업을 진행하시고 조용한 성격이라 짓궃은 친구들이 ‘매일 부부싸움을 해서 표정이 어두운 선생’ 이라는 황당한 캐릭터를 붙여놓은 선생님이였다.

영어 선생님은 언제부터 내 옆에 앉아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선생님을 알아볼때까지 아무런 말도 붙이지 않으시고 내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내가 선생님을 보고 슬쩍 인사를 하고 나서야 말을 하셨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선생님의 첫마디는 ‘날씨가 좋네’ 였다.


왜 학교를 소홀히 하는지, 혹은 내 심리상태가 어떤지 같은것에 대한 말은 아무것도 없이 선생님은 좋은 날씨와 선생님께서 고등학교때 체육시간이 질색이였던 일, 학교를 조퇴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면 뭘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얘기하셨다. 10분남짓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때는 그냥 신경쓰지 않고 지나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께선 최대한 내가 불편할만한 토픽은 거르고 나의 말벗이 되어주시려했던건 아니였는지 생각해본다.


내가 대학생같은 고등학교시절을 보내는 중에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어가고 있었는데 굳이 내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분위기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학교생활을 소홀히 하는 원인을 모두 어머니에게 돌리고 있는것 같았는데 학교를 안가면 닥달해서라도 애를 보내야 하는데 그냥 가만히 놔둔다는게 주요 원인이였던것 같다. 물론 어머니가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였다. 단지 내가 듣지 않은것 뿐.

또한 어머니 역시 나의 극적인 변화의 원인을 아버지에게 두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 좋지 않았던 두분의 관계가 악화되는것은 당연한 수순이였다.

하지만 형과 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아버지께서도 어머니께 손을 대지는 않으셨기 때문에(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나는 두분이 종종 언성을 높일때도 개입하지 않았다.

그냥 집앞 놀이터에 나가서 밤 늦을때까지 앉아있다 들어오거나, 동네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단지 육체적 폭력이 없어져서 개입 할 필요를 못느낀 것은 아니였고, 부부싸움을 하시는 그 상황 자체가 짜증이나서 보고 싶지 않았던것 같다. ‘별로 상관하고싶지 않다’ 같은 무덤덤한 감정도 있었던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때 병원을 착실히 다니면서 내 마음의 병을 잘 다스렸어야 하는데 그때의 나는 모든것에 무관심했고 짜증났기 때문에 병원도 가지 않았다. 병원에 가는 자체가 짜증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기의 내 감정은 무기력하고 멍한 상태와 괜한 분노와 짜증이 치미는 상태 사이에서 가파른 널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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