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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미래를 보는 사나이 - 2 -
게시물ID : panic_144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모
추천 : 3
조회수 : 9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4/23 14:08:21
[펌]미래를 보는 사나이






“다, 당신 무슨말을 하는 거야. 무슨 수작이야!” 




검은 신사의 우습지도 않은 말에 경민은 오히려 화가 났다. 자신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별로 믿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네. 난 자네의 쓰레기같은 인생을 구제 해주기 위해 자네 앞에 나타난 것 뿐이네. 약간의 조건을 걸고 말이야.” 




신사의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서 자세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입꼬리를 비쭉 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경민은 신사가 대체 뭐라고 이야기하는 건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당신 뭐냐고, 대체!!” 




검은 신사는 피식 코웃음을 치는 듯 했다. 




“사람들은 나를 악마라고 부르더군.” 




검은 신사의 대답을 들은 경민은 순간 얼어버렸다. 신사의 목소리는 경민의 신경계를 타고 흘러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것만 같았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터무니 없는 말이었지만, 경민은 전음처럼 뇌 속으로 전달되는 ‘악마’라는 단어에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아, 악마...” 




경민의 턱이 얼마나 떨렸던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검은 신사는 다시 근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을 주지.” 




‘미래...를 보는 능력...?’ 




경민은 얼떨떨했다. 




“그런데 말이야. 난 말그대로 악마란 말이지. 조건없이 자네에게 그런 엄청난 능력을 줄 수가 없다는 말이네. 자네가 미래를 보기 위해선 한가지 조건이 붙는데 어디 한번 들어볼텐가? 밑져야 본전 아닌가.” 




자신의 신세를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검은 신사는 스스로를 악마라고 소개하고 있었고, 그 신사는 지금 자신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을 주겠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경민은 신사의 말을 쉽게 신뢰할 수 없었지만 그와 경민 사이의 기이한 분위기는 신사를 믿게끔 만들어져 갔다. 경민은 문득 신사의 말 그대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민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신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조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하나 죽이는거지. 사람을 하나 죽이고, 다음 날 눈을 떠 보면, 자네가 사람을 죽였던 그 날이 다시 시작될 거야. 자네가 죽인 사람의 흔적은 내가 몽땅 없애주지.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말이야. 그건 내가 보장하겠네. 그리고 그 살인의 댓가로 자네는 하루를 다시 살 수 있게 되는 거야.. 이해가 되나?” 




검은 신사의 이야기를 들은 경민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이라고?’ 



















적막했던 방 안은 수현의 쌔근대는 숨소리로 가득차고 있었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경민의 모습에 놀란 수현은 경찰서를 가자느니, 병원엘 가자느니 수선을 떨었고 그런 그녀는 경민이 한 시간을 달랜 후에야 잔뜩 삐친 모습으로 간신히 잠이 들었다. 

잠든 수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던 경민은 몸을 눕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경민의 머릿속에는 검은 신사의 말이 떠나지 않고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다. 




- 사람을 하나 죽이는 거지. 




경민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 살자고 사람을 죽인다는 건 말도 안돼. 그 놈이 사기꾼이라면... 아니야, 어차피 이렇게 살 바에야 한 번 해보는 것도...’ 




경민은 수현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은 옷걸이에 걸린 코트를 더듬고 있었다. ‘그것’을 찾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것은 검은가죽소재의 칼집으로 특유의 날카로움을 감춘 칼이었다. 경민은 조심스레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칼날에 비쳤다. 경민은 문득 칼날의 색깔이 붉게 느껴졌다. 검은 신사의 말이 떠올랐다. 




- 그 칼이 바로 자네에게 새로운 하루를 선물해 줄 녀석이네. 




‘새로운 하루, 새로운 하루..’ 




경민은 ‘새로운 하루’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이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그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오진 않았나 하는 생각에 곤히 잠든 수현을 바라보았다. 수현은 여전히 천사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새벽 4시. 밤이 깊었다라고 하기 보다는 아침이 밝아온다는 표현이 적합할 법한 시간이었다. 두툼한 점퍼에 니트모자와 마스크, 목도리로 중무장한 채, 11월 새벽의 찬바람 속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초조해 하던 경민은 다시 한번 검은 신사의 말을 떠올렸다. 




- 난 자네의 쓰레기같은 인생을 구제 해주기 위해 자네 앞에 나타난 것 뿐이네. 




‘구제...? 정말로 그런 거라면...’ 




자기가 원하는 날을 다시 한번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친 일, 지각해서 상사에게 욕을 먹었던 일을 전부 되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날 추첨된 복권 번호를 기억해두었다가 새로 시작되는 그 날에 1등 번호를 사둘 수도 있다. 또한 법이나 체면 때문에 못했던 일들을 잔뜩 벌여도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니까.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참고, 못하고, 그랬던 기억이 많은 경민의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욕망의 불꽃이 일고 있었다. 




‘할까, 해볼까...’ 




수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 그런 능력이 주어진다면... 우리 수현이...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될텐데...’ 




경민은 점퍼 주머니 속에 자리한 칼을 조심스레 쥐어봤다. 



















한산한 도로를 지나는 차들은 별로 없었지만 택시 잡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금새 경민 앞에 멈춰선 택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경민은 떨리는 손을 손잡이에 가져갔다. 

경민은 택시를 탈 때면 늘 그랬듯 자연스레 뒷문으로 손을 가져가다가 문득, 조수석이 사람을 찌르기엔 더 용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덜컥하고 택시문이 열렸고 경민은 천천히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 

택시 안은 바깥과는 달리 따뜻했다. 택시기사는 아무래도 모자에 마스크까지 눌러쓴 경민의 행색이 수상했는지 계속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경민은 곁눈질로 기사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자신의 의도가 들킬까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시켰다. 




“손님. 어디가시는지 말씀을 해주셔야지, 그렇게 앞만 보고 계시면 어떻합니까? 하하하.” 




‘아차.’ 




경민은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람을 죽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경민은 택시기사를 선택한 것이었다. 외진 곳, 아무 곳이나 가자고 한 뒤 죽이면 그만이니까. 아무도 모를 것이다. 더구나 그 검은 신사가 자신이 죽인 사람을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흔적도 남지 않게 없애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의 그런 의도를 전혀 모르는 택시기사는 경민의 행동이 우스웠는지 하하하 하고 호탕한 웃음을 내뱉었다. 

어디를 말해야 할까. 도무지 행선지가 떠오르질 않았다. 애초에 행선지 같은건 없었으니까. 그는 문득 지철이 ‘방학동 가주세요’ 했던 것이 떠올랐다. 




“바, 방학동 가주세요.” 

























“요새 날씨가 제법 춥습니다. 저도 그런 마스크 하나 장만해서 하고 다녀야겠어요.” 




적막한 택시 안의 분위기가 어색했던지 택시기사가 딴에는 개그랍시고 말을 건내왔다. 경민은 너무도 긴장을 하고 있던 나머지 그 말에 깜짝놀라 택시기사를 쳐다봤다. 그의 눈은 그의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런 경민의 반응에 놀란 택시기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민은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목구멍 밖으로 꺼냈다. 




“차, 차 좀 세워 주세요..” 




주변 도로는 한산했다.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내리시게요? 방학동 아직 좀 남았는데...” 




영문을 모르는 기사가 천천히 택시를 세웠고 경민의 심장은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경민은 몸이 뻣뻣하게 굳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지만 경민의 칼이 정확히 기사의 심장을 찌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장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핏줄기가 택시 앞유리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경민은 눈을 질끈 감은 채 한참을 택시 안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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