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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에는 고양이가 산다.
게시물ID : animal_1441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벤티같은톨좀
추천 : 11
조회수 : 73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0/23 14:06:31
유독 춥던 상병 휴가였다.
정신 못 차리게 취한 채로 눈밭 한 가운데 앉아
이대로 눈 속에 폭 묻혀 눈감으면,
그건 그대로 편해지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때 꽁꽁 언 발치가 따뜻해진다 싶더니,
냐-하는 울음소리가 나를 깨웠다.
한 겨울 속 내가 너무 추워보여 봄이 조금 일찍 찾아온 건지,
눈이 아리도록 노란 고양이였다.
안녕? 너도 춥지? 하고 묻자 한 번 더 냐-하고 울더니
현관 처마 밑으로 달려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도 따라가 머리를 쓰다듬자 녀석이 골골대며 몸을 비볐다.
그 작은 봄에, 한겨울이던 내 마음도 녹았다.
난 그 아이를 봄이라고 불렀다.

봄이는 날 좋을때면 놀이터 벤치에서 해바라기를 즐겼다.
아이들이 귀찮을 정도로 만져대도,
자기보다 큰 강아지가 짖을 때도,
하악질 한 번 안 하던 순한 봄이는,
다 곪아버린 속을 어디 하나 말할 곳 없어,
내가 달 아래 앉아 있을때면 언제왔는지 발치에 와있었다.

고양이 통조림을 처음 사준 날,
기분 좋은 듯 냥냥 하며 먹다가,
담배 하나 덜렁, 올려진 내 손 위에
한입 가득 통조림을 물어다 놓고 너도 한 번 먹어보라며,
맛있어서 기분 좋아진다는 듯 바라보던 모습에
배가 아플 때까지 웃어젖혔던 적도 있었다.

어제 퇴근길에, 집 앞 풀숲 사이로 하얀 봄이의 발이 보였다.
봄아! 하고 부르면 냐-하고 돌아오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봄이는 그렇게 좋아하던 통조림이 올라간 끈끈이 덫 위에 누운 채,
그 풀꽃처럼 푸르던 눈을 감고있었다.

어찌할 줄 몰라 가만 서있던 나를, 순찰 중이던 경비 아저씨가 올려보냈다.
자신이 치울테니 민원을 넣지 말라고하셨다.

치운다뇨, 어디로요? 얜 여기가 집이었어요. 누가 이랬죠? 아저씨?
CCTV 돌려주세요. 누군지 잡아주세요.
머리속에 팽팽히 차버린 말들을, 봄이 처럼 굳어버린 혀는 내뱉을 수가 없어
그냥 그렇게 무력하게 집에 올라와 누웠다.
창문을 닫고, 이불 속에 웅크려도 너무 추웠다.
봄이는 이불도 없는데 얼마나 추울까. 생각하다 잠에 들었다.
진작 데려올걸, 현관 넘어 건물 안에들어오면
발톱을 세웠던 그 아이가 갑자기 너무 미웠다.
자유롭게 사는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며,
그냥 나 편한대로 생각했던 것 같아, 나 자신도 너무 미웠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니 봄이는 없었다.
아마 더 따듯한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있는가보다.
나도 주말에는, 봄이가 늘 앉아있던 그 벤치에 앉아,
통조림 하나 옆에 따두고 해바라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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