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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돌아보기 - 12
게시물ID : freeboard_17477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번째커튼콜
추천 : 0
조회수 : 11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18 10: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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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떤 날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대낮에 형과 같이 거실에 앉아 있었던것으로 보아 주말이 아니였나 싶다. 엄마와 형 나 이렇게 셋이 집에 있었는데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와 거실에 앉아 있는 형과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었다. 정확히 무슨 말을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머니의 말의 뉘앙스가 뭔가 찝찝했다. 뭐랄까 뭔가 암시적이었다고 해야하나.. 그 시기는 언제나처럼 부모님이 자주 싸우시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였을까 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간 어머니가 유난히 신경쓰였다. 나는 더이상 말 잘듣는 착한 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머니에게 만큼은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같은 우울증으로 치료받으며 어머니의 마음의 병이 얼마나 힘든것인지 어느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형은 이 무렵부터 어머니에게 종종 사소한일로 신경질을 내곤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형도 일련의 혹독한 상황속에서 마음의 병이 생겼고, 그 화살을 어머니에게 돌린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형은 아버지에게는 아무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회피하는 식이였고 유독 어머니에게만 공공연히 짜증을 내곤 했다.

형도 당시 심리치료를 받았더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해보곤 하지만 형이 병원에 가는일은 이후에도 없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간 어머니가 계속 신경이 쓰여 시간을 자꾸만 보고 있었다. 나의 기억속 유난히 맑았던 그날, 테라스를 통해 집안 가득 비치던 햇살과 햇빛을 받아 유난히 더 하얀 벽지위에 걸려있던 벽시계. 강하게 머리에 남은 그날의 거실 풍경 사이로 내 불안함은 계속 커졌고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간지 15분이 되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안방문은 잠겨있었고 뭔가를 눈치챈 나는 형을 불렀다. 문앞에서 몇번이나 방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부르던 형은 곧 방문을 발로차 문을 열었고 열린 문 안으로 조용히 침대에 누워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맡에 잔뜩쌓인 수면제 봉투도 함께.


곧바로 엠뷸런스를 불렀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가 위세척을 했다. 나는 모든 과정에 함께 있었는데 중학교 때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 계실 때의 간절함은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깨어나는걸 원치 않았다는것은 아니고, 이날 느낀 감정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쩌지하는 공포감이 아니라 언제든 어머니는 죽을 수 있구나 하는 현실 감각 그리고 이정도로 간절히 죽음을 바라시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 이었다. 그 비현실적인 현실감이 나를 더 덤덤하게 만들었다. 아무 동요없이 상황을 바라보는 날 보며 당황해하던 간호사 누나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내 자신이었다. 이 상황에도 감정이 동요되지않는 내 자신이 스스로 이해되지 않았다.


다행히 빠른 조치로 어머니는 바로 퇴원을 하셔도 되었기때문에 조치가 끝난 후 도착하신 아버지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만 위험한 상황만 지났을뿐 약기운이 모두 없어진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다음날 오전까지 계속 주무셨고, 그날 저녁 우리 3부자는 정말 오랫만에 모여앉아 중국음식을 시켜먹었다.

세 사람 모두 아무 대화없이 본인 짜장면 그릇만 내려다보며 고요속에 저녁식사가 끝이 났다.


이 날을 시발점으로 부모님은 이혼을 준비하시기 시작했다. 아마 더 이상 조각난 이 가족을 다시 붙이는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리신 것 같았다. 아니 실은 처음부터 한조각이 아니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결혼 생활을 지키려던 아버지께서 결국은 이혼을 결정하신 것인데 나는 열렬하게 부모님의 이혼을 찬성했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결정했다. (아버지를 어려워하던 형 역시 어머니와 살겠다고 결정하였다.) 그때 당시에는 아버지만 없어진다면 모든것이 행복해 질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부모님은 나름의 이혼 합의 절차를 밟아가시는 듯 했고, 나는 여전히 불성실한 고교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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