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내내 옆자리에서 자는 용이가 술에 취해 굴러다니며 필자를 덮쳤다.
살의가 치솟았지만 0.1톤에 육박하는 용이를 되는대로 다시 밀어내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렇게 되어있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방갈로 다락방 구석에 콕 박혀서 자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일행을 다 불러서 구경시켰다.
아침은 따로 밥을 지어서 황태국으로 해장을 하고, 일출과 동시에 출발했다.
먼저 들른 곳은 디르홀레이. 아름다운 절벽이 있는 곳인데...
눈보라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숙소에서 출발할 때부터 휘날렸던 눈보라는 디르홀레이 언덕을 올라갈 때 쯤에는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남의 상판을 딱딱 때리는 눈바람으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조금씩 바람을 헤치고 걷다 보니 앞에 희미한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와중에, 바로 앞에 등대가 나타났다. 조금만 멀어져도 이미 눈보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절벽 근처(로 추정되는 곳)에 가보았지만 아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언제 이 눈보라가 걷힐지는 알 수 없으므로 일단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노면 상태는 이 정도였다. 다행히 보이는 것보다는 미끄럽지 않았다.
레이니스피라로 가는 길에 들어서자, 하늘이 좀 맑아지기 시작했다. 약간의 희망이 보였다.
지금까지 안개와 비바람, 눈보라로 보이지 않던 그림같은 절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레이니스피라에 도착한 순간, 눈보라가 거짓말처럼 걷히며, 장엄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온갖 날씨에 대한 불만을 주절거리던 입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멎었다.
검은 화산암 모래로 된 해변과 흰 눈의 대비가 아름다웠다.
멀리, 디르홀레이에서는 우리가 겪었던 날씨가 그대로, 여전히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감상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비크이뮈르달에서 마트에 잠시 들렀다. 여기에서 아무 생각 없이 초콜릿 맛으로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한 통 샀다.
제일 많이 진열되어 있어서 당연히 초콜릿 맛이라고 생각했다.
점원이 ??이거 좋아하니? 하고 물어볼 떄라도 눈치챘어야 했다.
초콜릿이 아니라 감초 맛이었다. 겨우 반 정도 먹고 버려야 했다.
그 밖에도 계란, 과일 등등을 좀 더 샀다.
마트를 지난 후로는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오늘 안에 에이일스타디르까지 들어가려면 갈 길이 아주 멀었다.
창 밖 어느 곳이건 모두 그림이었다. 운전석을 제외하고는 쉴 새 없이 카메라가 돌아갔다.
이쯤에서 식사를 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은 아니고, 마트에서 산 빵, 소시지, 소스, 케첩, 양파튀김으로 뒷좌석에서 핫도그를 조립해서 앞으로 넘겨주었다.
그냥 운전하면서 핫도그를 씹었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가 마치 히말라야 산봉우리처럼 험준하게 떠올랐다.
험준한 산봉우리 사이로 푸른 빙하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이용한 업체는 TROLL이었다. 각각 아이젠과 피켈을 수령받고, 업체 차량을 타고 빙하로 이동했다.
옆에서 끄으으으 하는 소리가 나길래 돌아보니 건담이 쓴 헬멧의 턱끈이 개 목줄처럼 저렇게 조여들고 있었다.
저게 끝까지 늘린 건데...
산 사이로 흐르는 빙하는 아주 아름다웠다.
가이드가 빙하를 피켈로 조금 떼어 내밀었다. 깨끗한 얼음이긴 한데, 화산재가 여기저기 끼어있었다.
화산재가 많이 들어가면 색이 더 푸르게 짙어진다고 한다.
빙하 투어를 같이 하게 된 팀은 모두 중국인 신혼부부들이었다. 잠시 발을 멈추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금 움직일 때마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니까 직전 장소에서 찍었던 모든 포즈로 사진을 새로 찍고, 또 이동하면 여기가 더 좋다며 새로 찍고를 반복하다 보니 다른 팀들에 비해 발이 아주 느렸다. 결국 안쪽까지 들어가지도 못했다.
여기 정말 TROLL이 있었다... 심지어 한 커플은 차 타러 올때도 늦게 와서, 다음 차를 기다려야만 했다.
빙하 투어를 마치고 요쿨살론에 갔다. 여기까지 오니 해가 거의 저물고 있었다.
빙하가 떠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빙하 조각을 몇 개 주워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이어서 다이아몬드 비치에 갔다. 대낮에 갔으면 더 아름다웠겠지만, 시간이 늦어져서 이렇게라도 보아야 했다.
회픈에서 레스토랑 Pakkhus에 들러 랑구스틴을 먹었다. 역시 갑각류는 맛있다.
회픈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시간이 저녁 7시였다. 그리고 일행의 오늘 숙소는 에이일스타디르였다.
아직까지 250km를 더 가야 하는 상황. 일단 마트에서 사둔 몬스터를 들이키고 달렸다.
원래도 3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길이지만, 군데군데 눈이 깔린 밤길이라 넉넉히 4시간을 잡아야 했다.
게다가 졸렸다. 죽고 싶지 않아 중간에 1시간 정도 잠시 차를 멈추고 잤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열두시를 조금 넘었다.
숙소는 전날처럼 cottage였는데, 이번에는 시설이 좀 더 좋았다.
마트에서 사온 서양배를 깎아 먹어보았다. 서양 배는 영어책에 나온 그림으로만 봤기 때문에 이렇게 길쭉한 모양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실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유튜버 영국남자였나, 한국 배를 외국인들에게 먹여보고 반응을 보는 동영상이 있었는데, 외국인들이 보이는 그 반응이 이해가 갔다. 향은 비슷한데, 훨씬 푸석푸석하고 달지도 않고... 맛이 없었다. 식감은 생대추에 가까운 퍼석한 느낌이었다.
하늘이 매우 맑았지만 오로라가 보이지 않았다... 뜨지 않는 오로라를 기다릴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일단 잠들었다.
*2일차 이동거리
비크 숙소 ~ 에이일스타디르 숙소 : 587km
총 이동거리 : 10436km
총 운전거리 : 931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