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하게 버스에 뛰어오른 그는 바싹 마른 체격에 하얀 민소매티를 입고있어 애처로울 정도로 뼈들이 앙상하게 드러났다.
머리는 갈색에 긴 단발 머리였으며, 부스스하게 엉클어져 영판 미친ㄴ 꼴을 하고있다. 풀려버린 눈알을 보자 더욱더 미친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는 오른손에 들고있던 총을 사방으로 겨누며 소리쳤다.
"움직이면 쏴버린다!"
다분히 모형총으로 보였다. 그렇게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 어느 미친ㄴ이 갑자기 버스로 뛰어들어 총을 겨누니, 그것이 진짜 총이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버스 승객들은 그런 나의 생각과 동일한듯, 잠시 그남자에게로 시선이 향한후, 모른척 시선을 외면했다.
"이,이! 이것들이 미쳤나? 이거 진짜 총이라고! 다들 죽고싶어?"
남자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흥분을 토해냈다. 하지만 전혀 흥미가 가질 않는다. 그저 '쯧쯧'하며 불쌍한듯 혀를 찰뿐.
"아니 근데 이세끼가 돌았나?"
오른쪽 맨 앞자석에 앉아있던 대학생 형(캠퍼스 복장과 크로스백을 매고있는것으로보아 대학으로 보인다)이, 꽤나 험악한 말투로 말하며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 탕!
요란한 총성이 버스안을 가득매웠다. 이미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전혀 들리지않는다. 오로지 관심이 그쪽으로만 쏠렸기 때문이다. 남자가 들고있던 총에 총구가 번쩍이더니, 대학생 형이 배를 움켜쥐며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움켜쥔 손가락 사이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나도 놀라고, 버스 승객 전부가 놀라고, 기사 아저씨도 놀랬다.
"꺄아아악!"
사방에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총을 든 남자는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며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어댔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서 빼버린채, 그곳을 집중했다. 두려움에 동공이 확대되며, 몸이 떨린다. 그리고 막대한 후회감이 몰려왔다.
염병할, 조금만 더 일찍 나왔더라면.
늦잠을 자버렸다. 휴대폰을 바라보니 어느새 모닝콜은 꺼져있었다. 잠결에 꺼버렸는지 아니면 잘못 조작을 해놓았는지 알수가 없었다. 엄마는 일찌감치 출근을 한 뒤였으니, 그 누구도 날 깨워줄 사람은 없었다.
다급하게 욕실로 향했다. 머리에서 냄새가 나든 말든, 세수만 하였다. 눈곱만 데충 처리한후, 교복을 챙겨입곤 가방을 들어 현관문을 뛰쳐나갔다.
아참! 준비물을 깜빡하였다. 신발을 신은채로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체육시간에 필요한 줄넘기를 집어 가방속에 넣었다. 그리곤 다시한번 현관문을 박차고 뛰쳐나간다.
다다다닥. 열심히 달렸다. 지금 버스. 지금 시간에 오는 버스를 타지못할시엔, 홀라당 벗겨진 머리에 햇살을 담고있는 학생주임에게 두들겨 맞을것이 분명했다. 악명나기로 유명한 학생주임은 모든 학생들에게 두려움에 대상이였다. 그런 그에게 맞는다면...젠장. 상상하기도 싫다.
어느덧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도 보인다. 내가 타야할 버스. 100-1번.
"으아아악!"
지금 우사인 볼트라도 나보다 빠를까? 백 미터 남짓 떨어진 버스정류장을 향해 미친듯이 달렸다. 발이 안보일 정도로, 신발이 바닥과의 마찰로 인해 찢겨져 버릴 정도로 달렸다.
십 미터 남짓 남았을땐 출입구가 닫히고 있는게 보였다. 아저씨 날 기다려란 말이야!
- 부아아앙~
버스기사는 참으로 매정했다. 버스에 옆면을 무작정 두들겨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창문으로 버스에 타고있던 많은 학생들이 보였다. 날 보며 히히덕 거리는걸 보니, 그들도 나의 앞날을 예상한듯 하다. 대머리 학생주임에게 맞는 나의 모습을.
무더운 7월경 아침이라, 잠시 뛰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두손을 무릎에 받치고 허리를 숙인채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 떠나는 버스를 바라본다. 사랑했던 연인을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한참이나 버스를 미련하게 바라보았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땀을 식혔다. 하지만 내리쬐는 햇살에 땀들이 찐득하게 변해 넘치도록 불쾌감을 주었다. 오른손을 펼쳐 얼굴앞에서 손목을흔들었다. 열심히 흔들어보지만, 희미한 바람만이 얼굴에 부딪쳤다.
괜히 팔만 아프고 힘들기만 하다.
10분여가 지난후 버스가 도착하였다. 오래된 버스라 그런지, 기사를 보호하는 칸막이가 없는 그런 버스였다. 웃으며 날 맞아주는 버스기사에게 나도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 학생입니다.
휴대폰에 달려있는 작은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갖다댄후, 버스안을 바라보았다. 이전 차만 해도, 학생들로 버스가 붐볐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와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이라곤 두명정도만 보인다. 저들도 나와 함께 엉덩이에 불나도록 맞겠지.
자리가 많았던지라, 왼쪽 맨 뒷자리에서 한칸 앞에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버스안은 시원한 에어콘 바람으로 날아갈듯 쉬원했다. 가방속에서 주섬주섬 엠피쓰리를 꺼낸후,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전원을 켠후, 엠피쓰리안에 따로 보관을 해놓은 오래된 노래 모음창으로 들어갔다. 무작위로 설정한후 노래를 틀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은은한 선율에 노래를 감상하고있다. 괜히 마음 한구석이 포근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런게 뮤직비디오 한장면 같기도 하다. 괜히 눈을 지긋이 감은채 머리를 살짝살짝 흔들었다.
잠시후 쿵짝쿵짝 신나는 노래가 나왔다. 자자의 '버스 안에서'이다. 몇일전 친구로부터 알게된 노래였다.
다운을 받고난뒤 지금이 처음 들어보는 노래다. 굉장히 신이 난다. 앉은채로 몸이 들썩들썩 들리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왠지 공감도 간다. 지금 나는 학교가는 버스안이므로.
그 노래가 한창 흘러나올쯤, 왠 남자가 버스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나는 그 남자를 바라보며 이제서야 두려움이 들었다. 삼촌이 조카에 장난감을 훔쳐온듯 보였던 총이 진짜 총이였다. 그 남자 앞에 쓰러져있는 대학생 형을 바라보면 알수있다. 총알이 파고들어간 배속에선 꿀럭꿀럭 피가 흘러나온다. 이미 버스 앞편에 바닥은 시뻘건 피로 도배가 되어있다.
버스 승객 모두가 혼란에 빠져버렸다. 버스가 잠시 휘청거리는 것으로 보아, 기사 아저씨도 적잖이 놀란듯하다.
"모두 좌석에서 내려와!"
남자가 소리쳤다. 하지만 처음엔 그말이 무슨뜻인줄 몰라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자리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앉아라고! 창밖에 놈들이 볼수도 있잖아! 빨리빨리 안해? 이새끼처럼 배에 구멍뚫리고 싶어?"
그제서야 승객들이 후다닥 버스바닥에 앉았다. 하지만 슬금슬금 뒤로와, 버스 뒷편에 모든 승객들이 바싹 붙어있는 상태였다.
남자는 여전히 실실쪼개며 버스 뒷편으로 다가왔다. 모든 사람들이 덜덜 떨고있다. 그것은 나도 마찮가지지만.
"자, 보자.. 하나 둘...일곱. 뭐야? 이것밖에 안돼? 기사랑 죽어버린 저놈이랑 합쳐서 아홉뿐이거야? 씨벌! 이러면 안되는데!"
남자의 웃음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흥분한듯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것으론 모자라! 적어도 두배는 있어야지!"
남자의 말이 무슨뜻이지 도통 이해가 가질않았다.
남자는 갑작스레 후다닥 뛰어 버스앞편으로 다가갔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있던 버스기사는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개쎄끼가 죽고싶어 환장했나?"
남자는 총을 들어 버스기사를 위협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그럴게요!"
남자는 휴대폰을 뺏은후 주머니로 넣었다. 그리곤 총을 버스 뒷편으로 겨눈후 말했다.
"어이, 니들도 휴대폰 몽땅 앞으로 던져. 잠시후에 내가 뒤져서 나오면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테니까 알아서들해."
남자의 말엔 진심이 묻어났다. 지금 남자의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몸이 찢겨 버릴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앞편으로 던졌다. 승객들도 하나하나씩 휴대폰을 앞으로 던졌지만, 모두다 던졌는지는 알수없었다.
남자는 버스기사에게 작은소리로 무어라 말을하였다. 잠시후 기사는 고개를 끄덕인후 계속해서 운전하였다.
그무렵, 버스안 스피커에서 라디오 디제이의 말이 흘러나왔다.
[요즘 부산지역엔 연쇄살인마가 극성이라죠? 빨리 잡혀야할텐데. 부산 시민들이 걱정이 태산이겠어요.]
[그러게 말이죠. 뭐, 대량사살만을 일삼는 살인마라나? 네가지 살인 모두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살해했더라구요.]
[참.. 못된 사람이군요. 부산 시민여러분들! 경찰들이 필사적으로 잡으려한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요! 어서 빨리 잡히길 저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 그럼 이어서 할 코너는....]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스피커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젠장!"
저놈의 짓이 분명했다. 아까전에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말도 이해가간다. 경찰이 필사적이라는 말은 거짓말임이 분명했다. 지금 나의 앞에서 활개치고있는 이녀석을 보면 알수가 있다. 아니, 사실 그전부터 알고있었다. 이미 저녀석의 첫번째 살인은 두달 전 일이므로. 경찰들은 두달 동안 저런 미친ㄴ 하나 잡지 못하고 있었던거다.
나는 일단 주위를 둘러봤다. 옆에 있는 여섯명의 사람들을 보았다.
먼저 아줌마 한명. 아까전에 시끄럽게 전화를 하던 아줌마다. 승객 전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지만, 상관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일단 저 아줌마는 별 필요 없는듯 하다.
그 다음으론, 대학생으로 보이는 세명. 그중 여자 두명은 친한 친구인듯 서로 부등켜 안으채 두려워했다.
둘다 특별할것 없는 대학생으로 보였으며, 굳이 따지자면 한명은 마른 체격이고 한명은 통통한 체격정도였다. 역시나 별 필요 없는듯 하다.
그중 남자 한명은, 커다랗고 까만 뿔태안경을 쓰고있으며,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카락으로 보나 단정한 옷차림으로 보나 꼬옥 감싸안고있는 두꺼운 책으로 보나 모범생임이 뻔했다. 비록 남자지만 비실비실 한게 역시 별 필요 없을듯 하다.
또 그 다음으론 나와 같은 학교인 두명. 그중 여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였으며, 아직 중학생티를 벗지 못한듯 보였다. 그러므로 내 예상으론 올해 입학한 1학년일것 같다. 물론 이여자도 별 필요는 없다.
그중 남자는, 나와 같은 3학년으로 나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다. 허나 단한번도 말을 붙여본적이 없으며, 그러고 싶은 마음도 전혀없던 그저 같은 학년에 녀석일 뿐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녀석이 필요한 존재일듯하다. 바로 '탈출'을 위한 필요한 존재.
다시 한번 총을 든 남자가 다가왔다. 가슴이 쿵쾅쿵쾅 거린다. 어느 유명한 복싱선수가 신나게 샌드백을 두드리는 듯이 나의 심장또한 누군가가 신나게 두드리는것 같다.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지며 다가오는 그 남자가 점점 거대하게만 보인다. 마치 거인처럼. 큼직한 그늘을 만들어버린다. 그 그늘속은 무척이나 추워서 몸이 떨리는걸 주체할수가 없다.
나는 살아야만 했다. 결코 이대로 죽을순 없었다. 저녀석이 상대하기 벅찬 거인으로 느껴져도 나는 꼭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럴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나는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원수, 혹은 은인인 그 남자를 바라보며.
나에겐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라 불러야할 생물체는 있었으나, 그것이 아버지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매일같이 구타와 폭언을 일삼는 그 사람을 나는 아버지로 인정하지않았다.
분명 어릴적 추억을 떠올려보면 나에겐 아버지는 존재하였다. 그땐 무척이나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셨다.
나를 위해 술과 담배를 끊었으며, 주말이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와 놀아주셨다.
난 그런 아버지가 좋았으며, 자랑스러웠다. 주말이면 집안에서 뒹굴기만 한다던 친구들의 아버지와는 딴판이였다. 성실하게 일하며 항상 어머니와 나에겐 미소만을 지어줬던 아버지는 분명 존재 하였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변하였다.
사업실패. 이것이 큰 원인이였다. 빚더미는 막으면 막을수록 점점더 불어나기만 하였고, 주체할수 없는 악귀가 되어 우리들의 몸을 할퀴었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을 무너뜨렸으며, 옷가지들을 너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줄인 돈들도 몽땅 쓸어갔다.
집안은 아비규환이였다. 감당할수 없는 가난이 목을 조여왔다. 어머니는 급한대로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었지만, 아버지는 그날이후 변하였다. 매일같이 술병을 움켜쥐었으며, 없는 돈에 담배를 하루에 몇갑씩이나 피워댔다. 멍하니 술과 담배를 연달아 입으로 갖다대며 지냈다.
게다가 폭력또한 심했다. 무차별한 주먹이 나의 얼굴로 날아들어 왔으며,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너덜너덜한 신문 쪼가리가 되어버렸다. 그래. 그정도만 이였으면 봐줄만 했다. 아버지에게도 힘든 시련이였을 테니. 하지만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는것은 용서가 되지않았다. 안방이 구타의 소음으로 가득찼으며 매일같이 어머니는 피멍이 든채 살았다.
이로써 그것은 아버지가 아닌 포악하며 더러운 생물체가 되버린거다.
그렇게 2년을 살아왔다. 어머니에게 도망가서 단둘이 살자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어머니는 듣지 않았다. 곧 변할꺼라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것이라고.. 확고한 믿음은 매일같이 배신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를 두고 혼자 떠나기엔 걱정이 태산이였다. 나의 몪에 폭력까지 어머니에게로 간다면 목숨을 부지할수 없을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는 한통에 통화를 받고는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 갑작스레 부산지역에 나타난 연쇄 살인마의 첫번째 범행이였다.
작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아버지는 그 안에있던 사람들과 함께 생을 마감하였다. 열 세명. 자그마치 열 두명이 아버지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믿을수 없는 살인사건이였다. 그 포장마차 주변엔 또 다른 포장마차들이 즐비해 있었으며, 살인을 했다면 충분히 고함소리가 옆 포장마차로 전달될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먼저 한명이 살해당했을때 도망을 쳤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빠져나올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도데체 왜 그 많다면 많은 사람들이 단 한명에게 살해를 당했을까? 아버지 뒷목에 깊숙히 뚫려있는 칼자국을 보았지만, 도통 이해가 되질않는다. 설사 뒷목에 소리가 날수 없게 하는 곳이 있다하더라도 열 세명을 죽인다는게 가능할까? 그 살인마의 실력에 감탄을 할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상이 치뤄지고, 어머니는 끝임없이 울었다. 하지만 난 달랐다. 가슴속 댐이 무너진듯 아찔하지만 시원하게 응어리가 쏟아졌다. 마음이 한결 개운해지고, 어두운 공간에서 빠져나온듯 온몸을 빛이 감싸안았다.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 그래 햇살의 느낌. 거기다가 시원한 바람까지 곁들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좋다.
그렇게 불길속으로 떠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입고리가 살짝 올라간듯 하다.
이젠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가야했다. 고 삼 수능생인 나의 뒷바라지를 하시려면 큰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나는 기필코 성공해서 어머니를 다시금 웃게 만들어야했다. 그러므로 난 미칠듯이 공부를했다. 쉴 틈을 조금도 주지않으며, 책만 바라봤다. 어머니를 위해. 그래서 지금에 난 어머니를 위해 살아야만 했다.
버스는 즐비한 건물을 지나, 어디론가 향하고있었다. 점점 건물 수가 줄어가는 걸로 보아, 인적이 드문곳으로 향하는 듯 하다. 그곳에서 아마 우리들을 몰살하겠지. 그럴바엔 차라리 지금 어떻게든 해보는게 낫지않을까?
남자는 승객들이 던져 놓은 휴대폰 개수를 세우고있었다. 그틈에 재빨리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 덮쳐버리죠? 아무래도 우리 쪽수가 몇인데 밀리겠습니까?"
"흠.."
사람들은 고민했다. 쪽수가 많다한들, 상대는 그 유명한 연쇄 살인마이다. 단 네차례에 50명 정도를 살해한, 극악무도에 녀석임은 분명했다. 그런 녀석에게 함부로 덤볐다간 목숨을 부지할수 있을진 장담할수없다. 다만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죽어버릴 것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덤빌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곱! 그래, 개수가 딱 맞군! 어이 기사양반. 제대로 가고있는거 맞아? 왜이리 오래걸려?"
남자는 발로 일곱개에 휴대폰을 출구쪽으로 밀어버렸다. 탁! 탁! 출구에 부딪치는 휴대폰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남자는 운전기사에게로 향했다.
"어이! 기사양반! 이길이 아니잖아. 무슨 수작 부리는거야? 이렇게 빙빙 돌아가다니 당신 버스기사 맞아?"
"죄, 죄송합니다.. 처음 가는 곳이라."
"참나! 내가 가르쳐 줄테니 똑바로 가라구."
남자는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가르키며, 길을 안내하였다. 지금이 방안을 마련할 기회였다.
"자,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목적지에 도착하면 살수 없습니다. 어차피 죽을꺼 한번 부딪쳐보죠!"
"잠깐만요.."
대학생 여자들 중, 통통한 여자가 말했다.
"상대는 보아하니 연쇄 살인마인듯 합니다.. 무턱대고 덤볐다간 몰살 당할수도 있어요. 작전을 짭시다. 누구 무기로 사용할만 한것들 없나요?"
그러자 아줌마는 고개를 도리도리 하였고, 뿔태 안경 형은 두꺼운 책을 들었다. 하긴 저것으로 맞으면 꽤나 충격이 있을듯 하다. 대학생 마른 여자는 날카로운 만연필을 꺼내었고, 나머지 고등학생들은 책가방을 뒤져보았다. 이윽코 여학생은 가위를. 남학생은 커터칼을 꺼내었다.
나도 책가방을 열어보았다. 운전석에 있는 남자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살살 지퍼를 열고는, 손을 집어넣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마땅히 사용할것은 없고, 아침에 챙겨온 줄넘기를 꺼내었다. 그러자 통통한 여자는 손가락으로 줄넘기를 가르키며 기뻐했다.
"좋아요! 줄넘기가 있었군요. 좋은 방안이 떠올랐어요!"
줄넘기는 중학생 시절부터 사용하던 것이다. 워낙에 키가 자라지 않았던 터라, 계속해서 사용할수 있었다.
문구점을 지나칠때면 각양각색에 줄넘기를 보며, 나도 색을 가지고있는 줄넘기로 바꾸고싶었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있는 이 투명색에 줄넘기가 아직 사용할만 하니,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통통한 여자의 작전은 이러했다. 투명한 줄넘기를 바닥에 깔아 놓고 남학생 둘이서 나무로 된 손잡이를 하나씩 잡고있는다. 이때 중요한것은 절대 살인마가 나무로 된 손잡이를 보아선 안된다는 거다. 그러니 최대한 티가 안나게 두손으로 꼬옥 감싸, 손잡이를 숨겼다.
그리곤 뿔태안경 형이 고개를 숙인채 무언가 만지작하는 척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한 일이였다. 살인마가 궁금증을 못참고 먼저 확인을 해본다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총으로 먼저 뿔태안경 형을 쏴버린다면 큰일 인것이다. 형이 총을 맞은후, 살인마가 무엇인지 확인하러 오면 우리는 일사천리.
그러니까 통통한 여자가 말한 작전인 줄넘기를 잡아당겨 살인마의 발을 거는것은 가능 할 것이다. 그렇게 일을 끝낼수 있겠지만, 형이 총을 맞고도 살수 있을진 모른다.
통통한 여자는 살인마의 총에 총알수도 한계가 있다며, 함부로 사용하진 않을거라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예측일뿐 확답이 될수가 없다.
기상캐스터가 오늘 하루는 맑다고해도 비가오는 경우는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위험한 일이였다.
하지만 뿔태안경 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덤덤하게, 아무 표정변화없이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수 없는 형의 선택이였지만, 나는 무척이나 고마웠다.
왜냐면 난 어머니를 위해 살아남아야하니까.
버스가 멈췄다.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바라보니, 건물 하나 없이 잡초만 무성했다. 정말이지 인적이 최고로 드문, 아니 인적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곳이였다. 어떻게 이런 장소를 알아냈을까? 좋은일이였다면 박수를 쳐주고싶다.
이윽코 때가 왔다. 움켜쥔 두손에서 식은땀이 나오며 나무로 된 손잡이를 축축하게 적셨다. 남자가 실실 웃으며 뒤쪽으로 다가온다. 심장이 떨린다. 다시금 쿵쾅쿵쾅. 아파트 윗집에서 운동을 하고있고 그 아랫집이 바로 나의 심장인것 처럼 요란하게 쿵쾅거린다. 윗집으로 찾아가 따지고 싶은 마음보단 그소리가 귀신의 장난인것같아 두려움이 엄습했다.
먼저 중요한것은 남자가 바닥에있는 줄넘기를 보느냐 마느냐이다. 투명색이라 분명 눈에 잘 띄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보면 충분히 보였다. 제발 보지 말아야할텐데. 그순간 남자가 말했다.
애걸복걸하는 기사를 바라보며, 처음 버스를 탈때 보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밝게 웃어주며 날 맞이한 기사. 그렇게 인정많던 그는, 어느새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바껴있었다.
역시 죽음앞엔 장사없다. 버스기사도, 그리고 나도.
"아 시끄러. 닥치고 가만히 앉아있어. 그렇게 딸아이가 보고싶다면 당신 주소라도 남기던가. 딸아이도 저승으로 보내줄테니 거기서 만나면 되잖아? 낄낄낄.."
악마다. 저것은 뿔을 감추고있는 악마다.
"이,이!! 개쎄끼!! 죽어버려!!"
- 탕!
기사가 달려드는 순간 총구가 번쩍였다. 총알은 기사의 머리통을 관통하였고, 거기선 피가 솟구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덕에 나와 승객들은 핏물로 샤워를 하고있다. 피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하며 불쾌감을 선사했다.
총을 발사한 순간, 커다란 총성에 그만 손잡이를 놓칠뻔했다. 하마터면 큰일날뻔하였다. 더욱더 손잡이를 꼬옥 움켜쥔다.
남자는 총을 눈높이까지 들어 이리저리 보았다. 아마 총알수가 걱정이 된듯 하다. 허나 이것은 짐작일뿐,
총에 관해선 무뇌아인 내가 그 총에 총알이 몇개나 들어가는진 알수없었다.
"하하하, 즐겁군. 그럼 계속해서 축제를... 응?"
남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의 뒷편을 바라보았다. 뿔태안경 형을 본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할것인가? 총을 사용 할것인가? 아니면 확인부터 할것인가?
"너 이자식 뭐하고 있는거야?"
뿔태안경 형은 다급하게 손을 등뒤로 숨겼다. 물론 그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자식! 휴대폰 아냐? 두개나 가지고 있었어? 이리 꺼내봐바 뭔지."
"아무것도 아니라니깐요!"
"어라? 이자식봐라? 죽고싶어 환장했구나? 머리통 뚫리고싶어?"
남자가 슬금슬금 앞으로왔다. 꿀꺽. 마른침이 목구녕으로 빨려간다. 조금만 더 다가와. 조금만 더!
"이 개쎄끼야! 안꺼내? 진짜 쏴버린다? 앙? 쏴버린다고!"
남자는 총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위협만 할뿐 쏘지는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 이세끼 정말 골 비었네? 텅 빈 니놈의 대갈통을 날려버리기전에 빨리 보여줘봐."
터벅터벅. 남자가 한발자국씩 내밀때마다 수명이 깍이는 기분이다. 눈앞까지 와있는 그녀석에게 달려들고 싶었지만 침착하게 때를 기다렸다. 이제 한발이 줄넘기 반대편으로 넘어왔다. 반대쪽 발로 넘어와! 어서!
"아참! 내가 뭘하고 있던거야? 어짜피 지금 신고를 한들 아무 소용없잖아? 저자식이 여기가 어딘줄 알고 신고해? 그리고 경찰들이 오는 시간보단 너희들을 처리한후 도망치는 내가 더 빠르다구. 괜한 걱정을 해버렸군. 어이 거기 뿔태씨벌놈. 뒤에 숨긴게 뭔지 관심없어졌으니까 너 알아서 해라구 낄낄낄."
젠장. 큰일이다. 남자는 더이상 다가올 의향이 없는듯했다. 나는 반대편 손잡이를 잡고있는 나와 같은 학년 남자를 바라봤다. 그도 나를 바라봤고,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친다.
"이랴압!"
줄넘기를 힘껏 당겼다. 그러자 줄넘기가 남자의 다리 하나를 걸며 들어 올렸다. 휘청, 남자가 몸을 뒤로 휘청였다.
- 탕! 탕!
그순간 남자의 총에선 총알 두발이 발사되었다. 허나 휘청거리는 상태로 쏜 총알은 버스 뒷편 창문을 뚫고 지나갔을뿐, 사람들을 맞추진 못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자신들의 무기를 손에 움켜쥐었다. 남자가 휘청인 틈을 파고 들어야했다.
- 탁!
남자의 들렸던 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넘어 지기는 커녕, 순식간의 중심을 잡은 것이다. 곧바로 총을 들어 나에게 겨누었다.
"이 세끼들이 단체로 미쳤구나! 오냐! 너희들에 뜻이 그러하다면 내 일찌기 저세상으로 보내주마!"
눈앞에 있는 총구를 보며 순간 멍해져버렸다. 슬로우 모션처럼 모든것이 천천히. 남자의 말로 천천히. 총을 치켜드는 팔도 천천히. 나의 동공이 확대되는것도 천천히 이루어진다.
벼랑끝에 서있는 느낌이 이런것일까? 눈앞에 아찔한 총구가 낭떠러지와도 같다.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아슬아슬하게 벼랑에 걸터 서있는 나는 너무도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순간 그것은 번지점프로 바뀌었다. 나를 지켜주는 튼튼한 밧줄. 여전히 낭떠러지는 두렵지만, 그것이 있다면 한번쯤은 뛰어내릴수 있다.
"이야압!"
불과 0.1초의 시간. 남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때 너무나도 빠른 주먹이 나의 등뒤에서 날아왔다.
- 퍼어억!
그것은 남자의 턱을 강타하였고, 턱이 뒤틀리며 남자는 뒤로 쓰러져 버렸다. 계속해서 주먹에 주인은 남자에게로 달려들어 연방 주먹을 퍼부었다. 그러자 남자의 턱은 이리저리 뒤틀려 피를 토해내고, 하얀 이가 떨어져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절대 손에 꼭 쥐고있는 총은 놓지않았다.
주먹에 주인은 다름 아닌 대학생 형이였다. 뿔태 안경 속, 순진한 얼굴이 일그러지며 핏줄이 솟아났다. 그는 악마로 변해, 또다른 악마인 남자를 상대하는 것이다.
- 퍼어억!
바닥을 등지고 두들겨 맞던 남자가 총을 들고있던 오른손을 휘둘렀다. 딱딱한 총은 뿔태 안경 형의 얼굴을 때렸다. 그러자 쓰고있던 뿔태 안경이 멀찌감치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순간, 나의 머리속에선 의문 하나가 생겼다.
고등 입학 시절, 그러니까 아버지가 변한 시기부터 나는 민감해졌다.
아버지는 벨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열쇠를 이용해 문을 열고 오는 주의셨다. 그렇기에 나는 '딸칵'이라는 문여는 소리에 무척이나 민감했었다.
항상 '딸칵'하는 소리가 들리면 침대속으로 빨려들어가 잠자는 척을 했다. 그것이 유인책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주사에서 벗어날수있는 유인책.
아버지는 술이 취하면 꼭 나의 방에 한번쯤은 들어왔다. 그리곤 내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살펴보았다. 컴퓨터를 하고있는지, 만화책을 보고있는지. 아니면 공부라도 하고있는지.
만약 컴퓨터와 만화책인 상황이라면, 밤새도록 술주정에 시달려야했다. 중간중간 툭툭 건드리는 손찌검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 어느새 극심한 구타로 바껴있었다. 허나 공부를 하고있다해서 좋은것은 아니다. 깨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의 주사에 시달려야만 했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자는 척이였는다. 아버지는 잠을 자고있는 나를 툭툭 건드려보지만, 미동이 없으면 포기하고 안방으로 가셨다. 그리곤 나는 계속해서 자는 척을 하며 기다렸다.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들릴때까지. 어머니 걱정에 맘편히 잘순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때서야 잠을 자거나, 혹은 컴퓨터나 만화책. 그리고 공부등을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 삼이 된 무렵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덤덤하게 평소처럼 생활하던 나에게 어느날 어머니가 하실말이 있다하였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시며 어머니는 '그날'에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집안으로 들어오셨다했다. 왠일로 술이 취하지 않은 모습. 왠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어머니는 낯설기까지 했다고한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진 않았지만 나의 방으로 향했다. 그날 나는 잠든척이 아니라 진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나의 옆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셨다한다.
"흐으윽.. 가엾은 내 아들.. 못난 아비만나 뭔 고생이냐.."
잠든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참동안 사죄하고 또 사죄하였다.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잠을 자고있는 나에게도 그리고 많이 수척해진 어머니에게도 고개숙여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다가가 끌어 안아주셨다 했다. 그렇게 둘은 부등켜안고 자고있는 나의 옆에서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셨다.
믿을수 없는 이야기였다. 매정하게 변한 아버지에게 그런 이면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허나 어머니의 눈물이 그것은 진실이라 대답해주고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날 참으로 오랜만에 아버지를 잠시 그리워했다. 머리속에 문자 하나를 만들어내며.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대학생 형의 뿔태 안경이 날아가며 그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났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 인자한 눈가의 주름과, 깊게 파인 인중. 그리고 진한 눈썹. 모든것이 아버지의 것이였다. 하지만 눈을 깜빡이는 순간, 아버지는 사라졌다.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얼굴. 모든것이 딴판인 형의 얼굴이 나타났다.
뭐였을까? 왜 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난것일까? 나의 머리속은 커다란 의문으로 가득 차버렸다.
복잡하게 뒤엉킨 그것을 풀어보려 애썼지만, 쉽사리 풀리지않는 의문이였다. 불과 1초. 아니 그것보다 못한 시간이였지만 분명 아버지의 얼굴이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 형의 얼굴은 아버지와는 완전히 딴판이지만 분명히 아버지의 얼굴은 나타났었다.
하지만 왜? 헛것을 본것일까? 복잡한 머리를 움켜쥐며 그상황을 지켜보았다.
단단한 총에 맞은 형은 입술이 터져버린듯 피가 흘렀다. 하지만 눈을 부릅뜨며 물러날 의향은 전혀 없어보인다. 계속해서 주먹을 휘두르다가 멱살을 움켜쥐었다. 힘껏 들어올려 창문쪽으로 던져버린다. 그러자 힘이 풀린 남자의 손에서 총이 빠져나가 창문밖으로 떨어졌다.
다시금 형은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남자도 정신을 차린후 달려오는 형에게 맞서 주먹을 날렸다. 둘의 주먹이 엇갈리며 턱을 때렸다. 피가 사방으로 터지며 고개가 뒤로 꺽여버렸지만 쓰러지지 않고 다시한번 달려들어 부등켜 안았다. 둘은 그상태로 몇바퀴 돌더니 형이 창문으로 다가가 남자를 창문쪽으로 밀었다.
열린 창문으로 상체가 빠져나가 허리가 꺽였다. '컥!'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분질러지는 소리가 난다. 우드득. 뼈소리가 괴기하게 흘렀지만, 형은 끝임없이 남자를 밀었다. 그러자 남자가 창문밖으로 떨어지며 형도 덩달아 창문 밖으로 떨어져버렸다.
나와 나머지 다섯명의 사람들은 그모습을 멍하니 지켜만 보았다. 차마 악귀들의 싸움에 껴들수가 없었다.
혼이 나간듯 계속해서 멍하니 지켜보기만 하였다.
밖으로 떨어진 둘은 고통스러운듯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는 급하게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러더니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었다. 당황한듯한 형의 모습이 보인다. 남자는 허리를 붙들고 일어섰다. 실실 웃으며 단도를 치켜들었다. 햇살을 머금은 단도는 눈이 부신다.
촤악! 남자의 단도가 형의 팔을 그었다. 형은 고통스러운듯 미간이 찌푸려지며 팔을 움켜쥐었다. 남자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듯 여유를 부렸다. 이리저리 단도를 휘두르며 위협했다. 그순간 형의 발이 빠른속도로 단도를 걷어찼다.
단도는 공중에서 세바퀴 정도를 돌아 바닥에 떨어졌다. 남자와 형은 곧바로 칼을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칼을 잡았지만, 손잡이는 형이 잡았고 남자는 날카로운 칼날을 잡아버렸다.
"크아아악!"
고통스러운듯 남자는 고함을 쳤다. 잡았던 칼을 놓아버리자 형은 단도를 낚아챘다. 전세가 역전된것이다.
형은 비틀비틀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뒷걸음을 친다. 하지만 형이 달려들며 남자의 가슴팍을 찔렀다.
"으악!"
남자는 다시한번 고함을 쳤다. 그리곤 쓰러져버린다. 구멍이 나버린 가슴에선 꿀럭꿀럭 피가 흘러넘친다.
주위에 잔디들이 시뻘건 피로 도배가 되었다.
버스안 승객들이 환호를 쳤다. 모두 너나 할것없이 부등켜안고 기뻐했다. 살수 있다는 기쁨. 주체할수 없는 기쁨이 솟구쳤다. 하지만 나만은 멍하니 그곳을 주시하였다.
형이 다시한번 칼을 들어 찌르려하자, 남자는 두손을 휘두르며 강렬히 저항했다.
"그만해! 용서해줘 제발!"
그러자 형이 웃었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승리의 웃음. 혹은 안도감의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곤 들고있던 칼을 거두었다. 남자에게 다가가 귀에대고는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정적이 흘렀다. 기뻐하던 버스의 사람들도 멍하니 형의 말을 듣고있던 남자도 멍하니 있었다. 시간이 멈춰버린듯, 더이상에 움직임없이 정적이 흘렀다.
말을 끝마친듯 형이 남자의 귀에서 얼굴을 때었다. 그러자 남자는 놀란 기색이였다. 미친듯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니야.. 아니야!"
형은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군. 덕분에 수고를 덜었으니말야."
고맙다? 수고? 이게 무슨 뜻일까?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버스안 승객들도 나와 마찮가지일 것이다. 모두들 형의 말을 이해할수 없었다.
"안돼! 저사람들은 내것이란 말야! 내가 살해할 놈들이라고! 더이상 너가 활개치는 모습을 볼수없어! 내가 영웅이란 말야! 나도 너처럼 매스컴을 타고싶다고! 나도 유명한 살인마가 되고싶단말이야 이 씨벌놈아!!"
- 푸우욱
단도가 다시한번 남자의 가슴팍을 찔렀다. 원망이 가득찬 눈으로 남자가 형을 바라봤다.
"나도.... 모두..들이... 무서워..하..는 살인...마가 되...고싶어..."
- 풀썩
남자는 알수없는 말을하며 쓰러져버렸다.
"키키키키키!!"
형은 미친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에선 모든 핏줄이 일어나며,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버린다. 뿔만 달렸다면 영락없는 악마의 모습이였다.
형은 칼을 들고 버스로 다가왔다. 눈을 희번뜩하게 뜨며 너무나도 소름끼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모두를 살해할것같은 눈빛. 살인마.. 그래. 저것은 살인마의 눈빛이다. 아까전에 남자의 눈빛보다 더한 살인마의 무시무시한 눈빛이였다.
그순간, 좀전에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 그런 것인가요? 당신이 나타난것이 그런이유였냐구요?
형의 얼굴에서 아버지가 나타난 이유. 도통 풀리지 않을것같던 의문이 풀려버렸다.
분명 아버지도 알고있었다. 내가 자신을 두려워 했다는 것을. 매일같이 자신을 피하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불속에서 덜덜 떠는 나의 모습도. 매번 방안에서 '딸칵'하는 문여는 소리를 집중했던것도.
그렇게 내가 자신을 두려워했단걸 자신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나타난것이다. 자신처럼 두려운 존재에게 자신을 보인것이다. 연쇄 살인마인 형의 얼굴에 나타나 나를 위협할 속셈이였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버지라면, 그런 모습이 형의 얼굴에서 나타났다면, 그래. 내가 그모습을 보고 도망가길 바랬던 거겠지.
하지만 아버지. 당신이 틀렸어요.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며 이야기했던 그날밤. 전 이미 당신을 용서했으니깐요. 더이상 아버지가 두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버지가 나타난 그 1초에 시간에, 저는 달려들어 안아버릴뻔 했어요. 반가움에.. 나의 앞에서 용서를 구하던 아버지에게 반가움에 포옹을. 그러니까 아버지, 당신이 틀렸어요.
왼손엔 칼을, 오른손엔 어느새 주워든 총을 들고있는 형은 총을 치켜들어 우리를 향해 겨누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